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이 세상의 삶이 짧았던 모양입니다, 돌아갈 곳을 기대하고 그곳에서 계속 더 살고 싶으니 말입니다. 나는 플라스틱처럼 세상에 끝까지 남고 싶지도 않고, 산다는 것이 너무 고단하여 어디서 어떤 존재로 삶을 연속하고 싶지 않은데 말입니다.
동건이는 가스 배달과 식당 종업원 아르바이트를 해가며 검정고시로 고등학교 과정을 마무리했고, 군대를 다녀와 자신이 좋아하는 오토바이 튜닝 기술을 배우며 여전히 친구들과 어울려 살았어요. 동건이와 한 달에 두서너 번 따로 만나 밥 먹고 시간을 보내며 동건이 일상을 듣고 있노라면, 나는 나도 모르게 웃음이 끊이지 않았지요. 경제적으로 넉넉하게 지원할 수 있는 능력도 없었고, 아는 것이 없어 아이의 말을 듣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해 줄 수 없어 늘 걱정스러웠지만, 아들에 대한 믿음으로 아들의 생각과 선택을 지지하고 격려해 주었어요. 민석이는 고등학교 졸업 후 방송통신대를 다니며 보습학원 차량 운전기사로 취직해 내가 동건이를 만나러 갈 때마다 태워 주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죠. 문득문득 먼 나라에서 외롭게 지낼 미나를 떠 올릴 때마다 가슴 한쪽이 잠기는 듯했지만, 동건이와 민석이의 어머니로 있는 이 자리가 소중했어요.
더운 여름날 오후 장사를 위해 떡볶이와 어묵, 튀김등을 세팅해 두고, 열기에 지쳐 늦은 오후 도시락을 먹기 위해 아침에 집에서 사 온 찬밥을 열었더니, 김칫국물과 엉켜 버린 밥에서 쉰내가 올라왔어요. 김치와 밥을 대충 섞어 한 입 넣으려는 순간, 언제 왔는지 민석이가 내 밥숟가락을 낚아챘어요. 그리고 내 앞에 포장해 온 냉면 한 그릇을 내려놓았어요.
“어머니 내가 이럴 줄 알았어요. 아침에 도시락 살 때 보니까 며칠 된 찬밥을 대충 싸고 계셔서 혹시나 했더니 밥이 상했잖아요. 드시고 탈 나면 어쩌시려고? 이런 날은 저기 눈에 보이는 식당에 전화해서 든든한 음식 시켜 드세요.”
“민석아, 밥 아깝잖니, 이리 줘 많이 상하지도 않았는데 먹어 치워야지.”
“어머니, 이밥 내가 먹을게요. 냉면 불기 전에 빨리 드세요.”
“안 된다, 우리 아들 몸 상하면 어쩌려고…”
“그것 보세요. 어머니도 싫죠? 이밥은 버리고 올게요. 냉면 드세요. 어머니 냉면 드시는 거 보고 갈게요.”
그렇게 민석이가 사 온 얼음이 동동 떠 있는 냉면 한 그릇을 시원하게 먹고, 민석이를 보내려는데 핸드폰이 울렸어요. 동건이가 경찰서에 있다는 연락이었어요.
경찰 말로는 동건이가 종수를 감금하고 금전을 갈취하는 과정에서 도망치는 종수를 칼로 찔렀고, 종수 어머니가 동건이를 고발했다고 했어요. 다행히 종수는 생명에 지장은 없었지만, 폭행으로 인한 외상과 찔린 상처가 깊어 병원에 입원 중이었어요. 종수 어머니, 여자는 동건이가 종수에게 시켜 집에 있는 값나가는 물건을 훔쳐 오게 했고, 종수가 흡족할 만한 금전을 가지고 오지 않자, 종수를 두들겨 팼고 칼로 위협하다 찔렀다고 주장했어요. 동건이가 설명하지 않아도 여자의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종수의 진실한 증언이 필요했고, 여자 오해의 분노를 가라앉혀 고소 취하를 부탁해야 했어요. 경찰서에 구금된 동건이를 뒤로하고 여자를 찾아가 사정했어요. 오해가 있으니, 동건이부터 나올 수 있도록 선처해 달라고요. 여자는 내게 거액의 합의금과 동건이가 나오면 데리고 다른 지역으로 이사가 달라는 조건을 내세웠어요. 이사 가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거액의 합의금은 마련할 수 없는 돈이라고 형편을 말했지만, 여자는 당장 합의금을 가지고 오지 않으면 소용없다고 거부했어요.
민석이는 동건이와 같이 살던 선배와 친구들을 만나 상황을 듣고 왔어요. 종수가 동건이를 이성으로 사랑했고, 그런 종수가 부담스러워 동건이가 피해 다녔는데, 종수는 계속 동건이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고 했어요. 그날도 동건이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종수를 보고 동건이와 친구들이 다른 곳으로 가려했지만, 종수가 달려와 집에서 가지고 나온 현금과 귀중품을 내밀며 도망가서 같이 살자고 억지를 부려 댔다고 했어요. 그런 종수를 친구들이 떼 놓는 과정에서 실랑이가 있었고, 종수가 준비해 온 칼을 꺼내 자기를 거부하면 죽어 버리겠다고, 칼로 스스로 자해하는 바람에 다들 화들짝 놀라 종수 손에 들린 칼을 뺏고 저지하고 있을 때, 종수 어머니가 나타나 신고했다고 했어요. 종수는 피를 흘리며 쓰러졌고, 종수 어머니가 그 상황을 보고 동건이가 찌르는 것을 봤다고 허위 진술을 했다고 했어요. 동건이는 출동한 경찰들에게 현행범으로 잡혔고, 종수가 가지고 온 현금과 귀중품이 증거물이 되어 연행되고 말았어요. 친구들이 경찰서에 와서 종수가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겪고 있다는 이야기와 그날 상황에 대해 진술했지만, 경찰들은 종수 어머니 말만 듣고 믿었다고 했어요. 민석이는 합의금을 마련하기 위해 동건이 친구들과 동분서주했고, 나는 창살을 사이에 두고 아들 동건이와 마주 섰어요.
“어머니 괜찮은 거죠? 나는 괜찮아요.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어머니가 알잖아요.”
“내가 너를 믿는다는 것을 알아?”
“어머니 얼굴 보면 그냥 알아요. 아줌마는 말도 안 되는 조건 내세워 합의하지 않으려 할 거예요. 그 아줌마의 목적은 종수가 찾아가지 못하는 곳에 나를 보내는 거예요. 감옥에는 종수가 따라가지 못하는 곳인 것을 알고 억지를 부려서라도 나를 감옥에 처넣고 말 거예요. 어머니, 그런 아줌마에게 고개 숙이지 마세요. 감옥에 오래 있지 않을 거예요.”
이렇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어머니가 있을까요? 동건이는 폭력에 의한 과실치사, 금전 갈취 혐의로 송치되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수감되고 말았어요. 운명의 장난인지 우연인지 동건이는 자기를 잉태시킨 아버지가 수감되어 있는 교도소에 배정받았어요. 오토바이를 타고 바람을 맞으며 자유롭게 질주하며 살아온 아들이 좁은 감옥에 갇혀 전과자가 되었는데… 아들을 보호할 힘도 없고, 도움도 주지 못하는 무지하고 무능한 나 자신이 참으로 원망스러웠어요. 동건이에게 왜 오토바이가 그리 좋으냐 물었던 적이 있었어요.
“어머니, 오토바이를 타면 자동차처럼 문을 닫고 갇히지 않아도 되고, 공기 속에 있는 세상 냄새도 맞고, 바람과 부딪쳐 세상 변화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어서 내가 펄떡펄떡 살아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아들이 높은 담 안, 좁은 방에서 숨은 제대로 쉴 수 있을까를 생각하니 물 한 모금 삼킬 수도, 다리 뻗고 앉고 누울 수도 없었어요. 민석이에게 군대 다녀올 것을 권했고, 살던 집을 정리해 동건이가 수감되어 있는 교도소 가까운 곳으로 이사했어요. 교도소 앞에서 붕어빵 노점상을 하며 하루도 빠지지 않고 동건이 면회를 다녔죠. 빡빡 깎은 머리를 감싸며 내게 미안함을 감추지 못하는 동건이에게 아무 말도 해 줄 수 없었어요. 그저 아들이 손 뻗을 수 있는 자리 그곳에서 아들을 기다리는 어머니가 있다는 마음만 보여 주고 싶었어요. 교도소에서 허락하는 면회 시간이 시작되자마자 아들 면회부터 하고 노점상을 펼쳐 붕어빵을 구워냈어요. 교도소를 오가는 사람들이 가끔 붕어빵으로 요기하기 위해 들리곤 했죠.
모범택시를 타고 교도소 앞까지 갔다가, 교도소 높은 담을 한참 동안 물끄러미 바라보고 눈물만 훔치고 발걸음을 돌려 큰 길가로 걸어 나오는 칠순의 김 할머니는 참 고운 외모와 자태로 어느 부잣집 마나님 같아 보였어요. 무슨 사연으로 아주 가끔 교도소 앞까지 갔다가 매번 발길을 돌리는지 궁금도 했지만, 사연 없는 인생이 있을까! 싶어 넘겼지요. 그러던 어느 날 김 할머니가 예약해 둔 모범택시가 잘 오지 않는지 내 노점상으로 들어와 고운 목소리로 플라스틱 의자에 좀 앉아도 되냐 물었어요. 나는 플라스틱 의자 먼지를 닦아 자리를 내어주고 갓 구운 붕어빵 한 개를 권했죠. 붕어빵을 건네받는 김 할머니 손은 평생 구정물에 손 한번 담가 본 적 없을 것 같은 보드라움이 녹아 있었어요. 저런 여자도 정말 세상에 존재하고는 있구나 싶었지요. 김 할머니는 생각보다 붕어빵 맛이 좋다 하셨어요. 이날 이후 교도소 앞에 올 때마다 내 노점상에 들러 붕어빵 하나를 먹고 만 원짜리 지폐를 올려놓고 갔어요. 붕어빵을 포장해 사주려 해도, 거스름돈을 거슬러 주려 해도, 절레절레 고개만 저으시고 택시에 오르셨어요.
그날은 택시가 생각보다 오지 않아, 둘 다 먼 도로만 바라보고 있었죠. 그러다 나도 모르게 김 할머니에게 내 아들 억울한 이야기를 주절주절하고 있었어요. 그래도 하루에 한 번은 아들 얼굴을 볼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고 했더니, 김 할머니 그 곱고 여려 보이는 두 볼에 갑자기 눈물 줄기가 생겨났어요. 나는 내가 무슨 잘못을 했나 싶어 어쩔 줄 몰라했죠.
김 할머니는 자기를 사랑해 주는 남자가 있었지만, 할머니는 처가 있는 유부남을 사랑하게 되어 그의 아들을 낳았다고 했어요. 떳떳하지 못한 처지라 세상에 아들을 드러내지 못하고 키웠다고 했죠. 그의 아내가 찾아와 거액을 안기며 남편과의 관계를 정리하길 원했고, 할머니는 아들을 데려가지 않는 조건으로 그렇게 했다고 했어요. 자기를 사랑해 주었던 남자도 다른 여자를 만나 가정을 일구었지만, 그 아내가 딸 셋만을 남기고 병이 들어 세상을 떠났다고 했어요. 그는 그 이후로 할머니에게 다시 찾아와 끈질기게 구애했고, 할머니는 아들 미래에 대한 보장을 받고 그 남자를 따라가 그의 아들을 낳았다고 했어요. 그의 부모는 할머니가 집안에 없던 손자를 얻게 해 주어 받아들였지만, 다른 남자에게서 얻은 아들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했대요.
“어린 아들을 그 집에서 고용해 준 아주머니와 살게 하고 나는 아들을 방치했어요. 그때는 아들을 데리고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해 경제적으로 풍요롭게 살게 하는 게 최선이라 생각했죠. 아들과 떨어져 지내면서 아들이 얼마나 그리웠는지 몰라요. 우리 아들은 눈이 작아서 조금만 웃어도 얼굴 살에 눈이 묻혀 눈이 없어져요. 아들의 코는 반듯하고 예뻐서 내가 자주 뽀뽀를 해 주었지요.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 내 가슴을 만져야 잠이 드는 아들에게 징그럽다고 밀어내는 장난을 치면 금세 삐쳐서 자기 방에 들어가 방문을 꼭 닫아걸고 내 스타킹에 애꿎은 화풀이를 하곤 했어요. 아들이 보고 싶어 학교 앞에서, 혹은 아파트 주변을 배회하다 아들 모습을 보면 몸을 숨기고 피했지요. 아들을 품에 안으면 다시는 품에서 떨어뜨려 놓지 못할 것 같아서 말이에요… 아들이 자라 대학에 진학했을 때는 심약하고 여린 심성을 지닌 아들이 염려되어, 자기를 버린 엄마에 대한 원망이 밑거름 되어 성공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아들에게 차갑게 대하고 멀리했어요. 아들이 성인이 되어 내가 보장해 준 환경을 버리고 나갔고, 이후로 아들을 찾아볼 수 없었죠. 그런 아들이 살인자가 되어 뉴스에 보도되는 것을 보았고, 아들 재판이 열리는 법정 구석 자리에 앉아 아들의 얼굴을 마주했어요. 아들은 나에 대한 원망으로 자기 자신을 괴물의 재물로 준 듯했어요. 아들은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수감되고 말았어요. 어린 아들에게 내가 얼마나 어리석은 엄마였는지, 내 선택이 아이를 괴물로 살게 했음을 알았지요. 아주머니가 수감된 아들을 위해 감옥 앞에서 붕어빵 장사를 하며 매일 아들 얼굴을 본다는 말을 들으니, 내가 내 아들에게 어떤 죄를 지었는지 제대로 알았네요. 내 아들은 같이 있어 주는 엄마면 되었는데… 사회에서 인정받는 직업을 가지고 명예를 얻고 사는 것보다 어머니와 사는 평범한 아들이 되고 싶었을 터인데… 나는 모든 것이 아들을 위한 것이라 여겼는데… 지나고 보니 모든 것이 나 자신을 위한 것이었네요. 생활고에 시달리며 어린 아들을 키울 자신이 없었고, 세상이 인정하는 직업을 가진 아들을 만들어, 내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인정받고 싶었던 게지요. 지금도 나는 내가 아들 모습을 대면하면 내 신분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이 두려워 아무도 몰래 혼자 아들이 수감되어 있는 교도소 담만 우러러보고 돌아가고 있으니, 나는 참 자격 없는 어미지요.”
김 할머니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오들오들 떨었어요. 불안증세로 자기도 모르게 곱게 다듬어진 손톱으로 치마 올을 뜯고 있었지요. 나는 할머니 손을 살포시 잡아 주었고, 풀린 치마 올에 투명 매니큐어를 발라 올이 풀리지 않게 방지해 주었어요. 울다 지친 몸으로 모범택시 뒷좌석에 올라 머리를 젖히고 지그시 눈을 감고도 눈물 줄기는 멈출 줄 몰랐어요. 나는 사라지는 모범택시 꽁무니를 응시하며 김 할머니가 원로 국회의원 아내임을 알 수 있었어요.
한 젊은 엄마는 집 나간 딸이 출산하고 아기를 방치해 사망하게 한 죄로 수감되어 있어 면회 왔다고 했어요. 딸 면회 온 엄마가 올 때마다 붕어빵 몇 개를 맛있게 먹고 교도관들에게 가져다준다며 붕어빵을 잔뜩 사서 포장해 갔어요. 보통은 교도소 면회 가는 사람들의 얼굴은 그리 편안해 보이지 않았지만, 이 엄마는 정말 딸 면회를 온 엄마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만큼 침울해 보이지 않았어요. 그러던 어느 날은 딸 아빠로 보이는 남자와 같이 와서 붕어빵을 포장해 달라고 했어요. 멀찌감치 서 있는 아빠 얼굴은 딸 면회 온 아빠 얼굴이었어요. 주문량이 많아 조금 기다리라고 했고, 붕어빵을 구워내는 동안 둘은 몇 발짝 물러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어요. 딸 면회 오는 것을 거부해 오던 아빠를 억지로 데리고 온 것 같았고, 젊은 엄마는 딸의 친모가 아닌 듯했어요.
“당신이 민지 아빠 노릇 잘하겠다는 약속을 믿고 나는 민지 엄마 자리에 들어갔어요. 그런데 어째서 딸에게 와서 이렇게 인상을 쓰고 있는 거예요?”
“당신도 알잖아, 내가 민지 엄마와 이혼하고 아버지 부도난 회사 수습하느라 양육비도 생활비도 주지 못했을 때 민지 엄마 그렇게 됐고, 민지가 무뚝뚝한 어머니와 어떻게 살지 알고 있었으면서 당신 만나기 전까지 아빠 노릇을 제대로 못 했어… 내가 민지 얼굴을 어떻게 보겠어?”
“그때 당신은 당신대로 사정이 있었고, 몸이 떨어져 있었다고 당신이 편하게 산 것도 아니잖아요. 지금 와서 과거 일을 회상하면서 앞으로 나갈 수 없는 것은 현실 회피와 같은 비겁함이에요. 영영 딸 얼굴 안 볼 거 아니잖아요. 내가 옆에 있잖아요.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 함께 감당해 나가요”
“교도소에서 나오면 만나 볼게”
“당신이 아무리 민지를 사랑해도 만남의 익숙함이 없이는 사랑한다는 마음이 전해지지 않아요. 민지는 지금 가장 힘든 인생의 고비를 살아내고 있는데… 세상 사람들이 우리 민지를 다 손가락질해도, 우리는 민지 고통과 외로움을 나누어질 수 있는 부모라는 것을 민지가 알게 해야 해요. 민지가 우리를 믿고 의지할 수 있도록 우리가 노력해야 해요.”
참 똑똑하고 지혜로운 엄마인 것 같아 보였어요. 그날 이후로 자주는 아니지만, 아빠 혼자 딸 면회를 다녀가는 모습이 종종 보였어요.
한 남자가 수감되어 있는 형님 면회를 왔다고 했어요.
형은 어머니를 살해 유기한 죄로 갇혀 있다고 했고, 그는 형을 원망하기보다는 형이 아니었다면 자기가 저 속에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했어요. 그의 어머니는 평생 생선 장사를 해서 많은 돈을 벌었지만, 죽는 순간까지도 현금이 가득 든 금고를 지키느라 형의 극단적 패륜을 자초했다고 했어요. 어머니는 아버지 폭력으로 시퍼런 멍 자국으로 덮여 부어오른 얼굴로도 칼을 들고나가 생선 토막 내는 것에 정신이 없었다고 했어요. 반찬이라고는 생선 머리와 남은 내장을 손질해 끓여 놓은 찌개가 전부였던 어린 시절, 형의 보살핌이 없었다면 자기와 여동생은 어찌 되었을지 모른다고 했어요.
“형은 언제나 부모 대신이었어요. 찌개 하나밖에 없는 상을 차려 반찬 투정하는 우리에게 찌개를 맛있게 먹는 방법을 재미있게 보여 주어 우리를 웃게 했죠. 어려운 학교 숙제를 봐주는 것도, 학교 행사 준비도 어머니가 아닌 형의 몫이었어요. 술주정으로 살림살이를 부수고 어머니를 폭행하는 아버지를 막아서는 것도 형이었고, 엉망진창이 된 집 안을 정리하고 청소하는 일도 형은 묵묵하게 감당했어요. 그런 형이 여동생을 성추행한 선생을 찾아가 주먹을 휘둘렀다는 이유로 경찰서에 잡혀갔을 때, 어머니는 형을 보호하지 않았어요. 그런 형의 모습이 아버지를 닮았다고,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죗값을 치르고 책임지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며 소년원에 보내려고 했으니까요. 초범으로 뉘우치고 있다는 반성문을 제출하고 형은 경찰서에서 겨우 나올 수 있었죠. 그 일로 형은 퇴학당해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어요. 형은 주유소 아르바이트부터 음식점 배달, 건설 현장을 전전하며 열심히 살았지만, 그런 형에 대해 한 번도 어머니는 궁금해하지 않았어요. 형의 희생으로 여동생과 나는 기본적인 학습은 되어 대학에 들어가 어머니 지원을 받을 수 있었지만, 우리 역시 입학금 외에 모든 것은 스스로 책임지며 살아야 했어요. 가끔 어머니가 넋을 놓고 먼 산을 바라보는 모습을 볼 때마다 혹 어머니에게 우리는 어쩌다 와 버린 인생의 일부라는 생각이 들 곤 했죠. 어찌 되었든 어머니 관심과 지원 없이도 형은 형수를 만나 결혼하고 가정을 일구어 그럭저럭 잘 살아냈어요. 자신의 힘으로 작은 가게를 시작해 돈도 제법 벌었고, 형수와 조카들에게 든든한 가장이었죠. 하지만, 가게를 확장하면서 경기 불황의 쓰나미가 몰아쳤고, 빚만 지고 가게를 접어야 했어요. 형수가 일을 시작하게 되면서 불행은 형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어요. 형수에게 다른 남자가 생겨 이혼을 요구했고, 아이들도 아버지의 무능함을 멸시하며 각자 살길을 찾아 집을 나가 버렸죠. 그때부터 형이 변해 가는 것 같았어요. 아무리 열심히 정직하게 살아도 자기 인생이 제대로 풀리지 않는 것 같은... 그동안 표출하지 못했던 어머니에 대한 원망이 봇물 터지듯 터져버린 것 같았어요. 술에 취해 어머니를 찾아가 행패를 부리고, 어머니에게 맡겨 놓은 돈이 있는 것처럼 돈을 달라고 협박하고… 그런 형의 모습이 불안불안 위태했지만, 예전의 형으로 돌아올 것이라 믿었어요. 어머니가 그런 큰아들의 인생을 조금만 헤아려 주었더라면, 그런 비극은 생기지 않았을 텐데… 여동생이 결혼해 어린 조카에게 안타까운 장애가 있어 이혼하고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었지만, 어머니에게 말 한마디 못 하고 형이 수감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조카와 함께 어머니를 따라가고 말았어요. 어머니는 우리를 당신의 자식이라 여겼는지조차 의심스러울 정도였죠. 우리에게 형은 어머니였어요.”
그의 긴 이야기가 끝날 때쯤 택시 한 대가 섰고, 양복깃에 변호사 배지를 단, 제법 나이 지긋한 남자는 어두운 얼굴로 내려 어머니 유원장과 동봉된 편지를 내밀었어요. 그리고 그는 아들이 모르는 옛이야기를 들려주었지요.
“자네들이 모르는 게 있다네. 내가 변호사 사무실 사무장으로 있을 때, 자네 어머니가 생선 손질하다 말고 달려온 듯한 모습으로 한 손에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칼을 들고 사무실에 들이닥친 적이 있었어. 무턱대고 당신 어린 아들 좀 꺼내 달라고 했었네… 내가 모시고 있던 변호사 어른께서 자네 어머니 말을 듣고, 집에 가서 단정한 옷차림으로 다시 오라고 했어. 내게는 경찰서에 가서 반성문 정도로 아이를 내보내지 않으면 맞고소하라고 하셨지… 변호사님은 어머니를 모시고 딸이 다니는 학교 교장실로 들어가 딸을 성추행한 선생을 제대로 징계하지 않으면, 교육청에 정식으로 진정서를 넣겠다고 했어. 그 선생은 결국 학교를 그만두었지. 그때 인연으로 자네 어머니는 내게 당신의 마지막 유언장까지 부탁하셨다네…”
두 남자는 플라스틱 의자에 나란히 앉아 먼 도로변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었고, 편지 내용은 알 수 없었지만, 여러 장의 편지를 읽는 아들은 바닥이 흥건해지도록 눈물방울을 떨어뜨렸어요.
어느 날은 방송국 표시가 부착된 카메라를 든 남자와 피디로 보이는 여자, 얼굴 가득 분을 삼키지 못한 어머니가 교도소 면회를 들어가더니 금방 나왔어요. 그런 경우는 면회 신청을 했지만, 수감자가 면회 신청을 받지 않았을 경우라 할 수 있었어요.
분에 찬 얼굴은 눈물이 넘쳐 격앙된 감정이 가라앉지 않고 있었어요. 분노의 감정을 자기 주먹에 담아 자기 가슴을 칠 수밖에 없는… 얼마나 억울하고 원통하면, 어디다 어떻게 분풀이해야 할지 몰라 애꿎은 자기 가슴만 쥐어뜯는, 그 어머니 심정이 고스란히 내게까지 전해졌어요. 급기야 그 어머니는 길가에 퍼질러 앉아 땅을 내려치며 목 놓아 울었어요. 옆을 따라오던 피디가 어머니를 부축하려 했지만 역부족인 듯해, 내가 가서 같이 부축하고 노점상 안 플라스틱 의자에 앉히고 물 한 잔을 대접했죠. 진정된 어머니 모습을 찬찬히 보니 온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유명 여배우 어머니였어요.
“누구를 원망하겠어, 내가 죄 많은 년이지. 연주는 아역 배우로 촬영장을 돌며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몰라요. 그런 딸을 내 욕심이 지나쳐 어르고 달래며 활동을 계속 시켰죠. 학교 공부 때문에 잠시 활동을 접었을 때도 딸이 활동을 쉬는 바람에 집안 형편이 어려워졌다는 말을 딸 앞에서 가차 없이 했어요. 설상가상으로 어미라는 인간이 장사하다 홀라당 말아먹어, 연주 대학 등록금 낼 형편도 못 되었지요. 나를 원망할 만도 한데, 연주는 오히려 나를 안심시켰어요. 성인 연기자로 활동하면 금방 괜찮아질 것이고, 다시 예전처럼 장사 시작할 수 있게 해 주겠다고 했죠. 그 어린것을 고생만 시켰어요. 그 고운 것을 저런 괴물의 먹잇감으로 던져준 년이 바로 나예요. 내가 죽었어야 했는데, 내가 저 감옥에 갇혀 죗값을 치러야 해요.”
여배우에게 성 상납을 강요한 매니저와 일부 가해자가 이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었지만, 이 어머니 면회를 받아 주지 않고 있었어요. 어머니는 그저 정말 잘못했다는 사과 한마디만 들어도 오랜 기간 갈기갈기 찢겨 죽음을 선택한 딸의 한을 조금이나마 풀어 줄 것 같았는데… 여러 명의 가해자 중 한 사람도 죄를 인정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죄를 뉘우치기는커녕 힘 있는 인사들은 음모와 조작이라며 자기들 죄를 은폐하기에 급급했어요.
그런 거대 괴물들의 잔챙이 괴물이 되어 교도소에 갇힌 그들은 힘 있는 괴물들에게서 자유를 찾을 용기를 내지 않았어요. 죽은 자는 말이 없다고, 딸을 부정한 여자로 몰아 돈에 팔려 다녔다는 거짓을 만들어 죽은 딸을 반복해서 죽이고 죽이는 사람의 탈을 쓴 괴물들을 찾아내는 것에 협조해 달라고, 기회라는 것을 주고 싶어 면회 왔지만, 아무도 이 어머니의 절규 앞에 고개라도 떨구고 인간이 되려는 괴물은 없었어요.
어머니는 울다 지쳐 쌍스러운 말을 뱉어내고, 멍하니 먼 산을 바라보고 넋을 놓고 있다가도 눈물을 왈칵 쏟아내기를 반복하고 차에 올라 돌아갔어요.
‘명은’이라는 방송기자의 끈질긴 추적과 폭로로 여배우의 억울한 죽음은 여러 해 동안 세상 곳곳에 숨어 있는 사람의 가면을 쓴 괴물의 가면을 벗길 수 있었지만, 세상의 법은 괴물이 괴물로 살아가는데 불편하지 않도록 괴물들이 만들어 놓은 제도에 불과했고, 괴물 옆에서 괴물 흉내를 내던 일부의 사람들만이 가벼운 처벌을 받고 있다는 현실이 참으로 씁쓸했어요. 나 역시 그런 괴물 흉내를 냈던 어리석은 과거가 있었기에 고개를 떨구었네요.
교도소 앞에서 만난 어머니들은 자식들에게 한없이 미안하고 면목 없는 나와 같은 어머니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