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9월 17일

by 조은이

1988년 9월 17일 잠실 서울종합운동장 주 경기장에서 ‘세계는 서울로, 서울은 세계로’를 슬로건으로 한, 제24회 서울올림픽대회 개회식이 한창 무르익어가고 있었다. 세 들어 살던 새댁 언니의 갑작스러운 비명이 들리더니, 새댁 삼촌이 다급하게 엄마를 불러댔다. 엄마는 새댁 언니를 보고 달려 나와 할머니를 불렀고, 내게 옆집 아줌마를 불러오게 했다. 이미 아기 머리가 나오고 있어 병원 갈 상황이 되지 않아 새댁 언니는 집에서 아기를 낳느라 야단법석이었다.


88년생 용띠 남아는 기운이 두 배로 좋은 운명을 타고났다며, 할머니는 새댁 부부가 낳은 아기 이름을 용이 승천한다는 ‘승천’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할머니는 승천이가 우리 집에서 태어나서 우리 집에 좋은 기운이 돌아, 아버지 일도 잘될 거라고 했다. 엄마는 새댁 언니에게 미역국을 끓여 가져다주며, 용띠 해에 아들인 줄 알고 낳은 내가 천방지축 용띠 딸이라 시어머니에게 면목이 없었는데, 우리 집에서 쌍용 띠 아들을 출산해서 자기가 아들을 낳은 것처럼 좋다고 했었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쌍용 띠 해에 우리 집에서 태어난 아기 승천이에 대해 별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내게는 승천이 출생보다 텔레비전 중계로 대한민국 선수들 경기와 메달 소식을 보고 듣는 것이 벅차고 경사스러운 일이었다.


올림픽 5일 만에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김영남의 첫 금메달은 정말 심장이 멎을 것처럼 감격스러웠다. 0-1로 뒤지다가 후반 목 감아 돌리기로 2-1 역전승을 거뒀을 때, 영미를 부둥켜안고 집안이 떠나갈 듯 소리 질러댔다. 아기 승천이가 놀란다고 할머니 호통이 있었지만, 나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자유형 한명우 금메달 장면을 보면서 이불을 깔고 베개를 부둥켜안고 레슬링 흉내 내다, 장롱 문짝으로 자빠져 문짝을 고장 내놓고 모른 척했고, 복싱 라이트급 박시헌과 플라이급 김광선의 금메달은 정말 값져 보였다. 양궁 선수들의 줄지은 금메달 소식은 활을 만들겠다고 버려진 작대기를 주워 들고 집에 와서 엄마에게 탄탄한 실 같은 것을 찾아 달라 조르다, 가지고 있던 작대기가 순식간에 엄마 손에 넘어가서 무기가 되는 바람에 집 밖으로 도망쳐야 했었다. 유도 김재엽, 이경근의 금메달, 남자 탁구 유남규의 금메달과 여자 탁구 복식에 양영자, 현정화의 금메달은 현정화 선수 팬이 되는 계기가 되어 나도 현정화 선수처럼 여자 미소년 같은 짧은 커트 머리로 이미지를 만들려고 꽤 나 신경을 썼었다. 여자 핸드볼 금메달이 확정되었을 때, 온 동네 아이들이 골목에 뛰어나와 환호성을 질러댔다. 1위 소련, 2위 동독, 3위 미국, 4위 대한민국...이라는 기적 같은 올림픽은 끝났지만, 나는 동네 아이들과 올림픽 감격의 순간들을 연출하며 놀았고, 엄마에게 올림픽 호돌이 인형을 사 달라 졸랐지만, 야단만 맞았었다.


그날도 학교 앞 문방구에서 올림픽이 끝났다고 호돌이 열쇠고리를 반값에 판다는 세일 문구를 보고 엄마에게 하나만 사 달라 떼를 썼지만, 엄마 화만 돋우고 말았다.

“곧 중학교에 가야 할 게 공부는 안 하고 무슨 호동이야 호동이는”

“호동이가 아니고, 올림픽 마스코트 호돌이야. 학교 애들 가방에 하나씩은 다 달고 다닌다고, 한 개만 사줘.”
“네 아버지한테 가서 돈 달라고 해라.”

“아버지는 집에 없잖아~ 내가 아버지 집에 오면 말할게. 일단 엄마가 먼저 빌려줘.”

“네 아버지는 돈을 어디 쌓아 놓고 있다든?”
“아버지한테 말하라며?”

“이게, 어디 악을 써?”

“알겠어, 잘못했어. 엄마, 그러면 현정화 책받침 하나만 사주면 안 돼? 호돌이보다 좀 싼데?”

“이게 진짜, 시끄러워. 더 이상 입 떼기만 해”

엄마는 부엌 한쪽 구석에 있는 빗자루를 쳐다보며 나가라고 했고, 나는 빗자루를 집어 들고 나와서 공중으로 던져버렸다. 엄마는 내 행동에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부엌에서 뛰어나와 마루에 있는 다듬잇방망이를 들고 나를 부르며 쫓아왔고, 나는 그대로 대문 밖으로 도망쳐버렸다. 엄마는 내 등에 대고 고함쳤다.

“너 오늘 들어오기만 해 봐.”




내 친구 은미네 집은 우리 열등생들의 아지트 같은 곳이었다. 작년에 외가댁으로 가던 은미 오빠가 실종되었고, 은미 부모님은 증발해 버린 아들을 찾겠다고 전단을 만들어 전국을 다니고 있었다. 엄마와 할머니 말로는 올림픽 때문에 혼자 다니는 아이나 행색이 허름한 길거리 사람을 무작위로 잡아가서 어디에 가둔다고 했었다. 엄마는 내가 혼자 아버지에게 가는 것도 그때부터는 못 가게 했었다.

나는 엄마에게 쫓겨나면 할머니 할아버지와 사는 은미네 집에서 자거나, 놀다, 엄마가 잠들면 영미가 엄마 몰래 열어 둔 대문으로 살그머니 들어가곤 했었다. 그날은 다음 날이 일요일이라, 나는 은미네에서 밤늦게까지 놀다 잠이 들었다. 은미와 같이 자는 것이 불편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잠자리가 바뀌면 자다 깨서 변소에 가는 버릇이 있었고, 그날 밤도 옆에서 자는 은미를 깨워 마당 끝에 있는 변소 앞에 세워 두고 볼일을 보고 나왔다.

“용남아, 저기 사람 아니야?”


은미 할아버지는 실종된 손자가 혹여나 혼이 되어 집을 찾아왔을 때, 대문이 잠겨 있으면 안 된다고 항상 대문을 열어 두었고, 할머니는 손주를 찾으러 간 아들 며느리가 언제 올지 모른다며 부엌 부뚜막에 먹을거리를 두고 아들을 기다렸었다. 은미는 혹시나 이상한 사람이 열린 대문으로 들어와 부엌에 있는 밥을 훔쳐먹고 가려다, 나쁜 마음을 먹고 방으로 들어올까 봐, 할아버지 몰래 대문을 수시로 확인하고 잠갔고, 방문도 꼭 걸곤 했었다. 은미가 나지막한 담장 밖으로 사람이 지나가는 것 같다고 해서 우리는 대문 밖을 살며시 살폈다.

“언니, 삼촌 밤중에 어디 가요?”

우리 집에 세 들어 사는 새댁 언니와 삼촌이었다.

“어, 용남아” 화들짝 놀라 돌아보며 언니가 대답했다.
“승천이는요?”

“어... 승천이는 자고 있지.”

“그거 뭐예요?” 내가 커다란 가방을 가리키며 물었고, 언니가 말했다.

“누가 뭘 찾으러 왔다고 해서 가져다, 주려고.”

“아, 네”

커다란 가방을 낑낑거리며 들고 다급하게 가는 언니와 삼촌이 좀 이상했지만, 나는 졸음이 쏟아져 그냥 들어와서 잤다. 아침 일찍 집에 왔을 때, 새댁 언니네 방문이 활짝 열려 있었고, 승천이가 악을 쓰고 울어 댔다. 할머니는 텅 비어 있는 방안 바닥에 덩그러니 있는 승천이를 안아 달랬고, 엄마는 짐 없는 방을 훑다, 나를 보고 뛰어나와 내 등짝을 후려갈기며 말했다.

“밤중에 대문 소리가 나서 네가 들어오는 줄 알았더니만, 이런 망할 것들이 야반도주하는 소리였어. 이게 다 네가 어제 내 속을 뒤집어 놔서 일어난 일이야.”

엄마는 밤늦게라도 내가 들어오겠거니 여기고 소리가 요란해 아기 승천이가 깰 수 있는, 철 대문 녹슨 쇠 빗장을 잠그지 않았다고 했다. 대문 소리와 인기척이 나는 것 같았지만, 내 낯짝을 보면 속이 상했던 낮일이 생각나 한바탕 푸닥거리라도 해야 잠이 들 것 같아 애써 무시하고 자버렸다고 했다. 나는 지난밤 일을 잠시 떠 올렸지만, 엄마 입에서 퍼붓는 엉뚱한 말에 억울함이 복받쳐 무슨 맺힌 설움이 그리 많았는지 마당에 털썩 퍼질러 않아 엉엉 울어버렸다.


“시끄러워 뭘 잘했다고 울고 난리야.”

엄마는 화를 꾹꾹 누르고 부엌으로 갔고, 할머니는 승천이를 안고 나와 어르고 달래며 대문 밖을 서성거리셨다. 언니는 내 머리를 쥐어박으며 ‘뚝’ 하라고 했고, 동생 영미가 살그머니 내 옆에 와서 속삭였다.

“새댁 언니하고 삼촌 승천이 버리고 도망갔대”

나는 울음을 멈추고 할머니 품에 안겨 있는 승천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내가 지난밤 새댁 언니와 삼촌을 붙잡지 않아서 승천이가 버려진 것 같은 미안함이 밀려들었다. 밤중에 새댁 언니와 삼촌이 커다란 가방을 들고 가는 것을 봤다는 말은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다.


할머니는 자식 버리고 가는 게 그리 쉽겠냐며, 얼마 동안 승천이를 데리고 있으면 새댁 언니와 삼촌이 승천이를 데리러 올 거라고 했다. 하지만, 엄마는 밀린 월세도 떼먹고, 동네 이 집 저 집에서 돈까지 빌려 야반도주한 것들이 다시 오겠냐고, 없는 살림에 애 하나 건사하는 게 쉽냐며, 경찰에 신고해서 보호 기관으로 보내자고 했다. 상황을 알게 된 산골에 있던 아버지가 집에 잠시 왔고, 아버지는 약초 농사가 그럭저럭 자리 잡았으니, 승천이를 키우자고 했다.

“여보, 어머니하고 내가 대구 어른한테 얼마나 신세 지고 살았어? 나도 그렇게 컸는데, 승천이 거둡시다. 어린 아들놈 보니 내가 더 열심히 벌어야겠다 싶은 생각이 드네, 보고 있으니 힘이 나네.”


언니는 관심 없는 척하면서 승천이 때문에 형편이 지금보다 안 좋아져 대학 진학에 어려움이 생기지는 않을까! 신경 쓰는 것 같았고, 영미는 남동생이 생기면 무조건 좋겠다고 했다. 내 심정은 좀 복잡했다. 아버지는 내가 아들 같은 딸이라 좋아했는데, 정말 아들이 생기면, 그것도 용이 두 마리인 해에 태어난 쌍 용띠 아들을 나 대신 좋아하게 되지는 않을까! 할머니의 차별은 어쩔 수 없었지만, 내 권리 같은 것을 빼앗기게 되지는 않을까! 염려가 되었다. 그렇지만, 나 때문에 승천이가 버려진 것 같은 죄책감이 내 권리를 짓누르는 것 같아 괴로웠다. 엄마는 죽은 오빠를 생각하며 승천이에게 정(情)이라도 붙이려는 듯, 한동안 품에서 내려놓지 않았고, 우유를 먹이며 부엌에 쭈그리고 앉아 훌쩍이기도 했었다. 그렇게 승천이는 늦둥이 막냇동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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