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성공하지 않은 것일 뿐이다.
여기 A라는 회사가 있다. 현재는 인터넷 플랫폼 업체로 인식되지만 초창기에는 종이책을 온라인으로 판매하는 평범한 인터넷 서점이었다. 이 회사의 CEO는 A사 설립 전 신생 금융사 D.E. Shaw의 수석 부사장이기도 하였는데, 돌연 회사를 그만두고 시애틀로 떠나 현재의 A사를 창업하게 된다.
그는 21세기의 모든 사업이 디지털 비즈니스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초창기 인터넷 서점을 창업할 때의 모습이 오프라인 매장 하나 없는 완벽한 디지털 사업으로 시작하였다.
어느 정도 규모가 커진 후 A사는 닷컴 버블붕괴 등으로 인한 경영위기를 맞게 되는데, 이를 타개하기 위해 여러 가지 사업 다각화를 시도하게 된다. 여러 가지 시도를 하던 중 종합쇼핑몰 사업이 대박을 치게 되고, 이후 A사는 승승장구하며 주가가 수직 상승한다. 비즈니스 자체는 쇼핑몰 중심이었지만 A사의 CEO는 항상 회사가 디지털 기업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IT 엔지니어를 대거 고용해 기존 사업을 확장하는 한편, 미국 3대 일간지 워싱턴 포스트를 인수해 A사에서 쌓았던 디지털 경험과 기술을 전수했다.
눈치챘겠지만, A사의 이름은 '아마존'이고, CEO의 이름은 '제프 베조스'다.
내가 아마존에 대해 언급하고 싶은 이유는,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으면서도 스타트업처럼 움직이는 세계 유일무이한 기업이기 때문이다. 아마존의 혁신과 도전은 멈추지 않는다. 혁신으로 끊임없이 고객을 열광시키고, 실패를 자양분 삼아 다시 도전하여 결국 주주에게 커다란 수익을 안겨준다.
아마존은 2014년 파이어폰이라고 알려진 스마트폰을 출시했다. 애플과 삼성이 주도하던 스마트폰 시장에 과감히 도전장을 던진 것이다. 파이어폰에는 다른 스마트폰이 가지고 있지 않은 모션인식, 실시간 고객지원과 같은 차별화된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파이어폰은 고객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아마존은 이 사업의 실패로 인해 사업 전체가 휘청일 정도의 타격을 받게 되는데, 파이어폰으로 인한 순손실이 총 1억 7천만 달러에 달할 정도였다. 이 외에도 아마존은 수많은 실패를 했다. 숙박예약 서비스인 '데스티네이션', 전자지급 서비스인 '월렛', 소셜커머스 '로컬' 모두 고객에게 잊힌 지 오래다.
아마존은 파이어폰의 실패로 큰 위기에 빠졌지만, 여기에 굴하지 않고 다시 새로운 서비스를 선보인다.
파이어폰에 적용되었던 음성인식 기능을 이용해 AI비서 '알렉사'를 선보였고, 모션인식 기능을 이용해 세계 최초의 무인매장 '아마존 고'를 선보였다. 특히 '아마존 고'는 '폭망'했던 파이어폰의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 계산대 없는 완전 무인매장을 현실화시켰고, 각종 매체로부터 혁신적인 미래형 매장이라는 찬사를 받게 된다.
하지만 '알렉사'와 '아마존 고' 모두 다시 한번 위기를 맞게 된다. 고객들의 발길이 끊긴 것이다. 알렉사는 2022년 100억 달러에 달하는 손실을 입은 것으로 밝혀졌으며, 아마존 고 역시 3,000개의 매장을 오픈할 것이라는 당초 계획과 달리 현재 31개의 매장만을 운영하고 있다.
아마존 고의 실패 원인을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편의에 비해 과도하게 투입된 기술력으로 인한 비용 부담', '소비자를 자극하는 제품 수 부족'이라고 볼 수 있다.
아마존은 어떻게 대응했을까? 지금까지의 아마존의 행보를 본다면, 단순히 사업을 접고 포기했을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을 것이다.
아마존은 아마존 고의 실패를 통해 기술력만큼이나 제품의 다양성 역시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는 아마존 고를 디벨롭하여 2020년 아마존 고의 마트판인 '아마존 프레시'를 출시한다.
아마존 프레시는 제품군이 부족하다는 기존의 단점을 완벽히 보완한 매장이다. 완전 무인 매장답게 고객 안내는 AI비서 '알렉사'가 담당한다. 아마존의 도전은 이번에야말로 성공할 수 있을까?
결론은 다시 한번 폭망 했다. 아마존은 아마존 프레시의 신규 매장 확대 중단을 선언했고 일부 점포를 폐쇄해 현재 단 9개의 매장만을 운영하고 있다.
이 회사는 실패를 긍정적인 추진력으로 바꾸는 방법을 통달이라도 한 것일까? 현재 아마존은 2017년 인수한 오프라인 신선식품 마켓 '홀푸드마켓'에 자사의 생체인식 결제 기술인 아마존 원을 접목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아마존 고'와 '아마존 프레시'는 실패했지만, 그 과정에서 연구하고 개발한 기술력은 여전히 남아있으며, 홀푸드 마켓에서의 도전은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이다.
심지어 아마존은 실패 과정에서 개발한 생체인식 결제시스템 아마존 원을 페이바이팜(pay by palm)이라는 이름으로 판매를 하고 있다. 이쯤 되면 아마존의 실패를 실패라고 불러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도전이 끝나야 실패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도전이 계속되니, 과연 실패라고 할 수 있을까?
제프베조스는 아마존이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고 나서도 여전히 스타트업처럼 일하기를 원했다. 아마존을 대표하는 단어 중 하나가 데이 원(Day 1)이다. 데이 원 정신은 끊임없는 호기심, 민첩함, 실험적인 접근을 바탕으로 실패하는 경우에도 실패로부터 얻어진 교훈을 통해 미래에 고객들의 삶을 즐겁게 할 수 있는 새로운 제품 및 서비스를 만들어 낼 수 있도록 담대해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알렉사, 파이어폰, 아마존 고, 아마존 프레시 등 수많은 실패를 뒤로하고 언젠가는 고객의 요구에 100% 부응하는 혁신적인 서비스를 출시할 것으로 기대한다. 아마존은 언제나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니 말이다.
마지막으로, 2017년 세계지식포럼에서 셀트리온 서정진 회장의 연설 중 기억나는 메시지를 되뇌며 이 글을 마무리지으려 한다.
실패는 없는 겁니다. 아직 성공하지 않은 거지
실패라는 말은 관뚜껑 닫기 바로 직전에 쓰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