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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성원 Mar 27. 2018

밀레니얼과 베이비부머가 만난 그곳

그곳에서 도시가 재구성된다

도시의 완성은 사람이다.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건물군이 있다고 가정해보라. 사람이 한 명도 없는 카페, 식당, 사무실을 생각해보라. 우리는 사람이 모여 있는 카페에서 묘한 매력을 느끼고, 내가 여기 어딘가에 속해 있다는 생각을 갖는다.


도시는 사람이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모습을 바꾸고, 형태와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들이 변화를 이끌까? 변화의 주체인 ‘누구’에 초점을 맞춰 최근 도시의 변화상을 살펴봤다.


밀레니얼의 등장

나는 그 주역 중 하나로 밀레니얼 세대를 꼽는다. 1980~2000년에 태어난 이들은 스마트폰과 함께 세상을 변화시키는 주역이다. 스마트폰을 든 이들은 기성세대와 완전히 다른 행태를 보인다. 밀레니얼은 스마트폰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따라서 입지의 중요성이 희석됐다.


새로운 골목은 독특함을 찾는 밀레니얼의 눈에 띄었고, 이들의 손에 의해 ‘공유‘ 되었다. 소셜 미디어에서 공유되고, 공감대를 얻게 되면 빠르게 인지도를 얻게 된다. 소셜미디어가 활성화된 이후 등장한 골목상권들은 불과 1~2년 사이에 인지도를 획득해냈다. 


연남동 ‘연트럴파크’ 주변 골목, 망원동 ‘망리단길‘ 등이 바로 그런 경우다. 예전에는 대로변, 눈에 잘 띄는 위치의 공간이 아니고서야 많은 사람들의 접근을 이끌어내기 쉽지 않았다. 


물론 과거에도 대로변 뒤의 골목길이 주목 받기도 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홍대의 주차장 길이다. 하지만 1990년대 초중반 인디클럽이 생긴 뒤 입소문을 통해 유명세를 얻고 상권이 활성화되기까지 10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공유의 속도가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밀레니얼의 상당수는 또한, 아파트 세대이기도 하다. 아파트에서 태어나 아파트 단지를 고향으로 인식하는 첫 세대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사례로 페이스북에 있는 ‘안녕, 둔촌주공아파트’라는 페이지를 꼽을 수 있다. 여기에는 “얼마 후면 재건축으로 사라질 고향의 풍경과 추억을 기록하는 잡지 ‘안녕, 둔촌주공아파트’의 페이지”라는 설명이 담겨 있다.


'안녕, 둔촌주공아파트' 페이스북


1980년대 말부터 분당·일산·평촌 등 수도권 신도시 개발이 본격화 되었고, 이외에도 서울에 대단지 아파트가 수없이 개발되었다. 개발로 인해 옛 도시지형과 완전히 단절된 채 획일적인 디자인의 아파트에서만 살아 온 이들은 옛 도시조직이 남아 있는 골목길에 들어설 때 마치 외국에 간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들에게 골목길은 하나의 관광지다. 특히 과거의 느낌이 남아 있는 가구와 건물 등은 그들에게 하나의 디자인으로 평가 받는다. 이제 1970~80년대의 이미지는 현대에 맞게 세련된 형태로 가공돼 하나의 문화상품이 되었다. 1970년대에 지어진 건물을 현대적 감성에 맞게 개조한 상점들은 그 자체로 밀레니얼들에게 ‘힙’한(새로운 것을 지향하고 개성이 강한) 느낌을 전해준다. 


코엑스몰과 같은 ‘몰‘에는 바로 이 요소가 빠져 있다. 똑같은 상점이라도 옛 도시조직이 만들어내는 꼬불꼬불한 길, 과거의 느낌이 건축 재료의 물성에 그대로 녹아 있는 건물들 안에 들어선 상점이 풍기는 이미지는 대형 쇼핑몰 내부에서 결코 만들어낼 수 없는 요소다. 켜켜히 쌓인 시간은 결코 잡아올 수 없다. 밀레니얼은 아파트에서 살면서 이런 매력을 갈구해 왔고, 수준 높은 교육을 받아 다양성의 아름다움에 눈을 뜬 세대이다.


밀레니얼은 또한 자동차를 이용하기보다 걷는 일이 더 많다. 저성장의 영향으로 밀레니얼들은 걷기 시작했다. 밀레니얼은 자동차에 집착하지 않는다.


<포브스>는 두 가지 측면으로 이들의 이 같은 행태를 분석한다. 우선 이들에게 자동차는 반드시 필요한 상품이 아니다. 대부분 도시에 있는 직장을 다니기 때문에 자동차 통근보다는 대중교통이 더 편리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또 주말에 자동차가 꼭 필요하다면 소카와 같은 차량공유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 더 편리하다고 생각한다. 자동차를 살 여력도 없다. 많은 밀레니얼들은 직업을 쉽게 구하지 못하기도 했거니와 월급도 적어서 여유가 많지 않다. 또한 저성장 탓에 앞으로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란 기대도 하지 않고 있다. 자동차를 억지로 살 필요도 없다. 차량공유 서비스라는 대안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올 상반기 30대가 구매한 승용차는 14만4360대로 지난해 상반기 16만2422대보다 11.1% 줄었다. 30대의 신차 구매 비중은 18.2%로 20% 이상을 기록하던 과거와 비교해 비중이 작아졌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이 발표한 ‘카셰어링 공유경제 관심 속 시장규모 지속적 증가’ 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보면, 차량공유의 국내 시장 규모는 2016년 1000억원에서 2020년 5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됐다.


밀레니얼에게는 자동차를 몰고 찾아가야 하는 초대형 몰보다는 골목길이 친숙하다. 전철역에서 좀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얼마든지 걸어갈 수 있는 튼튼한 다리가 있다. 


걸어다니는 골목길에서는 작은 도시조직이 경쟁력을 발휘한다. 초대형 빌딩이 즐비한 길을 걷는다면 아마 금세 지쳐버릴지 모른다. 20~30m를 걸었는데도 똑같은 모양의 건물이 내 옆에 이어져 있다면 어떨까? 


아파트 단지 담장 옆 보도를 걷는 느낌도 아마 이럴 것이다. 과거의 도시조직이 살아 있는 필지들은 매우 작다. 3~4m 정도 너비의 상점이 끊임없이 이어지다 보니 걷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지겨워 질 만 하면 새로운 상점이 등장하고, 또 피곤해지려 하면 또 다른 디자인의 건물이 등장하는 식이다.

    

베이비붐 세대의 분투

1946~65년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는 개발과 성장의 시대를 살아왔다. ‘58년 개띠’로 상징적으로 표현되는 이들은 숫자도 많아 경쟁이 치열했다. 


베이비붐이란 뜻 자체가 출생률이 다른 시기에 비해 현저하게 상승하는 것을 말한다. <중앙일보>는 “당시 만 2세가 된 58년생이 101만3427명으로 조사되었다. 57년, 56년생이 각각 90만 명 정도였다. 전후 학교를 비롯한 사회자원이 부족한데 인구가 갑자기 한 해 만에 10만 명이 늘어나면 이들의 삶은 특별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조선일보>는 “일련번호 109번을 받은 친구도 있었고 2인용 책상에 셋이 앉았다"고 표현하며, 입시전쟁과 경쟁이 치열한 세대였다는 설명을 덧붙인다.


이들은 개발시대, 성장의 시대 속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며 성공을 일궈온 세대다. 노력하면 성공하는 공식이 통하던 때다 보니, 어떻게든 남들보다 나아 지려고 애썼다. 이 거친 세대가 수 년 전부터 은퇴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은퇴 이후 제2의 삶에 대해 특히나 관심이 많으며, 자연스럽게 부동산에 눈을 돌리고 있다. 이들은 생애주기 내내 부동산의 힘을 경험해왔다.


부동산은 이들에게 하나의 신화였다. 박해천 동양대 교수가 쓴 <아파트 게임>은 이 점을 파고든다. 그는 박완서의 소설 <서울 사람들>의 주인공 혜진의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인용한다. “1년 만에 분양가의 배가 된 집을 팔아 새로 지은 걸 분양가로 살 경우 40평도 넘는 걸 살 수 있다.”


혜진이 채택한 이 논리는 2010년대 중반에 조금 다른 형태로 부활한다. 마침, 은퇴에 접어든 이들이 “내가 가진 가장 큰 자산을 엉덩이에 깔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짙어지고 있던 터였다. 


이들은 건물에 투자해 임대료를 뽑아내는 방식, 소비재로만 쓰던 집을 매달 돈이 나오는 생산재로 바꾸는 방법을 착안하기 시작했다. 꼬마빌딩을 구입해 건물주가 되는 방식이다. 물론 이것이 쉽지는 않다. 이들은 “현직에 있을 때 자녀들의 교육비 지출이 적지 않아 모아 둔 자금에 여유가 없었다.”(위 인용과 같은 <중앙일보>)


따라서 건물을 싸게 사지 않으면 이 시장에 진입할 수 없고, 건물을 싸게 사려면 어느 곳에 사람과 자본이 몰리는지, 곧 모이게 될지를 알아야 했다. 그 이유는 이미 상권이 형성된 뒤에는 집값이 너무 비싸 구매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자본이 몰리는 곳은 강남의 동남쪽이다. 판교에 수많은 기업들이 들어가며 자본이 집중되었고, 송파에 제2롯데월드 타워가 들어섰다. 이어 삼성역 옆에는 현대차의 초고층빌딩이 또 다시 올라갈 것이다. 이 세 요소만 따져봐도, 강남의 동남쪽에 얼마나 많은 자본이 투입되는지 알 수 있다. 자본이 투자되는 곳에는 사람이 몰리고, 땅값이 상승한다. 이에 따라 또 다른 자본이 투입되고, 또 다시 땅값이 상승하는 피드백 효과가 이어진다. 


하지만 강남은 특별한 사람 이외에는 자본을 투입시키기 어렵다. 너무 비싸기 때문이다. 


그럼 이들이 찾은 대안은 어디였을까.


바로 강북의 골목길이다. 대표적으로 서울의 홍대 주변은 공항철도 개통 이후 수요가 꾸준히 늘고, 상권 역시 계속해서 확장되고 있는 지역이다. 그 중 집값이 낮은 곳을 찾아보면 답이 나왔다. 


서교동, 상수동, 연남동, 망원동, 성산동 등이 눈에 들어온다. 이런 곳의 지가는 상권으로 개발되기 전과 후가 현저히 차이가 난다. 여기에 투자한 뒤 상권이 들어올 수 있도록 적절히 리모델링을 벌이면, ‘개척자 상인’들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내가 쓴 <도시의 재구성>을 보면, 이 사례를 풍부하게 볼 수 있다. 일례로 연남동의 연이어 붙어 있는 두 건물의 등기부등본 실거래가를 보면, 2014년 10월 각각 6억2000만원, 5억1000만원이었지만, 2015년에는 각각 9억2000만원, 5억8500만원으로 1년 만에 총 3억7500만원의 차익이 나타난다. 이 1년 사이에 홍대 상권은 이곳까지 확장되었다. 


밀레니얼과 베이비붐의 만남

두 세대가 만나는 곳은 이른바 ‘핫 플레이스‘가 되었다.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에 빨대를 꼽아 기생한다는 비판도 있지만, 골목길이라는 새로운 상품이 만들어졌다는 긍정적인 시각도 분명히 존재한다. 나는 이 두 세대가 충돌한 이 지점이 바로 새로운 트렌드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여기서 미래를 본다. 동네 고유의 매력을 경험하기 위해 여행하듯 골목길을 탐방하는 젊은이들의 등장, 그리고 주거지를 상업화시켜 임대료를 뽑아내려는 기성세대의 대응은 주거와 상업의 혼합을 불러일으켰다. 이것은 하나의 현상이다. 세계적으로 주거와 상업은 혼재되고 있다. 걷는 사람들, 리무트 워크의 가능성 등은 재택근무의 확산으로 이어지고, 저성장으로 인해 건물을 생산재로 바꾸려는 노력이 늘어남에 따라 공유가 일상화된다. 


이에 따라 주거지에서 걸어 다닐 수 있는 범위 안에 카페와 사무실 같은 같은 기능이 혼입되는 것이 더욱 확대될 것이다. 이것은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잡아 우리에게 새로운 도시를 만드는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 충격은 생각보다 적을지도 모른다. 


전통적인 가족형태가 해체된 뒤, 청년 중심의 1인가구가 그 혼재된 도시를 즐기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밀레니얼과 베이비붐은 이렇게 도시를 재구성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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