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12월 18일 14대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자유당의 김영삼이 당선되었다.
아버지는 집을 담보로 은행에서 돈을 빌려 시장통에 점포를 얻어 약재상을 시작했고, 엄마는 약재상 일을 주로 하느라 집안일 대부분을 고등학생인 내게 시켰었다. 엄마는 내가 농고에 가지 않는 바람에 아버지 산골 집에 일꾼을 부려야 해서 안 써도 되는 돈을 지출하고 있다며, 내게 집안일시키는 것에 이유가 있는 것처럼 투덜거렸었다. 그런 엄마에게 내가 힘 좋은 아들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고 싶었는지! 나는 머리카락을 길러 다른 여자애들처럼 머리핀을 하고 다녔다. 동생 영미는 승천이 돌보는 것이 자기 임무인 것처럼 성실하게 했고, 할머니는 아버지 일이 잘되고 집안 살림이 늘어나는 것도 모두 쌍 용띠 기운을 타고난 승천이 때문이라고 했었다. 언니는 방학이 되어도 공부할 것이 많다며 집에 잘 오지 않았지만, 대통령 선거 때문에 집에 와 있었고, 아버지도 있었다. 가끔 언니와 아버지가 집에 와 있을 때면 두 사람 끼니를 챙기느라 엄마는 내게 가게에 나가 있게 했었고, 나는 내가 가족들을 위해 늘 뭔가 희생하고 있다는 피해의식으로 불만이 쌓여갔었다.
“가게 괜찮네.” 언니가 처음 와 보는 가게에 불쑥 들어서며 말했다.
“왜 나왔는데?” 언니가 가게에 관심 있었을 리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가게에 와 보면 안 되냐?”
“......”
언니는 가게에 있는 전화기를 사용하기 위해 나왔고, 삐삐를 확인하며 대학 친구들과 통화를 시작했다.
“김영삼을 믿어야 할지 확신은 없지만, 그래도 김영삼이 돼야 상황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싶어? 박정희 독재하에서 노동자들 피눈물이 만들어낸 나라를 전두환 노태우 군부 세력이 민주주의를 얼마나 짓밟았냐고? 김영삼에게 실낱같은 기대를 걸어봐야지.”
언니는 대학생이라 나라 걱정도 많아 보였고, 정치에도 관심이 있어 보였다. 유식하고 그럴싸한 말로 학교 사람들과 전화 통화하는 언니를 보면서, 약재를 저울에 달아 오래된 종이 신문에 둘둘 말아 검정 비닐봉지에 넣어 팔고 있는 내 모습이 참 초라해 보였다. 언니는 신분 상승의 계단을 차근차근 오르고 있었고, 나는 집안 일꾼 같은 존재로 정체되어 있는 것 같은... 언니와 나는 분명 다른 모양의 사람이었고, 각각의 모양은 제 역할이 있다고 여겼지만, 그 모양의 가치는 세상이 만들어 놓은 계층에서 구별이 된다는 생각이 스쳤다. 언니는 반짝 반짝이는 백화점 에스컬레이터에 탄 것 같았고, 나는 길이 보이지 않는 산 골 길에 버려진 것 같았었다.
여러 군데 통화를 끝낸 언니가 내게 말을 걸었다.
“너 고등학교 졸업하고 뭐 할 거야?”
“언니가 무슨 상관?”
“엄마 도와서 가게 일 잘 배워둬.”
“언니가 해.”
“야, 너 나한테 틱틱대지 마라.”
사실 여섯 살 위 언니는 내가 대들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집안 어른들과 이웃에 사는 어른들까지 언니에게는 어떤 예우를 하려는 모습을 보였었고, 영미와 나는 언니에게 어떤 저항심 비슷한 것도 가질 수 없는 존재들이었다.
“치, 언니한테 어떻게 감히 나 같은 게 틱틱대겠어?”
“빈정거리지도 말고."
"......"
"엄마한테 들으니까, 네가 하도 예민하게 굴어서 무슨 말을 못 하겠다고 하던데? 왜 그러는데? 너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 일도 잘 돕고, 집안일도 잘했잖아. 성질을 왜 부리는데?”
“내가 좋아서 했어? 언니는 공부해야 하고, 영미는 비실비실하고, 나 말고 할 사람이 없어서 했는데, 다들 내가 집안일하는 게 당연하다 여기는 거 아니야?”
“지금은 상황이 달라? 나는 공부해야 하고, 영미는 그런 일 못 하는 애고, 뭐가 문젠데?”
“언니가 방학 때라도 와서 해.”
“야, 나는 공부할 시간도 부족해”
“나는 시간이 많아서 하는 줄 알아?”
“너 뭐 하는데? 대학 갈 생각 있어? 대학 갈 성적도 안 된다며?”
“언니는 언니 공부만 중요하고 내가 하는 집안일은 일 같지 않지?”
“집안일이라는 게 할 수 있는 사람이 하는 거잖아.”
“그래 가족이면 그냥 하는 일, 언니는 왜 안 해? 언니는 우리 가족 아니야? 언니가 집안일할 줄 몰라서 안 하는 거야? 못하면 좋은 머리로 배우면 금방 하겠네?”
“집안일 뭐가 그렇게 많고 힘든데?”
“엄마 며칠씩 아버지한테 가면 새벽에 일어나서 아침밥 해서 도시락 사야 하고, 학교 갔다 와서 온종일 쌓아 놓은 설거지며 집 안 정리하고 저녁도 해야 한다고. 주말에는 밀린 집안일 하고, 이제는 가게까지 보잖아?”
“엄마가 아버지한테 안 갈 때도 있고, 영미와 할머니가 소소하게 도와주잖아.”
“언니 너는 집에 있을 때 설거지 한 번을 해 봤냐? 언니 운동화 한 번을 빨아 봤냐? 지금도 하숙하잖아. 집안일이라는 게 끝이 있는 줄 알아? 엄마가 집에 있다고 집에 있냐? 가게 일하지. 할머니는 우리 학교 간 사이에 승천이 보는 것만 해도 힘들어하시고, 영미는 학교 갔다 와서 승천이 챙겨야 하고 나머지는 내가 다 해야 한다고.”
“그럼 공부라도 좀 하지 그랬어? 너도 공부 잘했으면 아버지가 엄마가 일 도우라고 했겠어?”
“내가 공부할 틈이 있겠냐?”
“핑계 없는 무덤 없지?”
“그래 언니 너 잘났다. 잘난 언니 네가 다 하면 되겠네.”
대화가 오갈수록 나는 자꾸 뭔가 억울함이 치밀었고, 언니에게 두 눈을 치켜뜨고 바락바락 대들었다. 언니는 그런 내게 차분하게 말했다.
“까불지 말고 언니 말 들어. 언니가 공부해 보니까 약재상 일도 잘 배우면 괜찮을 것 같아서 하는 말이야. 나중에 내가 병원 하고, 네가 약재상 하면 얼마나 좋아?”
언니 말이 일리 있다는 것도 알았고, 성적이 바닥이었던 나는 어쩌면 가게 일을 잘 배워서 약재상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 모든 상황이 단지 빌어먹을 학교 공부를 못 하기 때문에 집안 일꾼으로 살아야 하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어야 하는 취급은 받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언니 너한테 좋겠지.”
엄마가 가게 문을 닫으려고 나왔고, 언니에게 큰소리치는 내 등짝을 내려치며 말했다.
“언니가 너 좋으라고 하는 소리지, 허튼소리해?”
“왜 때려? 언니 말만 옳은 말이고, 내 말은 다 똥이지? 잘 난 엄마 큰 딸하고 쌍 용띠 막내아들하고 잘 먹고 잘살아라.”
엄마 손이 한 번 더 올라가는 순간 나는 가게를 나와버렸다.
엄마와 언니에게 날카롭게 굴었지만, 나는 내 미래에 대한 근심으로 정말 힘든 시기를 보냈었다. 어디서부터 꼬여서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게 뭔지도 모르는 바보가 되어버렸는지! 스스로에 대한 모난 원망으로 나 자신을 괴롭히는 날들이 많았었다.
할머니는 승천이를 데리고 잤고, 영미와 내가 방을 같이 쓰고 있었지만, 영미는 아버지가 없는 안방에서 엄마와 자는 날이 많았었다. 내방 한쪽에 언니가 사용하던 책상과 책장이 있었지만, 언니 우월감에 대한 저항심으로 집에 있는 언니 물건에 대한 호기심 같은 것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언니는 박정희 대통령을 독재자라고 했고,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을 민주주의를 짓밟은 군부 세력이라고 했지만, 우리 집 독재자 군부 세력이 언니 자신인 것은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언니를 언니로 인식할 때부터 언니는 모든 것을 주도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언니를 출산하고 부모님은 세 들어 살던 지금 집을 샀었다. 집주인이 갑자기 해외로 가게 되어 급하게 집을 처분해야 하는 상황이라, 사글세로 사는 부지런하고 성실한 신혼부부를 좋게 보고 싼값에 집값을 분할해서 치를 수 있도록 해 주었다고 했다. 아버지는 다니던 공장에서 승진도 하고, 대구 변두리에 혼자 사는 할머니를 모시고 살 수 있게 되어 참 좋았다고 회상했었다. 할머니는 드센 용띠 손녀가 태어나 귀한 손자가 죽었다 여기고 엄마가 일 다니고 있음에도 나를 돌보려 하지 않았다고 했다. 엄마는 영미가 딸인 것이 시어머니에게 면목이 없어 영미와 나를 데리고 공사판 일을 다녀야 했었다. 우리가 위험천만한 공사판 환경에서 먼지에 뒤엉켜 있을 때, 언니는 할머니 돌봄을 받는 유일한 손녀였었다.
언니는 또래보다 뭐든 빨랐고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도 전에 가르쳐 주는 사람도 없었는데, 한글과 숫자 웬만한 한자까지 깨우쳤다고 했다. 사실 이 말은 잘 믿어지지 않는, 조금 영리한 언니를 아버지가 옆에 끼고 가르쳤을 확률이 높다. 아무튼 언니 영특함은 동네 자랑이었고, 부모님 어깨를 올려 주는 존재임은 분명했었다. 언니는 그런 환경을 자기중심으로 전개하고 자기 특권의식의 당위성을 확보하는 것에 능숙했었다.
언니는 언제나 새것을 가졌지만, 우리 것을 새것으로 사주라는 말 한마디 엄마에게 건네는 법이 없었다. 우리는 언니가 쓸 만큼 쓴 것들을 물려받는 것조차 새것을 선물 받는 것처럼 좋아했었고, 당연하다 여겼었다. 엄마가 가져다주는 건빵과 우유 간식을 자기 방에서 혼자 먹었고, 언니 방 쓰레기통에서 남은 건빵이 발견되곤 했을 때, 나는 속으로 생각했었다. ‘다 먹지도 못하는 과자 우리한테 좀 주지.’ 언니 도시락에는 늘 소시지가 있었지만, 단무지뿐인 우리 도시락에 소시지를 나눈 적이 없었다. 어느 날 영미가 언니 도시락 반찬 소시지 하나 집어 먹었다고 도시락을 두고 학교에 가 버렸고, 엄마는 언니가 두고 간 도시락을 가리키며 우리에게 야단쳤었다.
“언니는 학교 가서 쫄쫄 굶고 공부할 텐데... 언니 성질 뻔이 알면서 언니 것을 왜 만져?”
영미는 그냥 울었고, 나는 열받아서 엄마에게 등짝을 후려 맞으면서 소시지를 다 먹어버렸었다.
대학생이 된 언니 말은 집안의 법률이 되었고, 엄마와 아버지는 집안에 밀려들고 있는 어려움을 언니와 나누지 않았었다. 우리의 결핍은 당연한 세금이었고, 언니의 모자람은 엄마 아버지의 밀린 세금과 같았었다. 언니 조용한 영리함은 엄마 아버지를 움직이는 독재였고, 언니의 언행은 민주주의가 없는 군부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