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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부하는 아빠 Jan 23. 2022

아빠는 아들 크록스를 신는다

아들아, 이제 그만 커도 되는데...

"큰아들! 아빠가 아들 크록스 신고 나갔다 온다. "

"왜, 내 거 신어?"

"아빠 꺼가 안 보이네. 금방 신고 올게."

"응"


거짓말입니다. 제 것은 바로 앞에 있습니다. 아들의 크록스를 신고 싶었을 뿐입니다. 큰 아들 크록스는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흔한 제품입니다. 두 달 전에 제 슬리퍼가 안 보여서 급한 대로 아들의 크록스를 신고 나갔습니다. 조금 작았지만, 쓰레기만 버리고 돌아왔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신고 있던 아들의 크록스를 보았습니다. 제 발 끝이 아들 크록스에 닿아 있었습니다. 묘한 감정이 들더군요. '어? 아들 발이 언제 이렇게 컸지? 아빠가 신어도 될 정도네.' 큰 아들은 아빠보다 친구들하고 노는 것이 더 재밌는 초등학교 6학년입니다.   


제가 중학교 1학년 때 신발을 사러 남대문 시장에 갔었습니다. 남대문 시장에는 나이스, 아디도스 등 유사 브랜드 신발이 많았습니다. 아디도스를 샀습니다. 삼선 줄무늬가 그어진 멋진 신발이었습니다. 신발 사이즈는 제발 보다 큰 거를 일부러 샀습니다.   


큰 신발을 신으면 빨리 어른이 될 것 같았습니다. 제 발보다 큰 신발을 신고 다니니 불편했지만, 어른이 될 것 같은 생각에 계속 신었습니다. 신발은 곧 망가졌습니다. 역시 아디도스였습니다. 신발 옆에 붙인 고무들이 금방 떨어졌습니다. 그래도 꿋꿋이 신고 다녔습니다. 결국에는 버렸지만, 큰 사이즈의 신발을 신으면 어른이 된 것 같았습니다. 뿌듯했습니다.    


다시 아들 크록스를 신어보았습니다. 제 발 끝에 크록스의 부드러운 재질이 느껴집니다. 그러나 크록스의 플라스틱만 있지는 않았습니다. 아들이 제 발 앞에 서 있는 것 같았습니다. 눈물이 살짝 나올 뻔했습니다. 언젠가 아들의 크록스가 제 발 끝에 안 닿는 날이 올 겁니다. 저는 어른이 빨리 되고 싶었지만, 아들은 천천히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큰 아들 크록스를 다시 봅니다. 제 크록스보다 작고 귀엽습니다. 큰 아들 발도 그렇습니다. 작고 오동통합니다. 밤에 잘 때 방에 몰래 가서 손과 발을 콕콕 찌르곤 합니다. 눌러진 부분이 통통 튀어나옵니다. 귀엽습니다. 몸은 커져도 제 눈에는 어릴 적 모습 그대로입니다. 손발도 쓰다듬습니다. 우리 아들이 언제 이렇게 커졌나라는 생각도 들지만 그만 컸으면 좋겠습니다.    


요즘에도 가까운 곳은 아들 크록스를 신고 갑니다. 아들하고 함께 나가는 것 같아 든든합니다. 하지만, 이 말을 아들에게 하자니 부끄럽습니다. 아들 크록스 안에 제 마음을 붙여 놓았습니다. 아들은 모를 겁니다. 그래도 아들이 크록스를 신으면 아빠 마음을 알아줄 것 같습니다. 크록스 발꿈치에는 제 발 아토피를 조금만 묻혔습니다. 발을 긁으면서 아빠 생각도 하라고요.


제가 그랬듯이, 아들들도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할 겁니다. 신발도 곧 큰 거로 바뀌겠죠. 아들의 다음번 크록스는 제 발끝이 닿지 않을 겁니다. 작아진 크록스들은 버렸었지만, 이번의 큰 아들 크록스는 안 버릴 겁니다. 큰 아들과의 초등학교 6학년 때의 기억을 신발장에 저장해두렵니다.


아들은 이런 아빠 마음을 모르겠죠. 저도 제 아버지 마음을 몰랐으니 아들한테 아쉬워할 수 없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표현이 많으신 분이 아니십니다. 코로나를 핑계로 아버지 집에도 잘 안 가는 아들한테 한 마디 안 하십니다. 말이 없다고 마음도 없지는 않으셨을 텐데요. 주말에 전화드려야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밤에도 아들 발을 누르려 가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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