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킬로미터, 마음이 가벼워지는 거리

더 멀리 가지 않아도 충분한 이유

by 홍유진

3킬로미터라는 숫자를 처음 의식하게 된 건 우연이었다. 어느 날 휴대전화에 기록된 걸음 수를 보다가, 우리가 걸은 거리가 대략 그 정도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때는 조금 허탈했다. 고작 3킬로미터라니. 차를 타고 한참을 달려 도착한 곳에서 고작 그만큼 걷고 돌아온다는 게 어딘가 아쉽게 느껴졌다.


예전의 나는 '더 멀리'라는 말을 습관처럼 달고 살았다. 여행은 멀수록 좋고, 트레킹은 길수록 성취감이 크다고 믿었다. 지도 위에서 길게 이어진 선을 보면 안도했고, 걸음 수가 많을수록 하루를 잘 보냈다고 생각했다. 십 킬로미터 트레일을 완주하고, SNS에 올릴 만한 멋진 풍경을 찾아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야 의미 있는 여행이라고. 그래야 시간을 제대로 쓴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기준이 조금씩 흐려졌다. 멀리 가는 것과 깊이 쉬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라는 걸, 몇 번의 피로한 귀가 끝에야 깨달았다. 미키는 그걸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요즘 우리의 걷기는 길지 않다. 대개 3킬로미터 남짓, 많아야 그보다 조금 더 걷는다. 대신 그 안에 멈춤이 많다. 미키는 냄새 하나에도 오래 머문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읽듯 땅을 향해 코를 가까이 대고 한참을 서 있다. 나무 한 그루, 풀잎 하나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돌멩이 하나, 낙엽 한 장에도 미키는 충분히 시간을 쓴다.


나는 그 옆에서 괜히 시계를 보다가, 이내 포기한다. 서두를 이유가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처음엔 재촉했다. 미키, 이제 시작이야. 아직 한참이나 남았으니, 해 지기 전 목적지에 도착하려면 서둘러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미키는 아랑곳하는 법이 없었다. 여전히 제 속도로 걸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도 멈추기 시작했다. 그렇게 머무는 동안, 나 역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생각을 정리하려 애쓰지도 않고, 무언가를 계획하지도 않는다. 그저 서 있다가, 다시 몇 걸음 옮긴다. 걸음과 걸음 사이의 공백이 생각보다 넓다는 걸, 그렇게 느리게 걸으며 알게 되었다.


미키가 멈춰 선 곳에서 함께 서 있으면, 그제야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의 리듬, 풀숲에서 들리는 작은 소리들, 하늘을 가로지르는 새 한 마리의 날갯짓. 서두르며 걸을 땐 전혀 보이지 않던 것들이, 멈춰 서니 하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3킬로미터는 나를 시험하지 않는 거리다. 이를 악물고 버텨야 할 만큼 길지도 않고, 쉽게 무시해 버릴 만큼 짧지도 않다. 적당히 숨이 차오르고, 적당히 다리가 묵직해지는 선에서 끝난다. 그 애매한 지점이 나는 참 좋다. 도전했다는 자만도 없고, 실패했다는 자책도 없다. 그저 '오늘 이만큼 걸었다'는 사실만 남는다.

우리는 대개 더 많은 것을 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산다. 더 잘해야 하고, 더 빨라야 하고, 더 멀리 가야 한다고 배워왔다. 하지만 3킬로미터를 걷는 동안에는 그 모든 '더'가 조금씩 힘을 잃는다. 지금 서 있는 자리, 지금 마주한 풍경, 지금 내 곁을 지나는 바람이 충분해 보이기 시작한다.


걷는 동안 머릿속에 얽혀 있던 생각들이 하나씩 풀렸다. 처음 1킬로미터는 여전히 일 잔상이 따라왔다. 오늘 있었던 미팅, 내일까지 넘겨야 할 원고, 답장을 미뤄 둔 메일들. 발은 길 위에 있었지만 마음은 여전히 책상을 떠나지 못했다. 그러나 2킬로미터쯤 지나자 발걸음에 일정한 리듬이 생겼다. 호흡이 서서히 고르게 정돈되었다. 그리고 3킬로미터에 이르면 묘하게 어깨의 힘이 빠졌다. 무언가를 해결한 것도 아닌데, 마음 한켠이 한결 가벼워졌다. 어쩌면 마음이 무거웠던 이유는 늘 다음을 향해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직 도착하지 못한 곳, 이루지 못한 일, 채우지 못한 성취들. 그런 기준에 비춰볼 때마다 지금의 나는 어딘가 부족해 보였다.


그런데 이 거리를 걷는 동안에는 이상하게도 그런 조급함이 줄어든다. 누구와 속도를 비교하지 않아도 되고, 어딘가에 기록으로 남기지 않아도 된다. 직업의 특성상 습관처럼 사진을 찍고, 무엇이든 남겨두려 했던 피로감이 사라졌다. 돌아갈 길이 부담스럽지 않으니 불안도 옅어진다. 이만하면 됐다는 감각이 발걸음에 스며든다. 생각이 정리되었다기보다는, 생각에서 조금 떨어져 나왔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처럼 여겼던 일들이 실은 그리 급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걷는 동안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미키는 더 갈 힘이 남아 있어도 굳이 더 가지 않는다. 해가 기울기 시작하면 아무 말 없이 방향을 돌린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멈출 줄 아는 삶에 대해 생각한다. 할 수 있다고 해서 반드시 더 해야 하는 건 아니라는 것, 거기서 멈추는 선택이 오히려 나를 편안하게 만든다는 것. 우리는 종종 ‘충분하다’는 말을 잊는다. 아직 괜찮은데도, 조금 더 밀어붙여야 할 것 같은 마음에 스스로를 다그친다. 3킬로미터는 그런 나를 조용히 붙잡아 세운다. 여기까지면 됐다고, 오늘은 이 정도면 잘 살아냈다고 속삭이듯 말해준다.


그래서 우리는 그쯤에서 걷는다. 어떤 날은 2킬로미터에서 돌아서고, 어떤 날은 기분이 좋아 5킬로미터까지 이어가기도 한다. 정해진 숫자는 없다. 오늘의 마음이 허락하는 만큼, 몸이 원하고 마음이 필요한 만큼만 걸으면 된다. 그렇게 걷고 나면 하루의 결이 고르게 정돈된다. 거창한 결심도, 눈부신 풍경도 없었지만 마음은 한층 느슨해진다. 복잡하게 얽힌 실타래를 조금씩 풀어낸 뒤의 고요함처럼. 멀리 가지 않았기에 돌아오는 길이 부담 없고, 오래 걷지 않았기에 몸은 적당히 지쳐 있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그 균형, 그 경계에 서 있는 감각. 나는 그 지점을 오래 바라본다. 그리고 그 적당함을, 점점 더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종종 묻는다. 그렇게 짧게 걸어서 뭐가 달라지냐고. 운동도 제대로 안 되는 거리 아니냐고. 그냥 집 근처 공원 산책하는 것과 다를게 뭐냐고. 아닌게 아니라 미키와 나는 매일 새벽과 심야에 집 근처 공원을 걷는다. 적당히 걷고 반려견 놀이터에 들어가 오프리쉬로 실컷 달린 뒤 돌아온다. 익숙한 일상의 루틴은 언제나 우리에게 안정감을 준다. 변함없는 길, 같은 나무, 같은 벤치. 그 반복이 하루를 단단하게 붙들어 준다.


하지만 차박지에서 걷는 3킬로미터는 다르다. 거리는 같아도 감각이 다르다. 같은 장소를 다시 찾아가더라도 계절이 달라지고, 빛의 각도가 달라지고, 스쳐 가는 바람의 냄새가 달라진다. 무엇보다 달라지는 건 나 자신이다. 오늘의 나는 지난주의 나와 같지 않다. 같은 길 위에서도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마음으로 숨을 쉰다. 집 근처의 걷기가 ‘안정’이라면, 차박지에서의 걷기는 ‘낯섦’이다. 그 낯섦이 나를 조금 더 또렷하게 만든다.


거리의 길고 짧음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그 시간이 우리에게 어떤 공간이 되어 주는가이다. 나와 미키가 함께 걷는 동안, 그 길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하나의 시공간이 된다. 서두르지 않아도 하루는 제 몫을 채우고, 멀리 가지 않아도 마음은 충분히 움직인다. 결국 필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깊이였다. 거리가 아니라 온전함이었다. 무엇을 더할지가 아니라 무엇에 집중할지의 문제였다.


요즘 나는 거리를 정확히 재지 않는다. 3킬로미터쯤 되겠지, 하고 짐작할 뿐이다. 숫자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돌아오는 길의 가벼움, 발걸음에 실린 여유, 출발할 때보다 조금 더 평온해진 호흡이 남는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더 멀리 가지 않아도 괜찮다. 더 오래 걷지 않아도 된다. 오늘의 나는 이만큼이면 된다. 그렇게 조용히 말해주는 거리, 우리의 3킬로미터.


그렇게 우리의 3킬로미터는 계속된다. 빠르지 않아도, 길지 않아도, 우리는 이미 충분히 멀리 와 있다. 오늘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길을, 미키와 나란히 천천히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