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잘 이해할 수 없군요. 여자와 남자가 생명을 만드는 것은 신이 정해놓은 섭리라고 치고, 그래서 세상에 생명이 나왔으면 그 생명이 스스로 살아가도록 지켜보면 되지 않나요? 왜 자신이 밑거름 되어 그 생명에게 관여하는 거죠? 그 밑거름을 명분으로 한 인격체 생명을 자기 마음대로 다루고 있는 건 아닌가요?
우리는 세상에 누군가의 필요로 개발되어 나오지만, 사용자의 수고나 희생을 요구하지도 않고, 목적에 의해 만들어져 나온 모양대로 사용되어요. 내가 만난 ‘엄마’, ‘아빠’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은 생명을 위한 밑거름도 생존을 위한 거짓 가면도 쓸 줄 모르는, 그저 ‘엄마’,’ 아빠’라는 이름표를 가지고 있을 뿐 역할과 용도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었어요.
은서는 외모도 참으로 곱고 예쁜 아이였지만, 마음이 순수하고 맑은 아이였어요.
은서 엄마와 아빠는 그런 은서를 세상에서 가장 멋진 남자를 찾아 짝지어 주고 싶어 했죠. 대학 졸업을 앞둔 은서에게 엄마는 신부 수업이라는 것을 강요하듯 요리 학원을 보내고, 부유층 사교 활동을 위해 악기와 그림 같은 것을 배우게 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엄마와 나간 식사 자리에서 한 남자를 만났고, 남자는 출중한 외모로 명문대를 나와 많은 돈을 버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었죠. 그는 은서를 사랑한다고 했고 은서는 그의 말을 믿고 결혼했어요.
호화스러운 고층 아파트에 고가품 혼수로 채운 그들의 보금자리는 매일 조용할 날이 없었어요. 은서 남편은 신혼여행 때부터 은서에게 결혼 비용과 만족스럽지 못한 혼수 문제를 들먹이며 폭언과 폭행을 일삼았어요. 은서는 그의 생명을 여러 번 잉태했지만, 그의 폭력으로 모두 유산(流産)하고 말았죠. 시어머니 역시 당신 집안보다 격이 낮은 집에서 며느리를 데려온 것을 탐탁지 않아 했고, 기회가 될 때마다 은서 친정집 형편을 들먹이며 모멸감을 안겼어요. 은서는 그에게서 벗어나야 한다는 굳은 의지로 친정엄마에게 자기 상황을 털어놓았지만, 그녀 엄마는 딸의 안전하지 않은 결혼 생활을 걱정하기는커녕, 사위가 가진 사회적 지위와 재력의 범위를 높이 평가했어요. 그리고 살다 보면 괜찮아질 날이 온다고, 그 집안 배경을 누리는 것으로 보상받는다, 여기라고 했어요. 은서에게 세상에 드러내지 말라는 당부를 하고 돌려보냈죠.
은서는 태어나 처음으로 엄마의 사랑을 의심하기 시작했어요. 그 의심은 결국 부모에게 어떤 말도 하지 않게 되는 계기가 되어 버렸죠. 엄마와 의논 없이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했지만, 그는 이혼은 자기 집안과 자기 명예에 흠집 내는 일이라며 동의해 주지 않았어요. 더는 의지할 곳도 해결할 방법도 찾지 못한 채 남편 폭력과 시댁의 멸시를 참아 내고 있었죠. 그러던 어느 날 아파트 베란다에 새 한 마리가 날아들더니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베란다 여기저기를 오가며 스트레스를 받아 힘이 빠지고 있었어요. 은서는 집안 모든 문을 열어젖혀 새가 어느 쪽으로든 밖으로 나가 훨훨 날아갈 수 있기를 기다렸죠. 그 잠시의 기다림을 통해 자기도 새처럼 어디로든 나가야 한다는 절박함이 치밀었어요. 새가 하늘을 향해 날아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어떤 희생을 감수해서라도 이 집을 나가야 한다는 급박한 의지가 은서를 이끌었어요.
은서는 남편 행위를 수집한 증거 자료를 모아 이혼 소송을 제기했어요. 법정에서 온갖 지저분한 논쟁을 벌이고 다툼의 터널을 지나 그에서 겨우 벗어날 수 있었죠. 법원에서 명령한 위자료마저 포기하고 이혼 후 친정으로 돌아왔지만, 엄마 아빠 뜻을 거스르고 돌아온 딸에게 그들은 친절하지 않았어요. 달라진 엄마 아빠의 차가운 시선은 남편의 폭력만큼이나 은서를 견디기 힘든 슬픔으로 몰았어요. 아빠는 이웃집 사람들에게조차 수치스러워 내놓을 수 없는 부끄러운 딸로 여겼고, 엄마는 은서에게 명품으로 겉모습을 치장시키고, 재혼 자리를 알아보기 위해 여기저기 데리고 다녔어요. 딸에 대한 과장 선전과 허세로 달라진 딸의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죠. 은서는 그런 엄마 아빠로부터 떠나 홀로서기를 시작했어요.
은서는 부모님이 찾지 못할 것 같은 소도시에 작은 원룸을 구했어요. 처음 살아 보는 다가구 주택가 초라한 집이었지만, 은서에게만큼은 처음 느껴보는 편안하고 자유로운 공간이었죠. 동네 보습학원에서 어린아이들 선생님이 되어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혼자 힘으로 자기 삶을 꾸려 가는 자신을 대견해하며 잘 살아 내고 있었어요. 엄마 아바타가 아닌 독립적인 존재로 자기 인생을 주도적으로 살아 내며 인정받을 때, 화려함보다 소박한 일상의 자유를 누릴 때 은서 고운 얼굴에 윤이 나고 빛이 났어요. 그런 은서에게 사랑이 찾아왔어요.
그는 좋은 대학을 나오지도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을 가지지도 않았어요.
학원버스 운전을 하며 홀어머니와 사는 민석은 은서 보다 다섯 살 아래 성실하고 착한 총각이었죠. 은서는 민석과 결혼 승낙을 받기 위해 엄마에게 연락했지만, 엄마는 민석을 만나보려고도 하지 않았어요. 결국 엄마 허락 없이 둘은 살림을 합쳤고, 그들은 소소한 행복을 만들어 가고 있었죠. 민석은 은서에게 언제나 잔잔한 부드러움으로 항상 배려와 보호 속에 있다는 안전감을 주었고, 민석을 통해 처음으로 남자에게 사랑받는 것이 어떤 것인지 느낄 수 있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정신병원 차 한 대가 민석 앞에 섰고, 여러 명의 남자가 순식간에 민석을 납치하다시피 차에 태우고 가버렸어요. 학생들이 뛰어와 은서에게 알렸고, 은서는 급히 엄마를 찾아갔어요.
은서 엄마는 은서가 집을 나갔을 때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올 것이라 여겼지만, 예상과는 달리 오랜 기간 돌아오지 않았고, 은서를 찾아 지켜보았을 때 당신 생각보다 은서가 너무 잘 살아 내고 있었던 거죠. 은서에게 민석이 생기면서 딸을 영영 잃어버릴 것 같은 불안으로 초조해지기 시작했고, 은서와 살림까지 차린 민석을 그냥 둘 수 없었어요. 결국 민석을 정신병원으로 납치까지 하고 말아요.
민석은 자신이 왜 철창이 드리워진 병원 독방에 갇히게 되었는지 알 것 같았어요. 며칠 전 고급 승용차를 탄 중년 부인이 민석 앞에 나타나 은서 엄마라고 했어요. 은서에게 엄마에 관한 이야기를 간간이 들었고, 언젠가는 만남의 때가 이르려니 했지만, 이렇게 갑작스러운 만남이 닥칠지 예상하지 못했어요. 민석은 그저 예의를 갖추고 싶은 마음으로 다가가 꾸벅 큰절을 올리려 했지만, 그녀는 민석을 떠돌이 동네 강아지 취급하듯 발길질하며 가까이 다가오지도 못하게 했어요. 그리고, 말로 할 때 은서 옆에서 떨어지지 않으면 자기가 어떤 짓을 할지 모른다는 경고를 하고 돌아갔죠. 그날 그녀의 그 경고가 이렇게까지 브레이크 없는 질주로 자신을 들이받을지 대비하지 못했기에 민석은 그저 무력할 뿐이었어요.
민석은 세상을 보기 시작할 때부터 낳아 준 엄마라는 존재는 없었고, 세상 구경을 좋아했던 아버지는 자기를 보살피기 위해 공장 노동자가 되어 사망했어요. 자신이 가장 약했던 순간을 본 동건이가 친구가 되어 주었고, 동건이 엄마, 지금의 어머니는 자신을 바라볼 때마다 다른 누군가를 사무치도록 그리워하는 애틋한 마음이 투영된 느낌으로 대했어요. 하지만, 은서는 자신으로 인해 행복해했고, 자기 품에서 곤한 쉼을 얻는 그녀는 민석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의지해 주었어요. 민석은 철창이 드리워진 작은 창을 우두커니 바라보며 은서에게만은 아무런 일이 없기를 바라고 있었어요.
은서는 엄마에게 민석이 있는 곳을 알려 달라 눈물을 쏟으며 매달렸지만, 엄마는 은서에게 민석과의 관계를 정리하고 집으로 들어오라는 말만 반복했어요. 결국, 민석을 풀어 주는 조건으로 은서는 민석과 헤어졌고, 다시 엄마의 아바타로 전락하고 말았어요. 병원에서 나온 민석은 은서 엄마를 찾아가 은서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다며 설득하고 이해시켜보려 했지만, 그녀는 민석을 입에 담지 못할 욕설과 폭력으로 번번이 내쫓았어요. 포기하지 않고 매일 찾아오는 민석의 노력에 그녀의 브레이크 없는 분노는 민석을 다시 정신병원에 보내고 은서를 방에 감금하고 말았어요.
욕실이 딸린 방에 갇혀 끼니때마다 엄마가 넣어 주는 음식을 보며 은서는 어쩌다 엄마가 저렇게까지 되었을까! 생각했어요. 엄마는 자신의 가출과 민석의 존재로 달라진 것이 아니라, 아주 어릴 때부터 자기를 엄마의 개발품 정도로 여겼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초등학교 시절 가정 형편이 어려운 친구를 집으로 데리고 왔을 때, 친구에게 현금을 쥐여 주며 은서 주변에 있지 말라는 고상한 협박을 했고, 중학생이 되어 같은 반 남학생에게 생일 선물과 편지를 받아 왔을 때도, 학교를 찾아 항의해서 남학생을 다른 학교로 전학시켰어요. 고등학생 때 남자 교생 선생님이 멋있다고 했더니 엄마는 은서를 다른 학교로 전학시켜 버렸죠. 대학생이 되어 친구들과 어울림이 많아지자 일일이 따라다니며 친구들을 불편하게 해서 은서가 친구들과의 관계를 포기하게 했어요. 은서는 갇힌 방 안을 찬찬히 둘러보았어요. 온통 은서 사진으로 꾸며져 있는 방은 어느 영화에서 본 강박증과 집착증을 앓는 스토커의 비밀스러운 방과 비슷해 보였어요. 사진 속 은서는 엄마가 원하는 머리모양으로 엄마 취향의 옷을 입고, 엄마가 좋아하는 표정을 짓고 있는 인형 같아 보였어요. 집을 나가 독립된 삶을 살아 보지 않았다면 은서는 엄마의 병적인 집착증에 대해 모르고 살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쳤어요. 방을 나갈 수 없다는 위기감보다 그런 엄마에게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공포에 사로잡혀, 은서는 엄마를 원망하며 스스로 세상을 버리고 말았어요.
딱딱하게 굳은 은서 시신을 바라보며 은서 엄마는 흐릿한 옛 생각에 잠겼어요.
그녀는 여러 번의 임신을 했지만, 번번이 유산되었죠. 아이를 갖기 위해 무속인을 찾아가 굿을 하고, 용하다는 의사를 찾아다니며 검증되지 않은 시술을 받고 우여곡절 끝에 은서를 세상에 내어놓을 수 있었어요. 잦은 유산으로 남편 마음도 멀어지는 듯했지만, 은서가 태어나면서 남편 얼굴에 미소가 깃들기 시작했어요. 두 사람에게 은서는 완벽하고 완전한, 오직 자신들만의 존재였어요.
엄마라는 이름을 가진 그녀는 은서 시신 앞에서 오열하는 민석에게 달려들어 민석의 몸을 때리고 쥐어뜯으며 울부짖었어요. 민석 때문에 완벽한 자기 작품 은서가 더럽게 망가져 죽음을 선택했다면 서요…
대형병원 유능한 성형외과 의사인 기철은 여성용 스타킹에 관심이 좀 특별했어요. 처음에는 그를 남다른 취향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와 스타킹과의 친밀함은 단순한 관심이나 취향이 아니었어요.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그의 엄마는 홀로 기철을 키우고 있었어요. 밥을 먹을 때는 항상 마주 앉아 반찬을 밥숟가락에 올려 주었고, 국이 식으면 데워 가져다주는 엄마 손은 세상에서 가장 곱고 가냘파 보였죠. 숙제를 도와주며 어려운 문제로 난감해하는 기철 얼굴에 입 맞추고 친절하게 알려 주는 엄마 목소리는 공기 속에서 리듬을 타는 맑은 바람 소리 같았어요. 피아노를 잘 치는 엄마는 기철에게 피아노를 가르쳐 줬고, 피아노가 어려워 배우기 싫어하는 기철의 어리광에 재능이 있다는 격려를 아끼지 않았죠. 뭉클한 엄마 젖가슴을 만지며 잠이 들고, 엄마 손길을 느끼며 아침을 맞이하는 일상이 영원할 줄 알았어요. 기철의 엄마는 기철을 무척이나 사랑하는 것 같았어요. 기철은 그런 엄마에게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리라 다짐했죠.
기철이 초등학교 3학년쯤 되었을 때, 엄마는 집안일을 돌볼 낯선 아주머니를 들였어요. 그리고 기철을 아주머니와 있게 하고, 매끈한 스타킹을 신고 외출했어요. 몇 시간에 불과했던 외출이 점점 길어져, 저녁으로 늦은 밤으로 시간이 늘어나기 시작했죠. 급기야 그 외출은 몇 날 며칠이 되었고, 외출하고 돌아온 엄마는 올이 나간 스타킹을 벗어 쓰레기통에 버렸어요. 그리고, 몇 날 며칠 방에서 나오지 않은 채 엄마의 작은 어깨는 슬픔에 젖어 들썩이곤 했죠. 기철의 엄마는 당신 슬픔에 잠겨 기다림에 뿔이 난 어린 아들을 챙겨봐 주지 않았어요. 기철은 엄마를 대신해 엄마가 벗어 버린 훼손된 스타킹을 쓰레기통에서 꺼내 갈기갈기 찢고 자르며 엄마에 대한 서운함을, 엄마를 슬프게 한 존재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고 있었어요.
어느 날 새 스타킹을 신은 엄마가 커다란 가방을 들고 나와 기철의 두 눈을 마주 보고 잔잔하게 말했어요.
“아들, 이제부터 아주머니와 살아야 해. 네가 어른이 되면 왜 오늘처럼 해야 했었는지 알게 될 날이 올 거야. 언제나 엄마에게 첫 번째는 아들이야. 열심히 공부해서 의사가 되어 주렴.”
그 후로 훼손된 스타킹을 신은 엄마는 기철이 있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죠. 그렇게 기철을 떠난 엄마는 아주 가끔 훼손된 스타킹을 신고 기철이 사는 아파트나 학교 주변에서 기철을 지켜보는 것 같았어요. 기철은 엄마 바람대로 의사가 되면 엄마와 예전처럼 함께 살 수 있을 것이라 믿었고, 열심히 공부해서 의과 대학에 진학했어요. 그리고 돌봐 주는 아주머니에게 엄마를 만나게 해 달라고 했죠.
기철의 요구대로 어느 날 엄마가 집 안으로 들어왔어요. 그날 엄마는 훼손된 스타킹이 아닌 깨끗하고 매끈한 스타킹을 신고 기철 앞에 서 있었어요. 기철은 늘 그리웠던 엄마 품속에 안기고 싶었지만, 엄마는 웬일인지 기철에게 차가운 얼굴로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어요.
“이제 다 컸는데, 엄마가 어떤 상황에서 너를 키웠는지 너도 알 나이가 되지 않았니? 나는 내게 할 만큼 했단다. 어린아이처럼 굴지 말고, 이제 네 인생은 네가 책임지고 살아야지. 엄마는 네게 올 수 없어.”
그날 이후 엄마 모습은 아주 가끔 텔레비전 속에서 의사 출신 정치인 아내 모습으로 기철보다 어린 아들과 행복하게 사는 일상이 공개되어 볼 수 있었어요.
기철은 깔끔한 외모에 인정받는 의사임에도 여자에 대한 불신으로 이성과의 교제가 어려웠어요. 그는 사람들 눈을 피해 병원 여자 근무자들 스타킹을 훼손했고, 여자 화장실과 탈의실을 오가며 버려진 훼손된 스타킹을 수거해 집으로 가지고 와 모아 두었어요.
어느 날 소개팅 자리인지 모르고 나갔던 자리에서 대학원을 다니는 여자를 만나게 되었고, 여자의 적극적인 구애로 만남이 지속되어 연애를 시작했어요. 여자와 스킨십을 시작하며 여자 스타킹이 훼손되는 것을 보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깊은 곳에 숨기고 살았던 불덩이가 솟구쳐 올랐어요. 기철은 여자 스타킹을 찢으며 여자를 거칠게 다루었고, 그 여자는 기철의 거센 행위에 흥분하며 사랑한다고 말했어요. 그녀와의 만남으로 기철이 누르고 살았던 분노의 불덩이가 달구어졌고, 폭발할 곳 없는 불덩이는 어린 기철이 그랬듯 스타킹을 잔인하게 훼손하는 것으로 분출되고 있었어요.
여자와의 남만이 지속될수록 기철의 분노는 괴물의 습성이 되어 잔인하고 가감해지고 있었지만, 그녀는 기철의 행위에 더 자극적인 요구를 하며 그를 원했어요. 어느 날 그 여자는 새 스타킹을 갈아입고 급히 나가 돌아오지 않았고, 기철은 분출된 습성을 제어하지 못하고 다른 여러 여자를 만났어요. 하지만, 보통의 여자들은 기철의 짐승 같은 습성에 두려움을 느껴 새 스타킹을 갈아입고 나가면 그에게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죠.
그는 퇴근길에 인파 속을 헤집고 다니며 여자들 스타킹을 훼손하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었어요. 돌아오지 않는 그의 엄마는 어린 아들이 자라지 못하고 엄마 스타킹을 기억하고 산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요?
종수 엄마는 늘 종수에게 남자다움을 강요했어요.
남자는 무엇이든 가리는 것 없이 잘 먹어야 하고, 남자는 외모를 가꾸는 것보다는 강한 힘을 길러야 하고, 남자는 육체적 고통이나 심적 어려움 앞에 눈물을 보이지 말아야 하며, 남자는 여자를 돌봐야 하는 책임감을 느껴야 하고, 남자는 남자는…
종수 엄마는 말수가 없는 남편을 답답해했고, 그런 남편에게 항상 고함을 치고 화를 냈어요. 남편은 그런 아내의 까닭 모를 화를 받아 주지 않고 언제나 더 무심하게 무시했죠. 그녀는 그런 남편을 대신해 어린 아들 종수가 중학생이 될 때까지 품에 안고 자기 몸을 만지게 했어요.
종수는 엄마에게 그런 아빠 같은 남자는 되면 안 된다는 원망 섞긴 넋두리를 들으며 자랐고, 아빠를 대신해 남자다움을 세뇌받고 학습하며 엄마를 만족시켜 주려 노력했어요. 하지만, 엄마의 바람과 달리, 종수는 커갈수록 심약하고 부드러워 엄마에게 늘 못마땅한 눈총을 받곤 했죠. 종수는 엄마가 그러면 그럴수록 더 위축되었고, 들어내지 못하는 엄마에 대한 억눌린 분노가 쌓여갔어요.
고등학생이 되어 같은 학교 친구 동건을 만나 종수는 혼란에 빠져요. 동건은 엄마가 말하는 남자다움을 모두 갖추고 있는 친구였죠. 밥을 먹을 때도 많은 양을 거칠게 먹었고, 단추를 풀어헤치고 대충 입은 교복 속 그의 몸은 근육으로 울퉁불퉁 단단해 보였어요. 운동하다 넘어져 시멘트 바닥에 살이 슬려 피가 흘러도 그는 개의치 않았고, 학교 회비를 제날짜에 내지 못해 담임에게 걱정을 듣고 와도 침울해하는 법이 없었죠. 동건은 학교가 끝나면 오토바이로 배달 아르바이트를 했고, 틈틈이 오토바이 튜닝하는 취미를 즐겼어요.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하는 남성미가 돋보이는 그를 여자아이들은 환호했고, 남자아이들은 그의 친구가 되고 싶어 했죠. 종수 역시 동건과 친해지면 남자다움을 익힐 수 있을 것 같았고, 옆에만 있어도 그와 비슷한 남자로 비칠 것 같았어요.
종수는 동건과 친구가 되어 오토바이를 타고 도로를 질주했어요. 불량스럽게 담배를 꼴아 물고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켜며 그들의 무리에 적응해 보려 했지만, 종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지쳐버렸어요. 그런 종수에게 동건은 종수답게 살라는 말을 해 주었고, 종수가 어떤 모양의 사람이든 친구라고 말해 주었죠. 동건은 종수를 자기 오토바이 뒷좌석에 태워 주었고, 종수는 동건의 허리를 굳게 잡고 온몸을 그의 등에 밀착시켰음에도 오토바이 질주는 너무 무서워 눈을 뜰 수 없었어요. 하지만, 동건의 등이 그냥 좋았어요. 어느 날 동건과 종수가 타고 가던 오토바이가 미끄러져 종수가 병원 신세를 지게 되면서 종수 엄마가 알게 되고 말았어요.
그녀는 아들 종수의 변화가 불량 아이들과 어울리는 동건 때문이라고 억지를 부리며, 학교에 찾아가 동건을 자퇴시키고 말아요. 종수는 병원 치료를 받고 학교에 돌아가 동건의 자퇴 사실을 알게 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종수는 엄마의 통제와 감시 속에서 학업에 전염해 보려 하지만, 동건의 모습이 수시로 떠올라 종수의 정신을 혼미하게 했어요. 종수는 동건과 떨어져 지내면서 스스로 컨트롤할 수 없는 동건에 대한 자기감정에 당황스러워해요. 동건을 생각하면 얼굴이 뜨거워지고 그에게 안기고 싶고, 심지어 꿈속에서 동건의 알몸에 안겨 행복해했죠. 종수는 동건의 남자다움을 닮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남성미가 물씬 풍기는 동건을 이성으로 사랑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어요.
종수는 더는 엄마의 남자다움을 강요받는 환경도 싫고, 자기 정체성에 대한 혼란과 동건에 대한 감정으로 우울감에 눌려 더는 견딜 수 없었어요. 이런 인생을 사느니 죽는 것이 낫다는 생각으로 극단적 생각까지 하게 되지만, 실천하지 못하는 자기 나약함에 자기 자신에 대한 경멸로 괴로워했어요.
종수는 집을 나와 동건을 찾아가 같이 지내게 해 달라 부탁했어요. 동건은 종수를 심약한 친구라 여기고 잠시 친구로 보살펴 주고 싶었을 뿐, 때가 되면 집으로 돌아가겠거니 생각했죠. 여러 날 종수는 돌아가지 않았고, 앞치마를 두르고 식탁을 차리고, 빨래와 청소 등 집안일에 열심을 내는 모습이 평범해 보이지 않았어요. 동건은 종수가 초라한 집에서 신세 지는 것에 대한 미안함으로 하는 행동이라 여겼죠. 하지만, 동건은 가끔 한밤중에 자다 말고 불편함이 느껴져 눈을 떠 보면 자기 몸을 부둥켜안고 자는 종수 모습에서 불편을 넘어 이상하다는 생각이 가시지 않았어요. 어느 날 밤 이상한 느낌이 들어 눈을 떴을 때, 동건은 자기 입술을 터치하는 종수 입을 보고 화들짝 놀라 종수를 밀쳐냈어요. 그때서야 종수가 자신을 이성으로 사랑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죠. 동건은 그 날밤 종수에게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고 부탁하고 집으로 돌려보냈어요.
종수는 집으로 돌아갔지만 수시로 동건을 찾아왔고, 그런 종수를 보는 그의 엄마는 모든 것이 동건의 탓이라 여기고 동건을 종수를 감금하고 돈을 갈취했다는 누명을 씌워 종수가 찾아갈 수 없는 감옥에 보내고 말아요.
종수는 동건에게 수십 통의 편지를 보내고 몇 차례 면회도 갔지만, 동건은 종수 편지에 대한 답장도 만나주지도 않았어요.
종수는 자기도 어쩔 수 없는 자신에 대한 혼란으로 학교도 더는 나갈 수 없었어요. 그저 자기 몸이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자기혐오로 죽음을 실천했지만, 여러 번 실패하고 말아요. 굶어 죽을 생각으로 끼니를 끊고 누워버린 아들 종수를 보며 엄마는 그런 아들이 몹쓸 병에 걸린 것 같다며 대형 병원을 찾아 여러 검사를 받게 했지만, 소용없었어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무속인을 찾아가 물었고, 무속인은 종수에게 귀신에 씌었다며 굿을 하라고 했어요. 용하다는 무당들 굿을 여러 차례 받았지만, 종수는 변하지 않았어요.
종수는 병원 병실에 갇혀 갖가지 검사를 받을 때도, 무당들의 굿판에 끌려가 앉아 있을 때도 동건에 대한 그리움 말고는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어요. 종수는 동건에게 자신이 여자가 되어 다시 만나러 가겠다는 편지를 보냈고, 동건의 짧은 답장이 왔어요.
종수에게
처음 네가 나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너무 당황스러워 네게 미숙하게 대했음을 용서해 주기를 바라. 미안했다.
그리고 나는 너와 다르다는 것을 네가 알아줬으면 좋겠다.
너를 친구로 만날 수는 있지만, 나를 이성으로 대하는 너는 만날 자신이 없다.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살든, 너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고 살아 주실 바란다.
동건의 짧은 글은 종수에게 거절 감도 안겼지만, 자신부터 남들과 다른 자기를 인정하고 사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종수는 정말 자기를 찾기 위해 엄마에게서 도망쳤어요.
종수 엄마는 아들의 행방을 알기 위해 무속인들에게 더 의지했지만, 아들 종수를 찾을 수 없었어요. 아주 많은 세월이 흘러 그녀 앞에 어떤 고운 여자가 나타나 ‘종수’라는 이름을 말했어요. 종수는 자신의 정체성 혼란에 대한 결말을 스스로 만들어 나타났어요. 성전환 수술을 받아 여자가 된 종수 모습을 대면한 엄마는 모든 것이 남자다움이 없었던 남편 탓이고, 친구를 잘 못 사귀어 일어난 일이라며 통곡했어요. 종수 엄마는 결코 끝내 종수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하는 법을 알려하지 않았어요.
‘여자’ 당신이 동산에서 창조주를 속이고 먹었던 불신의 열매가 생각났어요. 창조주의 물음에 남자는 여자인 당신을 탓했고, 당신은 못 땐 것의 간사한 속닥임에 속았다 발뺌했죠? 남자와 당신은 불신의 눈빛이 생겨, 상대의 죄와 수치만을 보게 하고 판단하는 열매인 것을 알고 서로에게 토라져 있었죠. 당신들은 대화를 통해 자신의 죄를 돌이켰기에 다시 사랑할 수 있었다고 했죠? 그런데 왜 내가 본 엄마들은 자신들의 죄를 돌이키려 하지 않는 것일까요?
어째서 똑같은 이름을 가진 엄마라는 사람들은 자기 뱃속에서 뿌리내린 자식은 절대적인 보호의 대상이 되고, 다른 여자의 몸에서 세상으로 나온 자식들은 공격하는 존재로 인식하는지? 엄마 자신이 살아온 인생 여정을 모르는 자식에게 자기 삶을 보상받고 싶은 목적으로 자식을 양육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런 것을 사랑이라 말하는 엄마라는 사람들이야말로 ‘영희’ 당신이 섰던 가면보다 더 두껍고 전교한 가면을 착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