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by 조은이

플라스틱은 무엇으로 만들어져 사용되든 적절한 보상이 따르고, 인간에게 세상에 어떤 영향을 끼치든, 책임감 같은 것은 느낄 필요가 없어요.

생명을 몸속에 잉태하는 순간 모든 것을 희생하는 여자가 엄마가 되고, 어머니가 되어 인내의 무게를 견뎌 낼 때, 사랑의 불씨를 만들어 낸다고요? 그런데도 자식에게 어머니라는 이름은 한없이 무력하고 부족하다고요? 보상도 없고, 눈에 보이지 않고 잡히지 않는 것을 위해 왜 그런 역할을 자초하는지 잘 모르겠군요.

내가 만난 그녀들은 자기 몸속에서 잉태된 생명도 아니고, 어떤 무엇 때문에 어떤 역할을 강요받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어머니라는 이름을 선택했어요.



정임은 딸 셋을 둔 의사 출신 정치인 남자 아내가 되어 아들을 출산했어요. 그녀가 낳은 아들은 집안 어른들과 남자의 사랑을 독차지했고, 그 아들로 인해 남자의 딸들은 어린 남동생 그림자 같은 존재로 전락해 버린 듯했어요.

그런 딸들은 자기들 달라진 처지가 아버지가 데리고 들어 온 새엄마, 정임 때문이라 여기고, 정임에게 아주 못됐게 굴었죠. 정임의 명품 가방과 옷에 락스를 뿌려 못쓰게 만들고, 정임이 먹을 음식에 여러 가지 방법으로 먹지 못하게 해코지하고, 정임의 방에 죽은 쥐나 새를 던져두고… 정말 기상천외한 각가지 행태로 정임을 괴롭혔죠. 하지만, 정임은 웬일인지 그런 딸들에게 어떤 싫은 말 한마디 하는 법이 없었어요.


정임에게는 사실 사랑하는 남자와의 사이에서 얻은 아들이 있었어요. 그 아들에게 넉넉한 경제적 지원을 조건으로 지금의 남자 아내가 되어 이 집으로 들어오게 되었죠. 남자는 정임을 무척 사랑한다고 했고, 아들만 낳아 주면 집안 어른들을 설득해, 두고 온 아들을 데려와 같이 키우겠다는 약속도 했어요. 하지만, 남자는 그런 약속 같은 것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것 같았어요. 정임이 두고 온 아들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무심하게 못 들은 척했어요.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정임에 대한 사랑이도 식은 듯, 밖에서 다른 여자들을 만나 외도를 일삼았고, 그러면서 정임에게는 두고 온 아들 주변을 기웃거리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죠. 정임은 아들에 대한 그리움 덩어리 무게에 눌려, 세 딸의 괴롭힘도 남편의 외도와 무관심도 그리 신경 쓰이지 않았어요. 어느 때부터 세 딸의 괴롭힘은 반응 없는 정임의 모습에 지친 듯 수그러들었고, 남자는 정임에게 세상에 보이는 쇼윈도 부부 모습만으로 만족해했어요.


두고 온 아들이 남편처럼 의사가 되면 데리고 올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으로 아들에게 의사가 되어 달라는 당부를 했었어요. 하지만, 부질없는 생각이었어요. 정임은 화려한 집 전시용 값비싼 가구 같은 존재로 머물던 그 집을 떠나 아들에게 돌아가려 했지만, 큰딸이 친모와 같은 유전병으로 쓰러지고 말았죠.

정임은 큰딸이 회복되면 아들에게 돌아가겠다는 생각으로 큰딸이 속히 일어나길 바라며 정성껏 돌보았고, 큰딸은 병원에서도 놀랄 만큼 회복되었어요. 이 일로 정임을 괴롭힐 궁리만 하던 세 딸은 정임에게 마음을 열었고, 위선적이고 교묘한 괴물, 아버지를 대신해 정임에게 깊이 의지했어요. 회복한 큰딸 학업을 마무리하면 돌아가야지, 둘째 딸 대학 졸업하면 돌아가야지, 막내딸 입시만 끝나면 돌아가야지…. 그렇게 시간이 훌쩍 지나고 두고 온 아들을 찾았지만, 아들은 어디론가 사라진 뒤였어요. 정임은 아들을 찾기 위해 여러 해 여러 곳을 알아보았고, 마침내 아들과 같은 의대를 졸업한 친구를 통해 여자를 만나 결혼했다는 말을 전해 들을 수 있었어요. 평범한 가정을 일구고 자식을 두었다는 말을 들으니, 오히려 자기 존재가 잠잠한 아들 인생에 혼란을 줄 것 같아, 돌아가기를 포기하고 말았어요.


정임은 두고 온 아들이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살든, 못난 엄마는 지워버리고 자기 가정을 잘 꾸려 나가길 기도했어요. 그리고 자기 몸을 통해 세상에 나오지는 않았지만, 자신을 의지하는 세 딸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존재로 최선을 다했죠. 세 딸은 타고 난 배경과 괴물로 사는 아버지를 그리 신뢰하지 않았고, 새어머니 정임의 진심 어린 사랑과 돌봄을 받으며 정임의 마음과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인성이 반듯한 사람으로 성장했어요. 하지만, 정임이 낳은 늦둥이 아들은 정임의 엄격한 훈육에도 불구하고, 집안 어른들과 아버지의 맹목적 사랑 속에서 아버지와 닮은 행실로 정임을 근심하게 했죠.


큰딸 명주는 인권 변호사가 되어 사회 약자들을 위해 싸우고 있었고, 둘째 명지는 의사가 되어 거리 노숙자와 연약한 이웃들에게 무료 진료로 헌신하는 삶을 살고 있었죠. 셋째 명은 방송사 기자가 되어 사회 불공정과 불의를 파헤치고 고발하는 일로 분주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텔레비전 뉴스에서 살인사건의 용의자가 된, 두고 온 아들 모습을 볼 수 있었어요. 정임은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훌륭한 의사가 되길 바랐는데, 생명을 무참하게 죽인 흉악범 괴물이 되어 버린 아들 모습에 절망했어요. 정임은 모든 것이 자기 탓이라 자책하며 깊은 우울감에 빠지고 말았죠. 큰딸 명주는 어머니 슬픔을 헤아리고 어머니 대신 어머니 아들을 찾아가 신분을 드러내지 않고 변호를 자처했지만, 그는 무기징역으로 감옥에 수감되고 말았어요.

정임은 아들이 수감된 감옥 높은 벽을 바라보고 회한이 서린 눈물 줄기를 만들어 내며 생각했어요. 아들을 보호하겠다고 쌓아 올린 벽에 결국 아들을 가둬버렸음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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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주 사무실은 언제나 억울한 사람들 사연이 넘치는 곳이었어요. 명주는 그들이 법적인 보호 아래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돕고 있었죠. 그날도 업무량이 많아 새벽녘까지 혼자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사무실 문이 벌컥 열리고, 퉁퉁 붓고 멍든 몸에 피투성이 찢어진 옷가지를 걸친 여자가 불쑥 들어왔어요. 그녀는 바들바들 떨며 자신이 사람을 죽였다고 했어요. 찬찬히 얼굴을 보니 얼마 전 늦은 밤 사무실 옆 골목길에서 남자에게 머리채를 잡혀 끌려가던 여인이었어요. 명주는 남자에게 다가가 여자 머리채를 놓으라며 전화기를 꺼내 신고하겠다 말했고, 남자는 여자 머리채를 내팽개치고 험한 욕을 뱉고 자리를 떠나버렸죠. 여자에게 경찰서에 가서 남자를 고발하라 설득했지만, 여자는 구타당하고 유린당한 자기 몸이 수치스러운 듯 가리고 움츠리며 다급하게 그곳을 벗어나려고만 했어요. 명주는 그녀에게 자기 명함을 쥐여 주며 사무실 위치를 알려 주고 자신을 꼭 찾아오라고 당부했었어요.


명주는 경찰에 신고부터 했고, 출동한 경찰에 혜진을 인계하며 자신이 혜진의 법률 대리임을 알렸어요. 혜진에게는 걱정하지 말라며 안심시키고 경찰차에 오르도록 했죠. 혜진은 여성 인권 단체와 명주 도움을 받아 정당방위로 풀려날 수 있었지만, 혜진의 몸속에 생명이 자라고 있었어요. 혜진은 끔찍한 괴물의 생명이 자기 몸속에서 꿈틀거리는 것 같아 몇 번이고 낙태를 생각했지만, 그러지 못하고 생명을 출산했어요. 혜진은 그 생명을 볼 때마다 괴물의 모습이 오버랩되어, 악몽과 환상에 시달려 죄 없는 연약한 생명을 어떻게 할 것 같은 충동으로 괴로워했어요. 아기를 향한 모난 모성으로 더는 아기를 키울 수 없게 되었죠.


명주는 혜진의 몸을 통해 나온 생명을 입양했고, 처녀의 몸으로 아이를 정성껏 키웠어요. 아이가 자라고 커가는 모습을 간간이 혜진에게 보여 주고 알려 주며 혜진이 서서히 아이에게서 괴물 남자의 모습이 아닌, 아이만을 볼 수 있도록 도왔어요. 아이에게도 몸과 마음이 자라는 시기에 맞춰 생모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언젠가는 생모와 함께 지낼 수 있음을 말해 주었죠. 세월이 흘러 혜진은 아이 앞에 나설 수 있었고, 대학생이 된 아이는 명주를 통해 친모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며 자란 터라, 어머니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어요. 혜진과 명주는 한 아이의 두 어머니가 되었어요.




명지는 오늘도 새벽부터 서울역 거리 노숙자들을 위한 무료 급식소에 머물며 무료진료 중이에요. 김 씨 아저씨는 한꺼번에 먹지도 못할 양의 밥을 더 달라 떼를 써 밥을 퍼주는 봉사자를 난처하게 해요. 박 씨는 몇 년 동안 씻지 않아, 심한 악취가 나면 박 씨가 왔음을 알 수 있어요. 윤 씨 아저씨는 명지에게 와서 여기저기가 아파서 못 살겠다는 꾀병을 늘어놓으며 다량의 진통제를 달라 억지를 부리고, 자신을 프랑스 영화배우 ‘소피마르소’라고 하는 아주머니는 남자 노숙인들 속을 헤집고 다니며 쌍욕을 퍼붓고 먹을 것을 슬쩍슬쩍 뺏어 가요. 대부분 알코올 중독으로 인한 금단현상으로 사지가 떨리거나 영양실조와 피부병으로 명지를 찾아오지만, 그중에는 중한 병을 앓고 있으면서 치료를 거부하는 노숙인도 있어요. 그저 대충 살다 떠나려는 중병 환자를 찾아 설득해 호스피스 병원에서 마지막 가는 길이라도 보살핌을 받고 갈 수 있도록 돕는 일도 명지 일이기도 해요. 가끔 찾아와 허기를 달래는 길숙 할머니는 명지 마음을 참 곤란하게 했어요.

손수레를 끌고 다니며 거리 생활을 하는 할머니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쉼터로 들어가는 것도 거부했고, 쇠약해진 육신은 여러 가지 질병이 있었지만, 치료받는 것도 약을 먹는 것도 거부했어요. 잊을 만하면 찾아오는 할머니에게 명지는 영양제와 가지고 다니면서 먹을 수 있는 먹거리를 챙겨 주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어요.


그날은 밤새 눈이 내려 거리 급식소는 추위를 피하려고 몰려든 노숙자들이 유난히 북적이는 날이었어요. 급식소 밖에서 들어오기를 주춤하고 있는 한 남자가 명지 눈에 들어왔어요. 노숙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이는 그에게 명지는 다가가 물었어요.

“식사하러 오셨나요?”

“......”

대답 없는 그의 팔을 끌어당겨 급식소 안으로 데리고 들어와 테이블에 앉혀 놓고 말했어요.

“잠깐만 기다리세요. 먹을 것을 가져다 드릴게요.”

명지가 들고 온 식판은 두 개였고, 하나는 그의 앞에 또 하나는 명지 자기 앞에 두고 그를 마주 보고 앉았어요.

음식을 앞에 두고 망설이는 그를 상관하지 않고, 명지는 음식을 맛있게 먹기 시작했죠. 그는 명지를 잠시 의식하는 듯했지만, 허기짐을 참지 못하고 자기 앞에 놓인 음식을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어요. 명지는 그에게 자기 음식을 나누어 주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어요.


그는 아내와 이혼한 뒤 여러 번의 사업 실패로 빚쟁이들을 피해 다니는 중이었어요. 며칠 동안 굶주림에 허덕였고, 추위를 견디지 못해 찾아간 급식소에서 명지를 만났어요. 명지는 그가 노숙자의 삶이 아닌,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경력하고 응원하며 그의 옆을 지켜주었어요. 그들은 사랑에 빠졌고, 그의 희망 없던 인생이 명지로 인해 새 삶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어요.

인규는 명지를 무척 사랑하는 것 같았지만, 참아 처녀인 명지에게 결혼하자는 말을 꺼내지 못했어요. 명지는 인규의 그런 마음을 알고 있는 듯, 수시로 인규 어머니 집을 찾아 인규 딸 민지에게 다가서려 노력했어요. 하지만, 민지도 인규 어머니도 명지가 언젠가는 떠날 사람으로 또 그동안 인규의 부재가 명지 때문인 양 명지에게 쉬이 마음을 열지 않았죠. 그러던 어느 날 민지가 남자 친구와 집을 나가 살던 중 아이를 낳아 유기한 혐의로 감옥에 가는 사건이 일어났어요. 인규는 딸 민지에게 깊은 죄책감이 밀려왔고, 민지 아빠 자리에서 민지를 기다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명지가 자신으로 인해 어둡고 답답한 자기 인생 속에 들어오는 것 같아 명지에게 이별을 통보했죠.

명지는 여러 날 많은 생각에 잠겼어요. 자신이 좋은 새어머니를 만나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지나온 삶을 생각하니, 인규보다 그의 딸 민지가 너무 가엽고 안타까웠어요. 명지는 감옥에 있는 민지에게 매일 편지를 쓰기 시작했어요. 민지에게 자신이 새어머니를 만나 살아온 소소한 어린 시절 이야기를 적어 보냈죠. 3개월 여쯤 지나 민지에게서 첫 답장이 왔어요. 명지는 뛸 듯이 기뻤고, 간식거리를 잔뜩 사 들고 민지 면회를 갔어요.

“아줌마, 왜 나한테 자꾸 편지를 보내는 거예요?”

“네게 관심이 있으니까.”

“나 같은 아이에게 왜 관심을 가져요? 아빠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요?”
“그래, 아빠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도 있지. 하지만, 너하고도 잘 지내고 싶어.”

“세상에 새엄마를 좋아하는 아이가 어디 있어요?”

“여기 있잖아. 나는 돌아가신 어머니보다 지금 살아계신 새어머니가 더 좋은걸.”

“아줌마, 미쳤어요? 죽은 어머니가 불쌍하지도 않아요?”

“왜 불쌍해? 우리가 어릴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사실 돌아가시기 전에도 아들을 낳기 위해 우리를 낳았기 때문에 어머니는 우리를 언제나 무심하게 대했거든.”

“그래도 친어머니잖아요.”

“우리를 정말 사랑했다면 병을 이기고 끝까지 우리 곁에 있어 줬어야지.”

“......”

“민지야, 나는 끝까지 네 옆에 엄마로 있어 주고 싶어. 우리, 딸 엄마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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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지는 민지 허락을 먼저 받고, 인규를 찾아가 민지 엄마가 되고 싶다며 인규에게 프러포즈했어요. 인규는 여러 번 거절했지만, 명지는 결국 민지 엄마가 되었어요.




아들만 둘을 둔 그녀는 예쁜 딸을 얻고 싶었어요.

딸만 여럿 둔 남편 친구는 딸들 자랑으로 늘 남편 마음을 서운하게 했죠.

그러던 때에 집안일을 봐주는 파출부 이야기가 내내 마음이 쓰였어요.


“우린 동네 무슨 사연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남편 없이 아이만 둘 데리고 이사 온 새댁이 있어요. 큰 딸아이가 얼마나 영리하고 예쁘게 생겼는지... 새댁이 아이들 데리고 할 수 있는 일을 찾길래, 애들 데리고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겠냐고, 마음이 얼마나 안 좋던지요. 사모님 댁은 아들만 둘이라 딸 키우는 재미는 모르시지요? 혹시 아이 하나 데려다 키워 보지 않으시겠어요?”

“아이고, 아주머니 별말을 다 하세요. 내 새끼 키우는 것도 버거운 세상에 남 애 집 아이를 어떻게 데려다 키워요. 어떤 핏줄인 줄 알고….”

“4살 딸아이한테 사탕 물려주면서 아빠는 어디 있어? 물었더니, 애가 아빠 병원 일 갔어, 하더라고요. 나중에 알고 보니 남편이 의사였는데, 사고로 죽어다 하대요.”
“그래요? 아빠가 의사였으면 막 자라지는 않았겠어요.”

“애 엄마도 의사 남편하고 살아서 그런지 험한 일한 여자 같지는 않아 보였어요.”

“남편 하고 의논해 볼게요.”

“사모님, 좋은 일 한다, 생각하고 불쌍한 아이 거두면 하늘이 감동해서 사모님 아들들이 복 받을걸요.”

“근데, 애 엄마는 애 입양 보낼 생각은 있대요?”
“그거야, 내가 잘 이야기해 봐야죠. 근데, 애를 생각해서라도 사모님 댁 같은 집에서 자라는 게 좋지 않겠어요?”


두 아들도 남편도 딸아이 입양을 적극적으로 찬성했고, 그녀는 파출부가 말한 아이를 보기 위해 동네를 찾았어요. 그런 동네 환경에서 자라기에는 아까우리만큼 아이는 정말 천사같이 예뻤어요. 아이 엄마를 만나 입양을 권했지만, 아이 엄마는 절대 입양 보낼 생각이 없다고 했죠. 남편과 그녀는 매일 같이 찾아가 자신들이 잘 키워내겠다고 아이 엄마를 설득했고, 생활고에 시달리던 아이 엄마는 결국 미나를 그녀에게 보내주었어요.


미나를 데리고 온 날부터 집안은 조용할 날이 없었어요. 미나는 매일 목이 터져라 울어댔고, 음식을 먹이면 토해내기 일쑤였죠. 그들은 처음에는 미나를 안쓰럽고 불쌍하게 여기고 보살펴 보려 했지만, 아이 울음이 수그러들지 않자, 어린 미나를 집 밖으로 쫓아내고 굶겼어요. 그래도 미나 울음이 그치지 않자, 그들은 미나에게 무관심했어요. 몇 날 며칠을 울어 대던 미나는 가족들 무관심 속에 뭔가 단념한 듯 울음을 멈췄어요. 미나가 조금만 인상을 찡그리고 눈물 그늘이 비치면 무관심해지기를 반복했죠. 그들은 미나 예쁜 모습만을 보고 싶어 했고, 미나는 그런 가족들에게 길들어 갔어요. 그녀는 아들을 키우며 하지 못했던, 딸을 얻으면 하고 싶었던 것들을 하나하나 하기 시작했어요. 미나를 인형 다루듯 예쁜 여자아이 옷을 사 입히고 머리모양을 꾸며 주며 즐거워했죠. 그녀의 남편은 미나에게 ‘예쁜 짓’을 가르치며 예쁜 표정을 짓거나 귀여운 얼굴을 하면 안아주었어요. 두 아들은 여자아이 몸이 궁금하다며 미나 몸을 관찰하고 신기해했지만, 누구도 두 아들의 행동에 대해 건강한 교육을 하는 어른은 없었어요.

미나는 뭐든 잘 해내는 영리한 아이였고, 그들은 미나를 가까운 사람들에게 보이고 자랑했어요. 사람들은 입양아를 키우는 그들 부부를 무척 좋은 사람으로 평가해 줬어요. 미나가 어떤 성과를 낼 때마다 사람들은 미나를 입양해 돌보는 그녀를 더욱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 줬죠.

늘 예쁘고 자랑하기 좋았던 미나에게 불행한 일이 닥쳤고, 그 일이 주변인들에게 알려지는 것이 불편해 미나를 낯선 나라로 유학 보내고 말아요. 그녀는 미나 달라진 모습은 자신이 원하는 인형의 모습이 아니라서 더는 관심 두고 싶어 하지 않았고, 미나를 자기 방법으로 분리한 것이었어요. 그녀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에게 입양아를 잘 길러 해외 유학까지 보낸 좋은 ‘어머니’라는 이름표를 얻었어요.








파란 눈의 그녀는 아들과 같은 학교에 다니는 동양인 남자아이 얼굴이 자꾸 어른거려요. 또래와 어울리지 못하고 구석에서 혼자 노는 아이 옆으로 다가갔을 때, 아이는 어른을 두려워하는 듯 멈칫거리며 물러나요.

이자벨은 프랑스인 독일병원 정신과 의사예요. 그녀에게는 자신이 잉태해 세상에 내어놓은 두 자녀가 있지만, 피부색이 다른 입양아 한국인 아들도 있어요.


동료 의사와 병원 구내식당에서 같이 식사하며 대화를 나눠요.

“이자벨, 입양한 한국 아들 다음 주부터 우리 병원에서 근무한다며? 당신과 같은 의사가 된 것도 기특하지만, 당신이 대단해”

“내가 한 것은 잠잘 곳을 제공하고 냉장고에 먹을 것을 채워 놓은 것밖에 없어. 그 아이는 원래 괜찮은 아이였어”

“두 번의 파양을 거쳐서 당신에게 왔잖아. 자살 시도도 여러 번 했고, 문제가 많았잖아? 그런 자기 문제로 정신과를 공부하지 않았어?”

“문제는 그 아이에게 있었던 게 아니라, 그 아이를 입양해 학대한 몹쓸 인간의 탈을 쓴 괴물들에게 있었지. 그 아이가 운이 없었어. 그런 괴물들의 먹잇감이 됐으니. 나는 그저 그 아이에게 내가 괴물이 아닌 자기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줬을 뿐이야. 그 아이는 괴물들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모두 괴물이라 착각했을 거야. 순수한 어린아이가 괴물들 속에 있었으니, 자신이 괴물이 되지 못하면 죽을 수밖에 없다고 여긴 거야. 자해는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해 사람으로 살고 싶어 처절하게 도망친 절박한 아우성이었어.”

“그런 희생이 드러나야 괴물의 정체를 찾아낼 수 있는 세상이 참 무섭게 느껴져. 아 참, 당신 한국 아이를 키워 봤으니, 한국인에 대한 정서를 좀 알겠군. 한국 환자 한 명 보지 않겠어?”
“어떤 환자야?”
“한국에서 발레 공부를 하기 위해 유학 온 여자 학생인데, 벌써 두 번이나 사살 시도에 실패하고 병원에 입원 중이야. 한국 가족들은 병원비는 보내주고 있는 것 같은데, 아무도 찾아오지 않아.”


그렇게 이자벨은 병실에서 자해 방지를 위해 손발이 고정되어 잠이 든 미나를 만났어요. 일정 기간 병원 치료를 받고 퇴원하는 미나를 찾았지만, 미나는 이자벨을 완강히 거부했고, 상대하려고도 하지 않았어요. 미나가 이자벨을 거부하면 할수록 이자벨은 미나를 그냥 둘 수 없었고, 급기야 한 번도 찾아오지 않는 한국 보호자에게 국제 전화를 걸었어요. 그들을 통해 미나가 입양된 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한국에서 남자 무용수에게 성폭행을 당한 사건에 대해 알게 되었죠. 이자벨은 미나의 양부모에게 분노했어요.

“당신들은 입양의 목적이 있었군요. 당신들을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 줄 대상이 필요했을 뿐, 아이를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았군요. 힘든 일을 겪고 아픈 아이를 이렇게 먼 곳으로 보내 버려두고, 너는 입양한 아이니 이제 알아서 살라고 하면 어떻게 하나요? 당신들 혹시 아이가 아무도 알지 못하는 곳에서 정말 죽길 원한 건 아닌가요?”

미나 한국 가족들은 통역사의 통역으로 들려오는 전화기 너머 말소리가 그저 세상 소리로 들렸을 뿐, 어떤 말도 하지 않았어요. 반응 없는 그들에게 이자벨은 계속 말했어요.

“미나의 상태가 어떤지 궁금하지 않나요?”

“우리는 미나에게 최선을 다해 지원하고 있어요. 선생님은 의사이니, 의사가 할 수 있는 일을 해 주세요.”


이자벨은 미나 상태에 대한 걱정보다 금전적 지원을 하고 있다는 변명을 늘어놓는 양부모 반응을 듣고 미나가 더욱 안타까웠어요. 오랜 시간 미나 마음을 열어보려 했지만, 미나는 갇혀 버린 어두운 곳에서 나오기를 거부했어요. 미나가 자신을 거부하고 거절할수록 이자벨의 마음속 울림은 자신을 살려 달라는 미나의 절규만이 들렸어요. 미나가 원하든 원치 않든 이자벨은 퇴근 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미나 집을 찾았어요. 처음에는 문조차 열어 주지 않아 미나 집 문 앞에 퍼질러 앉아 샌드위치를 먹으며 혼자 이야기를 하고 돌아갔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미나는 문을 열어 이자벨을 집안으로 드렸어요. 이자벨은 미나가 듣든, 듣지 않든, 혼자 많은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미나가 같이 먹지 않는, 자기식 한국 음식을 만들어 식탁을 차려 먹었어요. 미나는 처음에는 이자벨을 정신병자로 여기고 대꾸조차 하지 않고 관심도 두지 않았지만, 조금씩 듣기 시작했고, 이자벨식으로 만들어 놓은 한국 음식을 보고 타박하기 시작했어요.


“국적을 알 수 없는 음식을 만들어 놓고, 한국 음식이라고 우기는 거죠?”

“천만에, 내게 한국 음식을 알려 준 멋진 남자가 있다고.”

“모든 음식에 김치만 들어가면, 한국 음식인 줄 알아요?”

“파스타에 김치가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모르는군.”


이자벨과 미나는 깊은 대화보다는 투닥거리며 관계가 시작되었어요.

그렇게 이자벨은 미나의 파란 눈 어머니가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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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플라스틱은 새 이름을 얻고 형태가 달라지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의 계획대로 형태가 달라져야 역할을 시작할 수 있거든요. 우리는 어떤 이름이 정해지면, 그냥 그 이름의 역할만 해요. 여자와 엄마, 어머니라는 이름을 스스로 선택하고 적당한 역할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이 참 신기하게 느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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