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끝자락에 만난 봄 내음
오늘처럼 눈이 펑펑 오는 날에는 대관령으로 떠난다. 정선이 좋을까, 평창이 나을까 잠깐 망설였지만 평창으로 정했다. 눈 내린 뒤의 선자령이 왠지 더 포근하게 느껴졌달까. 바람의 고장이라 불리지만, 하얗게 눈 덮인 날의 선자령은 오히려 다정했다.
선자령은 한라산처럼 이를 악물 필요도 없고, 지리산처럼 자신을 시험할 필요도 없다. 그저 걷다 보면 어느새 정상에 닿아 있는 길이다. 체구가 작은 미키가 무리하지 않고 즐길 수 있는 완만한 경사, 눈 덮인 숲길, 그리고 언덕 위에서 천천히 돌아가는 풍력발전기들. 그 풍경을 함께 보고 싶었다. 무엇보다 천천히 호흡을 고르며 자분자분 걷고. 나뭇가지 가지마다 무겁게 내려 앉은 눈과 드넓은 눈의 언덕을 동시에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선자령의 넉넉한 품은 사람을 몰아붙이지 않고 숨을 고르게 한다. 그래서 나는 눈이 오는 날이면 늘 선자령이 먼저 떠올랐다. 발걸음을 늦추고, 입김이 희미해질 때쯤 가지 끝에 매달린 하얀 결정들이 비로소 눈에 들어왔다. 선자령의 겨울이었다. 눈이 오는 날, 선자령을 가야 할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눈 위를 걷는 일은 생각보다 조심스러웠다. 미끄러지지 않으려 발을 단단히 딛고, 바람에 귓불이 시리면 비니를 꾹 눌러썼다. 그렇게 한 발 한 발 옮기다 보면 저만치 있던 풍력발전기가 우리 머리 위로 키 높이 가까워졌다. 거대한 날개가 뿌연 허공을 가르며 천천히 돌아갔다.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지만, 그 움직임은 묘하게 위로가 되었다. 세상은 저렇게 느리게 돌아가고 있는데, 나만 조급한 건 아니었을까.
미키는 눈 위를 종종걸음으로 걷다가도 문득 멈춰 서곤 했다. 눈 아래 숨은 풀 냄새를 맡는 건지, 지나간 사람의 흔적을 읽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그 작은 몸이 온 힘을 다해 계절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만 같아 기특하고 사랑스러웠다.
정상에 서니 탁 트인 전경이 펼쳐졌다. 눈으로 덮인 능선은 굴곡이 부드러워 보였다. 겨울은 모든 것을 단순하게 만든다. 복잡했던 마음도, 얽혀 있던 생각도 희뿌연 눈밭 속에서 잠시나마 정돈되었다.
실컷 눈구경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 미키는 신이 났다. 팔랑팔랑 꼬리를 흔들며 총총히 달려가는 모습에 웃음이 났다. 처음 가는 길은 조심스럽고, 아는 길은 자신만만히 앞장서는 녀석의 천진함이 나는 참 좋다.
선자령에서 내려와 차를 세워둔 대관령 휴게소 주차장으로 향했다. 해가 기울자 기온은 빠르게 떨어졌다. 트렁크를 열고 전기매트를 깔고, 두툼한 침낭을 펼치고, 작은 랜턴에 불을 켰다. 그 불빛 하나로 공간은 금세 아늑한 집이 되었다. 바깥은 매서운 바람이 불었지만 차 안은 이상하리만큼 포근했다.
차박은 확실히 불편하다. 내 집의 편리함에 견주어 보면. 물을 끓이려면 작은 인덕션을 꺼내야 했고, 잠자리는 비좁았다. 하지만, 그 불편 속에서 감각은 더 또렷하게 살아난다. 창문 밖은 칠흑 같은 어둠이었고, 도시의 불빛 대신 별빛과 눈빛만이 남았다. 미키는 담요 위에 몸을 둥글게 말아 잠에 빠져 들었고, 나는 조용히 하루를 정리했다. 별것 아닌 하루였지만 마음은 충만했다. 사방이 고요한 밤, 사각사각 눈 내리는 소리에 스르르 잠이 들었다.
이른 아침 알람 소리에 게으른 차박의 아침을 맞는다. 진작에 눈은 떴지만 일어날 생각은 뒷전이었다. 따뜻한 침낭 속에서 이리 저리 몸을 말면서 내내 부스럭부스럭 뒤척이는 것이다. 숨을 내쉴 때마다 하얀 김이 맺혔다. 몸은 따뜻하고 공기는 차갑다. 이런 날은 홋카이도 노보리베츠에 있는 뜨끈한 노천탕에 몸을 담갔으면 딱 좋을텐데.하고 생각한다.
느즈막히 털고 일어나 작은 팬히터를 먼저 켰다. 트렁크 창을 열고, 잠시 멍하니 앉아 있었다. 미키도 가만히 내 곁에 일어나 앉았다. 커피를 내리는 시간은 의식처럼 고요했다. 뜨거운 물이 원두를 통과하며 시끄러운 소음을 낼 때, 뜨거운 김이 하얗게 공기 중으로 퍼져나왔다. 커피 향이 차 안 가득 번질 때, 나는 문득 계절의 경계에 서 있음을 느꼈다. 차가운 눈은 그대로인데 공기 속에는 이미 미세하지만 분명한 변화가 느껴졌다. 겨울의 끝자락에서 어딘가 봄이 성큼 다가와 있는 냄새. 아직 차가웠지만, 그 안에 스며든 부드러움. 2월도 이제 막 중반부를 지나고 있었다.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뜨끈한 액체가 기도를 타고 내려가며 어제의 눈길과 오늘의 아침을 잇는다. 이 시간은 아무에게도 증명할 필요가 없었다. 생산적이지도, 성과로 남지도 않았다. 언어라는 것이 이렇게도 무용할까. 어떤 단어도 이 순간의 행복을 표현하기 어려웠다. 가만히 웃음이 났다. 눈 오는 날의 선자령, 대관령의 하룻밤, 그리고 차 안에서 마시는 커피 한 잔.
나는 오늘도, 무용한 순간들을 사랑하는 중이다.
[미키의 킁킁 차박] *날씨: 코끝이 찡하게 시원한 눈세상
이번엔 조금 더 특별한 장소에 갔다. 온통 하얀 솜사탕 같은 것들이 깔린 산이었다. 오늘은 옷도 두 겹으로 든든히 입었다. 엄마가 등에는 핫팩도 붙여주었다.
엄마는 미끄럽다며 조심조심 걸었지만, 나는 신이 나서 어서 오라고 엄마를 보챘다. 여기선 다른 친구들의 겨울 냄새가 아주 선명하게 났다. 토끼가 지나간 자리, 다람쥐가 먹이를 찾았던 흔적, 그리고 나보다 먼저 이곳을 지나간 강아지 친구의 인사까지. 커다란 바람개비가 언덕위에 있었다. 언덕위에 펼쳐진 새하얀 눈밭이 나는 너무 좋아서 온 몸을 마구마구 비벼서 지렁이 춤을 추었다.
두어시간 쯤 지났을까. 돌아가는 길, 갑자기 발바닥이 끊어질듯 너무나도 시려왔다. 발 디디는 게 너무 힘들어서 중간 중간에 깽깽이 걸음하는 나를 보곤, 엄마가 나를 안아 올리더니 파카 속에 깊숙이 품어주었다. 네 발을 손으로 꼬옥 감싸주었다. 부티(강아지 장화)를 깜빡 잊고 와서 미안하다면서. 발바닥이 금세 따뜻해져왔다. 역시 엄마는 내 마음을 너무 잘 안다.
[차박 팁] *겨울철 차박 난방 주의
겨울철 차박에서 팬히터는 필수품이지만, 밀폐된 공간에서 장시간 사용 시 안전에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작은 실수가 큰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기에 다음 사항들을 반드시 숙지하자.
일산화탄소 중독 주의
전기 팬히터는 비교적 안전하지만, 석유나 가스 난방기구는 가능한 차 안에서 사용해서는 안 된다. 불완전연소로 발생하는 일산화탄소는 무색무취로 중독 시 의식을 잃을 수 있어 매우 위험하다. 반드시 전기 팬히터만 사용하고, 취침 전에는 꺼두는 것이 안전하다.
화재 예방
팬히터는 평평하고 안정적인 곳에 설치해야 한다. 침낭, 옷가지, 커튼 등 가연성 물질과 최소 50cm 이상 거리를 유지하고, 넘어지지 않도록 주의한다. 취침 시에는 반드시 전원을 끄고, 타이머 기능이 있다면 1~2시간으로 설정하는 것이 좋다. 반려동물이 있다면 히터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안전망을 설치하는 것도 방법이다.
배터리 관리
팬히터는 전력 소모가 크기 때문에 차량 배터리에 직접 연결하면 방전될 위험이 높다. 보조 배터리나 인버터를 사용하되, 용량을 미리 확인하고 충분히 충전된 상태에서 사용해야 한다. 시동을 걸어두고 히터를 사용하는 것은 배기가스 역류로 인한 중독 위험이 있어 절대 피해야 한다.
환기의 중요성
밀폐된 차 안에서 히터를 장시간 사용하면 산소 농도가 낮아지고 이산화탄소가 축적될 수 있다. 30분~1시간마다 창문을 열어 환기하고, 잠들기 전에는 반드시 창문을 살짝 열어두어 신선한 공기가 유입되도록 한다. 이는 결로 방지에도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