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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미하다 May 28. 2018

'냉장고를 부탁해' 속의 실패, 그리고 우리의 실패

그들의 경쟁은 무엇을 낳았을까?

내로라하는 중식 요리사가 뜻밖에도 피자를 만든다. 역시 피자에는 케첩이지! 망설임 없이 주욱 짜 넣는다. 닭가슴살은 밀가루를 묻혀 바삭하게 구워낸다. 중화풍으로 볶은 돼지목살로 중식 요리의 대가임을 강조한다. 이제 남은 시간은 3분이다. 치즈와 아보카도를 얹고 서둘러 오븐에 넣지만 치즈는 먹음직스럽게 구워졌다기보다는 이제 막 녹기 시작한 듯하다. 옆에서 달군 무쇠 팬으로 자신 있게 치즈를 지지고 있는 오세득 요리사를 힐끔 쳐다본다. 서둘러 토치를 꺼내 불맛을 내본다. 이제 막 결혼한 새신랑, 새신부가 차리는 생일상처럼 수줍은 블루베리 양상추 샐러드는 마냥 귀엽기만 하다.



역시 피자에는 케첩이지!
뜨억



이날 이연복 요리사의 요리를 그의 인생 요리라고 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런 그가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거나 손님을 무시했다고 비난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인생이 곧 중화요리인 요리사의 도전이 재미있고 신선해보였을 따름이다.



여러분 이것은 비웃음이 아닙니다. 애정입니다.



 

 한 때 수많은 요리 경쟁 프로그램이 있었다.  


그곳에 출연한 이들은 나이도, 경력도 모두 벗어던지고 오직 그 날의 요리 하나로 평가받았다. 평소에 얼마나 요리를 잘하든지 간에 순간 실수로 쏟은 설탕 한 움큼, 몇 분 덜 익힌 고기, 때로는 나보다 더 큰 실수를 한 상대방의 실수가 패자와 승자를 갈랐다. 승리의 대가는 달콤했고, 패배의 결과는 처절했다. 그 순간 뒤도 돌아보지 않고 프로그램을 떠나야 했다. 때로는 인사조차 용납되지 않았다.



이 모든 경쟁 프로그램에 가장 큰 영감을 준 것은 아마도 ‘나는 가수다’일 것이다. 데뷔 십 년 차 가수든, 20년 차 가수든 단 한 번의 무대로 평가받았다. 단 몇 번의 실패가 전 국민 앞에서의 공개적 창피와 프로그램 하차로 이어지는 불관용의 경쟁이 그들의 절박함과 진정성을 끌어냈다.


‘나는 가수다’는 곧 큰 반응을 끌어냈다. 이제는 텔레비전에서 보기 어려웠던 다양한 장르의 가수들이 그들 인생을 걸고 단 한 번의 무대에 모든 것을 쏟아내자 우리는 마치 라이브 공연이라는 것을 그때 처음 발견한 것처럼 열광했다. 뚜껑을 덮고 못까지 박았던 록이 다시 소환되었다. 그러나 그다음 일어난 일은 더욱 놀랍다.  


 

그들의 열정 넘치는 무대는 곧 획일적인 무개성의 무대로 수렴되었다!  


장르와 창법을 불문하고 그들은 이마와 목에 있는 핏대 없는 핏대 다 세워가며 옥타브 경쟁을 하기 시작했다. 공연 중간의 뜬금없는 장르 전환과 화려한 즉흥성은 이제는 없는 것이 오히려 새로울 정도로 정형화되었다. 곧 ‘나는 가수다’는 매력을 잃고 프로그램은 사라졌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애초에 그들을 경쟁시켜 순위를 매기는 행위 자체가 문제일까? 아니면 일반 대중 한 무리를 모아놓고 평가하게 한 것이 문제였을까? 획일화된 대중의 취향이 문제였을까? 아니다.


 

그 해답은 바로 '냉장고를 부탁해 (냉부)'에 있다.


냉부의 8명의 요리사는 치열한 경쟁을 펼친다. 승자에게는 별이 수여되고, 별의 개수가 그들의 순위가 된다. 그러나 막상 패자에게 그들은 아무런 처벌도 가하지 않는다. 만약 그랬다면 매년 꼴찌에서 맴돌고 있는 김풍이 지금까지도 뻔뻔하게 출연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실패해도 내일이 있는 경쟁, 그것이 냉부의 경쟁이다.


그러나 이 작은 차이는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냈다. 김풍은 공공연한 이연복의 제자이다. 샘킴의 구운 청양고추 소스에서는 미카엘과 이연복이 느껴진다. 올해 초 새로운 도전을 선언한 이연복은 패배를 거듭해 꼴찌까지 떨어졌다. 너무 차이가 벌어진다 싶어 보이자 다시 중식 요리로 별을 수집하더니, 다시 신인 퓨전 요리사가 되어 수줍은 블루베리 샐러드와 떠먹는 피자를 선보인다 (믿거나 말거나).


샐러드가 아기자기하네요. 칭찬은 아닙니다. ㅎㅎ


실제로 그들의 의도가 어떠하였든지 간에 분명한 것은 회를 거듭할수록 그들은 서로에게 영향을 주면서도 거침없이 각자의 개성을 드러내며 새로운 방향으로 발전해 나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나는 가수다’ 였다면 어땠을까? 이연복 요리사는 아마도 매번 핏대를 세우며 최고의 중화요리를 선보였을 것이다. 그의 고추기름과 능숙한 튀김 요리는 모두를 집어삼켜 ‘냉장고를 부탁해’는 ‘중화요리를 부탁해’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는 지금보다 더 많이 승리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최고의 영예와 함께 냉부는 지금쯤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진 프로그램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묵은지 찜이, 두툼한 생삼겹살이, 그리고 대만 대왕 카스텔라의 열풍이 생겨나고 사그라졌다. 처음에는 그 새로움에 매료되었던 우리는 이내 발에 채도록 들어선 비슷비슷한 음식점에 곧 새로운 프로그램을 찾는다. 그러나 평생 회사만 다니던 노동자가 퇴사와 함께 손에 쥐어진 남은 평생을 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돈으로 시작하는 창업은 실패가 곧 상당히 높은 확률의 자살로 이어지는 불관용의 경쟁이다. 누구나 핏대를 세우며 양념도, 요리의 외관도, 간판도 더욱 화려하게 경쟁한다. 그 경쟁의 끝에 타일 한 장 보이지 않는 기괴한 간판을 온몸에 두른 건물로 가득한 몰개성의 거리가 있다.

 

우리는 점차 빠른 시기에 불관용의 경쟁을 맞이하고 있다. 예전에는 정년퇴직 이후에 시작되던 그것이 곧 과장 진급과 명예퇴직으로 당겨졌다. 이제는 취직 자체가 성공과 실패를 가른다. 공무원은 그 경쟁을 벗어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수단이다. 한때 가장 지루하고 별 볼 일 없는 직업 취급 받았던 공무원이 이제는 모두의 장래희망이 되었다. 경쟁의 무대는 대학으로, 초등학교로까지 당겨져 이제는 아이들조차 고액 과외를 받는다. 인생을 건 그 경쟁은 대단히 치열하고 진지하다. 그리고 누군가는 승자가 되어 웃음 아닌 웃음을 지을 것이다. 그러나 그와 함께 세계라는 무대에서 대한민국이라는 프로그램은 폐지되어 사라질지도 모른다.


 

불관용의 프로그램에 출연한 우리는 지금까지 늘 경쟁해왔다.  



그래서 우리는 퇴사를 준비한다. 독립 출판과 독립 서점은 이제 회사에 의존하지 않으면 생산하지 못하는 무력한 상태에서 독립하겠다는 선언이다. 불관용의 경쟁 무대에서 승리의 열매를 쟁취하지 않고 아예 새로운 무대를 짓겠다는 선언이다.  


 

그리고, 그 무대에서의 실패는
반드시 가볍게 웃음 짓고 넘길 수 있을 정도의 것이어야만 한다.


 

 그러면 모두가 나태해지고 도덕적 해이가 오지 않겠냐고? 아니다. 우리는 개돼지가 아니다. 우리는 아무런 경제적 이득도 없는 조그마한 별 배지를 쟁취하기 위해 자존심을 걸고 경쟁하는 삶의 요리사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지 패배를 위한 작은 공간이다. 냉부의 그들처럼.


 

우리의 경쟁을 '나가수'의 그것이 아닌 '냉부'의 그것으로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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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많은 사람이 '클릭'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좀 더 많은 사람이 제 글을 읽고 공감하여 작은 변화라도 함께 이루어갈 마음을 먹을 수 있도록 '음미하다'의 장점을 더욱 갈고 닦겠습니다.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우리 사회에 대해 많은 문제의식을 가져왔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적극적으로 그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무엇이든 변화를 일으켜보려는 노력에 적극적이지는 않았어요. 그러다가 좋아하는 몇 가지 중 하나인 '맥주를 소재로 삶의 작은 변화부터 일으킬 방법을 찾아보자'라는 생각으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 왔습니다. 


지금은 '맥주도 취미가 될 수 있나요?' 출판 준비 중입니다. 내년 초 출간을 목표로 작업하고 있습니다. 맥주의 역사와 정보에 대한 내용도 많지만, 맥주를 만들고, 소비하고, 바라보는 우리의 모습을 통해 우리 사회에 관해 이야기해보는 내용도 많아요! 아무래도 이 글을 보신 분들은 그런 내용에 더 관심이 가실 것 같아 몇 가지 추려보았습니다.


실패해도 괜찮아?

술을 도대체 왜 마시는 걸까요?

한국인의 커피, 한국인의 맥주?


감사합니다~^^


2018.5.30

음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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