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경제와 도시 (2)
공유경제란 앞에서 설명했듯, ‘N분의 1 경제’다. 시장 참여자들이 각자 자신의 투자금을 N분의 1씩 모아 혼자서는 얻을 수 있는 서비스를 얻는 것이 바로 공유경제의 본질이다. 호텔이나, 우편서비스, 목욕탕 등이 전부 이와 같은 특징을 갖는다.
사실 이런 특징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모든 자본주의 시스템이 비슷한 측면을 가지고 있다. 특히 성장의 시대 이전, 빈곤의 시대의 특징을 찾아보면 더욱 이해가 쉽다. 저성장 이전의 성장하던 시기, 그리고 그 이전에 우리 삶의 모습은 어떠했나? 그것은 현재 등장하는 공유경제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이다. 당시 우리의 자원 이용방식에 현대 등장하는 공유경제에 대한 힌트가 있다.
영국의 저명한 사회학자 리처드 세넷이 1970년에 쓴 책 <무질서의 효용>를 보면, 개발시대 이전과 이후의 모습을 대비하며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세넷이 책을 쓴 시기는 1960~70년대는 영국 역시 빈곤에서 벗어나, ‘부’가 쌓이던 시대였다. 그는 이 시대가 빚어내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책에서 내비쳤다. 빈곤의 시대를 지나 부를 쌓은 도시인들이 서로를 경제적 지위에 따라 구분하고, 인종과 민족에 따라 지리적인 구분을 추구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또 주택과 상점이 결합되어 있는 모습에 대해 사람들이 "눈에 거슬린다"며 분리하기 시작했다고도 설명했다.
여러 사람들이 섞여 살며 다양한 삶을 영위하던 시대는 점차 개인화, 파편화되기 시작했다. 돈이 늘어나면 개개인이 자신의 프라이버시를 우선시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돈을 벌어 내 집을 사고, 내 차를 사며, 내 자녀의 교육에 더욱 신경을 쓴다. 먹고 사는 일을 넘어선 이들은 개발과 성장의 시대를 맞아 서서히 파편화 되었다. 개개인의 ‘구분짓기'는 여기에서 비롯됐다.
구분짓기는 개개인이 서로를 상대로 구분하는 면도 강했지만, 자신과 동류의 무리들과는 뭉치는 길을 택한다. 개발시대를 거치면서 세넷이 언급한 ‘정체성'은 지역 마다 강화되어 왔다. 한국 역시 다르지 않았다. 아파트 단지는 그 삼엄하게 둘러쳐 있는 드넓은 담장으로 외부와의 단절을 꾀했다. 아파트 담장 바깥 쪽은 빈곤의 상징이다. 그들은 빈곤을 넘어서 개발을 이뤘고, 아파트라는 성을 쌓아 개발되기 이전의, 과거의 아픔으로부터 멀어졌다. 담장은 필수였다.
강남과 같은 지역은 “일관성을 향한 욕망”이 결집하는 공간으로서 정체성을 갖게 되면서 도시 지역을 경제수준에 따라 지리적으로 구분할 수 있게 됐다. 옛 도시지형 구조 안에서 작은 집들이 흐르듯 자리 잡아 주거와 상업(점포) 등이 결합된 채 하나의 생활권을 형성하였던 과거와 다르다.
사람들은 개발되지 않은 지역과 담장으로 분리하고, 개개인들 끼리도 철문을 달아 프라이버시를 강조해왔다. 이것은 성장하는 시기의 당연한 모습일지도 모른다. 프라이버시를 추구할 만큼 충분한 돈이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도시 ‘스프롤 현상’이 바로 이런 모습이라 할 수 있다. 도심지 직장에서 일을 한 뒤, 내 차를 타고 집으로 향한다. 교외에 마당이 있는 집에서 단란한 가족을 꾸리는 모습. 성장하는 시대에는 프라이버시가 더 중요하다.
“금전적 자원이 충분한 공동체는 경계와 내부 구성을 실질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 도시의 오래된 구역이 복잡한 것은 다름 아니라 어느 한 집단도 자신을 보호할 만큼의 경제적 자원이 없기 때문이다. 브라운스톤 건물에 사는 사람들은 한 집에 가족 모두가 살면서 한 가족 집단 외부의 영향력으로부터 주택을 보호할 만한 돈이 없었다. 이런 주거 생활은 상업으로부터도 보호될 수 없었다. 사람들은 도시의 빌딩들 1층에 자리잡은 시끄러운 술집과 상점에서 벗어나기를 원했겠지만 그럴 수 없었다. 다른 데로 이사를 갈 만한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역사적으로 보면, 도시에서 결핍의 경제는 공동체 문제에서의 일관성이라는 신화에 도전했다. 사람들은 자신의 욕망을 실현할 만한 돈이 없었다.”
사람들은 빈곤의 시대에 욕망을 억눌렀으나, 성장하던 시기에는 “욕망을 실현할 만한 돈"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프라이버시라는 욕망을 향해 달려갔다.
하지만 이 같은 ‘구분 짓기'가 최근 들어 허물어지고 있다. 2000년대 후반 조용히 찾아온 저성장시대에 의해서다. 부유한 도시는 다시 빈곤의 시대로 회귀한다. 그리고 그것은 세넷이 책에서 설명하는, 이른바 ‘빈곤의 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미국 도시의 흑인 게토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종종 진공청소기 같은 부족한 기구나 심지어 식품 같은 생필품을 공유하는 일에 관해 언급한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이와 같은 공동체의 공유는 많은 다양한 도시 구역의 특징이었으며, 사람들은 공유를 통해 하나로 결합하고 직접 사회적인 접촉을 할 수밖에 없었다. 서로 공유하는 편의와 기술, 소유물 등은 구체적인 공동체 활동을 위한 구심점 역할을 했다.”
세넷은 이 공동체적 양태가 풍요의 시대에 접어들며 사라지고 말았다고 지적한다.
“이런 공유의 필요성이 사라진 것이야말로 풍요의 증거이다. 이제 가정마다 진공청소기 뿐만 아니라 냄비와 프라이팬 세트, 자동차, 수도, 전열기 등이 있다. 그리하여 이제 풍요의 공동체에서는 사회적인 상호작용의 필요성, 즉 공유의 필요성이 원동력이 되지 못한다. 사람들은 각자의 독립적이고 자급적인 가정으로 들어가 버린다.결국 공동체의 감정, 즉 어떤 식으로든 관계를 맺고 결합되어 있다는 감정이 과거에 공동체 경험을 줬던 지역으로부터 단절된다.”
이제 이 말을 뒤집어 보라. 바로 최근 최첨단을 달리고 있는 공유경제의 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세넷이 기술한 빈곤의 모습은 공유경제의 시대와 일맥상통한다. 프라이버시가 더 좋지만, 당장 집에 깔려 있는 돈을 생각하면 에어비앤비와 같은 숙박공유 서비스를 활용하려는 동기가 생길 수밖에 없다. 당연히 자동차를 혼자 깨끗하게 이용하고 싶겠지만 하루종일 주차장 안에서 쉬고 있는 차량을 생각하면 본전 생각이 날 수밖에 없다. 당연히 나 혼자 넓은 집에서 살면 더 편리할 지 모르겠지만 주거비 지출을 줄여야 하겠기에 공유주택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확산되고 있다.
물론 과거 빈곤의 시대와는 다른 것이 있다. 바로 문화다. 이미 국민소득 3만 달러 가까이에 있는 한국이나 다른 선진국들의 사람들은 개발시대 때 열심히 드높였던 문화적 자산을 토대로, 어찌보면 안타까울 수도 있는 이 같은 상황을 새로운 문화로 덮어 씌우며 트렌드로 만들어냈다. 세넷이 책 제목에서 말했듯 ‘무질서'가 가진 효용을 극대화하는 문화다. 공동체의 부활, 자원을 공유하면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다른 사람들과의 교류 등이 확대되기 시작했다. 단순한 당위론으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상품으로 시장에서 소비된다. 사람들이 굳이 에어비앤비를 이용해 여행을 떠나려는 이유는 단지 가격이 싸기 때문이 아니라 숙소를 운영하는 에어비앤비 호스트와의 교류와 거기서 얻는 따뜻함을 갈구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공유오피스를 이용하려 하는 이유 역시 마찬가지다. 단지 값이 싸서라기보다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다른 회사 직원들과 다양한 교류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최근 등장하는 공유경제의 특징은 스마트폰에서 나온다. 수많은 개인이 손에 들고 있는 스마트폰은 과거와 같은 공유경제의 모습을 완전히 다른 모습인 것처럼 모습을 바꿔놨다. 스마트폰을 바탕으로 한 플랫폼은 시장에 참여할 수 있는 무수히 많은 개인을 등장시켰고, 실시간으로 참여할 수 있게 도와줬다. 아룬 순다라라잔 뉴욕대 교수도 비슷하게 설명한다.
“완전히 ‘새로운' 활동처럼 보였던 것이 결국은 과거에 존재했던 활동과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고 한다면 새로운 것을 발견한 듯 호들갑을 떨며 흥분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하지만 공유경제에는 그렇게 흥분(?)할 이유가 있다. 첫 번째 이유는 ‘방식의 새로움'에서 찾을 수 있다.”
이제 스마트폰만 있다면, 개인도 무대에 올라설 수 있다. 자본력이 충분한 대기업이 아니더라도 자원을 한 곳에 모아 배분할 수 있는 방법을 얻을 수 있게 됐다. 쉽게 말해 힐튼호텔은 여업을 하기 위해 땅이 필요하고, 건물을 지어야 했으며, 스태프를 고용하고 침대와 각종 가구를 구매해야 했다. 반면 지금은 개인이 스마트폰으로 앱을 만들어 기존에 주택을 가진 사람들을 한 데 모아 소비자들에게 한꺼번에 보여줄 수 있게 되었다.
빈곤의 시대와 저성장의 시대를 동일하게 관통하는 공유경제의 문법은 ‘문화’와 ‘스마트폰’이란 두 단어로 차별성을 갖는다. 이를 토대로 공유경제를 정의해보면 다음과 같다. 공유경제는 (1)기본적으로 N분의 1 경제로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 비용을 조금씩 지불해 시장 참여자들과 자원을 공유하여 서비스를 얻는 방식이다. 여기에 더해 (2)스마트폰을 바탕으로 거래가 이뤄져 개개인이 시장의 주도권을 쥘 기회를 얻을 수 있으며, (3)시장 참여자들의 자존감을 지킬 수 있는 문화적 포장지를 덧씌운 것을 우리는 공유경제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저성장으로 인해 도시는 혼재되고 있다. 성장의 시대에 우리가 서로를 구분짓고, 프라이버시를 강조하던 때와는 상황이 달라졌다. 주거와 상업 등으로 명쾌하게 구분되어 있던 도시는 이제 주택과 사무실, 카페, 음식점, 관광객을 위한 숙소 등이 한 곳에 모이며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내고 있다.
자동차를 소유하지 않고 원격근무(리무트 워크)를 하는 젊은이들은 집 근처를 걸어다니며 도시의 어바니티(Urbanity, 다양성을 가진 도시적 매력)를 즐긴다. 전통적인 도시계획가 입장에서는 매우 혼란스럽고 ‘무질서'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개발시대 당시 과거를 회상하며 우리가 그토록 찾으려 했던 공동체가 부활하고, 그 공동체에 의한 자치가 확산되며, 작은 마을에 기반한 골목상권이 활성화되는 현상으로 이어진다. 이는 과연 전통적 도시계획을 잣대로 이를 “무질서"라 규정하는 것이 맞는지 되묻게 만든다. 빈곤과 성장의 시대를 모두 경험해 본 우리는 이 같은 ‘무질서'를 세련되게 소화할 수 있는 문화적 역량을 갖추게 되었다. 이제 성장의 시대에 만들어 놓은 도시계획 체계를 넘어서, 공유경제가 촉발한 용도혼합의 시대를 맞이해 새로운 도시계획의 철학을 세워야 하는 때가 도래했다.
음성원 도시건축전문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