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변화와 달라지는 모양은 여기까지가 아니에요.
매일 분주하고 정신없던 엄마의 몸이 자식들이 분리되어 어머니가 되고 완전한 분리를 통해 노모가 되어가면서 몸에도 변화가 와요. 여성호르몬 결핍으로 노화(老化)가 가속화되면서 피로감, 불안감, 우울, 기억력 장애 등이 동반되어, 수면 장애까지 와요. ‘어머니’라는 이름에서 ‘노모’라는 이름을 가질 때쯤 되면 육신이 영혼으로부터 조금씩 멀어지기 위한 준비로 누구에게나 닥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죠. 육신의 연약함으로 변해 가는 초라한 겉모습을 마주하고, 자신을 필요로 했던 자녀들이 떠난 빈자리, 남편의 줄어든 어깨에 기댈 엄두도 내지 못하는 여자는 우울이라는 어둠에 갇힐 위험이 있어요.
그때 창조주께서 또 내게 알려 주셨어요.
자신에게 향해 있는 시선을 세상을 향해 보라 하셨죠. 거창하고 위대한 일이 아닌 가까이에 있는 작은 것부터 둘러보고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라 하셨어요.
그러던 어느 날 집 근처 골목에 사고를 당해 다리가 부러져 움직이지 못하는, 버려진 강아지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어요. 우리는 강아지를 치료하고 정성껏 돌봤지만, 강아지는 서서히 죽음의 때를 향해 갔어요. 죽음을 앞둔 강아지 눈동자 속에 담긴 두려움을 보고 우리는 강아지에게 죽음이 끝이 아니라 세상에서의 죽음은 모든 것을 갖춘 동산에 영혼이 돌아가는 잠시의 과정이라 알려 주었죠. 반려견의 죽음을 통해 동산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우리가 세상을 떠나기 전 해야 할 일에 대해 알게 되었어요.
호스피스 병동을 찾아 죽음을 두려워하고 거부하는 이웃들에게 죽음은 동산으로 들어가기 위한 통로이고 두려움으로 거부할 것이 아님을 알려 주었죠. 세상에서의 역할이 끝나면 돌아가야 하는 고향 같은 곳, 그곳에는 우리를 창조하신 창조주께서 기다리고 있음을 말해 주었어요. 우리가 알려 주는 진실을 믿는 이는 미소를 머금고 떠났지만, ‘헤덴’ 동산의 기억을 찾아내지 못하고 잃어버린, 우리 이야기를 믿지 못하는 이웃들은 두려움을 끝내 떨쳐버리지 못하고 떠났어요.
알지 못하는 수감시설 수감자에게 편지와 선물을 보내고, 거리 노숙자와 부모를 잃은 고아와 혼자 남은 과부,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오라는 곳도 찾는 사람도 없었지만, 그냥 찾아다니며 ‘헤덴’ 동산을 알렸어요.
어느 날 수감시설 수감자에게 답장이 왔어요. 그는 어머니를 살해하고 유기한 죄목으로 수감 중이라고 자신을 소개했고, 자신 같은 죄인도 동산에 갈 수 있는지 물었어요. 우리는 그를 찾아갔어요.
그는 아버지 폭력과 어머니의 무심함으로 동생들을 건사해야 했던 어린 시절이 너무 힘들고 외로웠다고 고백했어요.
“아버지는 언제나 술에 취해 있었고,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의 폭력으로 어머니 얼굴에는 늘 멍 자국으로 퉁퉁 부어올라 표정이 없었어요. 일방적인 아버지 폭력을 그대로 받아 내는 어머니는 아버지 폭력을 막아서는 내게 화풀이하듯 나를 학대했어요. 어머니는 내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생선을 세차게 내려쳐 토막 내며 내게 거친 욕설과 아버지를 닮아 걸러 먹은 놈이라고 했어요. 겨우 열 살밖에 되지 않았던 저는 아버지 폭력도 어머니 입술의 학대도 견디기 힘들었지만, 저보다 어린 두 동생을 그런 환경에서 지키고 보호해야 한다는 책임감도 제게는 정말 버거웠어요. 어른이 되면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으로 꾸억꾸억 성장했지만, 열심히 산다고 살아온 인생은 실패와 좌절뿐이었어요. 아내는 술로 나날을 보내는 내게 실패자라 악을 쓰고 비난하며 떠났고, 아이들은 무능한 아버지를 경멸했어요. 모든 것을 잃고 찾아간 어머니는 제게 예전처럼 험한 말로 무시하고 멸시했죠. 그런 어머니를 생선 토막 내듯 자르고 부러뜨려 살해하고 말았어요. 저 같은 끔찍한 죄인도 신께 용서 구할 자격이 있나요?”
“그래요, 당신은 정말 끔찍한 죄인이군요. 당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알았으니, 용서받을 기회를 얻었어요. 죄를 뉘우치고 끊임없이 용서를 구하세요. 당신을 창조하신 창조주께서는 죄를 벌하시지, 당신을 버리지는 않아요”
어느 날은 길거리에서 폐지 박스를 손수레에 싣고 있는 길숙 할머니에게 ‘헤덴’에 대해 알려 주었어요.
“나는 헤덴에 갈 수 없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 핏덩이 자식을 추위에 내버려 두고 제시간에 돌아오지 못했어요. 혹시 아기들은 죽으면 헤덴에 가나요?”
“네, 세상에 잠시, 잠깐 스쳐 간 생명이라면 누구든 갈 수 있어요. 그 아기는 어디선가 잘 살아 있을지도 모르고, 아니면 헤덴에서 한껏 웃으며 엄마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라요.”
“정말, 헤덴에 가면 내 딸 만날 수 있을까요?”
“그럼요.”
“헤덴에 가려면 어떻게 갈 수 있어요?”
“할머니가 생각나는 죄가 있다면 창조주에게 용서를 구하고 헤덴을 소망하기만 하면 돼요.”
우리를 거짓말쟁이라 말하는 사람도 있었고, 정신이 온전하지 않다고 불쌍히 여기는 이웃들도 있었지만, 동산에서 나와 세상에 적응하고 사느라 동산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졌는데, 이웃들에게 돌아갈 동산을 알려 주면서 우리가 돌아가야 할 동산에 대한 기억이 명확해지고 있었어요. 창조주께서는 우리가 이웃들에게 동산을 알려 주며 동산으로 돌아올 수 있는 길을 보여 주고 계셨어요.
우리는 육신이 점점 약해져 이웃들을 찾아다닐 수 없게 되었고, 남편과 나는 우리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써 내려갔어요. 둘이 함께할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해 내어 차근차근 실천해 나가면서 우리는 노년의 사랑의 언어를 찾아 다시 행복할 수 있었어요.
어머니와 아버지의 이름으로 노년을 맞이한 우리의 사랑은 육체적 사랑의 언어를 넘어선, 세상 모든 자식에게 성숙하고 경고하게 정리된 인격적인 사랑의 언어를 비춰주는 거울이 되는 것이라 할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