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요, 플라스틱이 본 엄마들은 참으로 불쌍한 엄마들이군요.
사람은 누구나 인생이라는 여정 속에서 불신의 열매를 삼키는 죄를 알고도 짓고, 모르고도 짓지만, 그 죄를 돌이키는 방법과 시기는 다 같지 않답니다. 플라스틱은 쓰임이 정해지면 한꺼번에 대량 생산되어 세상으로 나오지만, 사람은 같은 죄의 열매를 삼켰다 하더라도, 쓰임의 목적이 각각 달라서 그 죄를 깨닫고 돌이키는 시기와 방법은 아무도 알 수 없답니다. 다만 반듯이 돌이킴의 때는 온다고 말할 수 있어요.
세상 모든 엄마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는 자식보다 더 많은 기간 세상에 머물 수 있다 여기지 않아요. 자식을 돌봐 주고 보호할 수 있는 기간이 정해져 있고, 짧다는 조급함으로 최선을 다해 자식에게 많은 것을 주고 남기고 싶어 해요.
사실은 창조주가 우리를 완벽한 세상에서 내보냈을 때의 계획과 목적 중 하나는? 성숙한 인격을 갖추게 하기 위함도 있었어요. 여자는 생명이 자기 몸속에서 자라 세상 밖으로 분리되어 나오지만, 분리된 생명이 자신의 일부라 착각하게 돼요. 생명은 한 인격체로 분리되기 위해 자기식의 힘을 쓰지만, 여자는 생명의 독립을 인정하기까지 섬세한 과정이 필요할 수 있어요. 분리된 생명, 자기 일부에 상처가 난다고 판단하는 순간, 그것만 보게 되고 적극적 방어 태세로 변질하게 돼요.
나를 만든 창조주도 우리를 자신의 일부로 여기고 완벽한 세상에 두어 그저 좋은 것과 풍요만을 누리길, 당신 보호 아래 있기를 원하셨어요. 하지만, 넉넉함에서의 소유하고자 하는 욕심을 다스릴 줄 모르는 미성숙함으로, 결핍에서 인내하고 합심하여 얻는 열매의 맛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음으로, 우리는 선악의 열매마저 범하고 말았죠. 겉모습은 창조주를 닮은 형상대로 만들 수 있었지만, 내적 성숙함은 훈련이 필요함을 아셨기에 혼란한 세상으로 보내셨어요. 넉넉한 풍요는 욕심과 탐욕에서 오는 소유가 아닌, 의무와 책임이 바탕이 된 나눔을 실천해야 하는 비움에서 얻는 참된 자유를 경험할 기회임을 알아야 해요. 그리고 부족과 결핍이 인내의 씨앗이 되어 기다림 뒤에 오는 열매의 맛을 알았을 때, 비로소 우리는 성장하고 있음을 알게 돼요.
그들도 여자, 엄마, 어머니가 되어 함께 살아갈 세상을 가꾸는 일손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플라스틱이 만난 그들도 때가 되면, 변질된 자신을 돌이켜 세상의 일손으로 살게 되는 날이 올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아요.
여자인 나는 엄마라는 이름과 자리에서 어머니가 되어가고 있었어요.
자녀들이 성장해 여자가 되고 남자가 되기 위해 부모를 떠나 완전한 분리를 선택할 수 있도록 나는 다른 모양과 역할로 변해야 해요. 생명을 세상에 내어놓는 일도 보살피는 일도 참으로 고단한 과정이었지만, 그 생명을 다른 세상으로 보내어 다른 모양과 이름을 가질 수 있도록 마음을 비워 내야 하는, 고난도 시험을 치러야 했어요.
내 속에서 나온 아들과 딸이, 어느 때부터 엄마 아빠가 아닌 어머니 아버지로 불러 주었어요. 어머니라는 이름을 갖게 된 순간 이상하게 아이들과 저만큼 멀어진 기분이었죠. 내가 골라주는 옷을 입고, 내가 만들어 준 음식을 먹으며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내 품을 찾아 들어와 울고 웃던 아이들이 더는 내 말에 수긍이 아닌, 내게 대항하기 시작해요. 내가 골라주는 옷은 트렌드를 모르는 촌스러움이 되고, 내 식탁 위 음식을 물리다 여겨요. 내 손길을 피하고, 나와의 대화가 답답하다며 때로는 예의 없이 굴죠. 그즈음 되면 사랑의 감정에서 파생된, 애증(愛憎)이 싹트기 시작해요. 그런 시간이 닥치기 전 나는 어머니라는 이름을 빨리 받아들이고 아이들을 분리하는 일에 속도를 내야 해요.
엄마와 결혼하겠다던 아들도 어느새 아들을 빼앗아 갈 것 같은 여자 앞에서 아첨꾼이 되어 남자가 되겠다고 하고, 엄마가 골라주는 남자를 만나겠다던 딸도 세상천지에 그 남자 하나밖에 없다는 태세로 한 남자를 데리고 와서 여자가 되겠다고 했어요. 나는 솔직하게 아들을 빼앗기고 싶지 않아서 아들을 붙잡아 놓을 궁리를 하느라 머릿속이 분주했고, 딸의 고단한 여자의 삶을 막을 수만 있다면 방 안에 가두어 놓고 싶은 심정이었어요. 참 이상하죠? 아이들이 쑥쑥 자라 어른이 되어 독립하기를 바라면서도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어 아이들의 독립을 방해하려는 꾀를 생각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엄마는 자녀를 보호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그럴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어머니라는 이름은 어른이 되겠다는 자녀의 선택을 존중하고 믿어 주는 품위를 가져야 했어요. 자녀는 내 것, 내 소유가 아니라 내 몸을 빌려 세상에 나온 독립적인 생명임을 잊고, 내 마음대로 내 욕심껏 소유하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지 않으면 안 될 때가 왔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어요.
생명이 보살핌을 받고 성장했다면 다음의 역할을 위해 독립해 나갈 수 있도록 기회를 주어야 하니까요.
우리 장자 가인은 농사를 짓는 농부가 되었어요.
가인은 곡식을 심으면 심는 대로, 열매를 가꾸면 가꾸는 대로 풍년이었어요. 수완이 좋고 계산이 빠른 영리함으로 많은 이윤을 남겨 부자가 되었죠. 우리가 빌려준 땅에서 수확한 첫 곡식과 열매를 우리에게 나누어 주며 자기 능력으로 일구어낸 부를 인정받고 싶어 했어요.
차남 아벨은 양을 치는 양치기였는데, 가인과는 달리 잔꾀를 부릴 줄 모르고 마음이 정직한 중심이 반듯한 아이였죠. 같은 배에서 나왔는데, 어쩌면 그렇게 다른지? 저는 가끔 두 아이를 다시 뱃속에 넣어 섞어 꺼내고 싶을 때가 있었다니까요. 아벨은 우리가 준 양을 기르기 시작할 때부터 첫 새끼를 낳으면 우리에게 가장 먼저 드리고 싶다고 했었어요.
아벨은 오랜 시간 우리를 생각하며 정성을 다해 양을 길러냈고, 첫 새끼가 태어나자마자 헐레벌떡 새끼 양을 품에 안고 뛰어왔어요. 아벨 품에서 갓 태어난 아기 양은 아직도 어미 뱃속 온기가 남은 듯 따뜻했어요. 우리는 아벨이 품고 온 아기 양을 기뻐 받았어요.
가인은 그런 우리에게 얼굴 안색이 변하며 말했어요.
“저는 많은 곡식과 열매를 어머니에게 드렸는데, 겨우 양 새끼 한 마리가 그렇게 기쁘세요?”
“그래 가인아, 네가 준 곡식과 열매도 고맙다만, 너는 넉넉하게 있는 네 것을 나누어 주었지만, 아벨은 처음부터 첫 새끼는 우리에게 주겠다는 마음으로 오직 우리를 생각하며 오랜 시간 정성껏 준비하지 않았니?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자기에게 전부인 새끼 양을 품에 안고 왔잖니. 어떤 생각도 계산도 없이 그저 첫 새끼 양을 얻은 기쁨의 순간조차 우리와 나누고 싶어 숨을 헐떡이며 온 순수함이 참으로 사랑스러워 보이는구나!”
가인의 곡식과 열매가 귀하지 않았다는 말이 아니었는데, 가인은 동생 아벨을 질투해 아벨을 따로 불러내 돌로 쳐 죽이고 말았어요. 우리에게는 아벨의 행방을 모른다고 시치미를 떼고, 우리를 피하는 가인을 보면서 아벨의 죽음도 무척 슬펐지만, 악한 죄를 다스리지 못하고 악을 행한 가인의 모습이 너무 아팠어요. 창조주께서는 가인을 척박한 세상으로 보내 죽을 때까지 죄를 회개하며 살라고 명령했어요.
다른 자녀들도 세상의 음란에 젖어 헤어나지 못했고, 높고 사치스러운 탑을 쌓아 높은 자리에서 세상에 군림하려 했어요. 창조주께서는 그런 자녀들을 적절한 세상으로 흩어 보내 회개하고 반성하며 살 수 있도록 기회를 주었죠. 하지만, 우리 자녀들은 세상의 타락 속에 빠져 괴물들과 얽히고설켜 분별력을 잃었고, 세상은 전교한 사람의 탈을 쓴 괴물로 엉망진창이 되어버렸어요.
우리 자녀들이 각자의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는 최선을 다해 적당한 거리에서 도움을 주었건만, 자녀들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불평과 결핍을 호소하며 달라고만 요구했어요. 정말 자식이 아니라, 원수가 따로 없다 싶었다니까요.
자녀들이 세상 괴물의 노예로 전락하자, 창조주께서는 그런 우리 자녀들에게 자녀들을 억압하고 통제했던 이들을 피해 도망갈 수 있는 바닷길을 열어 주었고, 매 순간 자녀들 앞을 비춰주는 불기둥으로 곁을 지키며 허기짐을 느끼지 않을 만큼 하늘에서 맛나와 메추라기를 내려 주었어요. 그리고 젖과 꿀이 흐르는 아주 비옥한 땅,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터전을 잡아 풍요롭게 살 수 있도록 허락해 주셨죠. 하지만, 자녀들은 그런 창조주의 은혜를 귀하게 여기지 않았고, 세상 죄악을 합리화하기 위해 자신들의 방식대로 창조주 율법을 왜곡하고 포장하는 것에 익숙해졌어요.
창조주께서는 그런 자녀들을 위해 세상에서 읽을 수 있는 지침서를 제작해 세상 널리 읽히도록 했어요. 그리고, 우리를 위로하며 말씀하셨죠.
“모든 판단은 너희 몫이 아니니, 너희에게 책임을 묻지 않겠노라. 너희는 긍휼 한 마음으로 그저 사랑하라.”
창조주는 우리에게 자녀들에 대한 모든 것을 당신에게 맡기라 명령하셨고, 우리는 그런 창조주 명령에 순종하며 자녀들로부터의 완전한 분리를 받아들였어요.
출산의 고통으로 시작해 바뀌는 이름마다 출산의 고통 이상의 동반된 인내의 무게가 더해지는 것이 인생인 것 같았어요. 하지만, 슬프지 않았어요. 인내의 무게로 얻은 ‘사랑’의 결실은 세상에 어떤 것과도 견줄 수 없는 빛을 만들어 내는 또 하나의 불씨임을 알 수 있었거든요. 그 불씨가 모여 인간 세상에 따뜻한 온기가 되고, 그늘진 곳 희망의 빛이 되리라 믿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