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음미하다 Aug 10. 2017

01. 술을 도대체 왜 마시는 걸까요? 上

지금 마시는 술은 내가 선택한 한 잔인 가요?


맥주도 취미가 될 수 있나요? 연재 중
- 맥주 초보가 맥주 애호가가 되기까지 맥주도 '취미'가 될 수 있는지 알아가는 일상 이야기


제 1부_ 술과 취미

첫 번째 잔. 술을 도대체 왜 마시는 걸까요?

illust by @eummihada - 음미하다


무수한 사람들이 술을 마신다.

축하하려고 마시고, 속상할 때 마시고, 고백하려고 마시고, 노래방에서 마시고, 동창회에서도 마신다. 회사는 물론 학교나 학원에서도 회식 때면 대게는 술을 마신다. 마치 밥상의 김치처럼 늘상 마시는 게 술이고 어느 자리에나 빠지지 않는 것이 술인데, 이상한 것은 김치를 싫어하는 사람에 비해 술을 싫어하는 사람은 매우 많다는 점이다. 그런데 왜 모임엔 항상 등장할까? 게다가 내가 김치를 싫어하더라도 가족이 김치를 먹는 것 까지 싫어하는 한국인은 거의 없지만 가족이 술을 마시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많다. 왜일까?


그 와중에 정작 찾기 힘든 것은 술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우리 시대의 애주가는 대게는 그저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이다. 마치 취하는 것이 술 마시는 유일한 목적인 것 같다. 피카소의 그림을 찬탄하듯 술맛을 찬탄하는 이는 드물다.



직장을 다니는 사람의 수만큼이나 자신의 일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저 인정받기 위해, 생계를 위해, 집을 장만하려고,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 일을 한다.

정작 찾기 힘든 것은 직장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우리 시대의 행복한 사람은 안정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다. 내 삶의 의미는 모래알처럼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고 나는 그 부스러기만을 부여잡고 있다. 진정 삶을 찬탄하는 이는 드물다.





어딘가 닮은꼴이다. 우연일까?
 


100여 년 전에만 해도 일곱 집에 한 집 꼴로 술을 빚어 먹었다고 한다. 술 빚는 이에게 면허를 내어주며 감독하고 양조장을 짓게 한 이유는 안전하고 품질 좋은 술을 만들도록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양조 면허와 양조장에 세금을 부과하여 식민지의 재정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1934년에는 가양주 면허제도마저 폐지되어 오직 양조장에서만 술을 빚을 수 있게 되었다. 수많은 향토주와 소주가 자취를 감추었다. 1960년대에는 쌀로 술을 빚는 것이 금지되었다. 잡곡에 밀가루, 옥수수, 당밀 따위를 섞어 막걸리를 빚게 했다. 지금 어르신들은 텁텁한 밀 막걸리의 맛이 그립다 하신다. 그러나 그 막걸리는 불과 50여 년 전에 막 탄생한 어린 술이다. 최초의 미국 크래프트 맥주 양조장인 시에라 네바다는 1980년에 설립되었다. 37년 전이다. 우리의 밀 막걸리는 그 정도의 역사 밖에는 가지고 있지 않다.


지금 한국의 술엔 근대는 담겨있으나 전통은 담겨있지 않다. 푸른 병에 담긴 소주와 갈색 병에 담긴 맥주는 ‘우리의 술’이 되었다. 단, 그 술에 태초부터 이 땅에서 이어진 삶의 역사는 없다.


한 줌의 전통주, 한국에서 재배되지도 않는 타피오카로 만든 주정을 희석하여 만드는 소주. 우리 맥주의 전신은 일제 강점기에 설립된 조선맥주와 소화 기린맥주이다. 다시금 쌀로 만든 막걸리를 마시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이후이다.  


우리는 준비되지 않은 채로,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이런 술만이 존재하는 시대에 던져졌다. 태어난 것이 아니라 ‘태어나졌기’ 때문이다. 내가 술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를 판단하기에 우리의 선택지는 너무나 적다. 우연히 유독 맛없는 빵집에 들렀을 수도, 그날 제빵사가 실수를 했을 수도 있다. 심지어 우리 동네에 맛있는 빵집이 하나도 없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이 세상 모든 빵이 맛없는 것은 아니다.

진정 내 기호를 알려면 오랜 기간 여러 번 시도해 봐야 한다. 수많은 대상에 대한 나의 기호를 쫓다 보면 어느새 공통점이 떠오른다. 그 느슨한 기호들의 집합 어디엔가 내가 있다. 그렇게 나 자신을 알아간다.


내가 진정 좋아하는 술을 찾고,
좋아하는 사람을 찾아,
나의 마음이 준비되었을 때에 나누는 한 잔.
그 술이야말로 내가 선택한 한 잔이다.

비로소 나의 인생이 담긴 한잔.
건배.
illust by @eummihada - 음미하다






맥주도 취미가 될 수 있나요?
일주일에 2회 연재할 예정입니다.
많이 구독해주세요~!


머리말: 맥주도 취미가 될 수 있나요? - 맥주 자체도 우리의 삶에서 음미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


제 1 부

1-1. 술을 도대체 왜 마시는 걸까요? 上

1-2. 술을 도대체 왜 마시는 걸까요? 下

2-1. 우리 모두 하나가 되자! 上

2-2. 우리 모두 하나가 되자! 下

3. 즐기는 사람도 잠재적 중독자

4. 취향은 나 자신의 거울이다

5. 한국인의 커피, 한국인의 맥주?

6. 맥주는 취미가 된다


제 2 부

1. 맥주의 의미의 의미

2. 맥주의 이름

3. 자꾸만 이름은 늘어간다

4. 맥주와 치즈의 나라 벨기에


그라폴리오에서는 매주 토요일 연재하고 있습니다.
http://www.grafolio.com/story/19374


페이스북에서는 맥주가 취미인 일상의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facebook



참고문헌: 이승률, 중앙SUNDAY-아산정책연구원 공동기획: 한국문화 대탐사 23 - 전통술 (상), 중앙SUNDAY 389호, 2014.

매거진의 이전글 머리말 _ 맥주도 취미가 될 수 있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