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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부하는 아빠 Dec 01. 2021

버리지 못한 영어 동화책, <그루팔로>

아들과의 추억이 담겨 있는 책

아빠: 애들 안 보는 영어 책들 어디에 있지? 이제 버려야겠어. 

엄마: 저기 책장에 모아 놨어. 꽤 많아. 

아빠: 이야, 이 책이 아직도 있네. 애들이 엄청 좋아하던 책인데. 이 책도 버려야 하나? 


바로 그 책이 <그루팔로(THE GRUFFALO)>입니다. 저희는 영국에 주재원으로 갔다가 2016년에서 귀국하였습니다. 돌아올 때 영어 공부한다고 책을 많이 사 왔습니다만, 이제는 책장이 부족해져서 오래된 영어 책들은 버려야 했습니다. 오래된 영어책들 중 이 상처 난 책만은 차마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그루팔로>. 아들들이 매우 좋아하던 책입니다. 영국에 있을 때 만화 영화로도 보고, 극장에 가서 연극도 볼 정도로 매우 좋아하던 책이죠. 그러나, 저희에겐 그냥 한 권의 책이 아닙니다. 영국에서 아이와 함께 지낸 추억이 이 책에 담겨있습니다.  


책 내용은 단순합니다. 그루팔로라는 무시무시한 괴물이 주인공인 쥐를 잡아먹으려고 합니다. 쥐는 자기가 숲에서 제일 무서운 동물이라며 따라오라고 하죠. 쥐 뒤에 있는 그루팔로라는 괴물을 본 여우, 부엉이, 쥐가 도망칩니다. 그루팔로는 쥐가 숲에서 제일 무서운 동물이라고 생각하고 도망가고, 주인공인 쥐는 살아남습니다.      


영국의 유명한 동화작가 Julia Donaldson이 쓴 책입니다. 그림도 아이들이 좋아할 만큼 재미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참 많이 읽어주었습니다. 둘째까지 보다 보니 책이 많이 해졌네요.  


저희가 영국에 갔을 때 큰 아이는 4살이었습니다. 영국에 갔을 때는 아이들이 학교에 적응 못할까 봐 걱정되었죠. 큰 아이가 한국말도 잘 못하던 때였으니, 건강히 잘 돌아 오자 고만 생각했었습니다. 영국에 간 다음 해인 2013년도에 큰 아이가 유치원에 가야 했습니다. 영국 유치원에 간다니  알파벳이라도 알아야 하지만, 저희는 어떻게 가르쳐줘야 할지 몰랐습니다. 큰 아이는 아빠와 게임하기를 좋아하니, 알파벳을 하나씩 찾아오는 게임을 생각해보았습니다. 큰 아이가 금방 배울 것 같았습니다. A~Z까지 알파벳 팻말을 만들고 아들에게 보여줬습니다.  


아빠: 아들, 아들, 우리 재밌는 놀이 하자. 알파벳 가져오기 어때?  

큰아들: 조아, 조아. 어떠깨 해? 

아빠: 아빠가 5개 알파벳을 저기에 두고, 엄마가 부르면 뛰어가서 가져오는 거야? 할 수 있지?

큰아들: 응응..나는 할 수 이쪄. 

아빠: 저기 A, B, C, D, E 보이지? 엄마가 부르면 먼저 가져오는 사람이 이기는 거야. 

엄마:준비, E!

큰아들: 히히히


큰 아들이 열심히 뛰어갑니다. 아빠가 눈치 없이 먼저 가서 집으면 안 됩니다. 이런, 큰아들이 A 앞으로 갑니다. 엄마가 힌트를 줍니다. "다섯 번째" 


큰아들: 요거? 요거? 내가 차자쪄. 

아빠: 우와! 우리 아들 게임 엄청 잘하네. 그럼 다른 것도 해볼까?   

큰아들: 응, 응. 이거 재미 쪄.  


일요일 오후 내내 큰 아들과 게임을 했습니다. 몇 시간 지나니 알파벳을 다 찾아옵니다. 제 아들이 천재인 줄 알았었습니다. 참 기뻤습니다. 그때는 하나만 잘해도 아들이 천재로 보이던 시기였습니다. 그런 큰 아들이 벌써 초등학교 6학년입니다. 지금은 아이들이 다 잘하기를 바라고 있네요. 영국까지 다녀왔으니 영어는 잘해야 하고, 수학은 학원도 다니니 잘할 거고, 국어는 집에서 책을 많이 보니 당연히 잘할 거라 생각합니다. 주변에서 공부 이야기를 들을 때마나 아이들에게 원하는 게 점점 많아집니다.


그런 저에게 이 상처 난 영어 책은 옛 추억을 보여줬습니다. 아이의 작은 성취에도 즐거워하던 우리 모습이 생각나더군요. 버릴 수 없어서 다시 책장에 꽂아두었습니다. 이제는 아이들에게 너무 쉬운 책이라 보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언제까지라도 저희 책장에 있을 겁니다.    


이 책에는 아이들이 못 보는 내용이 적혀있습니다. 큰 아이와 함께 한 알파벳 게임 방법이 적혀있고, 우리 아이를 천재라 생각했던 우리의 기쁨이 그려져 있습니다.    


오늘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갑자기, 책에 있는 괴물 그루팔로가 우리의 불안감처럼 보입니다. 우리의 불안감도 그루팔로처럼 이 세상에 없습니다. 상상 속에만 있지만 우리는 늘 도망 다닙니다. 똑똑한 쥐처럼 우리는 그루팔로를 바로 보지 못합니다.     


눈앞의 괴물 앞에서도 지혜롭게 대처한 쥐처럼, 부모의 불안감 앞에서도 우리 아이들이 떳떳했으면 합니다. 그루팔로가 숲을 돌아다니듯이는 부모의 욕심도 늘 주변에 머물 겁니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부모의 욕심 앞에서 용감하게 대처할 거라 믿습니다. 아들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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