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상실의 숲 14화

14. 쓰러진 나무

by 조은이

정수와 현석은 열흘 전쯤 콘과 로라의 집으로 이사 왔다.

그리고, 같은 집에 사는 아들 브라이언에게 여행지에 관한 정보를 듣고, 여행 준비에 분주했다.

브라이언은 자기도 20대에 친구들과 여행을 많이 다녔지만, 지금은 다들 가정을 이루고 사느라 함께 여행할 친구가 없다며 맥주를 연신 들이켜곤 했다.


브라이언은 콘과 로라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었지만, 각자의 길을 찾아 자리 잡아 사는 딸들과는 달리 콘과 로라의 근심이었다. 똑똑한 아들이 미국기업에 취업되어 미국으로 갔지만, 미국에서 회사를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했고 실패하고 말았다. 사업 실패로 연인과 이별했고, 혼자 여기저기 떠돌이 생활을 하다 결국 부모님이 있는 나라 고향으로 돌아왔었다.

부모님을 위해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고, 복지관에서 장애인을 돌보는 봉사도 시작하면서 미국 생활의 실패를 잊어가는 듯했지만, 브라이언의 실패는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점점 넓게 확장되어 알려졌다. 그들은 브라이언을 위로하려 했지만, 그런 이웃들의 관심은 브라이언이 실패자임을 되새겨 주는 샘이 되고 말았었다. 대인 기피증으로 집 안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혼자 술 마시는 횟수와 양이 점점 늘어갔다. 콘과 로라는 평소에는 부모의 애정 어린 걱정을 잘 들어주는 양같이 순한 아들이, 술에 취하면 난폭해지는 것을 두려워만 하고 있을 뿐, 다 큰 어른 아들에게 어떤 부모가 되어 주어야 할지 알지 못했다.


투명하고 가벼운 손을 내밀었다. 일요일 예배가 끝난 늦은 오후 민철은 청년부 청년들에게 여행을 떠나며 일일이 악수를 청했고, 가장 마지막 인숙 손도 잡았다.

인숙과 민철은 진지한 대화 한번 해 보지 않았었다. 그저 눈이 마주치면 가벼운 미소로 인사를 하고, 가까운 거리에 있으면 식상하고 일상적이 몇 마디를 나누는 것이 전부였다. 그런 민철의 손은 이상하리만큼 부드럽고 청초했다. 민철의 일행이 탄 차가 떠나고 난 뒤에도 한참 동안 민철의 손 느낌은 그 자리에 머무는 것 같았었다.




냉동실에 얼려 두었던 떡국떡을 꺼내 찬물에 불려 놓고, 직사각형 어묵을 적당하게 썰어 놓았다. 양배추와 양파, 파를 썰어 놓고, 설탕통과 고추장, 고춧가루통을 꺼내 놓았다. 넓둥그레한 프라이팬에 양배추를 넣고, 양배추가 잠길 만큼 물을 부어 가스 불을 켰다. 내용물이 끓기 시작하면 양파와 어묵, 떡국떡을 넣고 끓인다. 설탕과 고춧가루를 적당하게 뿌리고, 간장으로 간을 하고, 고추장을 풀어 보통 불로 끓이면서 썰어 놓은 파를 넣어 내용물을 골고루 섞어 주며 수분을 증발시켜 준다. 떡국떡이 익으면 불을 끄고 커다란 접시에 담아내면, 그럭저럭 맛이 괜찮은 떡볶이가 완성되었다.

인숙은 떡볶이를 볼 때면 어릴 때 동생과 밀가루 반죽으로 만들어 먹었던 맛없는 떡볶이가 떠올랐다. 배고파 뭐든 찾아 먹고 싶어 부엌 구석을 뒤지던 동생 불쌍한 얼굴이 생각나서 사실 인숙은 떡볶이를 좋아하지 않았다. 주영의 떡볶이가 먹고 싶다는 말에 어린 동생 얼굴이 생각나 떡볶이를 해 주겠다 약속했고, 주영과 지연, 혜원이 학교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오기로 되어 있었다. 학교에서 출발할 때 전화를 걸어왔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다란 접시 가득한 떡볶이는 그녀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꽤 시간이 지나도록 그녀들은 오지 않았고, 인숙이 주영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주영의 목소리는 가라앉아 있었다.

“언니, 정수 오빠에게 무슨 일이 난 것 같아요. 우리 바로 교회로 왔어요.”

인숙은 갑자기 불안한 생각이 스쳤다. 그리고 잊고 있었던 지난밤 꿈속 장면이 지나가고 있었다. 나무 한 그루 없는 모래바람만이 황량한 구불구불한 길 구석에 두 대의 차가 충돌한 사고 현장이 보였다. 피를 흘리는 한 청년의 끙끙거리는 신음과 의식 없이 스러져 있는 몇 명의 사람들….

정수가 여행 전날 밤, 빌린 차에 자리가 하나 남는다며 여행 일정을 같이 하지 않겠냐는 말을 했었다. 인숙은 어린 남자 청년들과 여행하는 것이 불편할 것 같아 거절했었다. 그들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

인숙은 다리에 힘이 풀려 의자에 앉아 멍해졌고, 그때 선희에게서 전화가 왔다.

“네 언니.”

“청년들에게 무슨 이야기 못 들었어요?”

“주영이가 정수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 같다고, 집으로 오는 길에 교회로 갔다고 했어요. 언니는 지금 어디세요?”

“응 나도 교회 가 보려고, 같이 갈래요?”

“네 저도 교회 가 봐야 할 것 같아요.”

“그럼 지금 픽업 갈게요.”


민철과 정수, 현석이 랜트했던 차량이 애들레이드 인근 인적이 드문 사막 지역에서 맞은편에서 오던 차량과 정면충돌 교통사고가 났다고 했다. 사고 후 반나절이 지나서야 지나가던 버스 기사가 발견해서 신고했고, 헬리콥터로 생존자들을 가까운 병원으로 옮겼지만, 세 사람 중 한 사람이 사망했다고, 사망자 신원 확인을 하는 중이라고 했다.

김동호 목사가 나오자 교인들은 그 앞으로 다가갔고, 모든 시선은 그의 입술을 주시하고 있었다.

“사망자는 민철이랍니다.”

동호는 민철의 이름을 뱉고, 얼굴을 돌리고 주저앉아 소리 내어 통곡하기 시작했다.

예배당을 채워가는 울음소리가 점점 커지고, 슬픔의 절규는 범람하고 말았다.


인숙은 교회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 걸었다.

인숙과 마지막 인사를 건네던 민철의 손, 여행 마지막 날까지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나이 많은 누나에 대한 배려로 여행에 동행하기를 권했던 정수, 콘과 로라에게 공짜 간식을 가득 받아 챙겨 넣으며 흐뭇해했던 현석…. 인숙은 그들이 믿었던 신에게 묻고 있었다.

민철은 고난과 결핍을 모르고 살아온 자신의 삶이, 자신이 믿는 신 앞에서만큼은 평온하지 못했고, 언제나 자신의 미성숙함을 자책하며 성장하길 소망했었다. 무엇보다 자신이 믿고 있는 신에 대한 신뢰와 확신에 차 있는 그는 왜 그렇게 끔찍한 모습으로 어린 나이에 생(生)이 마감되었을까… 정수는 깊고 겸손한 청년이었다. 가난하고 어려운 환경에서 성장했지만, 신에 대한 믿음으로 세상을 이길 꿈을 꾸고, 힘을 길러낼 줄 아는 단단하고 흔들림 없는, 왜 그의 신은 그를 허물어뜨려 버렸을까… 덩치 큰 현석이 찬양을 부르며 눈물 흘리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가식도 포장도 없는 그의 눈물이 참으로 순수해 보였었다. 현석이 여행 가기 전 토닥거리던 주영에게 해 주어야 할 일을 조목조목 적어 놓은 종이에는 교회를 떠난 청년들 메일 주소가 적혀 있었다. 그 청년들에게 보내야 하는 큐티 내용을 정리해 주며 자신을 대신해 발송해 달라는 부탁이 있었다. 현석은 자기 역할을 자신의 방법대로 하고 있었다. 왜 신은 그런 현석에게 더는 그 역할을 할 수 없게 했을까…


식탁 위에 놓여 있던 떡볶이는 아무도 먹지 않았고, 그날 사고 이후 인숙은 열고 나온 교회 문 안으로 다시 들어가지 않았다.




현석은 사고 당시 기억을 하지 못했고, 한쪽 다리 심한 골절과 여러 대의 치아가 손상되었다. 그의 부모는 사고 소식을 듣고 한국에서 현석이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신속하게 입국했다. 그리고 사고 경위 파악과 현석 몸 상태 회복과 상관없이 병원 측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모든 것을 보호자가 책임지겠다는 서명을 하고, 다급하게 아들을 데리고 한국으로 나가 버렸다.

정수는 뇌를 크게 다쳐 의식이 없는 상태로 여러 차례 위험한 수술을 견뎌야 했고, 중환자실에서 의식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수 한국 가족은 비행 편 비용을 마련하지 못해 입국이 늦어지고 있었다.

‘S’ 교회 청년들이 정수를 돕기 위해 모금 운동을 시작했고, 멜버른 한국 청년들과 애들레이드 한인교회가 나서 사고 경위 수습과 정수 법률대리를 자처했다.


인숙은 늦게 도착한 정수 가족이 멜버른을 경유해서 애들레이드 병원으로 가는 여정에 함께했다. 그리고 정수가 입원하고 있는 병원 중환자실 유리 벽 앞에서 회복 불가능해 보이는 쓰러진 나무를 보았다.

병원 의사들은 가족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라는 조언을 했지만, 정수 가족들은 갈기갈기 찢겨 부서진 나무를 부둥켜안고, 신에게 눈물의 기도를 멈추지 않았다.

“주여, 당신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이 아들에게 나사로와 같은 생명을 허락하시는 은총을 베푸신다면, 주를 위해 사는 주의 아들로 온전히 바치겠나이다.”

“주여, 이 아이가 어떤 모습으로 생환하든, 주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 우리는 기꺼이 주를 모시듯, 섬기겠나이다.”

“주여, 태중에서 나누어 가진 생명입니다. 동생을 살리시고 제 호흡을 대신드릴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정수 쌍둥이 누나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동생과 함께 불렀던 찬양 피아노 연주를 들려주었다.


정수는 다닥다닥 능선을 만들어 사는 부산 산동네 좁은 빌라에서 산다고 했었다.

아버지는 인쇄소 노동자로, 어머니는 식당 일과 파출부로 평생 힘들게 살았지만,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는 현실에 아버지 어머니를 볼 때마다, 가슴이 무거웠다고 했다. 하나밖에 없는 누나는 정수를 위해 언제나 모든 것을 양보하고 희생했고, 정수는 그런 누나에게 늘 빚진 동생으로 살았다고 했다.

인숙은 저렇게 살아주길 소망하는 가족들이 있는 정수가 그냥 살아나겠구나.라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자신처럼 죽음을 계획하고 사는, 자기 목숨을 나누어 줄 수 있다면, 정수에게 넘겨주고 싶었다.


멜버른으로 돌아온 인숙은 알 수 없는 고통으로 앓아누워, 음식을 먹으면 토하기가 일쑤라, 로라가 떠 먹여주는 미음 몇 숟가락을 억지로 삼키는 것이 전부였다.

인숙은 ‘S’ 교회 예배당 민철의 장례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콘과 로라가 장례식에 다녀와 눈시울을 붉혔지만, 인숙은 이상하게도 정수 병원에서도 민철 장례 소식에도 눈물이 나지는 않았다. 그리고 꿈을 꾸었다.

인숙이 잠든 방, 방문이 열리고, 하얀 양복 차림 민철이 정수가 앉아 있는 휠체어를 밀고 들어와 활짝 웃으며, 말했다.

“누나, 나는 천국 가요. 이제 털고 일어나세요.”

그리고, 정수가 앉아 있는 휠체어를 두고 눈이 부신 하얀빛 속으로 멀어지고 있었다.

인숙은 잠에서 깨어나, 울기 시작했다.

눈물이 왜 멈추지 않고 계속 나는지, 인숙은 알지 못했다.


인숙은 거짓말처럼 말끔한 컨디션으로 일어났고,

얼마 후 정수가 입원 중인 애들레이드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사고 후 40일 만에 정수는 의식을 찾았고, 재활을 위해 애들레이드 재활센터로 이송되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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