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을 쌓는 것보다 지혜로운 사람으로 성장하길 바란다. 단지 앎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상황에서 올바른 판단을 내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오늘 주말을 맞아 딸과의 데이트 장소로 일산에 있는 대형 중고서점을 찾았다. 한창 크는 아이에게 시기마다 새 책을 일일이 사주는 것은, 부모에게 큰 부담이기도 하다. 아기 때부터 낱권으로 된 비교적 부담이 적은 책은 새 책을 사주기도 했지만, 큰 비용이 드는 전집류는 대부분 인터넷 중고서점을 통해 구입해 읽어 주었다.
중고서점에 꽂혀있는 낯익은 책들/ 중고서점에 꽂혀있는 낯익은 책들이 반갑다.
깨끗이 다 읽은 중고 책은 다시 필요한 이에게 저렴하게 판매를 하거나, 나눔을 했다. 비용면에서도 절감이 되어 좋은 점도 있지만, 버려지는 것이 줄고 새롭게 밸 나무도 줄이는 격이니, 재활용은 미래의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줄 이 지구를 살리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지 않나 싶다.
이제 사춘기가 된 딸은 새 책 같은 중고 책을 저렴하게 사는 즐거움과 간간이 스쳐 간 누군가의 흔적들을 발견하는 재미를 알아 새 책방보다 중고서점을 더 좋아할 정도로, 중고서점 나들이는 딸에게 즐거운 놀이터이다. 다행히 이사한 집 근교에 있어 애용하는 곳이 되었다.
매서워진 날씨와 철도 파업이 겹쳐, 지하철 안은 출근길이 아닌 시간 임에도 발 디딜 틈도 없이 꽉 찼다. 주말임을 감안해도, 철도 파업으로 길어진 열차운행시간 지연으로 동 시간대에 많은 사람이 몰린 이유에서다. 지하철 플랫폼에서는 매분 철도 파업으로 지하철 열차 운행 시간이 지연되니, 양해 바란다는 안내 방송이 계속해서 연이어 방송되고 있었다.
중간쯤 가다 내리는 사람이 있어, 다행히 자리가 나아 서서 가던 딸을 앉혔다. 열차 안에 사람도 줄어 처음보다 공간의 여유도 생겼다. 딸은 앉자마자 스마트폰을 꺼내 내릴 때까지 손에서 스마트폰을 놓지 않았다. 열차 안에 있는 사람들의 손에도 대부분 스마트폰이 들려 있었고, 모두 거북목을 하며 채팅을 하거나 인터넷 검색을 하고 있었다. 손에 책을 들고 보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새로운 광경도 아니다. 책을 미처 챙기지 못한 경우, 나 또한 지하철을 타면 스마트폰으로 뉴스 기사를 찾아보거나 검색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니 말이다.
청소년, 스마트폰 하루 사용량 5시간, 부모세대와 큰 차이가 없다는 기사를 보았다. 초중고학생 스마트폰 사용량은 주당 36.2시간, 하루 평균 5시간 이상 스마트폰을 한다는 것이다. 딸도 예외는 아니다. 공부하거나 숙제를 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거의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그로 인해 실랑이하는 날이 부지기수로 늘기도 했다.
대형 중고서점 안 풍경/ 중고서점에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책을 고르고 있다.
오늘은 그 실랑이 대신 중고서점을 찾았다. 글 밥이 많거나 긴 글보다 스마트폰으로 대충 넘겨보기에 익숙한 아이들에게, 딸에게 좋은 글이 실린 책을 읽히고 싶었다. 책이 주는 감동과 울림 교훈이나 삶의 지혜를 배우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한 권의 책이 나의 삶을 송두리째 바꿀 수도 있으며, 힘들고 지칠 때 삶의 지침서가 되어 준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기에 엄마로서 알려주고 싶었다.
책은 딸에게 직접 고르게 했다. 책 분량이 길지 않으며 짧은 시간 안에 쉽게 읽을 수 있고, 딸이 좋아하는 일러스트가 그려져 있으면 딱 딸에게 적합할 듯했다. 대신 스스로 고른 책은 모두 읽기로 약속했다.
몇몇 출판사에서 청소년을 대상으로 처음 소설을 접하는 학생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시리즈로 펴낸 책이 있어 딸도 마음에 들어 하고 재밌게 읽을 수 있다고 해서 스스로 보고 몇 권을 책을 고르게 했다.
지갑도 마음도 풍요로워진 책을 사서 집으로 향하기 위해 우리는 지하철 플랫폼에 서 있었다. 주말에 철도 파업으로 쉽게 지하철이 오지 않으리라 생각해 느긋한 마음으로 기다리고자 딸이 고른 책을 꺼내 기둥에 기대어 서서 읽기 시작했다.
대형 중고 서점에 진열되어 있는 책들/ 대형 중고서점에 진열되어 있는 다양한 책들
의자에 앉아 스마트폰을 하고 있던 딸은 자신이 고른 책을 꺼내 읽고 있던 엄마의 모습을 보고는 스마트폰을 가방에 넣고 자신이 고른 책을 한 권 꺼내 따라 읽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기특해 흐뭇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책에만 집중했다. 딸은 중간중간 내가 읽은 페이지가 궁금했는지, 슬쩍 보더니, 경쟁하듯이 읽어내려갔다. 귀여워 미소가 저절로 피어났다.
부모는 자녀의 거울이다. 란 말이 있다. 혼자 읽기보다 함께 읽고,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주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 가수 이적의 어머니 얘기는 유명하다. 삼 형제를 모두 명문대로 보내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면 그 공부비법을 궁금해했다.
이적의 어머니는 아이들에게 항상 책을 읽는 모습을 보여주셨고 한다. 엄마의 사랑을 받고 싶었던 이적은 어머니가 책을 보고 계시면, 그 옆에서 따라 책을 읽었고, 공부하고 계시면 따라 공부를 했다고 한다. 다른 형제들 또한 항상 어머니 곁에서 책을 읽고 공부를 했다니 그것이야말로 참다운 교육이 아니었나 싶다.
오랜 기다림 끝에 지하철에 올라탔다. 지하철 안은 올 때와 마찬가지로 만원이었다. 나는 서서 읽던 책을 계속해서 읽었다. 딸도 재미가 있었는지 엄마 따라 나란히 서서 읽어 내려갔다. 우리 앞에 할머니 할아버지 두 분이 나란히 앉아 계셨다. 그중 할머니 옆에 앉아 계신 할아버지 한 분이 우리의 모습을 흐뭇하게 보고 계셨다.
내 앞에 자리가 났고, 딸을 앉혔다. 잠시 뒤, 할아버지 왼쪽에 앉아계셨던 할머니가 내렸다. 할아버지 오른쪽에는 딸이 앉아 있었다. 딸과 나란히 서서 책을 읽고 있던 우리를 흐뭇하게 보시던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내리신 곳으로 이동해 앉으며 내가 딸 옆에 앉도록 자리를 마련해 주셨다.
나는 할아버지께 감사의 말을 전하며 딸과 함께 나란히 앉아 도착할 때까지 편히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지하철을 타고 오며 우리는 짧은 청소년 소설이었지만 나란히 한 권씩을 모두 읽고 내렸다.
독서의 중요성은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오늘 지하철을 타고 오며 딸과 말보다 책을 통해 서로가 공유할 수 있는 추억과 시간을 나눌 수 있었다.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기고, 눈은 넓은 곳을 바라볼 수 있으며, 생각은 바다처럼 맑고 깊은 지혜로운 사람으로 자라길 바란다. 오늘 읽은 책이 너의 마중물이 되기를 소망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