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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부하는 아빠 Dec 21. 2021

난 삼계탕이 싫은데 왜 줄까요?

몸보신은 햄버거로.

8월에 1차 코로나 백신을 맞았습니다. 백신 휴가를 쓰고 집에 일찍 왔습니다. 와이프가 더운 여름에 백신 맞고 고생했으니 몸보신하라고 삼계탕을 했습니다. 많이 먹고 힘내랍니다. 남편을 위해 삼계탕을 끓여준 와이프가 고맙기는 하지만, 16년을 같이 살았는데 왜 아직도 제 입맛을 몰라줄까요? 


저는 삼계탕을 잘 안 먹습니다. 물렁한 닭살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닭 국물도 밍밍해서 먹기 싫습니다. 닭살을 찢어서 소금에 찍어먹기도 귀찮습니다. 그리고 집에서 하는 닭은 작습니다. 5호나 6호로 삼계탕을 해서 아이들과 함께 먹으면 먹을 것도 없습니다. 닭은 양념 반 후라이드 반이죠. 삼계탕이 몸보신용 음식이라는 편견을 버려야 합니다. 제 몸은 삼계탕이 아닌 다른 음식을 더 원합니다.  


저에게 몸보신용 음식은 햄버거입니다. 맥도널드나 버거킹에 갈 때마다 기분이 좋아집니다. 키오스크 앞에서 뭘 먹을지 고민하는 시간도 즐겁습니다. 제일 큰 햄버거 세트를 시킵니다. 기다리던 햄버거 세트가 나왔습니다. 두툼한 햄버거 양에 눈이 행복합니다. 햄버거를 양손 가득 움켜쥐고 손으로 살짝 눌러봅니다. 말캉한 햄버거 번의 탄력이 느껴집니다. 퍼석한 번은 햄버거 빵이 될 자격이 없습니다.  


햄버거를 싸고 있는 포장지를 벗길 때의 바스락 소리가 좋습니다. 이제 먹을 준비가 되었군요. 햄버거 번안에 있는 두꺼운 패티를 보니 기분이 좋아집니다. 패티 위에 있는 양상추와 토마토는 저를 죄책감에서 살짝 벗어나게 해 줍니다. '나는 패스트푸드를 먹는 게 아니야. 야채를 먹고 있어.' 스스로 세뇌를 합니다.  


제 뱃살의 일부분이 될 노란색의 슬라이스 치즈가 보입니다. 치즈는 다다익선입니다. 햄버거를 크게 한입 뭅니다. 바스락 거리는 야채 소리, 불맛이 스며있는 패티의 육즙이 입안으로 밀려 들어옵니다. 달콤한 소스가 묻어 있는 베이컨도 함께 씹힙니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온몸에서 더 달라고 소리칩니다.  


두 번 베어 먹었으면 햄버거의 양을 조절해야 합니다. 한 번에 다 먹을 수는 없죠. 천천히 먹습니다. 아까우니까요. 차가운 콜라를 빨대로 숨이 찰 때까지 마십니다. 콜라의 달달한 맛이 제 뇌에 속삭입니다. 


"맛있게 먹는 음식은 살 안 쪄." 


햄버거 반이 벌써 없어졌습니다. 마음이 아픕니다. 마저 먹으려니 아쉽습니다. 이럴 때 소금이 잘 뿌려진 짭짤한 포테이토 칩을 먹습니다. 햄버거를 먹지도 않고 포테이토 칩을 먼저 먹거나, 포테이토 칩을 한 번에 두 개씩 먹는 매너 없는 사람은 우리 가족 중에 없습니다. 제가 가정교육을 아주 잘 시켰습니다. 포테이토 칩으로 모자란 양을 채워줍니다. 


햄버거를 더 달라고 온몸이 소리칩니다. 마지막 남은 햄버거를 먹기 시작합니다. 한입, 한입 신중하게 먹습니다. 제일 마지막 한입은 입에 꽉 차도록 넣어줘야 합니다. 햄버거를 조금씩 먹으면 햄버거스럽지 않습니다. 문세윤이 '한입만'을 외치듯이 온 힘을 다해 햄버거를 입안에 넣습니다. 제 몸의 일부분이 쉽게 되도록 햄버거를 꼭꼭 씹어 먹습니다. 행복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콜라로 마무리를 합니다. 콜라가 다시 제 뇌에 속삭이네요. 


"맛있게 먹는 건 살 안 쪄."


포장지 안에 떨어져 있는 양상추는 과감히 버립니다. 플렉스 해야죠.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는 학교 매점 안에서 햄버거를 팔았습니다. 햄버거 패티는 어떤 고기로 만든 것인지 모르니 먹으면 안 된답니다. 말 잘 듣는 모범생은 학교에서 햄버거를 못 사 먹었습니다. 


성인이 된 지금도 햄버거를 먹을 때 고등학교 때의 햄버거가 종종 생각납니다. 그때는 못 먹던 햄버거였지만, 지금은 마음껏 사 먹을 수 있습니다. 당시에는 생각도 못했던 일탈을 지금 하고 있습니다. 햄버거 패티 속에는 제 고등학교 때의 소심함도 함께 있습니다. 


와이프는 저에게 이런 햄버거 대신 왜 삼계탕을 주었을까요? 서운합니다. 그러나 백신 맞은 남편을 위해 삼계탕을 끓여준 와이프에게 투덜거릴 수는 없습니다. 서로 맘 상합니다. 살며시 돌려서 이야기합니다. 


"삼계탕이 좋기는 한데, 2차 맞을 때는 햄버거 시켜줘."


9월에 2차 백신을 맞았습니다. 온 가족이 모여서 버거킹 패밀리 세트를 시켰습니다. 플렉스 했습니다. 햄버거 안에 있는 콜레스테롤과 일일 권장량이 넘는 포테이토칩의 나트륨이 코로나 바이러스를 막아줄 겁니다. 햄버거로 건강해진 제 몸이 이 어려운 코로나 시기를 이겨낼 겁니다. 햄버거를 먹는 오늘 저는 행복합니다. 


여러분은 맥도널드와 버거킹 중 어느 쪽이 더 좋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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