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상실의 숲 05화

5. 독초

by 조은이

선희는 초등학생 딸아이 교육을 위해 남편을 한국에 홀로 남겨 두고 멜버른에서 삼 년 정도 머물다, 한국으로 돌아갔었다.


선희는 술에 의지하고 사는 무능한 아버지를 대신하여 노점상을 하는 강한 어머니를 보면서 지독한 가난 속에서 유년기를 보냈었다. 동네 교회에서 초코파이를 나누어 준다는 친구 이야기를 듣고, 초코파이를 먹을 욕심으로 교회에 나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교회 오빠 지섭을 만나게 되었다.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업 전선에 뛰어들어 생계를 위해 살아야 했던 고단한 일상에서 위로가 되어 준 교회 교사였던 지섭을 사랑하게 되어 결혼했다. 지섭은 중상류층 가정에서 경제적인 어려움을 모르고 자라 명문 대학을 나와 대기업에 다니고 있었다. 지섭은 선희에게 교회 오빠로 교사로 선희가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지 알고 있었고, 선희 고백을 뿌리칠 수 없어 집안의 반대를 이해시키고 결혼했었다. 하지만, 지섭은 선희에 대한 감정이 사랑이라기보다는 연민 같은 마음이 컸음을 결혼 후 알게 되었고, 대학 동창인 미연과 만나고 있었다.

선희와 지섭은 부부라 할 수 없을 만큼 단절된 관계로, 같은 공간에 있지만 각자 지냈었다. 선희가 딸 아름과 유학을 결심한 것도 지섭과의 불화를 피하기 위한 방책으로 별거나 마찬가지였다.


선희는 3년의 별거 아닌 별거를 통해 지섭이 생각 이상으로 자신을 지탱하게 하는 존재임을 깨달았었다. 지섭에게 미연과의 관계를 정리하길 요구하며 부부 관계 회복을 위해 애썼지만, 소용없었다. 선희는 지섭의 무관심에 가까운 냉담함에 분노와 오기 같은 감정에 지쳤고, 마음이 떠나버린 남편 옆에서 질척이는 것 같은 초라한 자신을 더는 견디지 못했었다. 이혼으로 가는 길목에서 도망치듯 이민을 위한 영주권 신청을 하고 딸과 함께 멜버른으로 다시 돌아왔었다.

주변 사람들에게는 영주권이 나오면 남편이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내고 들어올 계획이라고 말했지만, 지섭은 한국에서 미연과 살림을 차렸고, 선희와 헤어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선희는 남편의 속마음도 계획도 짐작하고 있었지만, 보내주고 싶지 않았다. 사랑이라는 감정의 잔재가 남아서라기보다는 지섭의 존재는 선희 자신의 마지막 자존심 같은 것이었다. 가난으로 배우지 못한 자기 열등감을 가려 주는 존재, 지섭과의 관계를 지켜내는 것은 자신을 지키는 것이라 믿고 있었다. 딸 아름을 임신하고부터 부부 잠자리는 없었고, 가끔 멜버른에 들어와서 1, 2 주 정도 딸과 시간을 보내고 돌아갈 때 공항에서 가벼운 포옹을 하는 것이 부부 최소한의 대화였다.


선희는 지독한 외로움에 뭐든 해야 했다. 카지노에 가서 몇천만 원의 돈을 탕진했고, 딸 아름 교육에 열을 올리며 여러 가지 사교육에 돈과 시간을 쏟아붓기도 했었다. 그럴 때마다 지섭은 카지노에서 날린 현금을 채워줬고, 딸 사교육에 관한 관심이 아닌, 돈으로 할 수 있는 역할에 충실했었다. 지섭 자존심을 짓밟아 주겠다는 결심으로 시작한, 지섭이 즐기는 골프로 한국인 최초 여자 프로 티칭 골퍼 자격을 취득했지만, 지섭의 관심은 받지 못했었다. 그런 세월을 보내고, 선희는 종교에 깊이 빠져들어 살고 있었다. 매일 새벽 제단에 나가 기도로 하루를 시작했고, 교회에서 있는 모든 예배와 집회에 빠지지 않았다. 성경 외에는 어떤 책도 읽지 않을 만큼 모든 중심이 교회와 신앙이었다. 남편과 떨어져 지내는 선희 무료한 시간을 걱정하던 교회 집사의 권유로 그림 그리기를 시작했고, 그림 그리기는 선희가 잊고 있었던 초등학생 선희가 품었던 화가의 꿈을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가르쳐 주는 사람도 없었지만, 혼자 몇백 개의 골프공을 스윙하듯 그림을 수십 장식 그리고 있었다.


선희는 무엇이든 집착하지 않고는 안주되지 않는 마음의 허기짐을 스스로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자신이 살아온 삶이 옳고, 지섭의 행태는 틀린 것이라고 신경 쓰지 않는 지섭에게 끊임없이 증명하려 했지만, 지섭은 그런 선희의 집요한 억척스러움에 최소한의 짜증도 느끼고 싶지 않은 듯 질려하고 있었다.




선희는 동호 전화를 받고 메모해 둔 쪽지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지난밤 꿈을 떠올렸다. 커다란 문 앞에 서서 뒤를 돌아보니, 길게 늘어선 계단에 끝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행렬이 보였다. 문이 서서히 열려 선희는 그 문 안으로 들어갔고, 문이 닫히려는 순간 자기 바로 뒤에 있던 누군가의 손을 거세게 잡아당겨 그를 문 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문은 큰 소리를 내며 닫혀 버렸고, 잠에서 깨어난 선희는 자신이 믿는 신이 좋은 친구를 보내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 깊은 곳에서 기대감이 일었다.


- 서인숙 0433 222 *** 보윈 로드 20번지 -

선희 집에서 차로 오 분도 채 되지 않는 가까운 곳,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서인숙 씨 되시죠?”

“네, 누구신지?”

인숙은 저장되어 있지 않은 낯선 번호 울림에 잠시 망설여졌지만, 전화를 받았다.

“저는 ‘S’ 교회 다니는 주선희라고 합니다. 여기 오신 지 며칠 안 되셨죠? 혹시 도와드릴 일이 없으신가 해서 전화했습니다. 우리 집과 무척 가깝거든요.”

전화기 속 인숙 목소리는 무심했지만, 선희는 인숙에게 다가가고 싶다는 강한 충동을 감추지 못했다.

“말씀은 감사하지만, 온 지 며칠 안 돼서 생각나는 것도 없고요, 제가 사는 홈스테이 집에서도 웬만한 도움은 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전화 주셔서 감사합니다.”

인숙은 선희 상냥하고 여성스러운 말투도 자신과는 잘 맞지 않을 것 같았지만, 교회 사람이라고 하니, 오버스러운 친절이 가식으로 느껴졌다. 빨리 전화를 끊고 다음에는 이 번호를 받지 말아야겠다, 결심하고 있을 때, 수화기에서 조급한 듯 다시 인숙을 불렀다.

“잠깐만요. 인숙 씨 잠시 후에 제가 댁에 잠깐 들러도 될까요?”

“아니요.”

선희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인숙은 단칼에 거절했다.

“그럼 혹시라도 도움이 필요한 게 있으시면 전화 주세요.”

“네, 감사합니다.”


인숙에게 ‘교회’ 하면 떠 오르는 감정은 염세적 우울증에 가까웠다.

보육원으로 보내지기 전 혹독하게 추운 겨울 크리스마스 때였다. 동네 교회 교사라는 여자와 남자가 골목 담벼락에 성탄절 축제 포스터를 붙이며, 동네 아이들에게 저녁에 교회 오면 맛있는 음식과 공연을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날 밤도 술에 취한 아버지 폭언과 폭력에 시달리는 엄마 비명을 피해 동생과 집 밖으로 나왔고, 문득 낮에 봤던 포스터가 생각나 꽁꽁 언 동생 손을 잡고 교회에 갔었다. 교회 마당 커다란 트리에 작은 전구에서 각양각색의 불빛이 반짝였고, 예쁘고 귀여운 장식들이 달린 나무 아래 선물 포장이 멋스러운 상자들이 인숙과 동생의 시선을 끌었다. 자신들도 모르게 트리 가까이 다가가 손을 뻗어 만지고 있었고, 그때 낮에 봤던 여자 교사가 나타나 트리는 만지는 게 아니라며 인숙 손을 잡고 부모님은 어디 있냐고 물었다. 인숙의 당황스러운 표정에 동생이 울먹이자, 그 여자는 인숙과 동생에게 카스텔라 빵 한 봉지씩을 손에 쥐여 주고, 교회 밖 가로등 아래로 데리고 나갔다. 여자는 아주 예쁜 미소와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다.


“교회 올 때는 깨끗하게 씻고 와야 해. 너희들이 교회 예배당에 들어가면 다른 사람들이 너희들 냄새 때문에 불편해할 거야. 다음에 올 때는 엄마에게 씻겨 달라고 하고, 깨끗한 옷을 입고 와야 한다. 오늘은 집으로 가는 게 좋겠다.”


울음을 그치고 빵이 맛있다고 말하는 동생은 그 여자가 참 예쁘고 착한 선생님인 것 같다고 했다. 인숙은 추위에 떨며 빵을 삼키는 동생 차가운 손을 잡고 걷는 그 밤길이 그냥 슬펐었다.


보육원은 기독교 단체에서 운영하는 곳이었다. 전도사라고 불리는 관리 교사 여자는 천사 같은 얼굴을 하고, 상냥한 목소리를 지니고 있었다. 그런 모습으로 보육원 아이들에게 얼마나 못됐게 굴었는지...

정말 있었던 것인지? 알 수 없는, 사무실 볼펜 한 자루가 없어졌다고 미취학 아동들 엉덩이가 시커먼 멍이 들도록 때렸고, 음식을 남긴다고 쓰레기통에 버려진 음식을 손으로 주워 먹게 했다. 밤에 자다 일어나 우는 아이를 벌거벗겨 밤새 밖에 세워 두고, 오줌을 쌌다고 알몸으로 등에 오줌싸개라 쓰고 방마다 돌아다니게 했다. 그런 그녀가 매일 하는 것이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것이었다. 어린 인숙은 가끔 궁금했다. 도대체 그 여자는 뭘 기도하고 있는지…

동생 피멍 든 엉덩이를 보고, 악몽을 꾸고 자다 일어나 울고 있는 동생을 벌거벗겨 밖으로 내쫓는 그녀를 보면서 인숙은 사람의 겉가죽을 쓴 악마의 모습이 그 여자 같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동생을 따라 나가 알몸으로 떨고 있는 동생을 안고 있던 인숙에게 그녀는 아주 예쁜 표정으로 상냥하게 말했었다.

“제 동생이라고 챙기기는… 너도 같이 밤새라.”


인숙이 다녔던 야간 고등학교 교장은 불우한 환경에서 공장일과 공부를 병행하는 아이들에게 수시로 몹쓸 짓을 했었다. 인숙도 어느 날 교장의 부름을 받고 교장실로 갔을 때, 교장은 인숙에게 기독교 재단에서 주는 장학금 10만 원을 주겠다고 했다. 공장 한 달 월급이 삼십만 원이 채 되지 않았는데, 10만 원의 장학금은 제법 큰돈이었다. 어린 여학생의 분별력을 흩뜨릴 수 있는 달콤한 악마의 속삭임이었다. 교장은 인숙에게 자기 말만 잘 들으면 일시적 장학금이 아닌 분기별 장학금으로 주겠다고 말했었다. 그리고 그는 어느새 인숙 옆으로 와서 인숙 어깨를 감싸고, 냄새나는 주름진 얼굴을 인숙 얼굴에 바짝 갔다 댔다. 인숙은 벌떡 일어나 “장학금 안 받을래요.”하고 교장실을 뛰쳐나와 버렸었다. 그때 느낀 감정은 말로 어떻게 표현할 수 없는, 생각날 때마다 몸에 더럽고 징그러운 무언가가 들러붙는 것 같은 불결한 느낌으로 몸서리쳐지곤 했었다. 몇 달 뒤 학교 학생 하나가 교장의 몹쓸 짓을 유서로 남기고 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아이들은 교사나 경찰에게 교장의 더러운 짓을 진술하지 못했다. 학교를 계속 다닐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으로 친하고 가까운 친구들끼리만 교장의 추잡한 짓을 공유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 교장은 기독교 재단 임원을 맡은 목사라고 했다. 어른들은 자살한 학생의 유서는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삐뚤어진 인성을 지닌 아이의 거짓말로 취급했다. 오히려 좋은 일 많이 하는 교장의 명예를 실추시켰다고, 죽은 아이의 영혼마저 욕되게 했었다. 교장은 세상에서 가장 인자한 표정과 말투로 조예 시간에 말했었다.

“여러분, 내가 여러분들을 더 많이 사랑해 주지 못함을 반성합니다.”
교장은 얼마 뒤 다른 학교로 갔다.

인숙은 그가 숨기고 사는 흉측한 괴물의 꼬리가 언젠가는 세상에 드러나 밟힐 것이라 여겼지만, 그는 훌륭한 은퇴 목사가 되어 여러 권의 책을 출간하고 죽을 때까지 존경받았다. 세월이 흘러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그의 장례식 장면을 접하고 인숙은 더러운 오물을 본 것처럼 토할 것 같았다. 그의 영정 사진 속 표정은 여전히 세상에서 가장 인자한 모습이었다. 그 주변에 있었던 어른들은 교장의 정체를 몰랐을까? 모르고 싶었을까?


동네 교회 교사도, 보육원 관리 교사도, 목사였던 교장도…

좋은 인상과 상냥한 말투로 늘 똑같은 말을 했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자기들이 말하는 하나님으로부터 사랑받은 그들은 왜 사랑을 그런 식으로 하는지... 인숙은 예수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를 본 적이 있었다. 예수가 실존 인물인지 허구적 존재인지 알 수 없지만, 분명 예수는 그런 인간들에게 그런 것이 사랑이라 가르친 적은 없을 것이다. 가난과 질병, 고난의 고통 속에 허덕이는 불쌍한 영혼들을 위해 죄 없는 피를 흘렸다고 했었다. 교회는 그런 예수의 선한 뜻을 실천하는 곳이라 말하면서 현실은 악하고 죄 많은 사람이 가장 잘 숨어 신분 세탁을 할 수 있는 곳이 아닐까? 하는 의심은 정말 의심에 불과한 생각일까?

keyword
이전 04화4. 숲의 소리 _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