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는 부모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서울 명문 한의대에 진학했다. 할머니는 승천이를 거두어서 생긴 경사라고 했고, 아버지는 당신이 되고 싶었던 한의사 꿈을 맏딸이 이루었다며 기쁨을 숨기지 못했다. 호돌이 열쇠고리도 현정화 책받침 하나도 사줄 돈이 없다던 엄마는 동네 사람들을 불러 음식을 나누고, 안 마시던 막걸리까지 먹고 좋아서 어쩔 줄 몰라했었다. 언니는 자기 이름이 적힌 현수막을 등지고, 마을 사람들과 면사무소 면장의 배웅을 받으며 서울 학교 근처 하숙을 나갔었다. 나는 명문대생 언니 그림자 노릇도 못 할 것 같은 못난 열등감으로 온 동네 자랑이 된 언니가 정말 꼴 보기 싫었었다.
엄마는 아버지 약초 농사일을 돕느라 아버지가 사는 산골 집을 자주 찾았었고, 나는 중학생이 되어 엄마의 부재를 대신해 부엌살림에 익숙해져야 했다. 영미는 승천이가 뭐가 그리 좋은지! 승천이를 먹이고 씻기고 데리고 다니며 뭐든 다 해 줄 태세였고, 승천이는 왜 그리도 예쁜 짓을 해서 할머니를 즐겁게 하는지... 중학생인 내가 봐도 정말 예쁜 놈이었다. 본능적으로 자기 처지에 대해 아는 것처럼 마냥 사랑받을 짓만 하는, 미워할래야 미워지지 않는, 정말 이상했었다. 나는 모든 상황에서 밀려나는 기분으로 남자애들과 어울리지도 않았고, 왈가닥이던 성격도 조금씩 누그러져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었다. 몸이 약해 엄마 보호 아래에서 자란 영미처럼 순응적이고 부드러운 성격도 못되어 누군가의 관심과 염려를 통제와 간섭으로 여기는, 모난 성질로 뿔난 못생긴 소녀였었다.
어른이 되어 생각해 보니, 나는 혹독한 사춘기를 보냈던 것 같다.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 붕괴 장면이 뉴스에 보도되는 것을 보고, 나는 왜 그리 눈물이 났던지? 자유를 갈망하며 장벽을 때려 부수는 그들처럼 나도 뭔가를 거세게 무너뜨리고 박차고 어디론가 뛰어나가고 싶은 충동이 일었었다. 1990년 2월 가수 장덕의 자살 소식이 전해졌을 때는 밝고 예쁘기만 했던 여가수에게 무슨 슬픔이 있어 그런 선택을 했을까! 싶은 안타까움도 있었지만, 죽음은 진정한 자유를 찾아가는 통로가 아닐까!라는 생각에 자살 충동이 불쑥불쑥 올라오기도 했었다. 그러면서도 내 모든 감정을 무채색으로 물들이는 죽음에 대한 공포, 내가 가보지 않은 어두운 죽은 세상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으로 전기 불을 끄지 못하고 잠을 청하는 날이 많았었다. 나는 어쩔 수 없는 매임에 갇혀 자유가 속박당하는 것 같았지만, 어디로 무엇을 향한 자유를 꿈꾸어야 하는지 모르는 답답한 혼란함으로 우울하고 화가 났었다. 별일 아닌 일에 괜스레 눈물이 왈칵 쏟아져 혼자 방에 틀어박혀 울었고, 텔레비전 앞에서 살던 내가 언니가 사용하다 최신형으로 바꾸고 선심 쓰듯 주고 간 마이마이 카세트를 끼고 살았었다. 아침 등굣길에는 이승철, 이선희, 변진섭, 이지연... 발라드 가요 테이프를 들으며 노래 가사에 심취했고, 점심시간 아이들 시선을 피해 학교 외진 곳에서 정오의 희망곡을, 밤늦게까지 별이 빛나는 밤에를 청취하며 가끔 라디오 청취자 엽서에 응모하는 것이 내 유일한 낙이었다. 내가 왜 태어났는지에 대한 고민으로 모든 것이 못마땅하고 서럽고 억울한 감정이 들쑥날쑥할 때, 내 사춘기 감성에 석유를 뿌리고 불을 지피는 일이 생기고 말았다.
중학교 3학년 여름방학 때 아버지 산골 집에서 아버지 일을 도왔었다. 약초를 마당에 말리고, 기계에 넣어 잘게 썰어 씻어서 건조기에 넣고, 꺼내 포장하고…. 쓸모없는 풀때기를 투자하고 가꿔서 이로운 역할을 할 수 있는 상품으로 만들어 주는 것 같은, 꼭 나 같은 존재를 보살피는 것 같아 나름 나는 보람 있는 일을 하는 것 같았었다. 아버지는 어른 몫 이상으로 일을 해내는 나를 든든하고 기특히 여기는 것 같았고, 나는 그런 아버지가 시키는 일은 뭐든 잘 해내고 싶었었다. 그날은 웬일인지 엄마가 소고기를 사 와서 마당 평상에 구우며 저녁상을 차렸고, 아버지와 내가 앉자, 엄마는 잘 구워진 고기 한 점을 내 밥에 올려 주었다.
“엄마, 웬 소고기야?”
“우리 딸이 아버지 돕느라 고생이 많잖아.”
“엄마 왜 그래? 이상한데….”
엄마의 다정한 목소리는 이유 없는 친절이 아님을 알기에 좀 불안하다 싶었지만, 나는 고기를 맛있게 먹었고, 반주를 곁들어 밥을 먹던 아버지가 말을 시작했다.
“김 씨가 빨리 나와야 할 텐데.”
“지난 장날 읍내 대폿집에서 시비 붙어 경찰에 잡혀갔다, 아직 안 풀려놨어요?”
“대통령이 범죄와의 전쟁 인가 뭔가 선포하고, 일단 잡혀가면 나오기 어려운 모양이야.”
“흉한 죄지은 놈들을 잡아가야지. 동네에서 술 받으러 갔다가 시비 붙었다고 잡아가면 어쩐대요?”
“읍내 나가서 말 들어 보니까, 밤에 여관방에 자장면 배달 했던 청년도 잡아갔다 하고, 술집에 술 취한 아버지 찾으러 갔던 학생도 잡아갔다더라고….”
“범죄자들 잡아가는 법이 먹고사는 사람들 잡아가면 어쩐대….”
“나라에서 하는 일이 그렇지, 어렵게 사는 사람들 형편 헤아려 주나? 김 씨가 어디로 끌려갔는지도 안 가르쳐줘서 혼자 있는 김 씨 노모가 걱정이 많더라고. 자기 마실 술 받으러 갔다가 못 오고 있으니.”
“아이고 그 노인네, 아들 안 들어오면 끼니도 안 드신다고 하지 않았어요?”
“마실 사람들이 한 번씩 들다 보긴 하는데, 아들 행방이라도 알아야 물이라도 삼킬 수 있겠다고 한다네. 동네 초상 치를까 봐 다들 걱정이야. 김 씨가 힘도 좋고, 사람이 좀 모자라도 시키는 일은 잘했는데.”
김 씨 아저씨는 어릴 때 음료수병에 넣어 둔 농약을 음료수로 착각하고 마시는 바람에 지능에 문제가 생겼다고 했다. 덩치 크고 험상궂게 생겼지만, 10살 정도 지능을 가진 아저씨는 착한 사람이었다. 5일 장이 되면 커다란 주전자를 들고 읍내 대폿집에 가서 할머니 막걸리를 받아오곤 했었는데, 술이 거해진 또래 아저씨들 놀림과 주정을 참지 못했던 것 같다.
“사람들이 참 못됐어, 그 순한 사람을 왜 못살게 구는지... 용남아, 언니는 한의사 될 거고, 너는 뭐 하고 살래?”
“몰라, 언니하고 비교하지 마.”
엄마의 뜬금없는 물음을 나는 심각하게 받지 않았고, 언니하고 비교당하는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 엄마 말을 잘라버렸다. 하지만, 엄마는 계속 말했다.
“용남아 너 중학교 졸업하고, 여기 근처에 있는 농고에 입학해서 아버지 일 도우면서 있으면 어때?”
“내가 왜?”
“네가 언니처럼 공부를 잘하길 하냐? 대학도 못 갈 텐데…. ”
엄마가 틀린 말을 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나는 슬금슬금 화가 치밀고 있었고, 아버지가 말을 이었다.
“아버지가 농사일 가르쳐 줄 테니까 여기와 있어. 일 시켜 보니까 용남이가 웬만한 남자 일꾼들보다 머리 쓸 줄도 알고, 힘도 좋아서 일 시킬 만해서 하는 소리야. 아버지가 일당 통장에 잘 모아서 나중에 시집갈 때 목돈 만들어 주마.”
“싫어.”
아버지는 내 거절에 당황한 낯빛으로 나를 바라보았고, 엄마는 내 등을 툭 치며 말했다.
“왜 싫다는 거야? 학교 담임선생님이 가정방문 왔을 때, 너는 공부할 머리는 없다고 하시더구먼, 우리 집 형편에 아버지 일 도울 수 있으면 도와야지.”
“형편이 왜? 나 고등학교 갈 형편도 안 돼?”
“언니 학비가 얼마나 드는지 알아? 몸 약한 영미 여기 데려다 놔? 승천이 유치원도 보내야 하는데... 네가 뭐 할 건데? 할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으면서, 여기서 아버지 도우면서 지내는 게 어때서?”
엄마 말에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하고 나는 그저 짜증이 치밀어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내 울음에 아버지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고, 엄마는 더 큰 목소리로 말했다.
“다 큰 게 왜 울어?”
엄마 목소리보다 아버지 얼굴이 내게는 배신에 가까웠다. 나를 가장 잘 이해할 거라 믿었던, 유일한 내 편이라 생각했던 아버지가 나를 가장 모르는 존재로 멀어지는 순간이었다. 아버지는 단호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그만 울어. 너는 운동 신경도 좋아서 경운기도 가르치면 잘 몰 거고, 고등학교 졸업하면 운전 배워서 트럭도 몰고 다니고 얼마나 좋아? 여기 있으면 아버지가 매일 고기도 구워주고 할 텐데... 아버지 말 들어.”
“싫다고, 내가 이 집 머슴이야? 내가 남자애야? 농사지을 남자애들이 가는 농고를 내가 왜 가?”
“네가 아들로 태어났으면 얼마나 좋았게?”
엄마는 내가 아들이 아닌 서운함을 드러냈고, 아버지는 아무 말이 없었다.
“내가 딸로 태어난 게 내 잘못이야? 내가 낳아 달라고 했어? 이름도 용남이가 뭐야? 나도 여자애 이름으로 바꿔줘. 어릴 때부터 이름 때문에 내가 얼마나 놀림받고 자랐는지 알아? 그럴 때마다 어디 가서 죽어버리고 싶었다고.”
갑자기 아버지 커다란 손이 내 등짝을 내려쳤고, 아버지는 화를 꾹꾹 누르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나는 아버지에게 맞은 등짝이 터져버린 듯 울분을 참지 못하고 계속 말했다.
“아버지도 나를 키워서 남자 일꾼처럼 부리려고 했지? 그래서 일부러 나한테 잘해 줬지? 일 부려 먹으려고... 그럴 거면 왜 낳았어? 아버지도 엄마도 할머니 말대로 내가 드센 용띠 딸이라서 오빠가 죽었다고 생각하지? 아들이 아닌 용띠 딸, 어디다 갖다 버리지 그랬어?”
아버지는 마당 구석 덤불에서 작대기를 찾아들고 왔고, 엄마는 그런 아버지를 가로막아 서며 말했다.
“용남아 아버지 진짜 화났어. 잘못했다고 빌어 얼른.”
“싫어, 싫어, 싫다고” 나는 악을 쓰고 울분을 참지 않았다.
아버지는 들고 온 작대기로 차마 나를 때리지 못하고, 앞에 있는 밥상만 내려치고 어두운 밭길로 모습을 감추었다.
그날 이후 나는 산골 집에 가지 않았고, 아버지와도 멀어지고 말았다. 생각해 보면 그렇게까지 아버지 속을 긁지 않아도 되었을 것을... 그냥 농고에 가지 않겠다고 했으면 되었을 것을... 부모에게 하지 말아야 할 말을 철없이 뱉은 것 같아 내 마음도 좋지 않았지만, 마음속 분을 사그라뜨리지 못한 내 사춘기 광기가 아니었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