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중족발 사태를 보며 든 단상
궁중족발 사태를 보면서 한 가지는 꼭 이야기 하고 넘어가고 싶다. 이번 사태와 같은 이른바 젠트리피케이션을 다루기 위해서 는 도시문제를 도시계획과 국가 복지 체계를 연결해 융합적 해법을 내놔야 한다는 점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은 쇠퇴한 동네에 자본이 투입되며 물리적 재생과 함께 인적 구성의 변화 등을 불러오는 현상을 말한다. 이때 변화된 주변 외부환경 탓에 적응하지 못해 밀려나는 개인을 발생시키는 부작용이 동반된다.
주거지로서의 기능이 이미 관광지로 바뀌고, 지역을 찾는 소비자의 양태와 패턴이 이미 과거와 달라지는 경우에 임차인들은 업종을 변경하거나 영업 양태를 바꾸는 등의 적응을 해야 하는 힘든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아니면 다른 업종을 이용해 이 공간을 영위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 공간에 대한 임차 권한을 팔고 나가는 방법(권리금)을 쓰도록 강요받기도 한다.
이 압력에 의한 부작용에는 주거지로서의 기능을 원하지만 주거기능이 소멸되고 근린생활시설 등으로 바뀌어 주거비율이 낮아지는 현상, 건물이 노후해 싸게 살던 세입자가 물리적 환경 개선에 의한 임대료 상승으로 내몰리는 경우도 포함된다.
우리가 이 문제를 '젠트리피케이션'이라 명명하다보니 예전엔 없던 새로운 일 같아 보이고나 문제가 어렵게 느껴지지만, 사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항상 직면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이 모든 케이스는, 달리 보면 자본주의 시스템 내에서 경쟁에서 탈락하는 개인의 문제와도 같다.
우리 사회는 이들, 경쟁에서 밀려난 개인에 대해 복지 시스템을 작동시켜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작동시키는 방법이 바로 복지시스템이다. 그런데 이 시스템은 왜 이 같은 도시문제에 적절한 해법을 주지 않을까.
국가의 복지 시스템은 거시적인 해법만을 내놓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로컬의 디테일을 국가 시스템 안에 모두 녹일 수 없다.
도시에서 발생하는 사회 문제는 지역적 특수성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어떤 때는 도시계획을 통해 특정 기능/용도의 총량을 제어해야 할 때도 있고, 수요와 공급을 면밀히 모니터링해서 부족한 공급을 육성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도 있다. 청년들을 위한 임대주택을 공급하더라도 서울 전체에 몇개의 방을 늘렸다는 식의 총량적 접근보다 지역에 따른 니즈에 걸맞게 작은 지역을 타깃으로 공급조절에 나서야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 로컬의 특수성을 이해하는 지방정부가 그 문제 해결 전면에 나서야 한다는 뜻이다. 부동산을 포함한 도시문제에서 나타나는 부작용은 도시계획과 복지 시스템 등 융합적인 처방을 써야 할 때가 많다.
그러나 여전히 복지시스템은 중앙정부 주도로 이뤄진다. 그래서 구호적 성격의 지방자치가 아니라 실질적인 지방자치가 필요하다.
현재로서는 중앙정부 복지 시스템과 지방정부의 도시계획권한, 구청 단위에서의 미세조정 등의 융합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보인다.
우리 사회가 이제는 “진정한 민주주의는 지방자치”라고 말하는 정도의 구호를 뛰어넘을 때가 되지 않았나. 이 갈증을 의제로 삼는 정당은 왜 없나. (사실 안희정씨가 대통령 후보로서 건재했을 때 이런 디테일을 담은 대안을 제시하길 기대했었지만, 그는 그저 구호만 나열했었기에 매우 아쉬웠던 기억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