교섭의 말은 어떻게 달라졌나
그간의 갈등언어
3년 동안 교섭 테이블에서 오간 말들을 떠올려 본다.
회사의 말은 늘 같았다.
“자료가 없다.”
"경영권이다."
“경영상 비밀이다.”
“검토 중이다.”
“진정을 넣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우리가 들려준 말도 마찬가지다.
“교섭해태다.”
“조정 신청하겠다.”
“법 위반이다.”
이건 대화가 아니었다.
하나는 책임을 미루는 말, 하나는 책임을 추궁하는 말.
서로를 좁히는 다리가 아니라, 멀어지게 만드는 담벼락 같은 말들이었다.
이번 5차 임금교섭, 이해의 언어가 나오다
그런데 9월 25일, 다섯 번째 임금교섭에서는 조금 달랐다.
회사가 이렇게 말했다.
“동종업계 계열사처럼, 노동조합이 위임해 준다면 조정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현 상황이 어렵지만, 인상은 검토하려 합니다.”
우리는 그 말을 곱씹었다.
비록 답은 아니었지만, 그간의 공허한 “검토 중”보다는 훨씬 구체적이었다.
물론 회피도 여전했다.
성과급 규정은 분명히 있는데도, 회사는 “없다”는 말로만 일관했다.
재무구조 악화 자료와 임원 보수체계 역시 “줄 수 없다”는 대답뿐이었다.
하지만 우리도 달라졌다.
“회사의 입장이 명확해졌습니다. 다만 위임을 논하려면 노사관계 정상화가 먼저입니다.”
“간담회라도 하죠. 대표이사와 10분이라도 차담회를 하고 싶습니다.”
“조합원 의견을 모아 회사 안을 검토하겠습니다.”
그리고, 교섭이 끝난 뒤 노사 대표들이 같은 자리에 앉아 식사를 했다.
노조 설립 3년 만에 처음 있는 장면이었다.
말이 바뀌면 관계가 바뀐다
식사 시간은 단순히 밥을 나누는 자리가 아니었다.
그곳에서는 임금이나 자료제출 같은 날 선 단어들이 사라지고, 서로의 이야기가 오갔다.
회사는 회사대로 요즘 경영상황의 고충을 털어놓았다.
우리는 우리대로 현장의 어려움과 직원들의 목소리를 전했다.
사적인 이야기도 오갔다. 추석연휴에 어디 가는지, 건강은 괜찮은지, 평범한 안부가 오갔다.
잠시지만 서로가 ‘교섭 상대방’이 아니라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짧은 대화가 무슨 대단한 합의를 만들어낸 건 아니다.
하지만 단절과 냉랭함만 있던 노사관계에서 처음으로 사람 냄새가 났다.
그렇다면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대화를 할 수 있는 우리가, 왜 3년 동안은 갈등의 언어로만 싸워야 했던 걸까?
자료를 내라, 못 낸다.
해고다, 아니다.
부당하다, 정당하다.
그 싸움의 언어가 우리를 어디로 데려다주었는가?
결국 상생은 거창한 문서가 아니라, 말 한마디와 밥 한 끼에서 시작될 수 있음을 깨닫는다.
만약 서로에게 그 출발이 더 일찍 있었다면, 지금의 갈등도 달라지지 않았을까?
아직 갈 길이 먼 노사관계이다. 그래도 평행선이던 관계에서 언젠가는 교차할 각도만큼은 안쪽으로 틀어진 느낌이다.
뒤따라올 이들에게 전하는 말
최초 회사가 부당하게 했다고 느꼈을 때 강대강 대치가 이루어진 것은, 서로의 말의 의미가 달랐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노동조합의 말이 다르고, 회사의 말이 다르다는 것을 조금은 더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그렇게나 배웠던 역지사지(易地思之)를 왜 어른이 되어 잃어버렸는지 이제 와 아쉬움이 남는다.
후발주자들은 그 아쉬움을 줄여보기 위해서라도 역지사지부터 시작했으면 한다.
물론 그렇다고 주장을 굽힐 필요는 없다.
다만 서로의 말이 어긋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뒤따라올 이들에게 그런 불일치가 있음을 알려주는 것도 먼저 걸어간 이의 책임이자 몫 아닐까 생각한다.
이 노조록은 상생을 위한 기록이며, 모든 연대와 토론을 환영합니다.
이 글은 노동존중사회로 가는 발자국이며, 함께 걸어줄 모든 손길을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