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부럽네요. 모양이 변할 때마다 적당한 사랑의 언어를 깨닫게 하고, 무엇이든 듣고 채워주는 창조주가 기다리는 돌아갈 곳이 있으니…. 어떤 존재로부터 매여 모든 것을 해결 받을 수 있는 창조된 당신이 부럽긴 하지만, 인간이 어떤 존재로부터 구속되어 산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허용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내게는 잘 와닿지 않는군요.
하루하루 붕어빵을 구워냈더니, 어느새 내 아들 동건이 출소 일이 되었어요. 휴일을 빼고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아들 얼굴을 보았건만… 아들이 높은 벽 밖으로 나와 자유로워질 생각을 하니, 담 밖의 모든 세상이 동건이와 내 것이 될 것만 같은, 벅찬 마음속 출렁임으로 아무리 잠을 청해 보려 해도 눈을 감으면 동건이 자유가 그려져 무의식으로 들어가지 못했어요.
담 철문이 열리려면 아직도 두어 시간 넘게 남았는데, 나는 이미 교도소 앞 담장 멀찍하게 서서 문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지요. 높은 담장 너머 붉은 동이 틀 무렵 사람들 말소리가 들리고 두꺼운 철문 소리가 모든 고요와 정적을 깨우며 열리고 있었어요. 내 아들 동건이가 예전처럼 내 품으로 걸어오고 있었죠. 나는 또 예전처럼 기다리지 않고 아들에게 뛰어가 이번에는 내가 아들 품에 덥석 안기고 말았어요. 그리고 아들의 널찍하고 커버린 가슴에 머리를 묻고 지금까지 참아온 눈물을 마음 놓고 흘려 냈네요.
“어머니 그만 우세요. 우리 어머니 왜 이렇게 작아졌어요. 흰머리는 어느새 이렇게 많이…”
눈물이 배어 나오는 아들 목소리를 듣고서야 얼굴을 들어 다시 아들 얼굴을 어루만졌지요. 준비해 온 두부를 아들 입에 넣어 주었더니 그제야 아들이 크게 웃었어요.
“이런 건 또 어디서 보셨대… 어머니, 이런 거 안 먹어도 다시는 이런 곳에 안 올 거예요.”
나는 아들에게 어떤 말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았어요. 우리는 서로를 꼭 부둥켜안고 스산한 새벽 공기 속에 우리 둘만 존재하는 기분으로 그냥 걸었어요.
갇혀 있었던 시간 동안 동건이에게 많은 변화가 있었어요.
친구들과 어울려 오토바이를 타며 자유로움을 즐겼던 동건이는 출소해 대학 진학을 위해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감옥에서 만난 무기수 어른 한 분이 동건이 기계 만지는 섬세한 손 솜씨를 보고, 동건이에게 공부해 의사가 되어 보면 어떻겠냐는 조언을 해 주었다고 했어요. 그는 의사라는 직업은 전문적 지식도 필요하지만, 배운 지식을 손끝으로 풀어내는 손재주를 타고나지 않으면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할 수 없다고 했대요. 동건이가 의사가 가져야 하는 섬세한 손을 타고났다고 말해 주었고, 그는 틈날 때마다 동건이에게 의학 서적을 빌려주어 읽게 하고 자상하게 알려 주고 가르쳐 주었다고 했어요. 동건이는 의학 서적을 통해 사람 신체 구조와 질병에 대한 원인을 분석하고 알게 되면서, 오토바이를 튜닝하는 것처럼 사람 몸을 정성껏 튜닝할 때 생명은 잘 가꾸어져 건강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어요.
동건이는 아르바이트하며 대학 입시 준비 2년 만에 지방에 있는 의대 진학에 성공했어요. 동건이를 따라가서 같이 지내고 싶었지만, 동건이는 내가 민석이와 같이 있기를 권했고, 군 복무를 마치고 다시 학원 버스 운전을 하는 민석이와 나는 예전처럼 같이 살았어요. 민석이는 동건이를 자랑스러워했고, 동건이 학비를 보태 주면서 자신도 방송통신대를 졸업했어요. 우리는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함께 살 수 없었지만, 동건이와 민석이가 자신의 길을 찾아 나아가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어디에 감사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냥 모든 것이 감사했어요.
어느 날 민석이가 사랑하는 여자가 생겼다고 데리고 왔어요. 은서를 처음 보는 순간 고생하지 않고 그저 곱게만 자란 아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죠. 은서와 결혼해 나와 같이 살겠다고 했지만, 나는 이제 내가 민석이를 보내줘야 할 때가 왔음을 알았어요. 거창한 결혼식은 제대로 하지 못했지만, 하얀 원피스를 입은 은서와 빌려 입은 양복이 조금 어색한 민석이는 사진관에서 조촐한 결혼사진을 찍는 것으로 충분한 듯했어요. 하얀 백지에 두 사람만 존재하는 것 같은, 순수하고 깨끗한 사랑의 온기만이 두 사람을 감싸고 있는 것 같았어요. 나는 두 아이를 보면서 저런 것이 사랑이고 결혼이구나, 싶었지요. 민석이가 신혼살림 차리는 것을 도와주고 나는 내 아들이 있는 지방으로 내려갔어요.
동건이는 공부하는 것이 재미있다고 했어요. 아주 오래전부터 자신은 의사로 정해진 사람처럼 의학 공부가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것 같다며 감옥에서 만난 어른에 대해 알려 주었어요. 그 어른은 아주 어릴 때부터 의사가 되는 목표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고 했어요. 아버지 없이 홀로 자신을 키우는 세상 전부였던 어머니의 소원이기도 했다고… 그렇게 의사가 되었지만, 어머니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자신을 버리고 돈과 권력을 가진 늙은이 첩이 되어 떠나버렸다고 했어요. 오랜 시간 거리를 방황한 끝에 한 여인을 만났다고 했어요.
“노점상에 파는 투명 매니큐어를 사서 화장실로 들어간 그녀는 흠집 난 스타킹에 매니큐어를 발라 스타킹의 훼손을 방지하고 뛰어갔다네… 나도 모르게 그녀를 쫓아갔고, 여인은 식당 주방 찬 정리 하는 일을 하고 있더군. 그녀를 유심히 살폈지. 그녀는 사람들이 먹고 남긴 음식 정리를 하며 상태가 괜찮은 것들을 자기 주머니로, 입으로 넣고 있었다네… 그런 그녀를 보면서 나 자신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더군. 어머니가 첩으로 들어간 집, 그 늙은이 돈으로 좋은 아파트에서 일하는 아주머니의 보살핌을 받으며 사는 나는 그 늙은이가 먹다 남은 음식으로 연명하고 있던 셈이었지. 그 여인을 만난 그날 나는 집으로 들어가지 않았어. 내 힘으로 살 집을 구했고, 나 스스로 먹고 입을 것을 쇼핑하고 늙은이가 먹다 남은 음식을 받아먹는 그릇 같은 집을 버렸다네. 내가 한 일 중에 아직도 후회 없는 일 중 하나야. 그리고 나는 그 여인을 찾아갔어. 여인의 눈은 순박한 소의 눈동자를 담고 있었고, 작은 코는 들려 콧구멍이 보인다며 고개를 떨구는 모습이 참으로 귀여웠지. 아래위 살짝 뒤집힌 입술이 먹어도 먹어도 닳아 없어지지 않는 달콤한 사탕 같았고, 특별히 가냘픈 목선을 타고 가지런하게 돌출된 쇄골은 그녀에 대한 보호 본능을 솟구치게 했다네. 곱디고운 내 어머니의 부드러운 손과는 달리, 그녀의 작은 두 손은 궂은일에 길들여져 어떤 것이든 주저함 없이 희생하려 했고, 그녀의 거짓말은 나를 향한 끊임없는 구애의 아우성으로 들렸다네. 나는 그런 그녀를 완전한 내 것으로 소유하고 싶었어. 나로 인해 그녀의 입으로, 주머니로 먹다 남은 음식이 들어가지 않도록 해 주고 싶었다네.
가장 비싸고 좋은 호텔 스위트룸에서 그녀를 내 여자로 만들었고, 나는 그녀의 볼품없는 손가락에 값비싼 다이아몬드를 끼워주며 청혼했다네… 그녀는 정말 행복해하는 것 같았어. 그래 그녀와 잠시 나도 행복했었네… 첫 아이를 출산하기 전까지는 말일세… 아이를 출산하고 그녀가 변한 것 같았어… 그녀는 나로 인해 행복해했고, 나로 인해 풍요를 즐기고 있었지… 그런데 아이를 출산한 후 그녀는 아이로 인해 웃고 있었네… 내가 아닌 아이에게서 행복감을 느끼게 되었다는 말이지… 내가 얼마나 사랑에 굶주렸으면 내 자식에게조차 저급한 질투를 할까 싶어, 나 자신이 초라하기 그지없었다네… 나도 평범한 남편과 아빠가 되어 보려 노력해 봤지. 하지만, 우는 아이를 안아 올리면 아이는 더 악을 쓰고 울어 댔고, 우유병을 물고 있는 아이에게 눈을 맞추고 말을 시키면 내 목소리에 놀라 또 울어 대지 뭔가… 아내는 나로 인해 우는 아이의 불편한 울음을 달래며 내게 차가운 표정을 보이곤 했었네. 그런 아내가 나와 잠자리 행위가 끝나기가 무섭게 아이를 안고 밖으로 나가, 밤하늘 별을 보며 웃는 얼굴로 아이와 이야기 나누는 모습을 보면서 아내에게 나는 사랑의 대상이 아닌, 자기 삶의 윤택함을 보장하는 도구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네. 내가 질투에 눈이 멀어 아내의 모든 것을 삐뚤게 봤지. 유치하게도 나는 아내를 괴롭히고 싶어 반찬 투정도 하고 집 안 청소를 트집 잡아 퉁명스럽게 굴기도 했어. 아내는 그런 내게 화조차 내지 않고 의무적으로 책임을 다하는 것 같았어… 나는 다시 거리로 나가 돌아다니기 시작했지. 내 외로움이 점점 짙어지고 무거워질수록, 혼자 남겨진 그늘진 집에서 의무적인 아주머니 손길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어린 내가 올라와 흉측한 괴물이 되어가고 있었어. 이상하게도 그 여인에 대한 원망보다, 모든 것이 나를 버린 어머니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네… 그런 어머니에게 화를 내고 원망하고 싶었지만, 훼손된 스타킹을 갈기갈기 찢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네. 그날 내가 죽인 여자는 어머니의 마지막 눈빛을 지니고 있었어. 어머니가 다시는 어린아이처럼 엄마를 찾지 말라는 말을 하며 바라봤던 눈빛, 내가 당신 부정의 증거이고 당신 미래의 걸림돌이라는 눈빛… 내 어머니 마지막 모습은 내 모든 성장을 멈추게 했었어. 내게는 그녀로부터 얻은 두 아이가 있다네, 나는 솔직하게 두 아이가 딸인지 아들인지 이름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게 없어, 내게는 오직 어머니를 대신했던 그 여인이 전부였다네…”
동건이가 만난 어른은 내 첫 남편 기철 씨였어요. 나는 동건이에게 그 어른이 네 아버지라는 말을 해 주지 않았어요. 그와 나는 어긋난 인연이었고, 동건이와 그의 만남이 숙명이라면 서로를 알아볼 수 있는 필연의 순간이 오지 않을까 했어요. 동건이는 가끔 그의 면회를 다녀왔고, 그와 많은 편지를 주고받으며 그와의 관계를 잘 가꾸어 가는 듯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