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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부하는 아빠 Dec 30. 2021

아들, 우유 한잔 하자.

아들과의 대화 

큰아들이 초등학교 4학년이니, 강남 생활도 4년째입니다. 아들들 모두 학원도 잘 다닙니다. 와이프도 동네 엄마들과 잘 지내고 있습니다. 주변 생활이 안정되었으니, 아이들도 공부에 익숙해지리리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상합니다. 아들들이 엄마와 자주 다툽니다.


와이프가 큰아들에게 수학을 가르치다 4학년 때부터 학원을 보냈습니다. 와이프가 가르치는 것도 힘들고 큰아들 수학 실력도 높여야 합니다. 좋은 학원은 주변에 많이 있습니다. 큰아들 수준에 맞는 곳을 찾아서 보냈습니다. 숙제를 다 할 때까지 집에 안 보낸다는 학원은 아닙니다. 아이 수준에 맞는 선행을 하면서 숙제도 잘 봐주는 곳이랍니다. 일주일에 두 번,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학원을 갔습니다. 제가 큰아들을 종종 데리고 왔습니다.


학원 안내 층에 가면 CCTV로 아이들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학원이 끝날 때쯤 가면 부모들이 CCTV 앞에 모여 있습니다. 저도 가서 큰아들을 찾습니다. 강의실 중앙에 있네요. 마지막으로 숙제 검사를 받고 나오기에, 고생했다고 꼭 안아줍니다. 아들 손을 잡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집에 옵니다.


집에 오니 숙제를 해야 한답니다. 늦게까지 학원에서 공부했지만, 학원 진도를 쫓아가려면 어쩔 수 없습니다. 큰아들은 투덜투덜 대면서 방에 들어갑니다. 격려해주려고 아들에게 가보았습니다. 문제집을 펼쳐 놓고 책상에 가만히 앉아 있습니다. 어려운 문제를 풀려고 생각 중이겠구나 싶었죠. 그런데 눈은 문제집이 아닌 책상 앞을 보고 있습니다. 멍하니 그냥 앉아 있습니다. 학원 힘들면 그만두라고 말해도 학원이 재밌어서 계속 다니겠답니다. 그런데 집에서 수학 숙제를 하면 멍하니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집니다. 와이프는 큰아들 옆에서 이것저것 물어봅니다. “숙제는 다 했니?, 진도는 어디까지 나갔니?" 등등을요. 큰아들의 짜증이 터집니다. “열심히 하고 있다고!, 나 숙제하는 거 안 보여” 그럼 와이프가 다시 말합니다. “집중해서 풀어야지!” 큰아들과 와이프의 다툼이 끊이지 않습니다.


둘째 방에 가봅니다. 학원은 안 다니지만, 하루에 한 장씩 수학 문제집을 풀기로 엄마와 약속을 했습니다. 왼쪽 다리는 책상 위에 올려놓고, 몸을 비비 꼰 채 의자에 앉아 있습니다. 오른손으로는 문제집에 낚서를 하고 있습니다. 하기 싫은 공부를 하고 있으니 그럴 수도 있겠구나 했죠. 그런데 문제집에 삐죽삐죽한 그림을 그리면서 신경질이 섞인 낙서들을 하고 있습니다. 문제집도 구석구석 찢어져 있습니다. 와이프는 지우개로 틀린 문제를 지우다 문제집까지 찢은 적도 있답니다. 와이프가 둘째가 푼 수학 문제집을 보여줍니다. 수학 문제가 “~~ 을 풀어보시오”라고 끝납니다. 둘째 아들이 답은 “풀어 보았습니다.”입니다. “~~ 을 구해보시오”라고 한 문제는 “구해 보았습니다”라고 적어 놓았습니다. 와이프랑 둘이서 크게 웃었습니다. 즐거워서 웃은 것은 아닙니다.


아이들이 왜 이럴까요? 우리는 아이들 수준에 맞춰서 공부량을 정해주고, 숙제도 함께 봐주고, 아이들과 잘 놀아주는 좋은 부모인데요. 그런데 아이들과 싸우는 날이 점점 많아집니다. 큰애가 책상에 멍하니 앉아 있고, 시험이 있는데도 공부도 안 하고 침대에 누워 있습니다. 게임만 자꾸 한답니다. 옆에서 지켜보는 엄마는 화가 납니다. 문제집을 치우면서 공부하지 말라고도 합니다. 그러면 큰아들은 바로 와서 문제집을 다시 가져갑니다. 와이프는 어려운 거 있으면 엄마가 도와준다고 말합니다. 큰아들은 심화 문제들은 어려워서 쉬운 문제를 풀겠다고 합니다. 엄마가 다시 말합니다. 쉬운 문제는 충분히 연습했으니 어려운 문제들을 보면서 깊게 생각하는 힘을 기르자고요.


우리가 상상 못 한 모습들이 자꾸 보입니다. 교육 환경 좋고, 친구들도 열심히 공부하고, 부모도 옆에서 도와주면 아이들이 알아서 잘하는 거 아니었나요? 남들보다 더 잘하라고 한 것도 아니고, 학원 진도 따라가라고 한 것뿐입니다. 친구 아들은 잘한다던데, 왜 우리 아들은 힘들어할까요? 학교 수업만 받았던 저의 국민학교 때와는 다릅니다. 요즘 아이들은 학교 진도와 학원의 선행을 함께 공부합니다. 잘 가르치는 선생님에 숙제도 꼼꼼히 봐주니, 큰아들도 잘할 줄 알았죠. 영어도 주니어 토플을 배우고 어려운 단어도 외웁니다. 그런데 왜 집에서 자꾸만 공부 때문에 싸울까요? 아이들 문제일까요? 우리들 문제일까요?


아이들과 힘든 시간을 보낸 후에, 자기가 원해서 하는 공부와 시켜서 하는 공부의 차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들들이 뭘 원하는지 모른 채 어른들이 짜 놓은 계획대로 아이들에게 하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붙잡아온 사람의 다리를 자신의 침대에 맞춰 잘랐던 프로크루우테의 침대와 같았습니다. 남이 짜 놓은 과정에 우리 아이들을 억지로 맞췄죠. 우리 아이들 키는 아무 상관이 없었습니다. 침대 길이에 맞추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큰아들과 오레오에 우유 한잔 마시면서 속 터놓고 이야기했습니다. 수학학원 가는 게 싫지 않지만, 수학이 어렵답니다. 아이들에게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공부해야 하고, 명문대 가면 안정적으로 살 수 있다고 말해 왔습니다. 그러나 미래의 우리 아이들에게는 어떤 공부가 중요할까요? 영어단어 외우고 수학 문제 푸는 것은 아닐 겁니다. 자신이 필요한 것을 스스로 찾는 공부입니다. 그러나 부모가 시켜서 하는 공부에 아이들이 얼마나 흥미를 느낄까요? 와이프랑 이야기한 후 수학학원을 그만두게 하였습니다. 큰아들이 진도도 못 쫓아가는 수학 학원을 굳이 다니게 할 필요는 없었죠. 집에서 배웠던 거 복습하면서 아이들 수준에 맞는 학원을 다시 찾자고 했죠.


큰아들은 벌써 초등학교 6학년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새로운 수학학원을 잘 다니고 있습니다. 진도도 빨리 나가지 않고, 아이들 수준에 맞춰서 가르친다는 작은 학원입니다. 와이프가 찾느라 고생했습니다. 중고등학생 형들도 함께 공부하는데, 형들이 공부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도 느끼는 게 있나 봅니다. 집에서는 30분 공부하기도 힘들다고 하더니만, 학원에서 형들과 함께 3시간 앉아 있다 왔답니다. 자신도 뿌듯해합니다. 자기의 꿈을 위해 공부가 필요하다고 가끔씩 말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알아서 하지는 않습니다. 지금도 자주 싸웁니다. 그래도 아들은 이 힘든 시기를 잘 극복하리라 믿습니다.


수학 문제집에 “풀어보았습니다.”를 적었던 둘째는 어떨까요? 오레오에 우유 한잔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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