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도시재생 사업, 무엇이 어떻게 다른가
최근 도시재생 뉴딜사업에 대한 관심이 높다. 5년 간 50조원이 투입된다는 이유도 있지만, 저성장으로 기존의 아파트 개발 방식이 중단된 이후 노후한 주거지를 되살리는 해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 때문이기도 하다.
지금까지는 노후한 단독주택이 즐비한 곳의 생활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불도저로 밀어 고층 아파트를 짓는 방식을 취해왔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용적률을 대폭 늘리며 같은 크기의 공간에 들어올 수 있는 입주자의 수 역시 크게 증가할 수 있었고, 외부에서 입주하는 사람들이 가져오는 분양금이 개발비용을 상회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성장에 더해 과거처럼 서울에 인구가 집중적으로 유입되는 상황도 아니다 보니 이런 논법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게 되었다.
그렇다면 어떤 해법을 쓸 수 있을까. 정부는 수년 전부터 ‘도시재생'을 언급해왔으며, 2016년 1월에는 ‘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도시재생법)’이 시행되었다. 여기서 말하는 도시재생이란 “인구의 감소, 산업구조의 변화, 도시의 무분별한 확장, 주거환경의 노후화 등으로 쇠퇴하는 도시를 지역역량의 강화, 새로운 기능의 도입·창출 및 지역자원의 활용을 통하여 경제적·사회적·물리적·환경적으로 활성화시키는 것"이었다. 이어 서울시 등 각 지자체 별로 지원 조례를 만들어 나름의 대책을 만들어 오던 상황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이 같은 도시재생이라는 화두를 시대적으로 꼭 필요한 사업으로 보고 대표적인 선거 공약으로 내걸었고, 당선되었다. 당선 이후 정부가 정한 100대 국정과제 중 79번 과제(도시경쟁력 강화 및 삶의 질 개선을 위한 도시재생뉴딜 추진)로 도시재생 사업이 선정되며 시민들의 관심은 더욱 높아졌다. 특히 과연 아파트 개발의 문턱에서 좌절한 시민들이 도시재생이라는 새로운 방식을 통해 만족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이어 지난 9월15일 이 사업의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가 낸 “도시재생 뉴딜, 공적임대 공급·스타트업 육성 등 특화사업에 중점”[1]이라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이 보도자료는 문재인 정부가 구상하는 도시재생의 윤곽을 그려내고 있다.
이 글에서는 우선 문재인 정부가 구상하는 도시재생 사업의 대체적인 윤곽을 살펴보고, 특히 그 중에서도 주거지 재생과 관련한 정책에 대해 분석해 보려 한다.
문재인 정부 도시재생 뉴딜의 원칙
보도자료에 따르면, 정부는 ‘도시재생 뉴딜'에 대해 지금까지 아파트 개발 과정에서 주로 사용되었던 “대규모 철거 및 정비방식이 아니라 ‘소규모 생활밀착형 사업’을 중심으로 추진"하는 동시에, “지역주민이 주도하여 사업을 이끌어나감으로써 지역 여건에 맞는 맞춤형 도시재생으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도시재생의 정의와 관련해 ‘사업 규모'에 대해 정의하는 한편, ‘주민 주도형', ‘지역 맞춤형' 사업으로서의 성격을 규정한 것이다. 지난 7월4일 출범한 도시재생 뉴딜 정책을 전담하는 실무기구인 ‘도시재생사업기획단'의 김이탁 단장은 “지역 역량, 주민 역량이 중요하기 때문에 커뮤니티를 더 활성화시켜 도시재생사업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2]고 강조하기도 했다.
여기에 조금만 더 설명을 보태보자.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운영 중인 ‘도시재생 종합정보체계’ 웹사이트[3]를 보면, 정부의 도시재생 정책 추진 방향은 쇠퇴지역 주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도시경제 활성화 등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하며, 문화적 경관적 특징을 잘 살리는 동시에 주민 참여형 도시계획을 정착시키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다시 말해 정부가 정의하는 도시재생이란 쇠퇴 도시를 대상으로 지역 주민 주도로, 지역 특성에 맞게 소규모 생활밀착형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주체와 규모, 지역성 등과 같은 원칙을 제시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이 원칙에 따라 정부는 부동산 시장 과열을 초래하지 않는 지역을 대상으로 올해는 시범사업 수준의 신규사업을 70곳 정도 선정하되, 선정권한을 대폭 지자체에 위임해 45곳 정도에 대해서는 광역 지자체가 선정하도록 했다. 광역 지자체는 지역 주민의 생활에 밀접한 주거지 재생사업 등 소규모사업(약 15만 제곱미터 이하의 우리동네살리기, 주거지지원형, 일반근린형)을 선정하게 된다.
이외에 15곳 정도는 중·대규모 사업(약 20만~50만 제곱미터의 중심시가지, 경제기반형)은 중앙정부가 선정해 지자체가 운영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고, 10곳 정도는 공적임대주택, 공공임대상가 공급 등 공공기관 제안방식으로 진행할 수 있도록 남겨뒀다.
선정된 지역에는 재원이 투입된다. 정부는 향후 5년 간 연평균 재정 2조원, 주택도시기금 4조9000억원의 공적재원 뿐만 아니라, 연간 3조원 이상의 공기업 투자를 유도해 도시재생 지역에 집중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전 정부에서 이야기했던 도시재생은 국토교통부 소관의 국비만 지원하는 방식이었던 반면, 도시재생 뉴딜사업은 국비지원을 연평균 1500억원에서 8000억원으로 확대하는 한편, 지방비(연평균 5000억원)와 각 부처 사업을 연계(연평균 7000억원)해 도시재생 효과를 극대화할 예정이다. 특히 도시재생이 필요한 낙후지역의 경우 지방재정이 열악한 현실을 감안해 국비지원 비율을 확대해 기존에는 국비지원비율이 전국 어디서나 50%였던 것을 바꿔 광역·특별시는 기존 그대로 50%, 기타 지방은 60% 지원하게 된다.
방법론: 특색 있는 사업 중심의 생활밀착형 재개발
그렇다면 이런 도시재생의 원칙을 통해 쓸 수 있는 방법론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이와 관련해 정부는 정답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유형화된 하나의 형태를 제시할 경우 각 지자체나 작은 지역 주민 주도로 한다는 원칙과 충돌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한국 사회는 도시재생이라는 개발 이후의 시대를 처음 맞닥뜨린 만큼 아직 하나의 표준을 확립하지 못했다. 이런 한계 탓에 특정 유형을 제시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다만, 이 같은 모호성 때문에 사업 주체가 어려움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 정부는 도시재생 지원 구역 선정시 지역별 “특색 있는 사업”을 발굴해 차별화된 사업으로 발전시킨다는 점을 명시하며 57개의 사업모델을 사례로 제시하기는 했다. 역사·문화 복원, 차별화된 경관·건축, 역세권 청년주택, 공공임대상가, 친환경 신재생에너지 사업, 찾아가는 복지, 소형주택 에너지성능 강화, 청년 창업 등이 그것이다. 물론 국토부 담당자는 이에 대해 “이것은 단지 예시일 뿐, 따라가야 할 정답이 아니다"라는 점을 강조했다.
예컨대 정부가 5가지 유형 중 대표적인 주거지 재생 방식 중 하나로 꼽은 우리 동네 살리기 유형을 살펴보자. 국토부는 지난 7월27일 낸 보도자료에서 “주민들이 재생효과를 빠르게 느낄 수 있도록 전체 사업의 절반 이상을 동네 단위에서 주택을 개량하고, 소규모 생활편의시 설을 설치해주는 ‘우리 동네 살리기 사업’ 방식으로 추진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방식은 위의 그림처럼 거점 개발 방식을 핵심 내용으로 담고 있다. 공공참여형 가로주택 정비사업을 통해 일부 지역은 ‘소규모 재개발'을 추진하는 동시에 공공임대주택을 확보하고, 도로 등의 기반시설을 확충하는 것이 골자다. 이를 거점으로 삼아 이 지역의 나머지 공간은 집주인들이 개별로 리모델링을 시행하도록 유도하는 식으로 주거지 개선이 이뤄지는 모델이다.
여기서 핵심 거점시설로 거론된 공공참여형 가로주택 정비사업은 9월14일 국토부가 낸 보도자료에서 ‘주거복지형 공공시설 복합지원 가로주택정비사업 모델'로 구체화 되었다. 가로주택정비사업이란 기존 저층주거지의 도시 조직과 가로망은 유지하면서 노후불량주거지에 최고 7층까지 공동주택을 신축할 수 있는 소규모 정비사업[4]이다. 부지면적은 1만 제곱미터 미만의 대상지에 있는 노후 단독·다세대주택 20가구 이상을 묶어 저층 아파트 등을 짓는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어 ‘소규모 재개발'이라고도 부른다. 기존의 재개발과 달리 별도의 정비구역 지정 절차가 없어 약 3년이면 사업이 완료된다. 재개발·재건축이 통상 7~8년 소요된다는 것과 비교해보면 상당히 빨리 진행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정부가 제시한 주거복지형 공공시설 복합지원 가로주택정비사업은 기존의 가로주택정비사업과 달리 공기업이 일반분양 물량을 매입한다는 점이 다르다. 매입한 물량은 공공임대주택으로 공급된다. 이 사업의 시행 조건은 전체 연면적의 20%를 공공임대주택으로 공급해야만 한다는 점이다.
20% 공공임대주택 확보 조건을 정부와 약속하게 되면 법적 상한까지 용적률이 완화되는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다. 또 주택도시기금을 통해 초기사업비와 건설비를 저리로 융자 받는 혜택도 얻게 된다. LH 등 공기업은 일반분양분 중 20%를 공공임대주택 용도로 매입하되, 나머지 일반분양분 중에서도 잔여물량이 생길 경우 매입해 역시 공공임대주택으로 활용하게 된다. 아울러 정부는 건물 하층부의 공용시설을 활용해 마을주차장과 마을도서관, 어린이집 등 지역주민이 원하는 공간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다시 말해 정부는 기존의 낡은 주택 소유자들에게 용적률 인센티브를 줘 7층 규모의 소규모 아파트 단지로 개선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한편, 개발 과정에서 만들어지게 될 마을주차장이나 도서관 등의 공동이용시설 건설을 정부 지원을 더해 충분히 확보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의미다. 아울러 공기업이 일반분양 물량을 매입하도록 해 공공임대주택도 공급하겠다는 계획이다.
주민참여, 역사와 경관 보호에 장점 있지만...
정부가 정한 도시재생 원칙은 그동안 이뤄져 온 개발시대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된다. 기존의 대규모 철거 개발방식은 원래 뻗어있던 가로망을 완전히 사라지게 만들었고 역사와 기억을 완전히 지워버렸다. 기억과 추억, 역사가 하나의 상품으로 떠오르는 시대로 접어든 지금, 이 같은 개발방식은 윤리적 문제를 야기시키기 이전에 오히려 경제적으로도 타당하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도시재생 뉴딜은 바로 이 지점을 건드리고 있는 것이다.
최초의 근대도시계획 유산이자, 19세기 말 대한제국 시기의 도시경관을 그대로 보여주는 소공동을 호텔로 개발하겠다는 계획을 한 기업이 내놓는다거나 그런 계획이 심의를 통과하는 등의 풍경[5]은 최근에도 버젓이 이뤄지고 있는 일이다.
아울러 주민들 개인의 생각을 개발과정에 도입하려 애쓴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주민들의 의사를 반영한 도시계획을 만들어 나가겠다는 것이다. 그 동안 개발은 정부나 기업의 ‘기획' 아래 개별 주민의 의사와는 관계 없이 진행되어 오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전체주의적인 방식에 따라 소수는 내쫓기고 일부 부유층이 개발이익을 전유하는 결과로 이어지는 경향이 짙었다.
이와 관련해 국토부는 “주민들이 원하는 마을도서관, 주차장 등 소규모 생활편의시설을 설치하되, 지역이 주도하고 정부는 적극 지원하는 방식으로 추진하겠다"[6]고 밝혔다.
정부가 주목하는 개발방식 중 하나인 가로주택정비사업은 2012년에 처음 도입되었으나 아직까지 완공된 사례는 없다. 이와 관련해 <조선일보>는 서울 강서구 등촌동 365 일대에서 “5~6층 건물이 대부분인데 가로주택정비사업으로는 1층밖에 더 못 올린다. 몇 천 만원 들여 7층 짜리 소규모 아파트에 들어갈 바에 어렵더라도 15층 대단지를 짓는 게 낫지 않겠나"(국토부는 2014년 2종 일반주거 지역에서 가로주택정비사업을 추진할 때 층수 제한을 기존 7층에서 15층으로 대폭 완화했으나, 서울시는 스카이라인을 훼손하는 나홀로 아파트 난립을 막기 위해 7층으로 제동을 걸었음)[7]라는 내용이 담긴 주민들의 지적을 소개하기도 했다. 이런 등등의 지적 때문에 지금까지 가로주택정비사업은 뚜렷한 실적을 남기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새로운 공공참여형 가로주택정비사업 모델은 용적률 인센티브 효과가 있어 달라질 수 있지만, 주민들로부터 인식이 좋지 않은 공공임대주택을 대폭 늘려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과연 이 사업을 선택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제기된다.
정부는 또 “사업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둥지내몰림 현상 및 지역 부동산 시장 불안 등에 대한 대책도 중점적으로 평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8·2 부동산 대책 이후 설정한 투기지역과 투기과열지구에는 도시재생 대상지에서 제외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도시의 생활여건이 개선되면 집값이 오르고 임대료 상승 역시 동반돼 정작 서민층이 살 공간이 사라져 버릴 것이란 우려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이는 도시재생을 하지 말자는 것과 마찬가지로 보인다. 공공참여형 가로주택정비사업 없이 도서관이나 체육시설 등과 같은 거점시설을 짓거나 도로 등을 개선해 생활여건을 높이는 도시재생 방식을 쓴다고 가정하자. 가로주택정비사업 모델이 성공적으로 도입돼 거점시설이 확보된다고 하더라도 결국 대다수 낡은 주택들은 자구책을 찾을 수밖에 없다.
주변 생활여건이 좋아진다고 자신의 집에 돈을 투자해 실질적 주거여건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동반될 수 있을까? 거점시설의 도입은 자연스럽게 외부인의 투자를 이끈다. 투자 여력이 있는 외부인이 유입되면서 기존의 낡은 집을 개보수하는 일이 벌어지고 주거 여건 개선이 이뤄지게 되는 것이다. 건축물 마다 이런 일이 벌어지면서 도시 전체가 바뀌게 되는 셈이다. 도서관과 같은 생활필수시설을 거점시설로 만들어 도시재생의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투자여력이 있는 외부인의 유입이 필수적이고, 그에 따른 기존 주민의 내몰림 현상(젠트리피케이션)은 필연적으로 벌어질 수밖에 없다.
이것을 원치 않는다면 거점시설 투자 방식의 도시재생을 하지 말자는 것과 마찬가지다. 거점시설 투자 방식의 도시재생을 하면서도 젠트리피케이션이 유발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반대로 실질적인 주거여건 개선이 이뤄지지 않고 도시재생 역시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투자 여력이 없는 기존의 주민이 주변에 도서관이 생겼다고, 혹은 도로가 개선되었다고 저금해뒀던 돈을 꺼내거나 대출을 해서 자신의 집을 개보수할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설령 집 안 내부를 바꾼다고 한들, 도시 경관이나 외관에 미치는 파급효과는 전혀 나타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많은 지자체들이 도시재생의 가장 손쉬운 수단인 거점시설 투자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정부는 모순된 정책을 내놓고 있는 셈이다.
임차인 시대의 도래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앞서 언급했듯 실질적 주거여건 및 도시경관이 개선되기 위해서는 외부 투자자의 유입은 필수적이다. 외부 투자자 유입은 지가 상승을 동반한다. 지가 상승 여력이 있어야 외부 투자자가 들어오고, 외부 투자자가 몰려오면 지가 역시 자연스레 더욱 상승하게 된다. 사실 아파트 개발은 바로 이런 논법에 의해 굴러왔다. 돈을 내고 아파트를 분양 받아 들어오고자 하는 외부인의 존재가 개발 비용을 충당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정부의 원칙대로 소규모, 지역주민 주도의 도시재생에서는 이런 선순환이 불가능할까. 여기에 더해 지역 주민이 내쫓기지도 않는 방식은 없을까.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최근 발간한 책 <도시의 재구성>[8]에 소개한 쿠움파트너스의 김종석 대표의 작업이 하나의 힌트다. 김 대표는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을 완전히 다른 곳으로 바꿨다. 기존의 구옥을 대상으로 단순 리모델링을 넘어 ‘재생건축’을 시행했다. 옛 모습을 최대한 살리면서도 건축적 장치를 더해 다른 건물로 바꿨고, 그 과정에서 내부 구조 역시 새로 끌고 올 수요에 맞게 ‘리프로그래밍’했다.
이 모델은 상업형 도시재생 모델이라는 점에서 주거재생과는 관련이 없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주장하고 싶다. 비슷한 콘셉트를 그대로 주거지형 모델에도 도입할 수 있다. 물론 그 동네에서 통하는 수요를 찾아내야 한다는 부담은 있다.
낡은 가옥을 가지고 있는 건물주는 자신의 토지와 건물을 투자하고, 외부 투자자를 모집해 재생건축으로 건물을 리프로그래밍한다. 아울러 그 동네에서 수요가 많은 상품을 투입한다. 예컨대 요즘 큰 인기를 끌고 있는 1인 가구용 셰어링 하우스가 될 수도 있고, 가로변에 접한 건물공간을 근린생활공간으로 바꿔 수익형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물론 핵심은 동네에서 필요한 수요를 정확히 파악해 수익성을 충분히 나와야 한다는 점이다. 이 같은 공간의 ‘리프로그래밍’을 통해 얻는 수익은 외부 투자자에게 회수될 수 있으며, 건물주는 같은 건물에서 계속 거주할 수 있는 동시에 개선된 건물 안에서, 또 더 높아진 지가를 통해 만족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건물을 리프로그래밍하는 기획자는 건물주 및 외부 투자자와 10년 정도의 장기 임대계약을 체결할 필요가 있으며, 정부가 이 같은 외부 투자자 역할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 여겨진다. 이런 방식을 쓸 경우 정부의 재정이 투입되더라도 얼마든지 회수 가능해 저성장 시대 재정 악화를 막을 수 있다.
지금까지 개발은 민간 자본을 이용하는 방식이었다. 민간 자본을 이용해 건축물을 개선하는 동시에 용적률 인센티브를 주는 반대급부로 공원 등과 같은 공공시설을 기부체납하도록 하며 기반시설을 늘려왔다. 당시 이런 식으로 도시개발을 해왔던 이유는 “돈이 없어서”였다. 그렇다면 지금은 돈이 많은 상황인가? 오히려 인구가 줄어들고, 재정은 점점 악화하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건물을 빌려 스타트업 등에게 사무실을 빌려주는 위워크 등의 재임대 사업자가 떠오르듯 이제는 건물을 소유한 이보다는 건물을 운영하는 ‘임차인'이 중요해진 시대가 되었다. 도시재생의 시대를 맞아 우리는 동네의 특성을 정확히 파악해 수요를 끌어올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임차인을 키워야 할 때가 됐다. 똑똑한 재임대 사업자가 늘어날 수록 저성장과 부족한 재정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은 점점 높아질 것이다.
수요의 흐름을 찾아라
도시재생이란 원래의 용도가 다한 동네에서 새로운 용도를 찾아내고, 그 용도에 맞게 건물과 동네를 새롭게 디자인하는 일이다. 새로운 용도를 찾아내는 순간, 경제적 타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최근 셰어하우스가 인기를 끄는 현상은 이미 그에 대한 수요가 형성되어 있었음을 말해준다. 청년들은 높은 임대료를 부담할 수 있는 경제적 여력은 부족하지만 널찍한 공유공간을 즐기며 심리적 만족감을 느끼고 싶어한다. 이런 거대한 수요가 존재하고 있었지만, 공급은 턱없이 부족했던 것이다.
청년들의 수요가 서울 전체에 적용되는 거대한 흐름을 설명한다면, 동네에서는 또 다른 수요가 숨어 있을 수도 있다. 이를 찾아내는 것이 바로 지역 전문가들의 역할이다. 골목길 마다 가지고 있는 가능성을 찾아내는 일은 그 지역 전문가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비어 있는 건물이든 무너져 가는 건물이든 새로운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공급의 형태로 변하기만 한다면, 다시 자본이 투입될 여지가 생기고 그 과정에서 재생이 이뤄지게 된다. 자본이 투입돼 그 동네 특유의 수요에 적합한 공간 형태로 건물이 개보수되고, 그런 식으로 도시 전체가 바뀌어야 도시재생이 성공하게 된다.
우리는 그 동네에만 존재하는 수요를 발견할 수 있는 지역 전문가를 과연 가지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그들을 키워낼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에 따라 앞으로 진행될 도시재생의 성공 여부가 판가름 날 것이다.
[1] 국토교통부 보도자료, 2017.09.14, 도시재생 뉴딜, 공적임대 공급·스타트업 육성 등 특화사업에 중점
[2] 비즈니스워치, 2017.10.01, 50조 도시재생사업 핵심은 커뮤니티 www.bizwatch.co.kr/pages/view.php?uid=33769
[3] 도시재생 종합정보체계 www.city.go.kr
[4] 서울시, 가로주택정비사업 길라잡이 http://citybuild.seoul.go.kr/archives/34438?tr_code=m_short
[5] 한겨레, 2015.10.2,0대관정 주변 근대건축물 철거 위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area/713589.html#csidx67aacfe188d3b8d97989fa90b426e40
[6] 국토교통부 보도자료, 2017.07.28, 도시재생 뉴딜사업, 지자체 등 의견수렴 착수
[7] 조선일보, 2017.10.02, "동네 망친다" 외면당한 가로주택정비사업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0/02/2017100201420.html
[8] 음성원, 2017, 도시의 재구성, 이데아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2109299
*이 글은 서울연구원이 발간하는 <세계와 도시> 20호 (2017년 겨울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