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보다 역할로 일하는 법
회사를 오래 다니다 보면
이상한 관계를 한 번쯤은 만나게 된다.
동기나 후배가 먼저 승진을 하는 것은
뭐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내 직속 상사가 나보다 어리거나
연차가 낮을 때는 당황스럽다.
기업 오너의 세대교체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오늘날,
젊은 임원이 대거 임명되고 있다는 기사는
심심찮게 볼 수 있고
내가 일하는 현장에서 실제로 이뤄지고 있다.
나도 그런 시기를 지나고 있다.
내 팀원 중에는 한참 선배님인데
계속 같이 일하고 있는 분이 있고,
이전 내 직속 상사는 외부에서 수혈한
나보다 연차가 낮은 동갑내기였다.
지금의 직속 상사는 심지어 나이가 어리다.
연차는 말할 것도 없다.
예전에는 누군가를 발탁한다는 것이
그 아래 있는 일명 고인 물 선배들을
회사에서 자연스럽게 내보내기 위한 방도였다.
지금은 꼭 그런 것 같지도 않다.
40대 초반 팀장 위에 30대 중후반 임원이 있는 것은 그저 일어난 현상이다.
그저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모여서
다양한 관계들을 만들고 있는 과도기인 것 같다.
처음에는 매우 어색하다.
아니 그보다 먼저 기분이 나쁘다.
내 경력을 회사에서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섭섭함.
그동안 커리어를 잘못 쌓아 왔나 하는 나에 대한 자책감.
이런저런 입장에 있어보니 알게 된다.
조직이 사람을 쓰는 데는 나름 의도와 이유가 있다.
내 지난날에 대한 반성도 있고,
나이도 경력도 어린 상사에게 배우는 것도 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이 조직에 계속 있으려면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이다.
회사에서의 관계는 나이로 정리되지 않는다.
역할로 정의된다.
상사일 때는 내가 나이가 많든 적든 상관없이
결정을 해야 하는 사람이고,
부하직원일 때는 내가 더 나이가 많더라도
그 결정을 실행해야 하는 사람이다.
물론 이것을 머리로 알면서도
감정이 따라오지 않을 때도 있다.
나보다 어린 상사를 만나면
그의 결정이 현장을 너무 잘 몰라보이기도 하고
나보다 연차 높은 팀원을 두면 괜히 더 조심하게 된다.
그래서 이 관계는 자연스럽게 풀리지 않는다.
의식적으로 정리해야 한다.
내가 부하직원일 때의 기준은 단순하다.
"이 사람이 맞는가"가 아니라
"그 사람의 역할을 인정하는 것"
상사의 나이가 아니라
회사가 부여한 그 사람이 맡고 있는 역할과 책임을 기준으로 따라가는 것이다.
그 기준이 잡히면 감정은 생각보다 빨리 정리된다.
반대로 내가 상사일 때는 다른 기준이 필요하다.
나보다 연차 높은 팀원을 두게 되면
능력을 증명하려 하기보다
신뢰를 먼저 쌓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일관된 태도이다.
그의 일하는 방식은 존중하되
방향성은 내가 제시하는 것이다.
결정은 명확하게 하고, 책임은 내가 지고
공은 같이 나누는 것이다.
그게 쌓이면 나이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결국 이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누가 더 오래 다녔는지가 아니라
누가 더 역할에 충실한가이다.
회사에서는 나이로 설득할 수는 없다.
역할이 먼저인 것을 받아들이면
불편함은 생각보다 빠르게 사라진다.
독자 여러분들은 이런 경우 없으신가요?
생각해보면 이런 역전은 완전히 우연만은 아닙니다.
회사는 경력만으로 움직이지 않죠.
때로는 학벌이 오래 남고,
때로는 라이선스 하나가
사람의 속도를 바꿔버립니다.
운과 흐름이라는 것도 크게 작용합니다.
하지만 오늘을 치열하게 살아가야 하는 나에게
과거를 곱씹는 것은 사치입니다.
결국 우리는 이해가 아니라
받아들이는 쪽으로 가게 되니까요.
그게 더 빠르기도 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