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나이이즘 VOL.1
스무 살이 되었을 때, 훗날 엄마가 어떤 할머니의 모습을 하고 있을지 궁금했던 적이 있다. 그때도 마음 여리고 다정다감한 여자일까. 여전히 새로 산 원피스를 입고 아이처럼 웃을까. 주름살이 얼굴을 뒤덮고 등이 굽어도 아름다울까. 삼십 대에 접어들자 이제는 나의 늙어갈 모습이 궁금해진다. 목숨을 앗아가는 사고를 당하지 않고, 죽을병에 걸리지 않고 무사히 할머니가 된다면 나는 노년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다큐멘터리 영화 <내 나이가 어때서>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는 작품이다.
CNordische Filmtage Lubeck
<내 나이가 어때서>의 주인공은 1973년 창단한 노르웨이 배구단 ‘낙천주의자들(The Optimists)’의 실제 단원들이다. 인생의 소소한 즐거움으로 배구를 해 온 66세부터 98세까지의 할머니 단원들은 배구단의 역사와 함께 모두 나이를 먹었다. 창단 10주년을 기념해 찍은 빛 바랜 사진 속 절반의 단원들은 무정하게 흐르는 세월에 저마다의 이유로 생을 마감했다. “마음이 약하면 할 수 없는 일이죠.” 88세의 릴레모르 할머니가 사진을 바라보다 나지막이 말한다.
죽음과 질병이 친구처럼 곁을 지키는 노년에서, 만남보다 헤어짐에 익숙한 할머니들에게 배구는 즐거움인 동시에 마음을 굳게 다잡아야 하는 수련이었다. 명확한 규칙 없이, 실수 연발에도 한바탕 웃으며 오직 재미와 친목을 위해 배구를 즐기던 할머니들은 평생 처음으로 다른 팀과의 경기에 도전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경기를 치를 팀은 스웨덴의 할아버지 배구단 ‘화약 같은 사내들’. 승부를 앞둔 할머니들은 원정을 떠나기 위한 기금을 모으고,코치의 지도 아래 본격적인 연습에 돌입한다. 돌아서면 규칙을 모조리 잊어버리고, 팔에 힘이 빠져 제대로 된 서브 한번 성공하지 못하던 낙천주의자 단원들은 과연 화약 같은 사내들을 상대로 승리를 거둘 수 있을까.
CNordische Filmtage Lubeck
자신의 나이를 등번호에 적은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펼친 낙천주의자 단원들 얼굴에는 누군가 반칙을 하고, 실수 연발이어도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우승 못하면 어때. 한 번 안아보면 그만이지!” 열다섯 명의 할머니 단원에게는 연하남 할아버지 배구단과의 원정 경기 자체가 상큼한 일탈이니까. 도전하고, 연습하고, 넘어지고, 즐거워하는 단원들의 모습을 보고 나니 할머니가 되었을 때의 삶이 기다려진다. 나는 그동안 왜 나이 드는 것을 두려워했나. 노년에도 이런 유머와 귀여움이 충만한데.
낙천주의자들의 최고령 단원인 98세의 고로 할머니는 암을 앓고 있다. 새해가 되자 그녀는 달력을 찢으며 이렇게 말한다. “지난해는 던져 버리자. 올해는 치과 검진으로 새해를 시작했는데, 참 기대가 돼. 새해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98세 할머니가 꿈꾸고 기대하는 내일은, 죽음을 맞이하기 전까지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지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배구가 있다. “한 번은 암 덩어리를 느껴 봤는데 좀 작아진 것 같더라고요. 병원에 갔더니 큰 고비는 넘겼대요. 그래서 속으로 웃으며 생각했죠. ‘난 한동안 안 죽을 거다.’ 난 암으로 죽을 것 같지는 않아요. 그건 나답지 않아요.”
죽음이 눈앞에서 손을 흔들어도 좋아하는 것을 놓지 않고 내일을 기다리며 살고 싶다.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죽음을 걱정하기보다 새로운 한 해를 기대감으로 맞이하는 삶. 나다운 모습을 지키고 내 감정의 주인이 되어 저물어가는 삶. 그런 할머니가 될 날이 무사히 찾아온다면, 지금보다 나를 더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
TEXT 성31 (매거진 나이이즘 에디터)
<내 나이가 어때서 (Optimistene), 2013>
다큐멘터리, 드라마, 가족 | 노르웨이, 스웨덴 | 80분
감독 군힐 망노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