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칭화랑, 화이트스톤, 탕 컨템퍼러리 아트, 현대모터스튜디오
걷기와 미술관은 닮아 있다.
사전에 정보를 검색하여 목적지를 정하고 나들이 장소를 정하는 경우도 있듯이, 보고싶은 전시 정보를 알아보고 계획을 세워 미술관을 방문하기도 한다. 하지만 무작정 걷다가 뜻밖의 기분 좋은 우연을 만나는 것처럼, 전시에 대해 미리 알 필요 없이도 걷다가 그냥 그냥 들어갈 수 있는 편안함을 가진 미술관들도 있다. 게다가 무료라면 더욱 좋다.
베이징의 최대 주요 예술구인 798(七九八艺术区)에서 내가 방문해보고 좋은 느낌을 받았던 곳들을 모아보았다. 입장료가 없고 (또는 저렴) 누구에게나 편하게 개방되어있는 갤러리(화랑)인 창칭화랑, 탕 컨템퍼러리 아트, 화이트스톤, 그리고 한국기업으로서 기술과 예술의 접점을 낮은 문턱으로 소개하는 현대모터스튜디오가 그들이다. 중국 현지의 셀 수 없이 많은 갤러리들 중에서, 글로벌하게 분점이 있는 전시 공간들을 모아보았다.
세상에 있는 모든 지식을 알아야 한다는 부담감 없이 관람객으로 자유롭게 미술관에 들어가 예술 작품 앞에서 우리가 느끼는 바를 알아가면 된다.
- 러셀 토비 & 로버트 다이아먼크 <토크 아트> 中
옛 군수공장을 개조해서 조성된 거대한 798예술구는 무수히 많은 미술관과 크고 작은 갤러리, 작가들의 작업 공간이 밀집되어 있다. 오늘 전시를 봐야겠다는 뚜렷한 목적 없이도 걷고 구경하고 먹고 마시고 쇼핑하다가 우연히 예술의 향기를 느끼고 기분 전환되는 그런 곳이다.
창칭화랑
常青画廊
Galleria Continua
주소 : 北京朝阳区酒仙桥北798艺术区内
위챗 공식계정 : Continua_BJ
갤러리 콘티누아의 중국어 명칭은 ‘창칭(常青)’으로서 항상 푸르다는 뜻이다. 1990년 Mario Cristiani, Lorenzo Fiaschi, Maurizio Rigillo에 의해 이탈리아 작은 도시 산 지미냐노에서 설립되었으며, 두 번째 2004년 북경 798예술구에 전시공간을 오픈했다. 이후 프랑스 물랭, 쿠바 아바나, 이탈리아 로마, 브라질 상파울로, 프랑스 파리에 잇따라 갤러리를 열었다.
내부 또한 콘트리트, 철근, 나무 서까래가 고스란히 드러나며 3층 높이까지 뻥 뚫린 놀라운 공간이 펼쳐진다. 예술가 입장에서는 어떠한 크기이든, 무슨 작품이든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어서 매우 행복감을 주는 공간일 듯하다.
화이트스톤갤러리 베이징
Whitestone Gallery, Beijing
白石画廊北京
주소 : 北京市朝阳区酒仙桥路4 号798艺术区七星东街
위챗 공식계정 : WHITESTONE1967
1967년 설립된 일본의 화이트스톤 갤러리는 일본(도쿄·가루이자와), 중국(베이징·홍콩), 대만(타이베이), 싱가포르, 한국(서울)에 지점을 두고 있다. 작년 겨울 방학, 서울 남산 자락에 위치한 화이트스톤갤러리 서울 전시공간에서의 전시 내용도 좋았고 남산 풍경을 아우르는 건축물도 멋있었기에, 베이징 798 예술구에 위치한 전시공간도 가보고 싶어졌다. 일본 베이스의 갤러리는 또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기도 했고.
갤러리 밖은 얇은 나무판이 연결된 구조물이, 내부로 들어오는 통로부터는 가늘고 유연한 대나무 조형물이 제일 먼저 반겨준다. 가벼운 느낌을 주면서도 탄력있고 단단한 나무들의 특성을 잘 살렸으며, 더불어 동양적인 멋도 넘치는 갤러리이다. 단아하면서도 시원하고, 조용하고 차분하면서도 밝은 느낌을 준다.
기간 한정 전시 외에 갤러리 소장품 상시 전시도 있다. 역시나 일본 작가들 작품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나라 요시모토(NaraYoshimoto Nara)와 쿠사마 야요이(Kusama Yayoi) 등 우리에게 친숙한 작가들이다.
후타가와 가즈유키 Kazuyuki Futagawa <With Nature> (2023)
일본화의 오랜 역사와 기법을 계승하면서도 서양화의 빛과 그림자를 이용한 원근법, 그라데이션을 통합하여 자신만의 독특하고 초월적인 화법을 창조한 작품을 선보였다. 자연을 배경으로 한 인간, 또는 자연 속에 인간 모습을 자연의 일부인 듯 몽환적인 느낌으로 표현하였다. 작품들 대부분 물감이 반짝이는 듯 보이는데 일본 전통 종이 위에 광물 안료 사용하였다고 한다.
김덕한 <Trace of Time> (2024)
1981년 생 우리나라 젊은 작가 김덕한은 옻칠이라는 한국의 전통적 기법과 재료로 반복적으로 색을 쌓아 올리고 벗겨내어 자신의 색을 구축하고 있다. 반갑고 신선했다.
탕 컨템포러리 아트
当代唐人艺术中心
Tang Contemporary Art
주소 : 北京市朝阳区酒仙桥路2号798艺术区内
위챗 공식계정 : tang_contemporary
https://www.tangcontemporary.com
탕 컨템포러리 아트는 1997년 방콕에서 창립된 이후, 베이징 3곳, 홍콩 2곳, 싱가폴에 1곳, 그리고 2022년 서울에 갤러리를 오픈하여 총 8곳의 전시 공간을 운영 중인 아시아 최대규모 갤러리이다. 동남아, 동아시아 작가들의 작품을 중점적으로 선보이며 아시아 현대 미술계 발전을 주도하고 있다. 베이징 전시공간 중 헤드쿼터는 수도공항근처 순이顺义 국가대외문화기지 (国家对外文化贸易基)에 있으며, 왕징에서 가까운 798예술구에는 제1, 제2 전시장이 운영되고 있다.
내가 탕 컨템포러리 아트를 처음 방문한 계기는 위에민쥔(岳敏君) 전시 광고를 우연히 접하고, 전시 마감 전 슬아슬하게 겨우 다녀온 것이었다. 1962년 중국 흑룡강성 출생으로, 냉소적 사실주의와 웃음 시리즈로 유명한 위에민쥔은 장샤오강, 왕강이, 팡리쥔과 함께 ‘중국 현대 미술의 4대 천왕’이라고도 불리며, 그의 1995년 작 ‘처형(The Execution)’은 2007년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 590만 달러에 팔려 중국 현대 미술 작품 중 최고가 기록을 경신한 작가이기도 하다.
위에민쥔 岳敏君 <Eudaimonia> (2022-2023)
자오자오 赵赵 <The answer is in the wind/A long day> (2023)
자오자오는 탕 컨템포러리 아트 소속 작가로 이데올로기에 맞서는 반중 체제와 개인의 자유의지를 주장하는 내용의 작품을 주로 다룬다. 2019년 AAC (Award of Art China) 올해의 아티스트 상을 수상했으며, 아이 웨이웨이(Ai Weiwei)의 제자이자 ‘제2의 아이 웨이웨이’로 촉망받는 작가다.
우국원 <Woo Kukwon: Once Upon Her Time> (2023)
1976년 생 '한국의 바스키야'라 불리는 젊은 작가로, 동화는 그의 표현의 기본 언어이다. 두터운 물감과 붓 터치로 회화와 조각 사이의 표현방식으로 동화 원래 의미를 뒤틀어버린다.
전광영《The Dimension of Threshold》 (2023)
1944년 생 우리나라 작가. 그의작품은 한국 전통 한지로 만들어진 종이묶음들이 군집으로 이루며 만들어내는 패턴과 솟아오른 입체들의 돌기된 표면이 보여주는 일정한 구조의 반복들이 특징이다. 코로나 이후 우리나라 작가 전시가 798에서 자주 눈에 띄어 더욱 반갑다.
현대모터스튜디오베이징
现代汽车文化中心
Hyundai Motor Studio Beijing
주소 : 北京朝阳区酒仙桥路4号798艺术区E-1号
위챗 공식계정 : hyundaimotorstudio
여기 타국에서 반가운 한국 기업의 이름을 만날 수 있다. 현대자동차가 자동차산업의 '모터'와 예술가가 자유롭게 창작하는 작업공간 '스튜디오’를 결합하여 기술과 예술을 넘나드는 문화 공간을 마련하였다. 우리나라에는 서울, 하남, 고양, 부산, 세계적으로는 러시아 모스크바와 중국 북경에 위치하고 있다. 베이징 798예술구에 2017년 현대자동차문화중심이라는 이름으로 오픈하여, 예술가들을 지원하고 기술과 예술이 결합된 전시를 연간 2~3회 진행한다.
현대모터스튜디오 건물은 798예술구에서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구역 중 하나로서, 거대 벽화가 시선을 끌어서 건물 앞에는 늘 사진 촬영하는 사람들로 붐비는 이 구역의 랜드마크이다. 현재는 전기, 물, 플라스틱, 가죽, 종이, 파이프, 벽돌, 나무, 알루미늄, 섬유 등 798 공장지대 구성 물질을 귀엽게 형상화한 영국 디지털 아트 그룹 Universal Everything의 《We Are All Unique》가 밝고 통통 튀는 이미지를 전달하고 있다.
건물 밖으로 튀어나온 이 미래지향적 분위기의 AHU라는 최첨단 공기 정화 장치는, 현재 공기 내 초미세먼지 및 오염도를 나타내며 4단계 필터를 사용하여 오염을 99% 이상 제거하여 건물 내 신선한 공기를 공급한다고 한다.
<World On a Wire> 전시 (2021)
디지털 아트 및 온라인 전시 기획에 전문성이 있는 라이좀(Rhizome)과 협업으로 증강현실, 가상현실, 인공지능과 같은 디지털 기술을 통해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아우르는 예술 작품을 선보였다.
<Hello, Robot - Design between Human and Machine> 전시 (2022)
Vitra Design Museum과 협력하여, 인간의 생활에 다양하게 사용되고 접목되고, 미래에 활용될 ‘로봇’이라는 주제를 흥미롭고 다양하게 보여주는 전시.
애니멀 팜 시뮬레이터 The Animal Farm Simulator (2023)
현대모터스튜디오의 주요한 활동으로, 매년 <현대블루프라이즈 아트+테크Hyundai Blue Prize Art + Tech>라는 이름으로 신예 큐레이터 발굴하고 후원하는 프로그램이다. 현대 사회의 주요 이슈를 혁신적이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탐구하고 기획하는 큐레이터들에게 수상하고 전시할 기회를 준다. 李峥(Li zheng)과 陈江虹(Chen Jianghong) 두 큐레이터가 선보이는 미래에 대한 그럴법한 가정들을 과학 기술로 풀어내는 전시였다.
격변생태 Metamorphic Ecosphere (2023)
Hyundai Blue Prize Art + Tech 2023년 수상자인 큐레이터 “종샤오宗晓 가 기획한 전시로서, 에너지와 식량, 기후 위기가 고조되는 인류 생태계에 우리의 신체, 생활공간에서 기술적인 변형을 받아들이는 가정을 보여준다.
문경원 & 전준호 <Weather Station 气象站> (2024)
기후 변화에 대한 인지도와 이에 대한 도전 의식을 높임으로써, 관객들이 인간 집단의 미래를 지구를 위한 행동에 참여하기를 촉구하는 우리나라 작가 듀오의 전시.
모바일 도슨트로 영어, 중국어, 한국어 설명을 참고할 수 있으며, 5인 이상 그룹으로 모국어 도슨트 설명도 무료 예약하여 제공받을 수 있다. 미래와 기술에 대한 주제로 일관성 있는 전시가 일년 내내 진행되므로, 아이들 데려가기에도 좋다.
세련된 까페와 즐거운 쇼핑거리가 넘쳐나는 798예술구를 방문하는 사람은 아주 많다. 유료로 진행되는 유명한 미술관 전시에는 사람들이 많이 몰리지만, 오히려 무료로 부담없이 오픈된 작은 갤러리들은 한가하다.
Something different, 798예술구에서 조금은 다른 걷기를 해보는 것도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