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격적인 사랑의 언어를 비춰주는 거울이라고요? 자식들에게 한없이 미안하고 면목 없는 존재라고요? 그래요, 내가 본 어머니들이 그래서 그런 인생을 살았군요.
길숙은 오늘도 시장통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재활용 박스를 손수레에 실었어요. 사실 길숙이 찾고 있는 것은 따로 있었어요.
어린 길숙은 어둠이 채 가시기 전 새벽 밭일 나가는 아버지 인기척에 떠지지 않는 눈을 비비며 이불에서 나와 묻지도 않은 대답을 해요.
“예 아버지 일어났어요.”
남동생을 낳고 병을 얻은 어머니를 대신해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집안 살림과 농사일을 돕고 있는 길숙은 늘 부족한 잠을 깨워야 하는 새벽이 참으로 고단했어요. 싸늘하고 으슬으슬한 새벽 공기는 길숙의 덜 깬 육신을 깨웠고, 군데군데 시커멓게 그을려 있는 플라스틱 바케스에 수돗물을 받아 처마 끝 아궁이를 덮고 있는 커다란 솥에 물을 채우는 노동은 고된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밤새 감아 두었던 태엽이 조금씩 풀리는 일이었죠. 군불을 지피기 위해 바싹 마른 솔가리가 가득 담긴 마대를 끌어 풀어 눕히고 솔가리를 한 움큼 꺼내 성냥불을 켜 불씨를 붙이는 순간, 며칠 전 산에 올랐던 일이 떠 올랐어요.
소나무가 울창한 산등선에서 갈퀴로 솔가리를 긁고 있을 때, 산기슭 아래에 세련된 옷차림을 한 언니 오빠들 무리가 커다란 카세트에서 흘러나오는 경쾌한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어요. 길숙은 그들의 몸놀림을 흉내 내다 그들 중 한 사람과 눈이 마주쳤고, 그는 길숙에게 손짓하며 오라고 했죠. 그들은 길숙의 촌스러운 옷차림과 이웃집 할머니가 잘라준 바가지 머리를 조롱했어요. 그중 한 남자가 길숙에게 과자봉지 하나를 손에 쥐여 주며 그늘진 숲으로 데리고 가 길숙을 나무에 기대 세웠어요. 그리고 남자는 길숙 앞에서 바지를 내려 자기 성기를 돌출시키고, 길숙 손을 끌어당겨 성기를 주무르게 했죠. 길숙은 온몸이 굳어 버렸고 다른 손에 들고 있던 과자봉지를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어요. 길숙의 어깨를 누르고 있던 양팔에 갑자기 힘이 들어갔고, 그의 커진 성기에서는 하얀 밀가루 풀 같은 것을 쏟아냈어요. 하얀 물이 흘러내려 죽어가는 성기를 길숙의 겉 옷자락을 잡아당겨 닦아 내고 그는 가버렸죠. 길숙은 그곳에서 한동안 꼼짝하지 못하고 점심 먹었던 음식을 게워 내고서야 산에서 내려올 수 있었어요. 집에 들어서자마자 겉옷을 벗어 아궁이에 집어 처넣어 버렸죠. 멀쩡한 옷을 왜 태우냐는 아버지 잔소리에 길숙은 아무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어요. 열두 살 길숙은 그날의 일을 아궁이에 군불을 지필 때마다 태우고 태우기를 반복했지만, 자신이 왜 그렇게까지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어요.
활활 타오르는 불길에 가득 찬 솥 물이 끓기 시작하면, 솥뚜껑을 열어 양철 세숫대야에 두 바가지 물을 퍼 담아요. 그리고 수돗가에 가서 차가운 물을 조금 섞어 적당한 온도가 되면 엄마가 누워있는 안방으로 들고 들어가 엄마 몸을 닦아주고 나와요. 아침밥을 지어 놓고 동생을 깨워 씻기고 새벽 밭일을 하고 온 아버지와 남동생에게 아침 밥상을 차려 주고, 작은 밥상을 따로 차려 엄마의 식사를 도와야 해요. 남동생이 학교에 가면 꿀꿀이 죽을 만들어 마당 구석 돼지우리에 있는 돼지를 챙겨야 하고, 점심 끼니때가 되면 아버지 점심상을 차리고 누워있는 엄마를 한 번 더 닦아 주고 밥을 먹여야 했죠. 오후가 되면 소작농으로 일하는 아버지 일을 돕기 위해 밭에 나가 비닐하우스에 모종을 심고, 과수원 과일을 따고, 때로는 수확한 농작물을 손수레에 실어 나르기도 했어요. 그런 하루하루를 채워가며 길숙이 열여덟 살이 되었을 때, 아버지는 길숙을 부잣집 식모살이 보냈어요.
장에 가신 아버지가 나일론 양말 두 켤레를 사 와서 길숙 손에 쥐여 주며 같이 따라온 아주머니를 따라나서라 했죠. 길숙의 아버지는 산골에서 일만 하고 사는 다 큰 딸이 부잣집에 가서 든든히 먹고, 그 집 어른이 소개해 주는 총각 만나 시집가서 살라고 길숙을 보냈어요. 길숙은 아버지를 따라온 아주머니에게 식모 살면 돈을 주느냐 물었고, 많지는 않지만, 돈을 준다는 말에 아주머니를 따라나섰죠. 나는 길숙이 보물처럼 아끼는 나일론 양말 속에서 길숙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었어요.
커다란 대문을 열고 돌계단을 지나 들어선 집은 널찍한 정원을 갖춘 이층 집이었어요. 반들반들한 대리석이 깔린 넓은 거실과 화려한 커튼 장식, 구불구불 고급스러워 보이는 수입가구들은 일하는 사람들보다 가치가 큰 위엄으로 길숙을 주눅 들게 했죠. 선임 식모 아주머니 안내를 받으며 들어간 방은 그런 저택에 그렇게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공간이 있다는 것조차 생소하게 느껴졌어요. 화려하고 호화스러운 환경을 유지하기 위한 고된 일상으로 눈치 볼일이 많았지만, 따뜻한 방에서 배곯지 않을 수 있었고, 무엇보다 자기희생으로 병든 엄마 약값과 남동생 학비를 보내줄 수 있다는 것이 뿌듯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그 집 며느리가 셋째 딸을 낳았어요. 아들을 바랐던 어른들은 며느리가 또 셋째 손녀를 출산하자 탐탁지 않아 했고, 며느리는 밤마다 어른들 눈을 피해 술을 마시며 훌쩍였어요.
길숙은 그런 며느리를 보며 남동생을 출산하고 가난한 집에서 호사스러운 병을 얻었다고, 길숙이 당신 몸을 닦아 줄 때마다 눈물이 많았던 엄마 얼굴이 생각나 며느리가 안쓰러웠어요. 길숙은 안줏거리를 만들어 조용히 그녀에게 가져다주었고, 그녀는 길숙에게 술을 권했지만, 길숙은 한 번도 술을 마셔본 적이 없다며 거절했어요. 그저 그녀 옆에서 눈물 닦을 수 있는 휴지를 손에 쥐여 주며 그냥 같이 있어주었죠. 그녀는 길숙의 위로에 마음이 좀 풀리는 듯했고, 길숙에게 이상한 제안을 해요. 집안사람들 모르게 자기 남편과 동침할 것을 권했고, 남편과의 사이에서 아들을 낳으면 시골에 집도 사주고 큰돈과 미래를 보장해 주겠다고 했어요. 길숙은 가난한 형편에 자신이 한 번만 희생하면 많은 것이 달라질 수 있을 것 같았죠.
어느 날 모든 집안사람이 잠든 한밤중, 길숙은 부부 침실로 들어갔어요. 그녀의 제안을 수락했고 그녀 남편과 동침을 시작했죠. 그날 이후 여러 밤 길숙은 그녀의 남편이 이끄는 대로 관계했고, 그녀 남편은 자기 아내보다 길숙을 더 원했어요. 그는 아내에게 아들을 갖기 위해 하는 수 없이 하는 잠자리라 말했지만, 그녀는 시간이 지날수록 길숙과 남편, 둘은 서로의 몸을 즐기고 있는 것 같은 의심을 버릴 수 없었죠. 질투가 난 그녀는 길숙을 내쫓으려 했지만, 길숙이 남편의 생명을 잉태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녀는 길숙의 임신 사실을 남편에게 알리지 않고, 자신의 임신 사실도 모르는 길숙을 친정으로 보냈어요.
친정에서 길숙을 숨겨 먹이고 돌보면서 해산하기를 기다렸고, 그녀는 길숙이 아들을 낳으면 아이만 뺏고 길숙을 시골로 보내 버릴 생각이었죠. 그렇게 시간이 흘러 길숙이 아이를 낳았지만, 길숙이 낳은 아이는 딸이었어요. 그녀는 몸 상태도 제대로 회복되지 않은 길숙을 탯줄도 마르지 않은 갓난아기와 추운 겨울 정말 쫓아내고 말았어요. 길숙은 아기를 안고 식모 살았던 집을 찾았지만, 그 남자는 길숙의 품에 있는 딸아이를 보고 어디서 어떤 놈과 붙어살다, 애까지 낳아서 찾아왔냐고, 오히려 길숙을 남자와 눈이 맞아 도망간 식모로 몰아, 받아 주지 않았어요.
길숙은 찬 바람을 피해 자신이 늘 다녔던 시장통 구석 쓰레기 더미에서 아기에게 젖을 물렸고, 아버지가 사준 양말 한 켤레를 꺼내 아기 두 다리에 끼워주었지요.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허겁지겁 젖을 빨며 허기를 달래는 딸아이를 보면서 이대로 이렇게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곤히 잠든 아기를 겉 옷가지로 둘둘 말아, 두꺼운 박스에 담아 버려진 상자 더미 깊숙이 숨기고, 채소 쓰레기를 덮어 가려 두고, 다시 그 부부를 찾아갔어요. 눈발이 흩날리는 추위를 아랑곳하지 않고 닫힌 대문 앞에서 길숙은 필자적으로 아기만이라도 거두어 달라고 부탁하며 소동을 일으켰죠. 그 부부는 길숙을 만나 주지도 않았고, 대문을 두들기며 악을 쓰는 길숙을 경찰에 신고해 잡혀가게 했어요. 그 부부는 경찰에게 길숙이 어떤 남자와 도망갔다가 돈이 떨어지자 갑자기 나타나 소란을 피워 신고했다고 말했어요. 길숙은 험상궂은 주정꾼 여자들이 득실대는 경찰서 유치장 철창 속에 갇혀 아기가 혼자 있어서, 빨리 가야 한다고 간청했지만, 경찰들은 가난한 식모의 말에 귀 기울여 주지 않았죠. 아침에 경찰서에서 나와 아기를 숨겨 놓은 시장통 구석으로 갔지만, 딸아이의 모습은 그곳에 있던 쓰레기와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어요.
길숙은 눈앞에 닥친 상황이 현실인지 악몽 속에 갇혀 버린 것인지 알 수 없는 혼란에 정신착란을 일으키고 말았어요. 양쪽 가슴에 젖이 넘쳐흘러 젖몸살 통증과 출산 이후 몸조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하혈이 계속되고 있었지만, 무엇을 찾아 헤매고 다니는지 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몇 날 며칠 반 정신이 나간 상태로 시장통을 헤집고 다녔어요. 시장통 한 상인이 그런 길숙을 그냥 둘 수 없어 보호소에 보냈고, 길숙은 얼마간의 치료와 안정을 취하고 다시 거리로 나왔어요.
길숙은 아버지가 사주신 양말 한 켤레를 아무리 추운 겨울이라도 꺼내 신지 않았어요. 아기에게 신겨준 양말과 똑같은 양말이 닳아 상하지 않도록 잃어버린 딸을 대신해 품에 넣고 다니는 것 같았어요. 그런 나는 양말 속에서 손수레를 끌고 딸을 찾기 위해 평생을 거리 쓰레기더미를 뒤지고 사는, 길숙이 노인이 되어 가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어요. 길숙은 늘 박스 더미에서 잠을 청했고, 쓰레기 속에 버려진 음식으로 허기를 달래다가도, 어디선가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면 정신을 놓고 하염없이 이끌려 가는 것 같았어요. 그런 길숙에게 학교 앞에서 떡볶이와 어묵을 파는 노점상 아주머니 한 사람은 길숙과 자주 마주쳤고, 그럴 때마다 아주머니는 길숙에게 따뜻한 음식도 가져다주고, 두꺼운 담요도 챙겨 주었죠. 그리고 그 아주머니는 추위에 떨고 있는 길숙에게 자기 집으로 같이 가서 하룻밤이라도 따뜻하게 몸을 녹이고 나오자고 설득하고, 부탁도 하고, 화도 내 봤지만, 길숙은 한 번도 응하지 않았어요.
“내가 따뜻한 방에서 더운밥 먹고 다리 뻗고 잘 만한 위인이 못 돼요. 나 같은 죄 많은 여자는 목숨 붙어 있는 것도 과분하지요. 내 죗값 치르고 사는 중이니 나 불쌍하게 여기지 마세요.”
그날은 길숙이 웬일인지 손수레를 끌고 갈 수 없을 것 같은 호화 저택이 많은 동네로 들어갔어요. 어느 집 커다란 대문 앞에 박스를 깔고 기대어 앉았고, 품에 있는 양말을 꺼내 들고 내게 말하는 것 같았어요.
“그날도 오늘 지금처럼 눈발이 흩날리는 춥고 어두운 밤이었지… 이 집에서 5년이나 식모살이했고, 이 집 남자가 나를 여자로 만들어 줬는데, 나도 그 남자가 참 좋더라고… 남자 품에 안겨 보니 여자가 사랑받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지. 그 여자가 나를 친정에 숨겨 놔도 내가 남자 제 핏줄 안고 돌아가면 나를 안을 때마다 했던 약속을 지킬 거라 철떡 같이 믿었다. 지 처하고는 살붙이고 살기 싫다고, 내 몸을 얼마나 예뻐하고 좋아하는지… 그런데 그 남자가 내 품에 있는 핏덩어리를 제 새끼가 아니라고 하는데, 내가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오더라고. 어째 사람의 탈을 쓰고 저런 거짓말을 하나 싶었지… 나를 품고 그렇게 달콤한 말을 하던 그 다정한 남자가 맞나 싶었다. 딸아이 잃어버리고 정신을 놓고 살다 가도 내가 진짜 미쳤는지 가끔 그 인간 같이도 않은 그 남자가 보고 싶더라고… 내 딸은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는데 문득문득 그 남자가 궁금해서 한 번씩 멀찍이 서서 봤더니, 내게 몹쓸 짓 시켰던 그 여자는 병들어 죽고, 다른 여자와 재혼해서 느지막이 아들을 하나 얻었더라고… 그 여자가 참 부럽대… 며칠 전에 어떤 사람이 내한테 알려 줬는데, ‘헤덴동산’이라는 곳에 가면 평생 찾아다녔던 내 딸 볼 수 있다더구나. 이제 좀 쉬어야겠다.”
그 날밤 길숙은 커다란 대문 앞에서 어떤 소란도 피우지 않고, 고요하게 서서히 잠들어 다시는 깨어나지 않았어요. 길숙의 마지막 모습은 ‘빈곤 노인의 길거리 죽음’이라는 제목으로 신문지면 한 장의 사진으로 남았고, 그 집 딸 명지는 길숙의 장례를 정성껏 조용히 치러주었어요.
높은 담이 둘러쳐진 집, 넓은 정원 곳곳에 CCTV가 설치된 고급스러운 이 층 저택에 일하는 메이드 도움을 받으며 혼자 사는 순자는 자식들에게 그리 좋은 어머니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나는 순자가 젊은 시절 생선 장사를 할 때부터 순자 손에 익숙한 칼 속 성분으로 순자의 보물 1호로 보호받고 있었죠. 순자는 생선 손질하는 것이 인생이었고 생선 덕분에 큰 부자가 되었어요.
순자도 자식들의 노모가 되었고, 늙은 몸은 병들어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생활하기 어렵게 되어 일하는 메이드를 고용했어요. 메이드는 순자의 몸을 그리 성의껏 돌보려 하지 않았고, 순자의 눈을 속여 먹다 남은 음식이나 식자재, 작고 소소한 집안 살림을 슬쩍슬쩍 빼돌리고 있었죠. 순자는 그런 메이드 행태를 알고 있었지만, 생선가게 종업원으로 일하며 빼돌린 생선 머리와 내장으로 어린 자식들을 먹였던 고단했던 시절 생각이나, 메이드에게 별말을 하지 않았어요. 자식들은 돈 이야기할 때 말고는 찾아오는 법이 없었고, 젊은 시절 술집 여자와 바람이 나서 집 나간 남편은 송장이 되어 돌아왔죠.
순자는 휑한 집에 늘 혼자 물끄러미 있었어요. 해가 뜨고 어둠이 내려앉아도 순자는 그 자리에 가만히 있었죠.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옛 기억을 떠올리면서요…
어린 순자는 엄마와 함께 몇 날 며칠 자르고 붙여 만든 100장씩 한 묶음으로 된, 종이봉투 몇 묶음을 들고 머리에 더 많은 종이봉투 묶음을 이고 앞서 걷는 엄마를 따라 5일 장에 왔어요. 과일 가게 아주머니는 장사가 안된다며 봉투를 조금만 사고, 흠 있는 과일을 듬뿍 담아 순자 손에 쥐여 주었죠. 양과자를 파는 상점에는 순자를 데리고 들어가지 않았어요. 예전에 순자가 과자 하나를 입에 넣어 버린 일이 있어 엄마에게 호되게 말을 들은 적이 있었거든요. 정육점 아저씨는 지난 장날보다 봉투를 많이 사 주셨어요. 엄마는 제일 마지막으로 여러 개의 생선가게가 붙어 있는 어물전(魚物廛) 골목에서 남은 봉투를 다 팔아 치웠죠. 순자는 엄마에게 묻곤 했어요.
“엄마, 생선가게 하면 돈 많이 벌어? 생선가게는 늘 올 때마다 사람들이 많아.”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비린내에 절어 살아야 돈이 된다더구나, 장사가 잘돼서 우리 종이봉투만 많이 사주면 된다.”
순자는 엄마와 가축 농장을 돌아다니며 가축 사료 종이 포대를 수거해 깨끗하게 손질하고, 작게 자르고 붙여 5일 장이 되면 엄마를 따라 봉투를 팔러 다녔어요. 엄마를 따라다니며 제법 몫을 하는 순자를 눈여겨본 생선가게 할머니가 순자에게 가게에서 일해 볼 것을 권했고, 그렇게 일하기 시작해 평생의 일이 되었죠.
어느 날 시장 국밥집 앞을 지나다 가게에서 점심 먹고 나오는 한 남자와 마주쳤어요. 순자는 첫눈에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고, 그 남자는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나타나 국밥을 먹고 갔어요. 순자는 그를 기다리며 틈날 때마다 국밥집 근처를 어슬렁 거리곤 했죠. 가끔 마주치는 그를 볼 때마다 콩닥이던 심장 소리는 쿵덕쿵덕 떡방앗간 방아 찧는 것처럼 커져 버렸어요.
그날은 장맛비가 억수같이 내렸고, 장마 때문에 가게 손님이 없다며 주인 할머니가 평소보다 빨리 문을 닫자고 해서 보통 때 보다 이른 귀가를 서둘렀어요.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가던 중 비포장 길에서 버스 바퀴가 논두렁에 빠져버렸고, 한 시간 뒤에나 있는 다음 버스를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되었죠. 논길 밭길로 질러 걸으면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 시골 동네라, 사람들은 우산을 써도 소용없는 퍼붓는 빗속 이쪽저쪽으로 흩어져 걸어갔어요. 순자도 한쪽 코가 망가진 우산을 들고 비를 맞으며 터벅터벅 걷고 있었는데, 경운기 한 대가 소리를 내며 순자 옆에 섰어요. 국밥집에서 마주치는 그 남자였죠. 그는 동네 돼지 축사에서 잠시 일하고 있다며 순자가 엄마와 포대를 거둬 가는 것을 본 적이 있다고 했어요. 가는 방향이면 태워 주겠다고 했죠. 순자는 얼굴이 붉어져 그를 제대로 바라볼 수 없었지만, 홀라당 경운기 뒤에 올라탔어요. 그날 이후 가끔 순자와 마주치는 그는 자신보다 한참 어린 순자를 귀엽고 철없는 어린 처녀라 여기고 별 관심 없어 보였지만, 순자는 그가 혼자 지내는 축사 옆 임시 숙소 주변을 기웃거렸어요. 그들은 서로의 남자 여자가 되어 사랑했고, 순자는 생선가게를 그만두고 그 남자를 따라나섰어요.
그의 작은 트럭에 생선, 과일, 채소 등을 싣고 전국을 다니며 팔았고, 집도 없고 돈도 없었지만, 트럭 속에서 전국 방방곡곡 모텔과 여인숙을 전전하며 사랑을 나누어도 충분했어요. 하지만, 순자가 임신하면서 변하기 시작했어요. 떠돌이 생활도 지친다고 했고, 집도 절도 없는 가난한 부모를 만나 고생해야 하는 아이가 무슨 죄냐며 병원에 가서 아이를 지우고 싶어 했어요. 남자는 자신들에게 온 생명을 어떻게 그렇게 보내냐며 순자를 설득해 보려 했지만, 순자는 남자의 말을 더는 들으려 하지 않았죠. 남자는 혼자라도 키우겠다고 했고, 둘은 다툼이 잦아졌어요. 순자는 결국 낳은 아들을 남자에게 맡기고 시골집으로 돌아가고 말았어요. 얼마 뒤 남자는 아들을 데리고 처가를 찾았지만, 순자는 처녀 행세를 하고 돈 많은 남자에게 시집갔다며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는 장모의 모진 소리만 듣고 발길을 돌려야 했어요.
생선가게를 차려 줄 수 있다는 중매쟁이의 말을 믿고 시집온 시댁은 생선가게는커녕, 남편이 친구에게 사기를 당해 빚잔치가 한창이었죠. 순자는 생선가게 종업원으로 일을 해야 했고, 남편은 그런 순자에게 생선 비린내가 진동한다며 술에 취한 날이 아니면 순자를 안아주지 않았어요. 순자는 외로울 때마다 떠돌아다녔던 남자와 어린 나이에 낳은 핏덩이 아들을 떠 올렸지만, 지나간 과거일 뿐이었죠. 남편과의 사이에서 아들 둘과 딸을 두었지만, 남편의 술주정으로 잉태되어 얻은 생명을 보고 있노라면 술에 찌든 남편의 저급하고 지저분한 행위로 자기 몸을 취했던 밤이 떠 올라 아이들을 제대로 바라볼 수 없었어요.
평생 다른 남자와 아들을 가슴에 묻고 사느라, 남편에게서 얻은 두 아들과 딸에게는 제대로 어미 노릇을 못 했어요. 그 죄책감이 순자의 마음을 짓눌러 무겁게 했죠. 큰아들은 지나치게 자신을 생각하지 않아서 걱정이었어요. 엄마에게 하는 아버지의 폭력을 막아서는 어린 아들을 보며 제발 다른 아이들처럼 두려움을 느껴 나서지 않길 바랐지만, 큰아들은 번번이 생각보다 행동이 앞서 자기가 다치고 부서지는 것을 자초했어요. 여동생을 성추행한 선생의 코뼈를 주저앉혀 놓았을 때, 아들의 물불 가리지 않는 폭력성을 꺾어 주려고 소년원에서 죗값을 치르고 오라는 마음에도 없는 말을 퍼부었죠. 둘째 아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형의 희생을 방패 삼을 줄 아는 영리한 아이였어요. 공부도 잘했고 자기가 알아야 할 것 외에는 냉정하리만큼 무심하고 인정머리 없어 보이는 녀석이 자기 앞가림을 잘하고 사는 것 같아 다행이라 여겼어요. 하나밖에 없는 딸을 귀하게 여겨주지 못했건만, 자신이 부모에게 제대로 돌봄을 받지 못했음에도 두 손주를 끔찍하게 돌보며 사는 딸이 대견했어요. 그런 자녀들을 위해 순자는 유언장에 그동안 하지 못했던 미안함을 고백하는 말과 자신의 죄를 뉘우치는 긴 편지를 같이 첨부해 두었지요.
무표정한 순자가 목소리를 내고 감정이 격해지는 날이 한 번씩 있었어요. 큰아들의 전화가 오면서부터였던 것 같아요. 그날은 웬일인지 큰아들이 귀한 보약을 들고 순자를 찾아와 순자에게 안 하던 효자 노릇을 하지 뭐예요. 순자는 경계심을 담은 얼굴로 큰아들 수상한 언행을 주시하고 있었죠. 메이드가 저녁 식탁을 정리하고 퇴근할 때까지 큰아들은 돌아가지 않고, 집 안 여기저기 어슬렁거리며 실없는 말을 늘어놓고 있었어요.
“어머니, 메이드가 어머니 학대하고 그런 거 아니죠? 그런 일 있으면 주저 말고 말해 주세요. 어머니 약은 잘 챙겨 줘요? 청소를 언제 했기에... 먼지가 이렇게 많아요?”
“저 사람만 한 사람 없어, 나는 지금 괜찮아. 신경 쓰지 마.”
큰아들은 물 한 잔을 들고 와 거실 소파에 앉았고, 순자는 의심의 눈빛으로 아들을 마주 보았어요. 큰아들은 본심을 드러내기 시작했죠.
“어머니, 낡은 이 집 헐어버리고, 새로 건물 지어 올려서 세도 놓고 여동생 데리고 와서 손주들 보면서 지내세요. 저도 떠돌이 생활 정리하고 들어와서 건물 관리하면서 어머니와 혼자 고생하는 여동생 돌보면서 자식 노릇하고 살게요.”
“젊은 놈이 늙은 어미 재산이 그렇게 탐나니? 네 여동생이 도와 달라, 든? 멀쩡한 집을 왜 부수려는 거야? 그리고 내가 건물 올릴 돈이 어딨다고?”
“어머니, 안방 금고에 금덩이와 현금 쌓아 놓고 사시잖아요. 의심이 많아서 은행에 갔다 넣는 것도 못 하시면서 죽을 때 금고 안고 가실 거예요?”
“내가 금고를 안고 가든, 버리고 가든 네가 상관할 바 아니야.”
“어머니, 왜 그렇게 자식들을 못 믿어요? 우리가 지금까지 어머니 자식으로 살아온 죄 말고 무슨 잘못을 했다고, 자식들에게 이렇게 야박하게 구세요? 제 가게 넘어갈 때도 그렇게 좀 도와 달라고 부탁했는데, 가게 넘어가고 애들 엄마 바람나서 도망가고 애들한테 무능한 아빠가 되어 오갈 때 없는 아들에게 어떻게 이렇게 잔인할 수가 있어요?”
“네 인생 꼬인걸, 왜 내 원망을 하는 거야? 뭐든 행동이 앞서 사업도 저질러 놓고 수습하는, 무모한 너를 내가 왜 책임져야 하지?”
“어머니, 어머니가 보기에는 무모하고 한심한 자식이겠지만, 실패만 했던 것도 아니잖아요. 운이 없었다고요.”
순자는 잠시 생각에 잠겼어요.
큰아들이 인수했던 가게가 있는 건물은 처음부터 사채업자에게 담보로 잡힌 위험 부담이 컸던 건물이었어요. 건물주가 빚에 쪼들려 싼값에 세입자를 모았고, 결국 건물이 사채업자에게 넘어가면서 세입자들은 쫓겨나고 말았죠. 자신이 도움을 주었더라면 그 돈도 결국 사채업자에게 뺏기고 쫓겨나는, 결과가 다르지 않을 것을 순자는 미리 알고 있었죠. 바람난 아내에게 주먹을 휘둘러 며느리와 합의를 한 것도 순자였어요. 딸아이의 이혼 소식을 듣고 사위를 만나 도움을 주고 싶었지만, 사위와 연락이 닿지 않았고, 딸을 집으로 데리고 왔을 때, 사위가 다시 돌아올 자리를 뺏는 것 같아 무심하게 있었어요.
“그래, 너 같은 놈에게 왜 내가 내 돈을 줘야 해? 너는 애초부터 걸러 먹은 놈이었어. 네 아버지처럼 툭하면 주먹질로 네 신세를 네가 망쳤는데, 왜? 내가 책임을 져야 해? 쓸모없는 놈 당장 내 집에서 나가.”
순자는 큰아들에게 거친 언어를 퍼붓고 아들을 대문 밖으로 내쫓았어요.
그 날밤 아들은 도둑고양이처럼 다시 들어와 거실 유리장 안, 각에 들어 있는 나를 손에 들고 순자가 잠들어 있는 침실로 들어갔어요. 순자는 인기척을 느꼈지만, 어떤 짐작이라도 한 듯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죠. 그는 나를 사용해 무자비하게 순자 몸을 난도질했어요. 순자는 어떤 저항조차 할 새 없이 축 늘어졌고, 아들의 떨리는 눈을 지그시 바라보며 말하는 거 같았어요.
“아들아, 괜찮다. 나를 쉬게 해 줘서 고맙구나. 나는 사실 너보다 더한 죄인이라, 내 죄가 들킬까 봐 그리도 험하게 굴었단다. 나를 용서해 다오.”
순자는 희미한 미소를 머금고 눈을 감았어요.
큰아들은 침실 장롱 거울에 비친 괴물이 된 자기 모습을 보고 화들짝 놀라, 손에 들고 있던 칼을 놓치고 말았어요. 그는 방구석으로 가 붉은 피가 철철 흐르는 어머니 시신을 보며, 온몸을 달달 떨었어요.
아들은 순자의 육신을 커다란 가방에 구겨 넣어 차에 실었고, 핏자국을 지우고 증거품들을 뒷마당에 가서 소각할 때쯤 동이 트고 있었어요. 급히 전화기를 꺼내 메이드에게 전화 걸어 노모를 자식들이 모시기로 했다며 그만 나올 것을 통보했죠.
나는 잘 씻겨져 다시 유리장 안 각에 놓였고, 순자의 시신을 실은 큰아들의 차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어요. 그날 이후 큰아들은 뻔질나게 드나들며 순자 짐을 자기 마음대로 정리하더니, 아예 집에 머물기 시작했어요. 밤마다 자기가 한 짓을 괴로워하며 술을 마셔댔고, 술에 취해 금고를 열어보려 했지만, 금고는 열리지 않았어요.
그러던 어느 날 텔레비전 뉴스 화면에서 본 듯한 가방이 눈에 띄었어요.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메이드의 신고로 경찰 조사가 시작되었고, 순자의 실종이 단순 실종이 아님이 세상에 드러났어요. 순자의 행방을 조사하던 중 큰아들을 조사하게 되었고, 큰아들은 결국 자신이 어머니를 죽였음을 자백했어요. 순자 시신 버린 곳을 경찰에게 말했고, 순자가 담긴 가방이 발견되었죠. 나는 증거품이 되어 취조실 큰아들 앞에 놓였어요. 그는 그때서야 나를 알아보았어요. 엄마가 어머니로, 어머니가 노모로 될 때까지 가장 오랜 시간 같이 했던 칼이었다는 것을요. 그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어요.
“우리 자식들은 어머니의 보물 1호 이 칼보다 못한 존재들이었어요. 학교 입학하고 졸업식을 할 때도 어머니는 생선 머리 내려치는 것에만 집중했어요. 내가 달리기로 전국 대회에 나가 금메달을 땄을 때도, 어머니는 메달을 돈도 안 되는 쓸모없는 쇳덩이로 취급했고, 우등상을 받아 자랑하며 뛰어들어 안기는 동생을 무심하게 떠밀었어요. 여동생이 남자 교사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울부짖는 날도 어머니는 생선 토막 내는 것 말고는 관심이 없었어요. 젊은 엄마였을 때도 어머니였을 때도, 돈 버는 것 말고는 돈 쓰는 것을 모르는, 돈밖에 모르는 어머니 때문에 아버지도 자식들 곁을 지키지 않았어요. 약한 노모가 되었을 때도 자식들 어려움을 돌봐 주기는커녕, 금고지기로 살고 있었죠.”
그는 잠시 조용했고, 형사들이 내미는 여러 장의 사진에서 금고 안이 찍힌 사진에는 자신의 쇳덩이 금메달도 동생의 우등상도 그 속에 있는 것이 보였어요.
“어머니께서 고용하신 담당 변호사 입회하에 금고를 열었습니다. 변호사는 금고 물건이 그대로 있다고 하더군요.”
담당 형사의 말에 그는 금세 후회의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죠. 그리고 가난했던 어린 시절 먹었던 생선 머리만 가득한 어머니 생선찌개가 그립다고 했어요. 나를 앞에 두고 그는 회한(悔恨)의 눈물을 오랫동안 쏟아냈어요.
복녀의 부모님은 복 받고 살라고 ‘복녀’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고 했어요.
이름처럼 복녀는 복이 많은 여자 같았어요. 고위 공무원인 남편은 틈틈이 복녀와 좋은 곳을 찾아다니며 건강한 음식을 먹었고, 계절마다 여행을 즐겼어요. 자녀들도 어머니에게 든든한 아들 애교 많은 딸이 되어 복녀의 행복감을 채워주었죠.
복녀의 일과는 단조로웠어요. 남편과 아이들이 일터로 배움터로 나간 조용한 늦은 아침에 침대 이불에서 나와요. 남편이 내려놓은 커피를 들고 거실 소파에 들어 누워 아침 드라마나 오락 프로그램을 시청해요. 가끔은 고운 화장과 명품 옷차림으로 멋을 내고, 고급 승용차를 몰고 백화점 문화센터 강연을 듣기 위해 외출하는 날도 있어요. 강연이 끝나면 친구들과 가까운 고급 식당에서 맛있는 음식을 즐기고, 근처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수다를 떨죠.
“어제 뉴스 봤어? 열아홉 살 여자애가 아기를 낳아서 원룸에 방치했다가 아기가 죽었대.”
“요즘 애들은 겁이 없어, 죽어 무슨 벌을 받으려고 그러고들 사는지.”
“핏덩이 내팽개치고 글쎄, 클럽에서 몸 흔들면서 술 마시고 놀았다지 뭐야.”
“요즘 여자애들은 그런 클럽 같은 곳에서 부끄러운지도 모르고 남자에게 들이댄다더라.”
“우리 늦둥이 조카”
“딸 셋 낳고 죽은 올케밖에 모른다던 국회의원 동생? 처녀가 시집와서 낳았다는 늦둥이?”
“응, 그 조카 못 낳았으면 지금 올케 받아줄 이유가 없었지. 우리 동생 자기들이 알다시피 죽은 올케밖에 몰랐잖아. 지금 올케가 우리 동생이 안 받아 주면 죽겠다고 난리 쳐서 결혼은 시켰는데, 돈 쓰는 것 말고 할 줄 아는 게 있나. 늦둥이 아들이라도 낳았으니 그냥저냥 데리고 살고 있지.”
“그래도 처녀였다며?”
“솔직히 우리 동생 처녀장가가려면 지금 올케 아니라도 줄을 섰었지? 지금 올케가 시집 잘 온 거지. 돈 걱정을 하고 살아? 아버지한테 물려받은 병원 있어, 의사 출신 국회의원 남편으로 누가 무시하기를 해? 오히려 철없는 올케 때문에 전 올케가 낳고 간 조카들이 이상해졌다니까. 그래서 늦둥이 철이는 내가 제대로 간섭하면서 키웠잖아.”
“그래 그 늦둥이 조카가 왜?”
“고등학교 때부터 좋다고 따라다니던 여자애 때문에 우리 철이가 마음고생을 얼마나 했게. 엄마도 일찍 죽고 다른 여자와 살림 차려 산다는 아빠 때문에 할머니 하고 산다고 하니까, 마음 고운 철이가 잘해줬지.”
“부족한 거 없이 사랑만 받고 큰 늦둥이라, 순수하지?”
“그럼, 얼마나 여린지! 불쌍한 사람을 그냥 지나치질 못한다니까. 제 엄마한테는 무슨 말이라도 하면, 올케는 철이한테만 뭐라고 하니까, 제 엄마한테는 아무 말 못 하고 고모한테 와서 이런저런 이야기하더라고. 애가 얼마나 스트레스가 심했는지, 없는 애한테 선심 썼다가 덤터기 쓴 기분이라고, 괜히 짜증 난다지 뭐야. 어찌 됐든 여자애가 어디 멀리 가버려서 볼 일 없게 됐다고, 하더라고. 떨어져 나가서 다행이지 뭐. 복녀야, 너희 아들딸 사귀는 사람 없대? 노처녀 노총각으로 데리고 살려고?”
“그러게! 우리 딸도 그렇고 아들도, 나이만 먹었지 아직 애야. 남자 친구도 사귀고, 여자 친구 생기면 데리고 오라고 해도, 딸이고 아들이고 엄마하고 살고 싶대. 주변에 좋은 혼처 있으면 중매 좀 해.”
“복녀 너희 집 애들도 엄마밖에 모르고 순진해서 그래. 늦었다고 급하게 아무나 받아 주지 말고, 이상한 애들 꼬이지 않게 잘 살펴. 예전에 우리 아들 대학 때 부모 이혼하고 새아빠하고 산다는 여자애 우리 아들 좋아한다고 따라다녀서 내가 아들 아침저녁으로 태우고 다녔잖아. 여자애한테 틈을 안 주려고…”
“남자애들도 이상한 애들 많아 우리 딸 대학 들어가자마자 과 선배라는 놈이 우리 딸 좋다고 해서 부모는 뭐 하냐고 물었더니, 엄마는 어릴 때 집 나가서 모르겠고, 아버지 하고 둘만 산다는데… 내가 어이가 없어서 우리 딸 학교 휴학시키고 해외 어학연수 보냈잖아…”
“우리 아파트 옆 동에 사는 집, 아들 장가 잘못 보냈다가 우세스러워 바깥 활동을 못 하잖아, 며느리로 들어온 여자애가 혼수도 대충 하고 와서 남편 벌어 주는 돈으로 사치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잖아… 그래서 부부 싸움이 잦아졌는데, 며느리가 영악하게 이혼 소송 준비하려고 없던 증거를 만들어 이혼했다더라고… 그 집 며느리 잘못 들여 돈 잃고 망신당하고… 안타깝더라고…”
“학교 선생 한다던 우리 큰 조카 기간제 교사한테 칼 맞았잖아, 결혼 안 해 준다고… 여자애가 얼마나 독하면 남자 몸에… 정교사가 뭐 하러 기간제 교사하고 결혼하겠어? 치료받고 지금 다른 학교에서 근무하면서 같은 학교 정교사하고 연애 중이야.”
“내 동생네 무용하는 아들 고등학교 때 여자애가 자기 마음 안 받아 준다고 앙심을 품고 이상한 소문 내서 우리 조카 신세 망칠 뻔했다니까… 지금은 미국에서 공부 잘하고 있지만, 그 여자애 때문에 마음고생이 얼마나 많았다고…”
“우리 아파트 게시판에는 우리 아파트 거주인 가정에 성인 아들딸 둔 사람들끼리 아들딸 소개팅해 주자는 게시글이 붙었어… 다들 좋은 생각이라고 반응이 좋아. 요즘 이상한 집들이 너무 많아서 사람 만나기가 겁난다니까…”
“애들이 다 크니까 어떤 애들 데리고 올까 싶어, 걱정이야… 애들 단속 잘해야겠어…”
복녀는 늦은 오후에 집에 와요. 잠시 낮잠을 청하고 일어나 아들과 딸에게 전화를 걸어 귀가 시간을 알아보고,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저녁거리 장을 부탁해요. 남편이 들어와 저녁 식사 준비를 끝낼 때쯤 아이들이 들어오고, 식탁에 둘러앉은 식구들은 일과를 나누며 웃음꽃이 피어요. 저녁 설거지는 아들이 하는 날이 많고, 남편은 그동안 집 안 청소와 세탁물 정리를 하죠. 복녀는 딸과 마사지 팩을 붙이고 홈쇼핑 채널을 보며 물건에 대한 평가가 시끄러워요. 늦은 밤 복녀와 남편은 침실로 들어가 사랑을 나누고 복녀는 남편 품에 안겨 잠들어요.
아들은 대학 졸업 후 주변의 부러움을 사며 대기업에 취업해 다니고 있었고, 딸은 대학원에 진학해 자신의 미래를 잘 다져가고 있을 때, 남편은 퇴직해 사업을 시작했어요. 하지만, 남편 사업은 얼마 가지 않아 사기를 당해 부도났고, 살았던 아파트에서 이웃들에게 이사 간다는 말도 못 하고 빚쟁이들의 눈을 피해 낯선 동네 반지하 단칸방으로 왔어요. 남편도 자녀들도 좁은 집이라 서로에게 더 가까이 있을 수 있다며 서로를 위로했어요. 식탁 대신 작은 상에 둘러앉아 밥을 먹으며 웃음꽃이 피었고, 한 방에 나란히 누워 이불 쟁탈전 장난을 치며 서로를 부둥켜안았죠. 버스 정거장에서 내려 집까지 구불구불 골목길을 낯설어하는 딸, 아들을 위해 남편과 같이 정거장에서 딸을 기다리고 아들을 반기는 것조차 같이 할 수 있는 시간이라 여기며 행복해지려 함께 애썼어요. 그렇게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서 넉넉한 마음으로 살았지만, 예상하지 못한 불행이 찾아들어요. 남편이 뇌졸중으로 쓰러져 오랜 기간 병원 신세를 지게 되면서 자녀들은 그런 아버지를 돌보기 위해 돈 되는 일을 찾아 뭐든 하고 있었어요. 남편은 끝내 일어나지 못하고 사망했고, 복녀는 혼자 남아 자녀들의 노모가 되었죠.
사실 복녀의 아들과 딸에게는 복녀에게 말하지 못하고 만나는 여자와 남자가 있었어요. 아들은 힘든 현실에서 우연히 알게 된 한 여인에게서 쉼을 얻고 있었어요. 그녀는 부모 없이 혼자 자라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미용 기술을 배우기 위해 미용실 보조로 일하고 있었죠. 먹고살아 내는 생존을 걱정하며 사느라 체면과 겉치레를 모르는 그녀를 보면서, 언제나 품위를 중히 여기는 어머니와는 다른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어요. 무엇보다 그녀는 그와 함께 있을 때, 그를 왕같이 대접했어요. 그녀가 사는 작고 초라한 자취방에 가면 가장 먼저 그녀는 세숫대야에 더운물을 받아 그의 발을 정성껏 마사지하고 수건으로 닦아 주어요. 그리고 따끈한 새 밥을 지어 몇 가지 되지 않는 반찬이 차려진 밥상을 내려놓으며 찬이 없다고 미안해하죠. 생선처럼 손이 가야 하는 음식은 언제나 먹기 좋게 바르고 훑어 따로 덜어주고, 식사를 끝내면 상을 들어내 그녀가 설거지할 동안 그는 욕실로 가서 샤워를 시작해요. 그녀는 알몸이 되어 욕실로 들어와 그의 몸 구석구석 씻기고 닦아 주어요. 그녀의 손길은 그의 정신적 쉼과 육체의 피로를 씻어주어 온몸을 흥분되게 해요. 그는 그녀를 통해 남자가 누군가의 절대적인 존재로 사랑받는다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알 수 있었어요. 그녀와 함께라면 어려운 자기 가정 형편과 상황을 이해하고 어머니 복녀를 자기보다 더 살뜰하게 모시고 살 수 있을 것만 같았어요. 그때 그녀와 결혼할 생각을 하고 복녀에게 친구가 만나는 여자 이야기라며 그녀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죠.
“근본도 모르고 자란 여자가 보고 들은 가정교육을 못 받았을 텐데, 학교라도 제대로 다녀서 직업이라도 번듯하든지. 뭐 하나 갖춘 게 없는 애와 결혼해서 어쩌려고? 그 친구에게 그 애와 놀만큼 놀았으면 결혼은 격에 맞는 여자 만나서 하라고 해. 수준 맞지 않는 여자 만나 살다 보면 평생 후회한다고.”
복녀는 아들이 친구 이야기라고 했지만, 아들이 만나고 있는 여자 이야기인 것을 직감할 수 있었죠. 현실적 상황이 어려워졌다고 아들이 그런 여자를 만나 결혼하겠다는 말을 꺼낼까, 사실 걱정 되었어요.
한동안 만나지 못했던 그녀가 임신 사실을 알리기 위해 그를 찾아왔어요. 그녀는 어떤 상황이든 함께 이겨낼 수 있다며 매달렸지만, 그는 그녀에게 자신의 상황을 제대로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이별을 말할 만한 심적 여유조차 없었어요. 그녀가 다시는 찾아오지 못하도록 그녀의 뱃속 아이가 자기 아이인지 어떻게 알겠냐며 그녀에게 모멸감을 안기고 관계의 종지부를 찍고 말았어요. 얼마 뒤 그녀가 출산해 아이를 안고 다시 찾아왔지만, 그는 감당할 자신이 없어 불같이 화를 내며 그녀를 쫓아 버렸어요. 그녀가 안기고 간 아기는 베이비박스 속에 넣어 두고 돌아서야 했죠.
복녀의 딸은 친구 소개로 성형외과 의사를 만났어요. 처음에는 대학병원 유능한 의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그를 어머니가 좋아할 것 같아 만남을 시작했지만,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그의 직업이 아닌, 그와의 특이한 스킨십 때문이었어요. 그는 얼굴 가득 수줍음이 배어 말 없는 사람이었지만, 치마를 즐겨 입는 그녀의 치마 속 스타킹을 훼손하며 그녀의 몸을 거칠게 취할 때만큼은 여러 날 굶주린 괴물이 되어 그녀의 몸을 마음껏 유린했어요. 그녀는 그의 정제되지 않은 행위로 온몸이 달구어진 불덩이가 되어 강력한 만족감이 솟구쳐 표현할 수 없는 행복감에 젖어들었죠. 지금까지 자신에게서 발견하지 못했던 뜨거운 무엇인가로 채워지는 그와의 시간을 즐겼어요. 그러던 어느 날 그와의 시간이 식고 있을 때, 복녀의 다급한 전화를 받고 새 스타킹을 갈아입고 급히 집으로 돌아갔어요.
딸은 그에게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다니던 학교도 그만두고, 어려움에 부닥친 상황에 관해 설명하지 못한 채 그를 만날 만한 여유조차 없는 현실을 살고 있었어요. 그도 그녀에게 연락하지 않았죠. 딸은 그가 다른 지인들을 통해 자기 달라진 환경을 알게 되어 연락하지 않는 것이라 단정 지었고, 그것이 그의 이별 통보라 여겼어요. 자신도 변해버린 자기 환경과 형편을 받아들이기 어려운데, 그의 이별 통보는 어쩌면 세상의 섭리 같은 것이라 여기는 것 같았어요.
복녀의 자녀들은 복녀에게 한결같은 마음으로 노모를 모시고 싶었지만, 아버지 사업 실패와 병원 생활로 남겨진 과대한 빚에 떠밀려 빚 갚아 나가는 일에 정신없었어요. 노모를 제대로 챙기지 못했고, 그 틈을 타 복녀에게 질병이 찾아들었어요.
복녀는 자기도 기억하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할 때가 많았어요.
동네 슈퍼에 와서 장바구니에 먹거리를 가득 담고 그냥 나오다, 슈퍼 주인에게 잡히면 자기가 왜 슈퍼에 있는지 알지 못했고, 집을 기억하지 못해 온종일 동네를 헤매고 다녔어요. 속옷 차림으로 신발도 신지 않은 채 공원을 걷다 정신이 들면 자기 모습에 놀라 당황하고, 이불 위에 용변을 보고, 냉장고 음식을 억망으로 만들어 놓고도 생각이 나지 않았어요.
어느 날 예전에 살았던 아파트 관리실로 자녀들이 급히 왔을 때, 복녀는 아들딸을 알아보았지만, 자기가 어디에 와 있는지 기억하지 못했어요. 자녀들은 복녀를 병원에 데리고 가 여러 검사를 받게 했고, 치매가 상당히 진행되었다는 결과를 받았어요. 두 자녀는 자신들에게 닥친 현실이 너무 가혹하다, 절망했죠.
치매 노모 복녀를 위해 자녀들은 번갈아 가며 복녀 곁을 지켜야 했고, 아들은 닥치는 대로 돈을 벌었지만, 빚을 갚아가며 병든 노모를 봉양해야 하는 생활은 모든 한계를 넘어서게 했어요. 아들은 과로 쇼크로 쓰러졌고, 뇌에 이상이 생겨 신체 일부분이 마비되어 노모와 함께 집에서 지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어요. 아들은 불편한 몸으로 온종일 노모를 지키고 있는 자신의 현실 앞에서 참으로 면목 없게도 헤어진 그녀를 그리워했어요.
딸은 병든 노모와 몸이 불편한 오빠를 대신해 많은 돈이 필요했지만, 돈을 쓰는 것에 익숙했던 그녀는 어떤 일을 해야 할지? 갈필을 못 잡았고, 얼마 되지 않는 돈을 벌기 위해 단순 일자리를 찾아서 했지만, 그마저도 오래 하지 못했어요. 그녀는 결핍에 허덕이는 일상을 더는 견디지 못하고 룸살롱 접대부로 나가며 괴물들을 상대하기 시작했죠. 그날은 룸살롱 마담이 전화를 걸어와 룸살롱이 아닌, 호텔 스위트룸으로 가라고 했어요. 십수 년 국회의원을 한 어른이니 잘 모시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죠.
룸으로 들어갔을 때, 그녀는 얼굴이 화끈거렸어요. 그녀가 어릴 때부터 집을 오가던 아버지 친구였어요. 그녀는 그냥 나오려 했지만, 그 사람은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어요. 그는 친구 딸인 줄 알면서 그녀와 강압적으로 관계를 가졌어요. 그녀는 그날 더럽고 흉한 괴물을 제대로 경험했고, 그 늙은이는 거액의 수표를 두고 나갔어요. 그날 이후로 몇 차례 그 늙은이를 만나야 했고, 그녀는 우울증으로 자기 몸에 징그러운 구렁이가 기어 다니는 환상에 시달려야 했어요. 더는 견딜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고, 벗어날 길을 찾아야 했어요.
그날은 복녀의 정신도 맑았고, 아들은 불편한 육신을 깨끗하게 씻었어요. 세 식구가 함께 둘러앉아 아버지 사진을 어루만지며 눈시울을 적셨죠. 그리고 딸은 동네 슈퍼에 가서 번개탄을 여러 개 구매했고, 오는 길에 ATM 현금 인출기에서 통장에 남은 현금을 모두 찾아왔어요. 현금 봉투에 집주인에게 마지막 월세와 세금이라며 짧은 메모도 남겼죠. 마지막으로 딸은 집안 곳곳 창문과 현관문에 두껍고 넓은 테이프를 이용해 틈을 봉쇄했어요. 아들과 딸은 복녀에게 수면제를 먹여 잠을 재우고 집 안 구석구석에 번개탄을 피워 놓고, 자신들도 수면제를 나누어 먹었어요. 딸은 엄마를 꼭 부둥켜안았고, 아들은 반듯이 누워 헤어진 여인을 떠 올리며 벽에 걸려 있는 나를 잠시 응시하고 눈을 감았어요. 나는 복녀가 딸아이를 안고, 유치원 원생 복을 입은 아들을 안은 남편과 사진관에 찾아와 가족사진을 찍은 인화지 속에 사용되어 그들 가정에 함께 있었어요. 벽에 걸린 액자 속에서 그들의 눈을 마주했어요. 그들은 네 식구가 함께 살았던 때를 그리워하며 희미한 미소를 띠고 서서히 떠났어요. 그들은 노모를 위해 함께 먼 길을 동행했어요. 복녀는 정말 복이 많은 여자죠?
길숙, 순자, 복녀 이들의 죽음을 통해 육신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데, 나는 왜 이들의 죽음이 자꾸 생각나는 걸까요? 이들이 이 세상에 남기고 간 것이 무엇이기에 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그것을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