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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의 교섭과 좌절 그리고 우리가 바라는 장면

2025년 임금교섭 진행상황

by 기록하는노동자
상견례, 늦게 열린 첫 문

7월 7일 오후 3시, 부천 복사골문화센터 512호.
4월 16일 단체협약 체결 이후 첫 임금교섭 상견례가 열렸다.
노조에서는 홍성재 위원장이 단독 참석했고, 회사에서는 노동조합 담당부서인 ER팀에서 2명이 나왔다.

참고로 ER팀은 팀장 한 명, 팀원 한 명이 끝이다.
우리는 말했다.
“상견례가 많이 늦어졌습니다. 임금인상 기준일이 5월 1일이니 교섭을 주 1회 정례교섭으로 빠르게 진행해야 합니다. 교섭시간은 10시부터 12시로 해 주세요. 회사와 노조가 번갈아 장소를 정합시다.”

회사는 담담했다.
“그동안 교섭을 해 온 장소인 복사골문화센터에서 계속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2~3주 1회 정도가 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상견례 자리라 자세한 자료는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짧은 상견례는 40분 만에 끝났다.
회사가 내놓은 건 ‘기존 관행 유지’였다.


객관적 생각

첫 자리부터 회사는 “교섭의 속도와 틀은 우리가 정한다”는 시그널을 보냈다.

노동조합은 속도를 내고 싶어 했지만 회사는 인력부족과 준비의 시간소요를 이유로 기존 방식을 고수했다.

결국 상견례는 구체적 합의 없이 끝났고, 서로의 시계가 다르다는 사실만 확인했다.


만일 이랬다면?

“2주 1회 교섭부터 시작해 보죠. 자료는 교섭 전까지 보내드리겠습니다.”
그랬다면 교섭은 첫 회부터 신뢰의 속도를 얻었을 것이다.
1차 교섭, 자료 없는 회의

7월 25일 오전 10시, 다시 복사골문화센터 512호.
이번엔 노조에서 부위원장도 함께했다.
우리는 공문으로 7월 8일, 17일, 22일 세 차례에 걸쳐 자료를 요구한 상태였다.
임금인상 계획, 재무구조 악화 및 주채무계열 편입 사유, 직급별 기본급 현황과 격차 사유.
하지만 테이블에 놓인 건 전자공시 기반 매출·영업이익 수치 한 장.
급히 만든것으로 보이는 설명자료뿐이었다.

우리는 목소리를 높였다.
“자료가 없으면 실질적 협의가 불가능합니다. 기초자료 없는 교섭은 대화가 아니라 버티기입니다.”

회사는 고개를 저었다.
“ER팀 인력이 2명뿐이라 준비에 시간이 걸립니다. 대외비 자료는 제공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오늘 교섭내용을 정리해 보내주시면 대응하겠습니다.”

회의장은 무겁게 가라앉았다.
1시간 남짓의 첫 교섭은 서로 입장만 확인하고 끝났다.


객관적 생각

회사는 핵심자료를 공개하는 순간 협상의 출발점이 노출된다고 우려했다.

노조는 자료 없이는 교섭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본다.

출발점이 맞닿지 않으니 교섭은 ‘자료 제출 여부’만 두고 공전했다.


만일 이랬다면?

“자료는 사전에 공유하겠습니다. 오늘은 이 수치를 기준으로 논의합시다.”
그랬다면 첫 교섭은 싸움이 아니라 해결의 시작이었다.
2차 교섭, 같은 대답, 반복되는 자리

8월 14일 오전 10시, 부천공장 3층 회의실.
이번 교섭은 사외가 아닌 사내에서 열렸다.
노조는 다시 자료를 요청했고, 이렇게 말했다.
“이 자료들은 임금인상폭을 계산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회사 상황을 함께 이해하고 합리적 판단을 내리기 위한 기초입니다.
오늘은 그 공백을 메우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회사는 말했다.
“연봉조정계획은 검토 중입니다. 각종 지표를 보면 동결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지속적으로 검토하며 다양한 의견을 수렴 중입니다. 아직 결정된 바가 없습니다.”

기본급 격차 문제에 대해서는
“주 5일제 전환과 연봉계약 과정에서 조정이 있었다”고만 반복했다.

우리는 되물었다.
“경영계획에서 임금예산은 매년 잡히는데, 인상계획 자체가 없다는 말입니까?
명확한 인상 수치를 알려줘야 협상이 가능합니다.”

회사는 끝내 수치를 제시하지 않았다.


객관적 생각

이 시점에서 교섭은 서로 다른 전제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회사는 ‘동결’을 기정사실로 보고 있고,

노조는 ‘근거 없는 동결은 수용 불가’ 입장이다.

같은 문장을 반복하는 교섭이 이어졌다.


만일 이랬다면?

“물가상승률 3%는 보장하고, 조합 요구 6.6%와 절충안을 다음 교섭에 제시하겠습니다.”
그랬다면 3차 교섭은 기대와 준비 속에서 열렸을 것이다.
3차 교섭, 긴장감이 최고조로

8월 28일 오전 10시, 같은 부천공장 회의실.
이번 교섭은 길었다. 두 시간 반 동안 이어졌다.
회사는 여전히 동결·인상 양면 발언만 반복했다.
노동조합은 RSU 48.5억 지급 사실을 꺼냈다.
“2023년 12월 이사회에서 임원 장기 인센티브 제도를 만들고
2024·2025년 두 해 동안 약 48억 5천만 원 주식을 임원 셋이 받습니다.
노동자들한테는 동결을 강요하면서 이게 맞습니까?”

회의장 공기가 싸늘해졌다.
우리는 고용노동부 진정을 예고하고 특별근로감독 청원·언론 공개 카드를 꺼냈다.
회사는 방어적으로 말했다.
“교섭을 하면서 진정을 넣겠다는 건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가급적 진정을 안 했으면 좋겠습니다.”

교섭은 결국 합의 없이 끝났다.


객관적 생각

3차 교섭은 갈등의 분기점이었다.

노조는 더 이상 기다리기만 할 수 없다는 신호를 보냈고,

회사는 여전히 임금인상자료나 대안을 내놓지 않았다.

교섭 테이블은 합의문 대신 불신만 남겼다.


만일 이랬다면?

“임금 3.5% 인상, 기본급 격차 조정 TF 즉시 발족, 보수체계 투명성 공동검토 합의.”
그랬다면 이날은 갈등의 날이 아니라 상생의 날로 기록됐을 것이다.
교섭 공전의 이유

자료 비공개, 서로 다른 전제, 시간 끌기 전략.

이 세 가지가 교섭을 공전시켰다.

노조는 투명성과 근거 있는 대화를 원했고,

회사는 불확실성을 줄이려 방어적 태도를 택했다.

결국 교섭은 실질적 대화보다 ‘조건 협상’만 반복했다.

지금, 그리고 앞으로

임금교섭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지금까지의 흐름으로 볼 때, 앞으로도 쉽지 않은 교섭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는 상생을 위해 회사에 일정 부분 결정권을 위임하는 방안도 고민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3년간 회사가 보여준 태도는 노동자의 희생을 당연시 여기는 자세였다.


특히 지난 2년간, 회사는 RSU(양도제한조건부주식) 제도를 신설하고
단 3명의 등기임원에게만 약 50억 원어치의 RSU를 배정했다.
RSU는 “회사 실적이 일정 조건을 달성했을 때 무상으로 지급되는 주식”으로
회사의 미래 성장성과 주가 상승이 기대될 때 도입하는 장기 인센티브다.
즉, 회사가 어렵다고 말하면서도 최고경영진에게는 “미래의 보상”을 확정해준 셈이다.

상생하고픈노동자들의노조록02-02.jpg 출처: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반기보고서(2025.08.14)

만약 이 50억 원이 약 700명의 직원에게 배정되었다면 인당 약 710만 원이 돌아갔을 것이다.
그 돈으로 직원들에게 성과급·격려금·임금인상 재원을 마련했다면 현장 사기는 달라졌을 것이다.


RSU는 원래 주주와 직원의 이해를 일치시키기 위한 제도다.
그러나 지금의 배정 방식은 “경영진만 주주”인 것처럼 보인다.
상생을 원한다면 RSU의 취지를 살려 전 직원이 회사의 성장 과실을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특별근로감독 청원과 같은 제도적 수단을 준비하고 있다.


회사에 남은 선택지는 두 가지다. 진정성 있는 자료 제출과 합리적 임금안으로 교섭에 응하는 것 아니면 감독기관의 개입과 사회적 여론 속에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

노동조합은 대립을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안전·임금·인력 문제를 풀기 위해 끝까지 대화를 시도할 것이다.

그러나 대화의 장을 거부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사용할 것이다.

상생하고픈노동자들의노조록02-01.jpg


이 노조록은 상생을 위한 기록이며, 모든 연대와 토론을 환영합니다.
이 글은 노동존중사회로 가는 발자국이며, 함께 걸어줄 모든 손길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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