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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터 킴 Oct 25. 2019

정말 신기한 친구 올뤼모, 그립구나.

키득키득 까불 때는 까불고, 진지하게 일할 때는 냉철하고.

그 친구와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하다.

그 녀석과 함께 일하면 무서울 게 없다.

그 인간과 함께 해외출장 가면 꼭 추억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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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 친구 이름은 '올뤼모 다 실바'.

국적은 앙골라이며 근육질 몸매의 초콜렡색 피부라 얼핏 보기에 거칠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전혀 아니다.

오히려 부드럽고 유머러스하며 남성, 여성 직원 모두에게 인기가 높은 편이다.


그가 승진하기 전에는 까불고 장난치는 콘셉트가 있었지만, 승진 후에는 과묵하고 진지한 모습으로 이미지를 바꾸는 걸 보고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나에게는 예전 그대로의 모습으로 언제나 한결같았고, 서로 허심탄회하게 속 이야기를 털어놓는 가장 친한 사이였다.


 처음 Ana 국장님과 인터뷰할 때, 내게 말씀하셨다.


 "본인의 국제적 노출(International Exposure)을 위한 개도국 출장을 많이 경험했으면 좋겠다. TRS(Time Release Study)라는 국제무역 원활화 협정(Trade Facilitation Agreement)의 도구를 배우고, 한국과 선진국의 빠른 무역통관 노하우를 아프리카, 중남미, 중동 등 개도국들에게 전파하라."


 난 본래 한국에서 해외출장을 몇 번 다니긴 했으나, 그렇게 선호하는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국제기구 직원으로서 해외출장은 당연한 내 역할이기도 했다. 그래서 내심 새로운 도전이란 생각으로 TRS 팀에 합류했다.


  TRS 팀은 앙골라 출신의 올뤼모, 인도 출신의 판데이, 카메룬 출신의 삼손, 그리고 나까지 총 4명이었다.

처음에 그들과 마주 했을 때 외모를 보고 깜짝 놀라 속으로 중얼거렸다.


 " 이건 뭐야, 거의 조폭 집단 아니야? 꼭 만화책 속에 들어온 기분이네."


  올뤼모는 반짝거리는 스킨 헤드에 턱수염이 수세미같이 꼬여있었고,

  판데이는 프레디 머큐리와 닮은 데다가, 콧수염의 끝이 찔릴 것처럼 날카로웠다.

  삼손은 덩치가 백두산처럼 크고 목의 두께가 내 허벅지와 비슷했다. 또한 불어권인 카메룬에서 와서 영어를 말할 때마다 '콩스. 콩스. 콩스'처럼 비음과 목 긁는 소리가 들려 나름 힘들었다.


 한눈에 봐도 이들은 '수다스러운 마초 집단'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끊임없이 농담을 던지고, 내게 장난을 걸고, 문을 걸어 잠그고 속닥속닥 비밀 이야기를 하고....좀 유치해 보였다고 해야 하나.

 그나마 다행히도 삼손은 '5형제의 아버지'라 상대적으로 근엄하고 의젓해 보였다. 그는 3년 동안 내게 진솔한 형 같은 친구였다.


 나는 속으로 '이들과 앞으로 무슨 일을 한다는 말인가' 라며 의구심을 가지며 어처구니없어했다.

 하지만, 내가 준비한 10월 PTC 회의에서 그들 세명이 발표하고 토론하고 답변하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달라졌다.


 '저들이 내 앞에서 까불었던 그 장난꾸러기들이 맞는가?'


 눈을 다시 비비고 보아도 같은 사람이었다.

그들의 출신 국가는 비록 우리나라보다 못 사는 개도국이지만, 이 무역통관 분야에서 전문성은 최고였고, 국제적인 네트워크도 다양하였다. 난 그 '조폭 같은 녀석'들이 서서히 좋아지기 시작했고, 낮은 단계의 일부터 기분 좋게 배워 나가기 시작했다.


 일을 시작한 지 6개월쯤 지났을 때, 올뤼모와 같이 첫 출장인 페루 리마로 향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올뤼모와 브뤼셀 공항에서 만나 입국장으로 들어갔는데, 그는 면세점의 화장품에 관심을 가졌다. 옆에서 도와주던 어여쁜 백인 점원과 몇 마디를 주거니 받거니 하더니 어느새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었다. 서로 전화번호 교환은 없었으나, 대화한 지 3분 만에 스스럼없는 관계가 되어 있다. 정말 신기했다.


 마침내 페루 차베스 국제공항에 도착해서 출입국 심사를 받았다. 나는 한국인이라 금방 통과하는데, 올뤼모는 잡혔다. 그 이후 서너 번 같이 간 자메이카, 우크라이나 출장에서도 항상 같았다.


 '나는 항상 무사통과, 올뤼모는 한참을 설명하고 머리를 긁적이고, 서류를 보여주고....'


국제기구 직원이더라도 국적에 따라 심사 강도가 달랐다. 나라의 힘에 따라 심사 여부가 결정되지, 개인의 직업이나 신상과는 상관이 없나 보다.

 그래도 올뤼모는 그게 익숙한지 별로 투덜거리지 않고, 또다시 케리어 찾는 곳에서 온몸 문신을 한 인상 나쁜 남자와도 스스럼없이 말을 걸고 있었다.

얼마 안 되어 그와도 역시 친구가 되었다. 정말 볼수록 신기했다.


 공항을 빠져나와 호텔에 도착했는데, 올뤼모는 물 1리터짜리를 한 번에 원샷을 한다. 기내식이 잘 소화가 안 되어 잘 배출하기 위해 그런다고 한다.

그리고 저녁식사는 스킵하고 수많은 친구와 SNS를 확인하고 채팅을 하며 낄낄댄다. 난 혼자 저녁식사를 하고 방에서 맥주  마시며 쉬고 있는데, 올뤼모가 밤에 외출하자고 한다.


 우리는 바다와 해안절벽이 보이는 저녁노을을 뒤로하고 다정하게 사진을 찍었다. 찍어달라고 부탁한 이들에게 맛집을 소개받아 해안 절벽에 붙어 있는 카페로 가서 따뜻한 차를 마셨다.

아름다운 분위기에서 근육질 흑인과 참한 동양인 남성 둘이서 이야기하고 있으니 지나가는 사람들이 신기하게 쳐다보았다. 올뤼모는 담배와 술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같이 있으면 많은 소통이 될 교집합이 많았다.


또한 해 질 녘 노을을 뒤로하고 둘이서 찍은 사진을 우리 통관국 채팅방에 올렸더니 다들 짓궂은 말로 한 마디씩 날리며 그렇게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너희 둘 사귀는 거 아니야? 잘 어울리는 한 쌍이다.'라고.


 드디어 다음 날 시작된 TRS 워크숍.


 올뤼모는 나에게 오프닝 스피치와 TRS의 개괄 설명을 넘겨주었고 난 처음이라 긴장했지만, 잘 프레젠테이션을 마쳤다. 끝나자마자 올뤼모가 TRS 방법론과 맵핑에 대해 설명하는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강단과 복도를 오가며 명확하고 재미있게 설명할 뿐 아니라, 영어와 스페인어를 번갈아가며 유창하게 설명하고 청중과 끊임없이 소통하는 것이다. 난 헤드폰을 끼고 통역자의 말에 귀 기울였으나, 올뤼모는 헤드폰이 필요 없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는 불어, 이태리어, 포르투갈어(앙골라 모국어)까지 하는 능력자였던 것이다.

 현장에 나가서도 40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즐겁게 리드하며 꼼꼼히 통관 현장을 체크하는 모습, 하역 창고에서 검은 구두에 먼지가 수북이 쌓이는 모습, 중간 휴식 때는 여지없이 장난치고 까부는 모습.... 하나같이 모두 멋져 보였다.


 5일간의 출장을 마치고 페루 관세청에서 준비해 준 디너 파티에서 페루 민속춤을 관람했고, 디너 마친 후 페루 민속춤을 같이 합류해서 추었다. 우리나라의 강강술래 같이 서로 손을 잡고 돌면서 같은 추임새 노래를 부르곤 했다.

 난 땀이 흠뻑 젖도록 그들과 함께 춤을 추었고, 기분 좋게 출장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한편, 올뤼모는 아침에 행동이 굼뜨다. 조식을 9시에 먹자고 하면 9시 30분에 나타난다. 그게 아프리카 시간 엄수 스타일인가 보다. 인도의 라젠드라와의 출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인도 시간도 뒤로 30분 늦게 가는가 보다.


 결국 마지막 날 굼뜨게 행동하다 우리는 벨기에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놓칠 위기에 봉착했다. 페루 차베스 공항에 도착하니 피크시간이라 사람이 무척 많았고, 매표소 전 입구부터 불필요한 보안 체크를 중복적으로 하고 있었다.


 올뤼모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익스큐즈와 어설픈 미소를 보내고 앞으로 나갔으며, 형식적인 체크를 하는 몇 공항 직원들도 엉뚱한 대화와 행동으로 노련하게 통과하였다. 순식간에 우리는 비즈니스석 줄에 서서 빠른 체크인을 했으며, 결국 비행기는 제시간에 맞게 탈 수 있었다.

정말 신기했다.


 그는 비행기 안에서 승무원과도 친구가 되었고, 힘이 달린 할머니의 짐도 수화물 칸에 올려주면서 또 친구가 되었다.

 나는 그렇게 첫 출장의 신기한 경험으로 국제 업무하는 직원으로의 자질을 몸소 인지하게 된 것이다.


 지금도 어디선가 누군가와 다양한 외국어로 말을 걸고 있을 프로페셔널한 장난꾸러기, 올뤼모가 유난히 그리워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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