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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부하는 아빠 Dec 03. 2021

"직장인" 아빠와 "그냥 엄마"

둘째가 본 우리 모습

둘째가 만든 인형


둘째가 유치원 때 만든 가족 인형입니다. 아빠, 엄마, 형과 자기까지 우리 가족 4명을 만들었습니다. 아빠는 웃고 있고, 엄마는 화내는 모습과 웃는 모습 둘 다 있습니다. 형과 자기는 웃는 얼굴입니다. 아들이 만든 인형을 보니 재밌었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보니 아빠는 "직장인" 아빠로 적혀있습니다. 엄마는 밑에 "그냥 엄마"로 적어 놨습니다. 엄마 인형은 화난 얼굴만 만들려고 했는데 혼날까 봐 웃는 얼굴도 만들었다고 하네요. 부부가 웃으면서 보기는 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웃을 수만 있는 일이 아니었네요.   



저는 아들들하고 잘 놀아주는 좋은 아빠입니다. 아이들과 몸으로도 잘 놀아주고 이야기도 많이 하지요. 당연히 좋은 아빠, 재밌는 아빠라고 생각했는데, 아들에게는 그냥 직장인 아빠였습니다. 기분이 이상하더군요. 아빠의 생각과 아들의 생각이 왜 달랐을까요?  



둘째가 더 어렸을 때는 저는 지금보다도 아이들과 잘 놀았습니다. 영국에서 주재원으로 근무할 때이죠. 영국에 있을 때는 일찍 퇴근했고 집도 가까웠습니다. 매일 저녁 아이들과 함께 할 시간이 많았습니다. 집에 오면 아이들과 인형, 블록 놀이도 하고, 술래잡기도 했습니다. 주말마다 여행도 많이 다녔죠. 아이들과 몸으로 정말 열심히 놀아줬습니다. 아이들도 아빠하고 노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한국에 돌아오니 서로 얼굴을 볼 시간이 줄었습니다. 저는 퇴근도 늦어졌고, 퇴근 시간도 오래 걸립니다. 집에 있는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저녁에 학원도 가야 했고, 숙제하느라 바쁩니다. 제가 집에 있어도 놀 시간이 없었습니다. 아이들이 숙제하고 있으면 저는 옆에서 유튜브를 봤습니다. 심심하니까요. 유튜브가 너무 재밌기에, 집에 오면 많은 시간을 유튜브와 함께 했습니다. 엄마는 아이들이 커 갈수록 올바른 생활 습관을 가르쳐줘야만 했습니다. 매일 칭찬만 해줄 수는 없었으니까요. 아이들이 숙제를 잘 안 하면 혼낼 때도 있었습니다. 둘째는 아빠, 엄마하고 노는 것보다 형하고 노는 것이 더 좋답니다. 형이 너무 재미있거든요. 아빠와 형의 리액션이 틀리답니다. 저는 그냥 응응 하고 넘어가는데, 형은 같이 장난도 치고 말도 재미있게 해 줍니다. 



저희가 달라졌었네요.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었는데, 이제는 함께 하는 시간이 줄었습니다. 그리고 함께 있어도 서로 다른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가족 간의 감정 공유가 줄었습니다. 저는 이런 모습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만, 둘째는 이런 달라진 모습을 알고 있었습니다.   



7살 된 둘째 아들은 자신의 속마음을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기에, 인형으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였습니다. 그런 아이의 마음을 알아보는 게 부모의 역할일 텐데, 우리가 모르고 있었네요. 고민되더군요.  우리는 아이들에게 좋은 아빠, 엄마이고 싶으니까요. 어떻게 "직장인" 아빠가 아닌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까요? 엄마는 "그냥 엄마"가 아닌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요?  



저는 아빠의 역할을 잘하고 있고, 아이들도 자기들 일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집에 와서 쉰다는 이유로 유튜브만 보면서 아이들에게는 예전과 같은 아빠를 기대했었습니다. 엄마는 아이들 습관과 교육에 신경을 많이 썼을 뿐인데, 아들에게는 그냥 화난 엄마였습니다.  



둘째가 부모가 변해야 할 시기라고 알려줬는데, 저희는 그렇게 생각지 않았습니다. 그냥 어린이다운 표현이라고만 여겼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저희는 변하지 않고 똑같은 모습으로 아이들을 대하고 있었다는 것을요. 우리는 좋은 부모라고 생각했기에 아이들의 이러한 표현에 둔감했습니다. 그러면서 계속 부모의 생각을 아이들에게 전달하고 있었네요. 



저는 둘째에게 "직장인" 아빠로 남아있고 싶지 않습니다. 아들과 함께 하는 사이좋은 아빠이고 싶습니다. 와이프도 "그냥 엄마"로 남아있고 싶지 않습니다. 아이들의 어려움을 함께 해결해주는 엄마이고 싶을 겁니다. 어떻게 해야 우리가 변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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