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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부하는 아빠 Jan 09. 2023

11. 우리는 조커일까 배트맨일까?


우리 집 안방 문에는 철봉이 걸려있다. 

내가 운동하려고 샀었다.

책장에 놓여 있던 두꺼운 백과사전처럼, 

누가 빼지 않으면 그 자리에 있는 게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그런 물건이 되었다. 


나 대신 큰아들이 철봉에 종종 매달린다.

큰아들은 요즘 키와 덩치가 부쩍 커졌다. 

어깨도 커지고 팔뚝도 굵어졌다. 


작년만 해도 배만 볼록 나온 어린이인듯 싶었는데, 

이제는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 


집안에 있는 게 답답해서인지 

가끔 철봉에 매달려 앞뒤로 흔들거린다. 

시커만 옷을 입은 채 거무튀튀한 얼굴로 

철봉에 매달려 있으면 킹콩이 눈앞에서 

고함을 치는 듯하다. 


킹콩이라고 부르면 고릴라처럼 

가슴을 크게 두들기며 우워 소리도 낸다. 

아빠 개그에 맞춰 주는 아들을 보니 기쁘다. 


몇 달 전만 해도 침대와 한 몸이 되어 

도통 일어나지 않으려고 했던 큰아들. 

이제는 가끔 철봉에 매달리기도 하고, 

만화책을 보면서 훌라후프도 돌리고는 한다.


그런 큰아들을 보니

올해 초보다 답답함은 많이 줄었다. 

불안감도 같이 줄었다. 

그러나 다른 걱정이 또 올라온다. 

내년에 또 침대에 붙어 있으려 하면 어떡하지? 


중2 중간고사 성적표를 보면 부모가 충격받으니 

침대에 누워서 받으라던데, 

내년이면 중2인데 이 정도로 괜찮은가? 


걱정 외에 갑갑함도 밀려온다. 

아이들은 부모가 믿고 기다리면 잘할 거라고,

아이들이 스스로 책임감을 느끼게 하라고,

간섭하지 말고 참으라고 말하지만, 

내 마음속에 꽉 찬 이 갑갑함은 어떻게 해야 하나? 


아이들 앞에서 조커처럼 웃고 있지만, 

내 속에는 시커먼 옷을 입은 우울한 배트맨이 있다.


철봉에 매달릴 때는 아들도 히히 웃고 있지만, 

그의 마음속에 배트맨이 있을지 

슈퍼맨이 있을지 나라고 어찌 알겠는가.


그래도 우울한 배트맨보다는 

웃는 조커가 낫지 않을까?


아들아, 우리는 서로에게 조커가 될지라도

집에서는 그래도 계속 웃고 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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