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큰아들 코밑이 거뭇거뭇

by 공부하는 아빠

학원을 다녀온 아들이 문을 열고 들어온다.

시커먼 옷을 입은 채 '나 건들지 마라.'라는 표정을

짓고 있는 사춘기 중1아들.


거무튀튀한 큰아들 얼굴 코밑이 거뭇거뭇하다.

자세히 보니 검은색 잔디들이 살을 뚫고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아들, 너 수염 나나 보다."


라고 말하니 큰아들은 원숭이처럼 코 밑을

길게 하고서 나한테 얼굴을 쑥 내민다.


"맞네!!, 수염 나네!!"


하얀 솜털이 보송보송하던 그 자리가

이제는 연탄재를 뿌린 잔디밭으로 변해 가고 있다.


나도 그때쯤 까만 잔디들이 올라왔던 것 같다.

힘없이 흐물대는 잔디들을 자주 깎으면

빳빳한 잔디로 된다는 말에

아빠 수동 면도기로 긁어내고는 했다.


면도날 사이를 픽픽 쓰러지면서 피하는

잔디들을 열심히 밀었다.

아빠 수염 나면 빨리 어른이 될 줄 알았다.


그런 잔디들이 다시 내 눈앞에 보이기 시작했다.

코밑이 거뭇거뭇해져도,

배고프다고 밤에 소시지 구워달라고 하고

똑같은 파란색 잠옷을 입고 둘째를 쿡쿡 찌르며

함께 노래를 들으며 고개를 흔드는 큰아들


오늘따라 스머프처럼 보이는데,

아들의 머리끝은 내 눈까지 올라왔다.

몇 년 후면 올려다보느라 목이 아플 듯하다.

그런 아픔은 기쁨과 같은 뜻이겠지.


내 코밑에는 눈 내린 하얀 잔디가

듬성듬성 머리를 내밀고 나오기 시작했고,

아들 코밑에는 검은색 잔디가 올라오고 있다.


아들에게 면도기를 사줘야 할 때가 오겠지만,

가능하면 아주 아주 늦게 사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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