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상실의 숲 03화

3. 숲의 소리 _ 1

by 조은이

“엄마, 언제 오세요?”

“곧 도착해, 동생들 깨워라.”

“네.”


미선은 큰딸과 통화를 끝내고 운전 중인 남편을 잠시 바라보다, 차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3년 전 시드니에 있는 대형교회 부목사로 있던 미선의 남편 김동호는 어느 날 아침 담임 목사 전화를 받고 평소보다 빠른 출근을 했다. 그리고 오전 시간 예고 없이 집으로 들어왔다.

“여보, 이 시간에 웬일이에요? 뭐 두고 갔어요?”

미선의 물음에 동호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안방으로 들어가 아침에 입고 나갔던 겉옷을 벗어 침대 위에 걸치듯 올려놓으며 시선을 미선에게 돌리고 말했다.

“여보, 셰어생들에게 우리 이사 가야 한다고, 다른 집들 알아보라고 해요.”

“네? 갑자기 무슨 이사예요?” 미선은 조금 예민해진 톤으로 물었다.

“다음 달 안으로 멜버른으로 가야 해요.”

“여보, 목사님, 좀 알아듣도록 차근차근 이야기해 주겠어요?”


미선은 동호와의 결혼생활 15년 동안 수십 번의 이사를 했었다. 시드니 이민 생활 7년 동안 여섯 번의 이사 끝에 스터디룸이 따로 있는, 방이 세 개인 집 같은 집으로 이사 온 지 1년이 조금 지났다. 비록 경제적 어려움으로 방 한 칸에는 셰어생 두 명을 두고 있었지만, 큰 딸아이 개인 방을 만들어 주고 거실을 방으로 개조해 두 아들 침실을 만들어 주며 몇 년 뒤에는 각자 방을 주겠노라, 약속도 했었다. 대형 교회에서 3년을 고생하고 이제 겨우 부목사로 자리 잡았는데, 또 이사라니…


“멜버른에서 우리 교회로 목사 한 사람을 보내 달라는 요청이 있었어요.”

동호는 아내에게 신중한 표정으로 말을 시작했다.

“근데 왜 하필 당신이 가야 해요? 다른 목사들도 많은데.”

“여보, 이리 와 앉아서 내 이야기 좀 들어 봐요. 멜버른에 호주 교단과 연합해 있는 대형 한인교회에서 일곱 가정이 호주 교단과 관계없이 독립적으로 한인교회를 개척하기 위해 나온 모양이에요.”

“우리 교회가 그 사람들과 무슨 관계가 있어서요?”

“우리 교회가 시드니에서는 호주 교단과 무관하게 성장해 온 교회기 때문에 도움을 요청해 온 것 같아요. 이 문제를 두고 사실 몇 주 동안 교회와 담임 목사님이 고심하셨고, 여러 의견을 듣고 기도했었어요. 그래서 내린 결론은 멜버른에 또 하나의 우리 교회를 만드는 것은 여러 가지 여건상 어렵고, 대신 이 년 정도 목사 한 사람을 보내서 도움을 주는 것으로 이야기가 되었어요. 누가 갈 것인가에 대해 부목사들 가운데 먼저 지원자를 받겠다고 했지만, 아무도 지원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오늘 아침 담임 목사님께서 내게 어렵게 부탁하셔서 순종하기로 하였습니다.”

“여보, 그런 중요한 문제를 어떻게 의논 한마디 없이 혼자 결정하고 이렇게 통보하세요.”


미선은 남편 성격상 아무도 지원자가 없는 그 시간이 편치 않았을, 그런 남편을 이해하고 있는 자신에게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낯선 곳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새로운 것을 일구어 가야 하는 것은 시작과 처음을 만들어 내야 하는 모험이기에 아무도 지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당신한테는 미안하게 됐어요. 담임 목사님이 나보다 아래 기수들 두어 명 정도 목사에게 먼저 말을 꺼냈는데, 한 분은 아직 애들이 너무 어려서, 다른 분은 시드니 적응을 겨우 했는데 다른 곳에서 자신 없다고 거절한 모양이야. 당신이 내 사정 좀 봐주면 안 되겠어요?”


김동호는 그런 사람이었다. 누군가는 감당해야 하는 일이라면, 더군다나 난처하고 불편한 일이라면, 그 누군가를 찾고 기다리는 시간을 지켜보지 못하는,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회피하는 것 같아 견디지 못하고 자신이 해치우고 마는. 미선은 그런 동호를 사랑했고 미선의 프러포즈로 둘은 가정을 꾸렸지만, 동호의 원칙적이고 올곧은 성격으로 언제나 가해자 없는 피해자인 것 같은 기분은 어쩔 수 없었다.


2년은 시드니 교회에서 동호에게 교회 운영비 일부와 생활비를 지원해 주었지만, 기간이 끝나고 동호는 시드니로 돌아가지 않고, 멜버른 ‘S’ 교회 담임 목사로 홀로서기를 선택했다. 미선은 그렇게 시드니를 떠나와 멜버른에 정착했고, 일곱 가정, 서른서 너 정도의 성도는 2년 만에 백여 명을 훌쩍 넘겼다. 하지만, 성도들이 내는 헌금만으로 교회 살림을 안정적으로 끌어나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미선과 동호는 새벽 3시에 오피스 청소 일로 생활비를 충당했고, 청소 일이 끝나면 교회로 가서 새벽기도를 인도하고 집으로 오는 일상이 미선에게는 늘 고단했었다. 미선은 다시 운전하는 동호에게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여보, 성도들이 이백 명 정도만 되면 우리 괜찮아지겠죠?”

“힘들면 내가 조금 일찍 나와서 혼자 다닐게, 애들하고 집에 있어요.”

동호는 아내가 원하는 대답을 줄 자신이 없어, 그저 미안할 뿐이었다.




“딸, 학교 갈 준비는 다 했니?” 미선은 습관처럼 큰딸을 힘차게 부르며 들어왔다.

“엄마, 아빠 다녀오셨어요. 막둥이가 열이 많이 나요. 오늘 학교에 못 갈 것 같아요.”

“그래? 감기가 오래가네, 오늘은 병원에 데려가 봐야겠네.”

아프다는 막둥이에게 들어가 얼굴과 이마를 짚어 보는 것도 잠시, 미선은 대충 씻고 나와 아이들 아침 식사와 도시락 사는 일에 바삐 움직였고, 동호는 씻고 나와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돌아와서 아침 식탁에 앉았다.


“막내 병원에 데려가 봐야 할 것 같아요.”

“그럼 빨리 다녀와요. 설거지하고 집 안 정리는 내가 하리다.”


동호는 따로 출근해야 하는 사무실이 없었다. 백인들이 사용하는 교회 건물을 일요일 예배 시간을 포함해 일정 기간 필요한 시간만큼 장소를 임대해서 사용하고 있었다. 그래서 동호 집 서재는 교회 일을 보는 사무실로 사용되고 이었다. 설거지와 집 안 정리를 대충 끝내고, 뜨거운 인스턴트커피 한 잔을 들고 서재 책상에 앉자, 교회 이름으로 등록된 전화 수화기 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네, ‘S’ 교회 김동호 목사입니다.”

“목사님 안녕하세요. 조 만석 집삽니다. 아침 식사는 하셨습니까? 저희 20분 후쯤 목사님 댁에 도착합니다.”

“예, 집사님 잘 알겠습니다.”


동호는 만석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오늘 어떤 쪽으로 든 결론 내야 하는 일에 대해 잠시 생각했다.

1년 전 교회 청년들을 담당할 부목사 신은석을 한국에서 데려왔었다. 외모만큼이나 말주변도 좋은, 삼십 대 중반의 외향적 성격을 지닌 은석을 성도들도 흡족해했었다. 하지만, 1년의 계약 기간이 끝나 갈 무렵 재계약을 앞두고 은석과 교회 성도들 간의 충돌이 생겼다. 은석은 아내와 어린 두 딸과 함께 1년 동안 학생 비자를 받아 학교 공부를 하며 파트타임으로 교회 일을 하고 있었다. 자신이 열심히 교회를 섬기면 체류를 위해 학비를 내가면서 학생비자를 따로 받지 않아도 되는, 종교 비자를 받아 줄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교회는 처음 은석을 부목사로 채용할 때 1년 동안만 청년들을 맡아 줄 파트타임 부목사를 제안했을 뿐, 재계약에 대해 어떤 언급도 하지 않았으며, 재계약이 된다고 하더라도 현재 교회 형편상 종교 비자를 받아 줄 만한 상황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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