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희

by 조은이

‘여자’ 당신처럼 어떤 위기가 있을 때마다 모든 것을 해결하고 책임져주는 창조주가 있다면, 당신 인내의 무게를 함께 나누는 남편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우리가 살아 내야 하는 세상에는 플라스틱이 본 엄마들의 모습이 솔직한 모습일지도 몰라요. 나는 ‘여자’ 당신처럼 그런 엄마, 어머니를 꿈꾸어 욕심낸 적도 없고, 플라스틱이 본 엄마들처럼 철저하게 자기 자식만을 보호할 수 있는 세상에서 얻고 쌓아 놓은 힘도 없었어요.


이른 새벽 골목 가로등 배웅을 받으며 일터로 나가 늦은 밤 가로등 불빛의 기다림을 바라보며 들어온 언덕 옥탑방에 지친 몸을 뉠 때마다 아이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얼마나 많은 눈물을 쏟아냈는지 몰라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날은 미나와 동건이를 보낸 집 주변을 서성이고 배회하며 아이들의 흔적을 두리번거렸죠. 운이 좋아 우연히 아이들을 보고 온 날은 어김없이 출산의 고통을 다시 겪는 것 같은, 가슴이 으스러지고 머리가 산산조각 부서지는 괴로움을 감당해야 했어요.


공기는 매일 들이마셔도 줄어들 줄 모르고, 아침 해는 휴일도 없이 떠올라요. 밤하늘 무수한 별은 자기 자리를 잊어버리는 법이 없고, 바람도 구름도 갈 곳이 정해진 것처럼 흘러가요.
혼자 살아온 영희는 이십팔 년이고, 아내와 엄마의 역할로 살았던 시간은 고작 사 년인데… 왜 나는 예전 영희로 돌아온 것이 이리도 낯설고 견디기 힘든 것일까요? 미나와 동건이 모습은 들이마셔도 줄지 않는 공기처럼 떠 올라 고통스러웠지만, 아이들의 얼굴을 떠올리지 않고는 공기가 없는 것 같은 호흡 곤란에 시달렸어요. 죽지 못하고 마주하는 매일 떠오르는 해는 야속했지만, 내 딸과 아들을 먼발치에서라도 볼 수 있는 하루를 얻었다고 여겼죠. 내가 분리된 존재 영희의 자리로 돌아왔던 것처럼 미나와 동건이도 어쩌면 밤하늘 별처럼 내 딸과 아들의 자리를 잊지 않고 돌아올지 모른다는 기대로 바람을 타고 구름을 따라 세월을 보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동건이가 사는 집 주변을 맴돌다, 아이의 거센 울음소리가 담장을 넘어 내 가슴을 조여 왔어요. 나도 모르게 울음소리에 이끌려 들어간 집에는 술에 취한 양부에게 매를 맞으며 바들바들 떨고 있는 내 아들 모습이 눈에 들어왔어요. 동건이는 나를 향해 절박한 걸음마를 떼듯 바라보았고, 순간 나는 동건이를 술주정뱅이 남자에게서 낚아채 품에 안고 정신없이 뛰었어요.


그는 사업에 실패하고 아내와 이혼하면서 술에 빠져 살았다고 했어요. 처음에는 동건이가 의지 되었지만, 동건이를 입양한 이후 아내와 자주 다툼이 생긴 것을 생각하니 자신의 불행이 동건이 때문인 것 같아 수시로 동건이를 학대했다고 고백했어요. 그는 동건이를 다시 데려가라고 했어요. 내 품을 떠난 지 삼 년을 훌쩍 넘기고 돌아온 아들을 품에 꼭 안고 몇 날 며칠을 품에서 내려놓지 않았네요.


동건이 그늘진 얼굴에 안전함이 깃들어 예전처럼 통통하게 살이 올라 늠름해졌어요. 미나는 별 탈 없이 자라 어느새 초등학교에 입학해 발레리나가 되겠다는 꿈이 생겼고, 학교가 끝나면 발레 학원에서 예쁜 발레 옷을 입고 거울 앞에서 천사가 되어 있었죠.




동건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학교 담임 선생님의 다급한 전화를 받고, 학교 근처 파출소에 갔을 때 민석이를 만났어요. 동건이와 같은 반이었던 민석이는 평소 조용하고 소심한 성격으로 늘 혼자 다녔다고 해요. 그런 민석이가 학교 주변에서 중학생들에게 돈을 뺏기고 괴롭힘 당하는 것을 보고, 동건이가 물불 가리지 않고 중학생 형들에게 달려들었다고 했어요. 대여섯 중학생들 얼굴이 엉망이었죠. 나보다 조금 늦게 도착한 민석이 아버지도 아내 없이 혼자 민석이를 돌보고 있었고, 파출소 순경들에게 연신 머리를 조아렸어요.

그 일로 민석이는 동건이와 좋은 친구가 되어 우리 집에 자주 오가게 되었고, 민석이 아버지는 민석이를 챙겨 주는 내게 이런저런 먹을 것을 가져다주며 고마움을 표현했죠. 그렇게 자주 얼굴을 보게 되어 가까운 이웃이 되었고, 그는 나의 두 번째 남편이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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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병든 아버지를 대신해 생계를 꾸려야 했던 어머니와 가난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고 했어요. 시장통에서 나물 파는 노점을 하는 어머니가 고생스러워 보였지만, 병든 아버지도 어머니도 서로를 아끼고 위하는 것을 보며 자랐다고 했어요. 어느 때부터 자기를 지켜보는 어떤 여학생 시선이 느껴졌고, 어머니와 아버지는 그런 여학생을 부담스러워하는 그를 놀려댔데요. 그는 여학생에게 어머니 노점상 근처에는 오지 말아 달라 부탁하기 위해 만남을 청했고, 아침에 어머니에게 오후에 친구와 약속이 있어 노점상 정리를 도와줄 수 없다고 말하고 나왔어요. 그날 명희와 만남을 약속한 빵집으로 가는 길목 도로변 멀찍이 자기를 대신해 불편한 몸으로 어머니 마중을 나온 아버지를 보았어요. 어머니 나물 보자기를 나누어 들고, 오르막길을 천천히 오르는 부모님 모습을 보고, 명희를 만나러 가는 자기 모습이 죄스러워 길가에 주차된 차 뒤로 몸을 숨기는 사이 내리막길을 질주하던 트럭 한 대가 부모님을 덮쳤고, 두 분이 함께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고 했어요. 그는 그렇게 홀로 남아 떠돌이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고...


세상 구경하며 떠돌다 돈이 떨어지면 적당한 일을 찾아서 하고, 떠돌다 지치면 산속 사찰에 들어가 쉼을 얻었다고 했어요. 돼지 축사에서 일하며 잠시 머물렀던 동네에서 한 여자를 만났고, 그 여자도 명희처럼 그의 주변을 기웃거리며 얼굴이 붉어졌다고 해요. 그는 그녀의 순수한 고백에 외로웠던 마음에 뭔가 채워지는 듯 그녀가 사랑스러웠다고 했어요. 그녀가 아무것도 없는 자기를 따라나섰을 때, 그녀를 꼭 행복하게 해 주어야겠다는 책임감도 느꼈다고 했어요. 그러나 그 여자는 떠돌이 생활에 지쳐 아이만 출산해서 그에게 맡기고 처녀 행세하며 돈 많은 다른 남자에게 시집갔다고 했어요.


남편은 혼자 민석이를 키우면서 일하기 시작한 공장 일을 계속하고 있었고, 나는 동건이와 민석이 두 아들의 어머니가 되었어요. 민석이를 데려오지 못하는 미나를 생각하며 마음 써 챙겼지요. 동건이는 정의롭고 용기 있는 남자다운 아이였고, 민석이는 선한 심성을 지닌 아이였죠. 동건이와 민석이 잘 자라 주었고, 가끔 미나를 멀리서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내 삶에도 작은 빛이 드리워지는 듯했어요. 남편은 말 없고 표현에 서툰 사람이었고 그도 나처럼 ‘남편’ , ‘아빠’라는 이름표의 의미에 대해 모르는 듯했지만, 우리는 그저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이 서로에 대한 역할 또는 사랑이라 여기며 살았어요. 나는 남편이 생겨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고된 일을 하지 않아도 됐고, 남편은 자기를 대신해 민석이에게 엄마 역할을 해 줄 수 있는 여자가 생겨 안정되어 다행이라 여기는 것 같았어요. 첫 번째 남편으로 인해 부부 성생활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지만, 그는 내 몸에 예의를 갖춰주었어요.


동건이와 민석이가 중학생이 되었고, 바깥 활동을 좋아하는 동건이는 친구들이 많아 늘 밖으로 돌았어요. 민석이는 집에 있는 날이 많아 나는 그런 민석이와 대화가 많은 어머니였죠. 우리 가정 상황을 잘 모르는 주변 사람들은 덩치가 크고 남성미가 물씬 풍기는 동건이보다 왜소하고 차분한 민석이가 나를 더 닮았다고 말하곤 했어요.


그날도 동건이는 친구들과 학교 운동장에서 축구하느라 늦는다고 했고, 민석이는 학교가 파하고 늘 들어오는 시간에 집에 와서 나와 소소한 대화를 나누며 저녁밥 짓는 것을 돕고 있었어요. 갑자기 울리는 요란한 전화벨 소리가 그날따라 내 심장을 쿵쾅거리게 했고, 전화를 받던 민석이 얼굴은 창백해졌어요. 남편이 공장 안전사고로 응급실에 있다는 연락을 받고 우리는 허겁지겁 병원으로 갔어요.

남편은 내가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민석이를 부탁한다는 말을 힘들게 뱉어내고 숨을 거두었어요. 그 시간 우리가 살던 집은 화재가 발생했고, 나는 두 번째 남편도 작은 집도 잃고 말았어요. 그 사람이 일했던 공장에서는 그 사람으로 인해 공장 기계를 교체해야 하는 손실과 기계를 제대로 돌리지 못해 생산라인에 문제가 생겨 피해가 있었다며 민사소송을 제기해야 할 상황이라고 했어요. 장례비용 정도로 합의를 종용하는 공장 입장을 민석이에게 전했고 민석이는 합의할 수밖에 없었어요. 얼마 되지 않는 아버지 목숨값을 손에 쥐고 시선을 떨구는 민석이를 보며 민석이 ‘어머니’라는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무력한 제가 참으로 한심하고 미안했어요.


민석이와 나는 장례를 치르고 집을 정리해 소도시 변두리로 이사했어요. 동건이는 살던 곳을 떠나기 싫다며 이웃집 절친한 친구네에서 지내기로 하고 함께 하지 않았죠. 다행히 이웃집에서도 외동아들인 아들에게 동건이가 든든하다며 배려해 주었어요. 나는 사실 동건이는 내 눈앞에서 씩씩하게 자라 주어 걱정하지 않았어요. 민석이를 보면서 언제나 연약한 미나를 떠 올렸기 때문에 늘 동건이보다 민석이에게 세심하게 마음 썼던 것이 동건이에게는 상처가 되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나는 내 아들 동건이를 믿었어요. 어릴 때처럼 다시 내 품으로 돌아올 것이라고요.




발레 콩쿠르에서 좋은 성적을 받아 신문에 사진이 실린 미나 모습을 봤지만, 한동안 미나를 찾아보지 못했어요. 미나 앞에 나설 수는 없었지만, 미나가 예쁘게 자기 꿈을 이루어 가는 모습을 조금이라도 가까이에서 보고 싶어, 미나가 다니는 고등학교 앞에서 떡볶이와 어묵을 파는 노점상을 시작했어요. 아침에 집을 나서 3시간 가까이 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해 학교 앞에 도착하면, 점심때부터 늦은 오후 하교 시간까지 장사를 할 수 있었어요. 저녁이 되면 또 3시간을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밤 10시가 넘어서 집 근처에 도착해요. 하루도 빠지지 않고 동네 입구 버스 정류장에서 나를 기다리는 민석이는 이십여 분 정도 걷는 구불구불 산 동네 길을 나란히 걸으면서 좀 가까운 동네에서 하면 안 되냐는 말을 잊지 않아요. 나는 속으로 대답해요. 그곳에 갈 수 있는 아침이 설레고 돌아올 때마다 내일 갈 수 없을까 봐 걱정된다고요.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데, 어느 때부터 미나 모습을 볼 수 없었어요. 또래 아이들이 떡볶이를 먹으며 학교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여러 말을 했지만, 미나가 무수한 소문의 주인공이라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어요.

미나는 각가지 억측과 괴담 뒤로 없어져 버렸어요. 노점을 접고 오랜 기간 미나가 사는 동네 집 근처를 둘러보았지만, 도대체 내 딸 미나는 어디로 가 버렸는지 도통 알 수 없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텔레비전 뉴스 속 화면에서 완전하게 달라진 미나 모습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어요.


내 딸 미나 무너진 모습은 참으로 처참했고 참담했어요. 경찰 통제와 보호 아래 취재진에게 시달리며 경찰 수송차에 오르는 미나를 보았어요. 나는 어떤 생각조차 할 정신없이, 미나를 입양 보내고 처음으로 미나 양부모를 찾아가 무릎을 꿇었어요. 내가 치를 대가가 있다면 미나 대신 내가 치를 터이니, 미나를 경찰서 철창 밖으로 꺼내 달라고 했어요. 양부모도 피해자와 합의를 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지금까지처럼 미나 앞에 나타나지 말라고 했어요. 피해자 남자 무용수는 미나 양부모를 만나주려 하지 않았고, 오히려 미나에게 무고죄를 덧씌워 고소하겠다며, 합의를 하지 않으려 했죠. 내 목숨을 담보로 미나 억울함을 풀어 줄 방법이 있다면 그렇게라도 하고 싶었어요. 나만큼 무능력한 어머니가 있을까요? 물을 아무리 마셔도 온몸 수분이 말라 몸이 뒤틀리는 것 같았고, 인파 속을 걸어도 온통 미나 모습만이 어른거렸어요. 그렇게 정신을 놓던 중 문득 같은 동네 살았던 혜진 씨 생각이 났어요. 여성 인권을 대변하는 일을 하면서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거든요.

살던 동네에 찾아가 혜진 씨 연락처를 수소문해서 알아냈고, 혜진 씨가 일한다는 사무실을 찾아가 무턱대고 혜진 씨를 찾았어요. 운동화와 슬리퍼를 한 짝씩 신고, 영하로 떨어진 추위에 코트도 점퍼도 걸치지 않은 정신 나간 아줌마로 사무실에 들이닥쳐 혜진이라는 이름을 찾는 내게 여학생 한 명이 다가와 상담실로 안내했어요. 학생은 나를 의자에 앉히고 담요를 둘러주고 뜨거운 보리차를 담은 컵을 내 두 손에 쥐여 주었죠. 그리고 내 손에 쥐고 있는 종이쪽지에 적힌 혜진 씨 이름과 연락처를 보고 전화를 걸어 주었어요.

한참 뒤 혜진 씨가 나타났고, 블라인드로 가리진 상담실에서 나는 두려운 가슴을 움켜쥐고, 떨리는 입술로 혜진 씨에게 입양 보낸 미나에 대해 털어놓았어요. 혜진 씨는 촉촉한 눈빛으로 어쩔 줄 몰라하는 내 두 손을 꼭 잡았어요. 그리고, 잠시 나가 털 신발 한 켤레를 가지고 와 내 발에 신겨주며 말했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미나는 곧 풀려날 거예요. 그리고 미나는 꼭 어머니를 찾아올 거예요. 그때를 생각해서라도 스스로를 잘 돌보셔야 해요. 발이 꽁꽁 얼었잖아요. 미나가 돌아왔을 때 어머니 모습을 보고 눈물이 아닌 미소로 바라볼 수 있도록 자신을 돌보며 사세요.”

신발을 신겨주던 혜진 씨 손이 얼마나 따뜻하던지 나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고 말았네요. 혜진 씨는 그런 나를 꼭 안아주었고, 나는 지금껏 꼭꼭 싸서 숨겨 두었던 응어리 보따리가 풀리는 것처럼 목 놓아 원 없이 울었네요.


혜진 씨는 미나 입양 사실은 동료들에게 알리지 않았고, 미나 현재 상황만을 설명했어요. 그리고, 그 당시 미나 사건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고, 미나에게 변호사를 보내주었죠. 그리고 다녔던 학교의 이해하기 어려운 대처와 남자 무용수 실체에 관한 이야기들을 인터넷에 올라오기 시작했어요. 미나의 억울함을 대변하는 여자들이 온라인으로 모이기 시작했죠. 언론에서 미나 과거 사건에 대해 조명하면서 피해자 무용수는 미나 양부모와 합의해 주었어요. 미나는 경찰서에서 나왔지만, 꿈도 미래도 없는 아이가 되어 무력한 존재로 머물고 있었어요.

빛도 물도 없는 메마른 땅에 강한 생명이 뿌리를 내려 싹을 틔웠어요. 가엽고 기특해 비옥한 기름진 땅으로 옮겨 주었더니, 예쁜 나무가 되었지요. 잎이 무성해지고, 탐스러운 꽃을 피우기 위해 몽글봉글 수줍은 봉오리가 가지마다 맺혔어요. 어떤 봉오리에서 어떤 꽃이 세상을 향해 피어오를까를 기대하는 세상 시선 속에 못 땐 괴물 하나가 신분을 감추고 보고 있었지요. 괴물은 보기에 너무 어여쁘고 탐스러운 것이 질투 나서 꽃봉오리를 꺾어 버렸어요. 피지도 못하고 떨어진 꽃봉오리는 서서히 변색되어 썩어 문드러져 사라지고, 나뭇가지 잎은 하나둘 떨어지고 나무는 말라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었어요.


미나는 혼자 아파트 놀이터에 멍하니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았어요. 다가가 그냥 내 품에 꼭 안고, 내 생명을 거름 삼게 하고 살려내고 싶었어요. 나는 미나 옆에 와 있었어요.

“학생, 여기서 만나네, 아줌마 기억나요? 학교 앞에서 떡볶이 팔았던…”

“어, 아줌마 안녕하세요. 이 동네 사세요?”

“아니, 아주 멀리 사는데, 이 동네 보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 나도 뉴스에서 학생 봤는데, 내 주변 사람들은 다 학생 편이에요.”

“진짜요?”

“학생이 얼마나 용기 있는 여전사 같은 존재인지 이렇게 혼자 있으니, 학생만 모르지. 다들 학생을 얼마나 응원하는데… 학교 앞에서 떡볶이 팔면서 다른 학생들 이야기 들어 보면, 모두 그 남자 무용수가 나쁜 놈이고 학생이 그놈 때려줘서 속이 시원하다면서 난리던데. 학생은 왜 이렇게 코가 빠져 혼자 있어요?”

“세상 사람들이 나를 손가락질하고, 나를 용기 있는 학생이라고 응원해도, 가족들이 제게... 아무런 반응 없는 엄마 아빠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제가 아주 잘못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아빠는 그 사건 이후 내 얼굴을 제대로 보지 않으려 하고 엄마는 나를 보고 있는 게 싫은 건지! 유학 가라 하세요.”

“그럼 유학 가서 다시 공부해요. 부모님은 학생이 힘내서 시작하기를 원해서 그러시는 거예요.”

“정말요?”

“그럼요.”

“근데 저는 엄마 아빠 오빠들이 남처럼 느껴져요. 유학 가라는 말이 왠지 나를 가족들로부터 분리하려고 하는 것 같은…”

“학생이 아직 어려서 모르는 모양인데, 아줌마 아들도 밖에서 싸우고 들어올 때가 있는데… 나는 아들한테 대놓고 말해요. 싸우고 얼굴에 상처라도 생기면 집에 들어오지 말라고.”

“아줌마도 아들이 보기 싫은 거죠?”

“아니, 아들이 보기 싫은 게 아니라, 아들 얼굴에 생긴 상처가 가슴 아파서 그래요. 세상 모든 엄마는 자식에게 털끝만 한 상처라도 눈에 보이면 견딜 수 없이 아프거든요. 내 귀한 새끼 얼굴에 상처가 생겨 속상하고 화가 나는데, 상처가 아물 때까지 아무것도 해 줄 수 없고 속만 상하거든요. 그런 모습을 아들에게 들키면 아들이 얼마나 미안해하겠어요. 학생 아빠도 학생 얼굴을 보면 마음이 아파서, 엄마도 학생 보고 있으면 엄마 약한 모습 들켜서 학생 마음 더 힘들게 할까 봐 그러는 거예요. 오빠들은 자기들도 똑같은 남자라 학생에게 미안해서 그럴 거예요.”

“정말요?”

“학생은 아직 엄마가 안 돼 봤으니까, 엄마가 돼 본 아줌마 말 믿어 보세요. 유학 가서 열심히 공부하고 회복해서 예전 모습으로 돌아오면 엄마 아빠도 예전처럼 대해 줄 거예요. 그러니 다른 생각 말고 부모님 말씀 듣고 부모님 원하는 대로 유학 갔다 와요.”

“부모님이 기대하고 기다려 줄까요?”

“그럼요, 이 세상 모든 엄마는 언제나 자식을 기다리고 포기하지 않아요.”

“아줌마에게는 아들만 있어요?”

“아니요, 내게도 학생 같은 예쁜 딸이 있어요.”

“아줌마 딸은 참 좋겠어요. 아줌마 같은 엄마가 있어서요.”

“글쎄요, 내가 딸에게 못 할 짓 한 게 많아서 딸이 나에 대해 알고 나면 나를 보지 않으려 할 거예요.”

“근데, 아줌마 음성이 늘 들었던 것처럼 익숙해요.”
“학교 앞에서 학생이 떡볶이 딱 세 개만 달라고 자주 왔었잖아요.”
“죄송해요. 그때는 체중 관리하느라 마음껏 먹을 수 없었어요.”

“알아요. 종이컵에 떡볶이 세 개 주고, 학생이 항상 한 접시 값을 주고 가서 나는 수지맞은 장사 했지요.”


미나는 항상 천 원짜리 한 장을 내밀며 떡볶이 세 개만 달라고 했어요. 더 묻지 않고, 미나를 위해 특별히 준비해 둔 덜 매운 떡볶이 세 개를 주었죠. 미나에게 받은 천 원짜리 지폐는 한 장도 사용하지 않고, 잘 보관하고 있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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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는 얼마 뒤 독일 유학길에 올랐어요. 내 딸 미나를 또 내 손으로 더 먼 곳으로 보내고 말았어요. 미나를 보내고, 나는 자리보전하고 누워 몇 날 며칠 먹먹한 가슴으로 끙끙거렸어요. 몸 구석구석 건드릴 수도 없을 만큼, 원인을 알 수 없는 통증으로 앓았지요. 이른 새벽 정신을 차려 보니, 민석이가 쪼그리고 앉아 내 옆을 지키며 잠들어 있었어요. 몸을 일으켜 민석이를 이불속으로 끌어당겨 베개를 베 주고 민석이 얼굴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어요. 내 딸 미나와 동건이는 나 같은 엄마라도 존재하지만, 민석이는 나처럼 엄마도 아빠도 없는 세상 속 독립된 개체 같은 존재라 생각하니 한없이 가엽고 안타까웠어요.




동건이와 민석이가 고등학생이 되어 대학 진학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가 다가오면서 생활고는 현실의 결핍을 더 크게 했어요. 혼자 일해 두 아이를 공부시킨다는 것이 참 버거웠지만, 동건이와 민석이가 아르바이트해 보탬이 되기도 했어요. 동건이는 친구들과 여전히 따로 살고 있었고, 나는 민석이 학교 근처에서 분식 노점을 하고 있었어요. 민석이는 학교가 끝나면 늘 내 노점상으로 와서 같이 정리하고 마무리하는 것을 돕고 있었죠. 장사하느라 핸드폰을 제대로 챙겨 보지 못했는데, 장사를 접으며 핸드폰을 확인해 보니 동건이 학교 담임이 여러 번 부재중 전화를 했고, 메시지도 남겨 두었더라고요.
같은 반 친구 종수라는 아이가 동건이 오토바이를 같이 타고 가다, 사고 나서 병원에 입원 중이라고 했어요. 종수에게 돈도 뺏고 불량 아이들 틈에 데리고 다니며 술, 담배를 가리켜 종수 어머니께서 학교 측에 동건이 퇴학을 요구해 왔다고 했어요. 누군가를 어떤 식으로든 가해할 만한 아들이 아니라는 확신이 있는 나는 일단 동건이 이야기를 듣고 종수 어머니를 만나 보겠다고 했어요.


민석이 없이 밖에서 동건이를 따로 만나 사고로 다친 곳은 없는지 확인부터 했지만, 다행히 크게 다친 구석은 없어 보였어요.

“엄마, 엄마도 담임처럼 내가 불량 학생이라 생각해?”

“너 같은 아이를 불량 학생이라고 하니?”

“담임도 종수 엄마도 내가 길거리 분량 청소년이라 여기고 내 말을 믿어 주지 않으니까.”

“엄마는 내 아들 입에서 나오는 말만 믿을 거야. 엄마에게 진실을 이야기해 주겠니?”

“엄마는 내가 민석이를 질투해서 엄마와 같이 살지 않는다, 생각하지?”

“민석이에게 질투했어?”

“질투 같은 감정인지 어떤 단어로 표현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나는 엄마를 보호해야 하는 존재 같고, 민석이는 엄마에게 보호를 받아야 할 것 같은… 내가 민석이를 싫어해서가 아니라 가끔 내 엄마를 민석이에게 양보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럴 때 기분이 좀 그랬어. 지금은 민석이가 엄마 옆에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나하고 엄마하고 둘만 살았으면 엄마 혼자 두고 내가 밖으로 자유롭게 다닐 수 없었을 거야. 민석이가 있어서 엄마 혼자 있을 일이 거의 없잖아. 나 혼자만 의식하고 있는 민석이에 대한 미안함 같은 마음이 좀 있었는데, 종수를 보는데 민석이 생각이 났어. 친구도 잘 못 사귀고 늘 뭔가에 주눅 들어 고개 숙이고 다니는 종수가 나하고 친구 되고 싶어 하는 것 같아 친구 했을 뿐이야. 종수 엄마, 아줌마 말처럼 종수 돈 뜯은 적도 없고, 술 담배는 요즘 애들 한 번씩 해 보는데, 종수에게 권한 적 없어. 종수가 스스로 몇 번 해 본 거야. 오토바이는 타고 싶어 하는 것 같아 내 뒤에 태우고 다녔는데, 그날은 운이 없어서 미끄러졌어.”

“그래 엄마는 내 아들 말 믿어, 엄마하고 같이 학교 가서 엄마가 선생님 앞에서 내 아들 거짓말한 적 없다고 분명하게 이야기할게”

“엄마, 학교 가서 이야기하고 학교는 그만 다니고 싶어.”

“왜? 그래도 학교는 나와야지. 1년 반만 다니면 졸업인데….”

“검정고시 준비하면서 아르바이트해서 돈 벌고 싶어.”


동건이는 자기를 불량 학생으로 낙인찍고, 믿어 주지 않는 학교에 미련이 없다고 했어요. 종수 어머니에게 사과해야 할 일도 없고, 종수에게 친구로서 진정성 있게 대했다고 했어요. 나는 그런 아들을 그냥 믿고 원하는 대로 따라 주었어요. 그리고 학교 자퇴서 내는 날 동건이가 사는 집에 같이 갔어요. 졸업생 선배와 사는 반지하 투 룸에는 청소도 정리도 제대로 돼 있지 않았고, 그동안 민석이를 통해 보내준 반찬 통이 여기저기 나뒹굴고 밥통 밥은 언제부터 말라 있었는지… 동건이는 엄마를 위해 저녁을 짓겠다 나섰고, 나는 동건이 집을 구석구석 청소하고 정리했어요. 아들이 차려 주는 밥상에 마주 앉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어요. 민석이와 가족이 된 후로 한 번도 동건이와 둘만의 상을 앞에 두고 앉은 적이 없었다는 것이 어찌나 미안하고 미안한지... 엄마라는 이름을 가진 나는 어째서 이렇게 놓치는 것이 많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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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를 스스로 용기 있게 이겨 내려는 딸 미나와 변명보다는 떳떳하게 직면하고 책임지려는 아들 동건이,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엄마를 의지하고 옆을 지키는 민석이에게 나는 그냥 그 아이들에게 한없이 무력하고 부족 한 엄마일 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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