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경제와 도시 (1)
“갤럭시S8 무료 구매 찬스"
2017년 6월28일 서울 신촌 연세로를 걷던 중 이런 플래카드를 발견했다.
1년밖에 쓰지 않은 휴대전화가 갑자기 고장나 새로 휴대전화를 구입해야겠다고 생각했던 때여서 그런지 눈에 확 들어오는 메시지였다. 그런데 옆의 문구를 읽어보니 “무료 구매"에 대한 정의가 조금 생소했다. 문구는 이랬다. “제휴카드 혜택+구매 18개월 사용 후 기기 반납시"
사실상 ‘임대폰’인 셈이었다. 그런데 통신사는 이를 “무료 구매”라고 표현했다. 많은 사람들 역시 커다란 거부감을 갖지 않는 듯 하다. 우리는 이미 이런 행위를 반복해 왔기 때문이다. 휴대전화를 구매했다가 2년 정도 쓰고 난 뒤면 그 휴대전화를 팔아버리고, 다시 새 휴대전화를 구매하는 익숙한 패턴이 그것이다. “갤럭시S8 무료 구매 찬스"는 이 같은 행위를 조금 더 극적으로 포장해 상품화했을 뿐이다. 이것은 소유인가, 임대인가, 아니면 공유일까?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는 스마트폰은 이미 공유경제의 영역 속에 편입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유경제의 정의를 알든 모르든, 최근의 경제현상에 대해 ‘공유'라는 표현을 쓰는 것에 대해 동의하든 않든 간에, 이른바 공유경제는 이미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셈이다.
공유경제 규모 2022년 402억 달러
디지털테크 분야 분석회사인 주니퍼 리서치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공유경제의 시장규모는 2017년 기준 186억 달러(21조1천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규모는 에어비앤비나 우버와 같은 공유경제 플랫폼 사업자의 매출을 토대로 분석됐다. 주니퍼 리서치에 따르면, 에어비앤비 등 플랫폼 사업자를 기반으로 한 공유경제 규모는 2022년 402억 달러(45조6천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공유경제는 점점 더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 중 첫 번째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경제질서로 확립된 저성장이다. 저성장 시대에는 무언가를 새로 생산해 봤자 그것을 소비할 수 있는 여력이 있는 사람들이 부족하다. 그러다 보니 기존에 이미 있는 것을 다시 활용하려는 동인이 생겼다. 공유경제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다. 앞으로 이어지는 글에서 바로 이 같은 측면이 반복해 등장할 것이다.
여기에 2007년 애플 아이폰의 등장 이후 스마트폰이 확산되면서 온라인 접근성이 대폭 확대되었고, 기존 자원의 활용도가 높아졌다. ‘공유경제: 사람들은 왜 협력적 소비에 참여하는가’라는 제목의 논문은 “정보통신기술(ICT)의 발달이 이른바 협력적 소비와 개인간(Peer-to-Peer) 거래를 확산시킨다”고 설명했다. 협력적 소비와 개인간 거래는 공유경제의 핵심 키워드다. 스마트폰은 누구나, 언제, 어디서나, 쉽게 공유경제 플랫폼을 이용할 수 있게 해줬다.
공유경제의 확산에는 문화적 요인도 빼놓을 수 없다. 새로운 문화는 밀레니얼 세대(1980~2000년생)가 주도하고 있다. 밀레니얼은 소유보다는 경험과 이벤트, 네트워크를 중시한다. 스트리밍으로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본다. 집을 살 수 있는 자본도 없거니와 그럴 필요성도 과거 세대보다는 덜 느끼며 만남을 중시한다. 세계적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밀레니얼은 다른 어떤 세대보다 더 건강과 환경을 중시하는 세대이기도 하다. 기존 자원을 재활용하는 공유경제가 새로운 문화 트렌드에 적절하게 맞아 떨어진다는 의미다.
이렇게 경제, 문화적으로 어우러진 시대 속에서 공유경제는 이제 주류 경제의 일부로 자리잡고 있으며, 이 추세는 더욱 가파르게 확산될 것이다. 예컨대 공유경제의 대표주자인 에어비앤비는 2008년 설립한 이후 짧은 시간이 흘렀지만, 이미 현실 세계에서 강력한 경제주체로 떠오르고 있다. 지금까지 에어비앤비를 이용한 고객(게스트)이 누적적으로 무려 3억명 (2018년 4월 기준)에 이를 정도이며, 기업가치가 힐튼을 뛰어넘은지 오래다. 지난 2017년 8월5일은 하루 동안 에어비앤비 숙소에서 잠을 청한 사람이 전 세계에서 250만명에 달했다.
장님 코끼리 만지기식 공유경제 이해
이렇게 공유경제가 확산되고 있는 시대적 흐름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가장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바로 인식의 전환이다. 공유경제에 대한 모호한 환상은 혼란을 야기할 뿐이며, 새로운 시대에 적응할 수 없게 만든다. 많은 사람들이 공유경제에 대해 오해하고 있다. 공유경제는 서로 가진 것을 나누는 방식의 따뜻한 경제이며, 자본주의를 극복할 대안이라는 식의 인식이 그 중 하나다. 물론 공유경제의 특성 상 이 같은 긍정적인 측면이 강한 것이 사실이지만, 본질은 그게 아니다. 이런 식으로 정의한다면 공유경제의 범위를 너무 협소하게 보는 것이다. 마치 ‘장님 코끼리 만지기' 식으로 공유경제의 일부만 이해하게 되고 공유경제가 등장하게 된 본질적인 이유를 놓쳐버릴 우려가 있다. 등장배경을 정확히 이해하지 않으면, 우리가 공유경제를 바탕으로 무엇을 얻어낼 것인지 목표도 불분명해지며, 세계적인 흐름도 놓쳐버릴 것이다.
본질적으로 공유경제란 ‘효율의 극대화’라는 경제논리에 다름 아니며, 이를 바탕으로 이미 우리 생활 속에 깊이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자동차 렌트, 정수기 렌트 등은 기업과 개인 간의 공유경제 모델이다. 임대인 듯, 공유 같기도 한 스마트폰 시장은 기업과 개인 간 거래(C2P)는 물론 개인 간 거래(P2P) 모두를 포괄하고 있다는 점에서 바로 지금까지의 공유경제 모델과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공유경제 간의 접점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런 관점으로 우리 인식의 틀을 넓혀보면, 기존 생활 속 공유경제도 눈에 띈다. 전통적인 사업자 중 하나로 꼽히는 호텔은 공유경제와 건축적 장치를 적극적으로 이용한 상품에 다름 아니다. 호텔은 건축적 기법과 공유공간의 이점을 적극 활용해 자원 이용을 최적화했다. 많은 사람들이 호텔의 화려한 로비에 들어서면서 이런 감정을 느낀다. “아, 여기가 오늘 밤 내가 묵을 호텔이구나. 정말 화려하고 멋지구나.”
이 감정은 사실 사람들의 인식을 흐트리게 한 공유와 건축이라는 장치의 부산물이다. 실제 잠을 자야 하는 공간은 아주 작고 어두운 방 한 칸 일 뿐이다. 우리가 착각을 일으키게 만드는 그 부분. 그것이 공유경제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다. 사람의 마음을 이끄는 화려한 입구와 로비에 있는 친절한 직원들, 따뜻한 계란 스크램블이 나오는 식당, 클래식 음악이 나오는 카페가 있는 공간은 실질적으로 건물 용적률의 10%도 차지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뒤에 다시 언급하겠지만, 최근 등장하고 있는 공유 오피스나 공유주택은 모두 이런 방식을 차용하고 있다. 영미권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공유주택인 올드오크나 위리브 같은 건물의 특징은 공유공간을 최대한 화려하게 만들어 눈길을 끌고 있지만, 실제 건물 용적률을 대부분을 차지하는 공간인 숙소는 매우 비좁은, 최소한의 수준으로 꾸며 놓는다는 점이다. 개개인이 지불하는 비용이 N분의 1씩 모여 화려한 공유공간을 만들어내고 심리적 만족감을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호텔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인간은 작은 심리적 장치에도 손쉽게 속아 넘어간다.
대중목욕탕은 또 어떠한가. 개인이 자기 집 안에 뜨거운 탕을 들여다 놓는다고 생각해보라. 소금탕, 한방쑥탕, 폭포탕 같은 다양한 욕탕을 집 안에 들여 놓고 유지 관리하려면 엄청난 돈이 들어갈 것이다. 하지만 공유경제는 이 욕구를 해소시켜 준다. 보통 부자가 아니고서는 즐길 수 없는 이 다양한 어메니티를 우리는 8000원 정도의 돈을 내면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다. 역시 N분의 1씩 돈이 모이는 공유경제의 원리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또한, 목욕탕을 찾는 사람들이 적다면 사실 그 많은 뜨거운 탕을 이용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공유경제에 참여하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목욕탕은 더 다양한 종류의 탕을 손님들에게 서비스로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우체국 역시 공유경제 모델 중 하나다. 스스로 편지를 보낸다고 생각하면 비용이 너무나 크게 들지만, 같은 동네 사람들의 편지를 모아 재분류 한 뒤 다시 수신처가 같은 동네 사람들을 모아 한꺼번에 배달하면 굉장히 비용 효율적이다. 전화와 이메일, 카카오톡이 일상화된 지금, 우체국이 사라지는 것은 바로 N분의 1 경제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대중교통 역시 대표적인 공유경제 모델이다. 지하철이라는 엄청난 인프라가 작동하기 위해 필요한 돈은 그 인프라가 설치되어 있는 도시의 밀집도에 따라 충당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전철 노선을 확정하기 전에 반드시 수요예측을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런 사례들을 살펴보면, 우리는 이미 자본주의 속에서 공유경제의 개념을 적극적으로 차용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사례들을 통한 공유경제에 대한 인식의 확장은 공유경제에 대해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준다. 공유경제는 그다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저 이 같은 N분의 1 경제의 논리일 뿐이다. 그리고 여기에 스마트폰을 바탕으로 한 플랫폼의 힘이 더해진 것이다. 글로벌 플랫폼은 더욱 효율적이고 더 빠르게, 전 세계인들이 한꺼번에 참여할 수 있는 규모를 만들어 줬다.
공유경제에 대한 명확한 이해는 도시에 대한 이해도를 좀 더 높여주는 측면도 있다. 도시는 그 자체로 공유공간이다. 세금이라는 비용이 투입된 공유재다. 자, 우리는 도시에 살고 있는 많은 개개인들을 위해 공유공간을 어떻게 배치하고, 운영해야 하는가. 인프라의 투입, 공원이나 체육관, 도서관 같은 공공자원의 배치, 공공공간의 효과적인 배분 등은 플랫폼과 공유경제의 인식 확장을 통해 우리가 다시 한 번 고민할 수 있게 해주는 계기가 되어 준다. 집 앞 마당과 같은 사적인 공유공간의 사용법도 다시 개발될 때다. 서로 모여서 높은 밀도를 이루는 도시의 본질을 우리는 제대로 활용하고 있는가. 우리는 서로 우연히 만나 대화를 나누다 ‘유레카'를 외치는, 도시적 혁신을 만들어 가고 있는가. 도시의 본질적인 장점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나는 이 질문들이 공유경제와 도시라는 담론 속에 전부 담아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더욱이 공유경제는 기본적으로 도시적 담론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점도 강조하고 싶다. 공유경제는 도시에서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의 질과 관계되어 있는 중요한 테마다. 마치 새로운 것을 말하는 것 같지만, 모더니즘으로 황폐화된 도시의 건조함 속에서 우리는 이제 다시 한 번 도시의 본질에 대해 질문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인지도 모른다.
앞으로 나는 공유경제와 도시라는 테마를 두고, 에어비앤비라는 공유경제의 상징적 플랫폼을 중심으로 풀어나가려 한다. 이 글은 공유경제에 대해 정확히 알 수 있게 도와주는 개론서이자, 도시라는 공간 속에서 공유경제, 특히 에어비앤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다이내믹스를 보여주는 사례집이기도 하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도시를 향해 출발한다.
음성원 도시건축전문작가
*이 글은 세계일보와 허핑턴포스트에서도 연재됐습니다. 책 발행을 앞두고 해당 콘텐츠를 가공해 블로그에 재연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