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포니아, 2025. 3. 6., 서른한살의 기록
모국어를 할 때 나의 모습과, 외국어를 할 때 나의 모습이 다르다고 느낀 적이 있는가? 나는 영어를 할 때 간단명료한 단어들을 골라 최대한 직설적으로 말하고, 한국어를 할 때에는 내가 의도한 바를 쉽게 이해시킬만한 비유를 하되 최대한 직설적이지 않은 표현을 고른다. 그리고 이것이 내가 봉준호 감독의 영화를 볼 때 느끼는 점이다. 한국어를 하는 봉1과, 영어를 하는, 봉1과는 다른 인격의 봉2.
결론부터 말하면, 영화 "미키17"은 재미있다. 누가 봉준호 감독의 영화를 "재미없게" 볼 수 있을까? 괴물에게 가족을 빼앗긴 비극적인 상황에서도 마지막 한 발을 빠뜨리는, 반전에 반전을 더하는 이 나사빠진 유머를. 주인공이 17이 되기 전까지 거치는 수많은 죽음들이 꽤 잔인하게 그려졌지만(이 영화가 한국에서 15세이상관람가로 분류되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그 충격이란), 이 또한 영화에 해학이라는 캐릭터를 불어넣고, 더 나아가 주인공이 그렇게 살고 싶어하는 이유에 서사를 마련한다.
그런데도 용기를 내어 말하자면, 나는 봉1의 섬세한 비유를 더 좋아한다. 때로는 주인공의 시선으로, 인물을 배치하는 구도로, 좌우와 상하를 가로지르는 화면으로 나타내는 비유. 달달한 케익을 먹을 때 아메리카노를 곁들이기를 좋아하는 나는, 영화 또한 주제가 직접적일 때에는(자본주의, 과학의 발전, 생명의 존엄성과 다양성 등 전 세계가 공유하는 사회적 문제일 때에는 더더욱) 간접적인 표현방법을 개인적으로 선호한다. 그런 면에서 "미키17"은 니플하임으로 쏘아올린 설국열차같은 영화다.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전개와 방심해있던 관객들을 저격하는 유머는 여전하지만, 모든 상징들이 너무 직접적이어서 여백과 여운을 느끼기 어려운 영화.
이와 별개로 로버트 패틴슨의 연기는 정말 뛰어나다. 미키17과 18이 정말 다른 사람처럼 느껴지고, 찌질한 미키17도 "그래도 애는 착한, 우리의 루저"로 사랑스럽게 그려낸다. 뒤늦게 크리퍼의 매력에 빠진 관객들이 많은 모양이던데, 크리퍼보다 사랑스러운 우리의 미키17, 여러분 모두 보러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