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상실의 숲 04화

4. 숲의 소리 _ 2

by 조은이

“어서들 오십시오.”

“사모님은 어디 가셨습니까?”

“예, 막내가 감기가 심해서 병원에 데리고 갔습니다. 마침, 오네요.”

동호가 만석과 함께 온 대여섯 명의 성도들을 서재로 안내하고 있을 때, 미선의 차가 마당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아침 시간이라 병원에 환자가 몇 명 없어서 금방 진료받고 왔어요. 다들 아침들은 드시고 오셨지요? 이야기들 나누세요. 차와 간식거리 좀 내오겠습니다.”

막둥이 아들을 둘러업고 들어 온 미선은 성도들에게 인사하고, 잠이 든 아들을 침실에 눕히고 나와 전기 주전자에 물을 받아 올렸다. 간식거리를 찾아 꺼내고 있을 때, 서재에서 선희가 나오면서 말했다.

“사모님, 사모님도 같이 이야기 나누셔요.”

“네, 집사님 들어가세요.”

일회용 봉지 커피와 녹차 티 백을 작은 바구니에 담고, 꺼내둔 간식거리와 사람 수만큼의 머그잔이 올려진 쟁반을 선희가 들고 들어갔다. 미선은 데워진 물이 가든 담긴 전기 주전자를 들고 선희 뒤를 따랐다.


“목사님, 부목사님 처음 오실 때 자기 공부하러 오는 게 주목적이라며, 파트타임도 괜찮다고 자기소개서에 적혀 있었잖습니까?”

“교회 형편이 안 좋아지면 1년도 못 채울 거라고 했을 때도, 괜찮다고 영상 면접 때 분명 말했잖습니까? 다들 들었잖아요.”

“목사님, 재계약 건도 그렇고, 청년부 자매하고 말이 됩니까? 부목사라는 사람이 생각이 있는지 없는지 기가 차서…”

“그 문제는 진실 확인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요?”

“재계약은 본인이 혼자 생각한 거지 교회와 아무 상관없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불미스러운 소문까지 터지고 나니까, 부목사에 대한 신뢰가 완전히 깨졌어요.”

“목사님, 그래도 일단 부목사님을 불러서 다 같이 있을 때 말을 한 번 들어 보는 건 어떨까요?”

“어쩌다 목사님 그런 실족을 하셨을까요… 참 안타깝습니다.”

“안타깝긴 뭐가 안타까워요. 저는 처음부터 외모도 그렇지만, 말을 너무 번지르르 잘한다 싶었어요. 그래도 그렇지, 목사가 얼굴값을 하면 됩니까.”

“다들 차 한 잔씩 드세요.”

미선은 성도들의 감정을 차분히 가라앉히기 위해 차를 권해 보지만, 성도들은 그간에 묵혀 놓았던 감정을 토해내듯 거친 말과 표현을 멈추지 않았다.

동호는 부목사 신은석이 늦은 저녁에 찾아와 눈물을 보이던 날을 떠올리고 있었다.


“목사님, 한국에서 멜버른 ‘S’ 교회 파트타임 목사로 채용하겠다는 이 메일을 받았을 때, 저는 하나님께서 오랫동안 가슴에 품고 있던 제 기도에 응답하신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리고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1년 동안 열심히 섬기고 교회가 부흥하면 저를 교회에서 품어 줄 것이라는 확신도 있었고요. 그래서 이곳에 정착할 생각으로 한국에 있는 모든 것을 정리하고 아내와 어린 두 딸까지 데리고 왔습니다. 왜 교회에서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는 것인지 저는 납득할 수 없습니다. 저로 인해서 청년들이 많이 늘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신 목사를 채용하겠다고 했을 때는, 파트타임 부목사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재계약 건과 비자 문제는 교회에서 어떤 도움을 줄 수 없다는 것을 확실히 했었고요. 그런 조건이었는데도 목사님께서는 우리 교회로 오시겠다고 하셨고요. 물론 신 목사가 1년 동안 교회를 위해 열정적으로 섬겨 주신 덕분에 청년들이 많이 늘어난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신 목사도 아시겠지만 교회 형편이 풀타임 목사 한 사람을 더 둘 만큼 넉넉지 못합니다. 청년들이 늘었다고 하지만, 실질적으로 교회를 운영하는 데 있어 헌금을 낼 수 있는 성도들의 수가 중요한 것도 현실이지 않습니까? 청년들은 유학생이거나 워킹홀리데이가 대부분이라, 한 끼 한국 음식을 제공받기 위해 교회를 찾아오는 청년들에게 교회가 가장 많은 지출을 하는 것도 아시지 않습니까? 목사님께서 풀타임이 아닌 파트타임 부목사로 재계약을 하시겠다고 하면 성도들 의견을 모아 볼 생각이었습니다마는, 혜란 자매와 떠돌고 있는 불미스러운 소문은 무엇입니까? 내게 진실을 말해 주실 수 있습니까?”

동호의 물음에 은석은 잠시 입술을 떨며 침묵했고, 긴 한숨으로 말을 시작했다.


“저도 어떻게 이렇게까지 되어 버렸는지 모르겠습니다. 혜란 자매가 신앙에 대한 고민이 많았고, 목사로서 영적 갈급함에 젖어 있는 눈빛을 외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청년들보다 마음 쓰고 챙겨준 것도 사실이고요. 하지만, 교회 근처나 아내가 있는 집에서 만났을 뿐, 오해받을 만한 행동은 하지 않았습니다.”

“신 목사, 장소를 묻는 것이 아니라, 저는 하나님 앞에 실족하지 않으셨는지를 듣고 싶습니다.”

“목사님, 어리고 예쁜 자매가 저를 잘 따랐지만, 교회 청년이 아닌 다른 감정을 품고 대한 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혜란이 고백을 받고 혼란스러웠고, 혜란이 입장에서 볼 때 제가 목사로서 언행을 실수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혜란이를 타일러 보기도 하고 목사로서는 차마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며 야단도 쳤지만, 혜란이는 제 아내와 교회분들이 오해할 만한 언행들로 제 주변을 돌고 있었습니다. 목사님, 저는 혜란이와 어떤 일도 없었습니다. 예, 혜란이가 거침없이 다가올 때는 잠시 착각도 하였고, 혜란이가 여자로 보일 때도 있었습니다. 일시적인 마음으로 범죄 한 적이 있냐 물으시면 부끄럽지만, 예라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기필코 제 아내와 두 딸에게 부끄럽거나 수치스러운 행동은 하지 않았습니다.”

“예, 나는 신 목사 말을 믿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하실 겁니까?”

“담임 목사님께서 제 편이 되어 주십시오. 성도들에게는 제가 직접 진실을 말하고 이해를 구해 보겠습니다. 목사님, 저는 멜버른에서 자리 잡고 싶습니다. 영어 목회를 하기 위해 오랜 시간 기도로 준비하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렇게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신 목사 당장 사는 집부터 비워줘야 하는데 어쩌시려고요?”

“그러니, 목사님께서 저를 좀 도와주십시오. 종교 비자를 받아 주시고 작은 사택만 제공해 주시면 생활비는 아내와 제가 충당해 보겠습니다. 지금은 학생 비자로 있어서 학비가 너무 많이 들어 생활하기가 힘듭니다.”

“신 목사, 떼를 쓴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교회에서 목사 사택 렌트비를 낼 만한 형편이 아니라니까요. 우리 집, 담임 목사 사택 렌트비도 겨우겨우 내고 있다는 거 잘 아시지 않습니까? 교회 상황이 종교 비자받을 수 있는 요건이 되지 않는다는 것도 아시면서 이러십니까? 신 목사, 한국으로 돌아가세요. 선배 목사로서 하는 말입니다. 이민 생활도 이민 목회도 만만치 않습니다.”


은석은 동호 말을 듣고 한참 동안 말없이 앞에 있는 물 잔을 바라보다 붉어진 눈시울을 닦으며 돌아갔었다. 그날 이후 은석은 교회 성도들 집을 찾아다니며 해명과 변명을 했었다. 그런 은석을 인간적 안타까움으로 측은해하는 일부 성도도 있었지만, 대다수 성도들은 신 목사의 말이 진실이기를 거부하는 듯했다.


“목사님, 결단하셔야 합니다. 진실 여부를 떠나서 교회 목사가 여자 문제로 말이 났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해고 사유가 됩니다.”

“그래도 부목사님 사정이 있으신데, 아직 두 달 정도 남은 임기는 끝내고 내보내는 게 좋을 듯합니다.”

“안 됩니다. 자기 잘못은 모르고 거짓말만 늘어놓는 변명 다들 들었잖아요. 집마다 돌아다니면서 했던 말이 다 다르더라고요. 상황과 사람 봐 가면서 말 지어내는 사람입니다. 그동안 교회 청년들 동요해서 교회를 더 시끄럽게 할 겁니다.”

“어차피 재계약 건은 말도 안 되는 것이니, 신 목사에게 선택하라고 하면 어떨까요? 교회에서는 당신을 더 이상 교회 부목사로 채용할 생각이 없으니, 남은 두 달을 잘 마무리하시던지, 아니면 당장이라도 그만두시던지…”

“예, 여러분들 의견 잘 알겠습니다. 신 목사에게 전달하겠습니다. 담임 목사로써 부목사를 잘 이끌지 못해 송구스럽습니다. 일단 두 달여간의 남은 임기는 채우고 그만두는 것으로 하고, 남은 기간 동안 교회와 청년들에게 좋은 모습 남기고 떠나 달라 권면하겠습니다.”




성도들이 돌아가고 동호와 미선은 조금 늦은 점심 식탁에 마주 앉았다.

“병원에서 막내는 뭐라고 하던가요?”

동호는 눈앞에 보이는 반찬을 무심코 입으로 툭툭 넣으며 머릿속 생각을 감추듯, 말을 불쑥 꺼냈다.

“여기 병원은 그냥 해열제 처방 말고 딱히 하는 말이 없어요. 열만 내리면 괜찮다고 했어요. 신 목사 사정이 딱하게 됐어요. 신 목사 사모 심정이 말이 아닐 거예요. 혜란 자매 문제까지 생기니까 속이 속이 아닌 모양인지, 오늘 병원에서 신 목사 사모 마주쳤는데, 예전처럼 살갑게 인사를 못 하고 내 눈치를 보더라고요.”

미선도 동호 기분을 살피지 못하고 자기 얘기를 하고 있었다. 병원에서 아픈 어린 딸아이 칭얼거림을 멍한 표정으로 받아 내고 있던 은석 아내 주희 얼굴이 미선의 시야 주변을 돌고 있었다.


미선은 소박한 동네 아낙 같은 자기와는 달리, 어린 딸 둘을 둔 주부 모습이라 할 수 없을 만큼 곱게 자란 태가 나는 주희에게 같은 여자로서 질투 같은 감정이 일곤 했었다. 하지만, 그녀가 미선에게만큼은 조금 억지스러우리만큼 담임 목사 사모로 대접해 주려는 노력을 비출 때면 왠지 모를 안타까움이 들었었다. 교회 반주자로 봉사하는 그녀에게 피아노 과외를 부탁하는 성도들이 많았고, 미선은 초등하고 막내아들 피아노 래슨을 비용을 받지 않고 그냥 해 준 주희에게 늘 빚진 마음이었었다.


“내가 담임 목사라고 부목사 딱한 사정 해결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어떻게 하겠어요. 원칙대로 해야죠.”

동호는 빈 그릇을 싱크대 개수대에 두고 서재로 들어갔다. 그리고 신 목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 목사 시간 괜찮으면 좀 만납시다. 내가 신 목사 있는 쪽으로 가도 되고, 신 목사께서 우리 집으로 오셔도 됩니다.”

“예, 목사님 학교 끝나고 저녁에 찾아뵙겠습니다.”

동호는 만석이 돌아가다 말고 급히 들어와서 동호에게 전해 준 메모지 한 장을 바라보았다.


“깜박하고 그냥 갈 뻔했습니다. 며칠 전에 저희 가게에 한국 자매가 장을 보러 왔었거든요. 그날 아침에 멜버른에 도착했다더라고요. 그 자매가 사는 홈스테이 집 백인 할아버지가 자매를 데리고 왔길래, 도움이 필요하면 우리 교회 나오라고 교회 연락처 주면서 자매 연락처를 물었더니, 아직 전화기를 못 만들었다고 하더라고요. 마침, 우리 아들이 예전에 썼던, 놀고 있는 전화기가 하나 있어서 주고, 가게에 있는 충전용 유심 하나 사게 해서 전화번호를 만들었어요. 혼자 어떤 일로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할아버지가 크리스천이라 자매한테 적극적으로 교회 나가라고 권하더라고요. 자매 집 주변에 사는 우리 교회 성도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도울 일이 있을 것 같아서요.”

“예, 집사님 감사합니다. 제가 주변에 도움 줄 수 있는 교인이 있는지 찾아보고 전화해 보도록 전하겠습니다.”

동호는 교인들 주소록을 찬찬히 찾아보고, 인숙 집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사는 선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집사님, 댁에 도착하셨습니까?”

“예 도착 했습니다. 따로 하실 말씀이라도?”

“다름이 아니고요. 집사님 댁 근처에 며칠 전에 입국한 한국 자매가 한 명 사는 모양입니다. 백인 가정에서 홈스테이를 하는 것 같은데, 혼자 와 있다고 합니다. 교회에서 도울 일이 없는지 챙겨봐 주십사 하고요.”

“아, 네. 학생이래요?”

“어떤 일로 왔는지, 자세한 사항은 모르고요. 이름과 주소, 전화번호만 받았습니다. 우리 교회 교인들 집 주소를 찾아보니 집사님 댁이 가장 가까워서 말씀드려 봅니다. 이번 주일부터 교회 같이 오실 수 있으면 더 좋고요.”

“예 목사님, 제가 전화하고 찾아가 보겠습니다.”

“김 집사님은 한국에 잘 도착하셨지요? 또 몇 달 후에 오시겠습니다.”

“예, 아름 아빠 도착했다고 전화 왔습니다. 빨리 영주권이 나와야 아름 아빠가 들어올 텐데. 목사님 기도해 주십시오.”

“예, 기도하겠습니다. 그럼 주일날 교회에서 뵙겠습니다.”


동호는 서재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며 긴 한숨을 쉬어 본다.

창밖 앙상한 나뭇가지는 세상의 흐름에 자신을 맡기고 있을 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바람이 불면 바람에 따라 흔들리고, 찬 공기에 갇혀 꽁꽁 얼어붙어도 그저 따뜻한 온기가 돌아와 풀어 줄 때까지 그 자리를 지킨다. 그래도 나뭇가지에는 때가 되면 싹이 트고 잎이 무성해지고 열매를 맺는다. 동호는 새삼 신의 섭리는 멀지 않은 곳에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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