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키의 보폭으로 세상을 본다는 것

하얀 정적 속을 걷는 법

by 홍유진

지난 주말, 강원도의 한 스키장 근처로 차를 몰았다. 산세가 깊고 수려한 강원도는 겨울이면 유난히 품이 넓어 보인다. 눈이 쌓이면 그 품에 안기고 싶은 마음이 절로 인다. 곳곳에는 겨울의 정취를 오롯이 느낄 수 있는 트레일이 보석처럼 숨어 있다. 이번 여정의 목적지는 도롱이 연못. 올겨울은 유독 눈이 귀해 스키장조차 운영을 걱정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조금은 마음을 졸이며 하이원 리조트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도롱이 연못으로 가는 길은 여럿 있지만, 비교적 부담이 덜한 코스를 선택했다. 산 정상에서 도롱이 연못으로 다녀오는 길은 왕복 3키로 남짓되었다. 정상까지는 하이원리조트에서 운영하는 곤돌라로 이동하면 하늘 위에서 편안하게 설원의 풍경을 감상할 수도 있을 터였다. 다만 걱정은 하나. 하필, 영하 17도까지 떨어진 강추위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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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원 마운틴콘도에서 곤돌라를 타고, 20여 분이면 정상까지 갈 수 있었다. 미키는 주차하면서부터 – 내가 주차할 때, 차의 속도가 느려지면 목적지 ‘도착’ 신호라는 걸 녀석은 잘 알고 있다. - 잔뜩 신이나서 내렸지만, 막상 곤돌라를 타고 공중으로 높이 떠오르자 내 품을 벗어나지 못했다. 바들바들 떨면서 몸을 파묻는 모습이 어딘가 안쓰러우면서도 귀여웠다. 공중에 매달린 시간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곤돌라에서 내려 눈 위에 발을 딛는 순간 미키는 다시 제자리를 찾은 듯했다. 하얀 설원 위에 첫 발자국을 남기며 꼬리를 흔들었다. 작은 발자국이 또박또박 새겨졌다. 나는 평소보다 두툼한 옷을 여미고 아이젠을 단단히 고쳐 맸다. 그리고는 버릇처럼 시계를 흘끗 보았다. 해 지기 전에는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 연못까지 걸리는 시간을 계산하는 마음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그런 조바심을 아는지 모르는지, 미키는 첫 굽잇길에서부터 코를 눈 속에 깊이 묻고 멈춰 섰다.


미키에게 눈은 단순한 풍경이 아닌 모양이다. 누군가 남기고 간 발자국의 냄새, 얼어붙은 흙 사이로 배어 나오는 겨울 산의 기척까지 읽어내는 거대한 도서관처럼 보이는 것만 같다. 그 이야기를 하나씩 들춰보느라 미키의 걸음은 한없이 느려졌다. 예전 같으면 줄을 당기며 서두르자 했겠지만, 이제는 그저 그런 녀석을 보며 나도 그 자리에 멈추어 주변을 둘러보게 되었다. 미키가 킁킁거리며 고개를 숙이고 있을 때, 나는 고개를 들어 눈 덮인 나뭇가지 사이로 부서지는 겨울 햇살을 바라본다. 발밑에서 눈이 서걱이는 소리, 멀리서 스치는 바람의 숨결. 미키가 없었다면 그냥 지나쳤을 고요가 그제야 또렷하게 다가왔다.


하이원탑에서 도롱이 연못까지는 왕복 3킬로미터 남짓. 눈이 소복이 내려앉은 길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발이 푹푹 빠지고 숨은 차올랐다. 하지만 그 느린 걸음 덕분에 오히려 서두름은 사라졌다. 적당히 숨이 차고, 적당히 다리가 묵직해질 즈음, 나는 비로소 발밑의 감촉에 집중하게 되었다. 목적지를 향해 돌진하기보다, 지금 이 순간을 오래 밟고 서 있는 일이 더 중요해졌으니까.


마침내 도착한 도롱이 연못은 꽁꽁 얼어 하얀 이불을 덮고 있었다. 잔잔한 얼음 위로 겨울빛이 얇게 내려앉아 있었다. 그 앞에 서자 묘한 안도감이 밀려왔다. 대단한 성취라기보다는, 오늘 하루를 무사히 건너왔다는 조용한 확신에 가까웠다. 멀리 가지 않아도, 빠르게 걷지 않아도 우리는 충분히 깊은 겨울 속에 들어와 있었다.


미키는 연못가 눈 위에서 한바탕 몸을 비비며 지렁이 춤을 추었다. 같이 놀자고 스프링처럼 퐁퐁 튀어오르려 했지만, 눈에 다리가 푹 빠져 생각만큼 높이 오르지는 못했다. 나는 차박 세팅을 하며 미리 내려온 아메리카노를 홀짝였다. 손끝까지 얼어붙었던 추위가 조금씩 물러났다. 따뜻한 물을 식혀 미키에게 건넸지만, 녀석은 눈을 핥느라 정신이 없었다. 내가 내민 물을 힐끗 보더니 이 자리 저 자리 옮겨 다니며 눈만 먹는다. 그 순진한 집요함이 사랑스럽다.


얼마나 그렇게 있었을까. 해가 기울기 시작하자 미키는 먼저 방향을 돌렸다. 더 머물 수 있어도 미련 없이 돌아서는 모습. 나는 그 뒷모습을 보며 다시 생각한다. 할 수 있다고 해서 꼭 더 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 멈출 줄 아는 태도가 삶을 가볍게 한다는 것.


차로 돌아오는 길, 몸에는 기분 좋은 피로가 차분히 내려앉았다. 길지 않은 여정이었지만 마음은 출발할 때보다 훨씬 느슨해져 있었다. 누군가에게 자랑할 만큼 긴 트레킹은 아니었어도, 나와 미키가 나란히 맞춘 보폭만큼은 무엇보다 온전했다. 오늘의 나는 이만하면 된다고 말해주는 겨울의 길. 도롱이 연못으로 향했던 우리의 걸음은 그렇게 조용히 완성되었다.


얼추 두 시간이 조금 더 걸렸다. 누군가에게는 금세 다녀올 짧은 거리겠지만, 우리에게는 세상의 서두름을 내려놓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미키의 킁킁 차박] *날씨: 코끝이 찡하게 시원한 눈세상


엄마 주머니에서 짤랑 소리가 나면 나는 이미 현관문 앞에 대기 중이다. 이번엔 조금 더 특별한 장소에 갔다. 온통 하얀 솜사탕 같은 것들이 깔린 산이었다. 엄마는 미끄럽다며 조심조심 걸었지만, 나는 신이 나서 코를 푹푹 박았다.


여기선 다른 친구들의 겨울 냄새가 아주 선명하게 났다. 엄마가 자꾸 가자고 줄을 당겨도 나는 멈춰 서서 전부 읽어내야 했다. 엄마도 내가 멈추면 같이 서서 하늘을 구경하곤 했다.


산책을 시작하기 전에 엄마가 내 발바닥에 미끌미끌하고 기분 좋은 밤을 듬뿍 발라줬다. 차가운 눈 위를 오래 걸으면 내 발바닥이 아플 수도 있다고 엄마가 걱정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은 평소보다 옷도 여러 겹 껴입었다. 얇은 옷을 겹쳐 입으니 몸이 훨씬 따뜻했고, 겉에 입은 방수 옷 덕분에 눈 위에서 뒹굴어도 털이 젖지 않아 마음껏 뛰어놀 수 있었다.


한참 냄새를 맡다 보니 목이 말랐는데, 그때마다 엄마가 보온병에서 따뜻한 물을 꺼내 주었다. 산속은 건조해서 물을 자주 마셔야 한다며 챙겨준 물 덕분에 힘이 불끈 났다. 우리가 조금 늦게 도착했어도 엄마가 환하게 웃어줬으니 나는 그걸로 정말 행복한 하루였다.




[차박 팁] 겨울철 차 안 결로 방지 기술


결로는 차 안팎의 온도 차이와 내부의 습기(사람과 반려견의 호흡 등)가 만나 유리창에 물방울이 맺히는 현상이다.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환기'와 '단열'이 핵심.


창문 미세 환기(벤틸레이션): 가장 확실한 방법은 창문을 아주 살짝 열어두는 것. 차 안의 습한 공기가 밖으로 빠져나갈 틈을 만들어주면 결로가 현저히 줄어든다. 이때 외부 한기가 걱정된다면 윈도우 바이저(창문 가림막)를 설치하면 비나 눈이 들어오는 것을 막으면서 환기를 유지할 수 있다.


암막 및 단열 커튼 활용: 창문에 암막 커튼이나 전용 단열재를 빈틈없이 붙이는 것은 한기를 막는 동시에 결로 방지에도 큰 도움이 된다. 유리에 직접 닿는 따뜻한 공기를 차단하여 온도 변화를 줄여주기 때문.


제습제 및 타월 비치: 창틀 근처에 신문지나 타월을 놓아두면 흐르는 결로를 흡수해 차 내부가 젖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시중에 판매되는 실리카겔 제습제를 차 안 곳곳에 두는 것도 보조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내부 습기 조절: 차 안에서 음식을 조리하거나 물을 끓이는 행위는 습도를 급격히 높여 결로를 심화시킨다. 가급적 조리는 외부에서 하거나, 부득이할 경우 환기에 더욱 신경 써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