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상실의 숲 01화

1. 길을 벗어났다.

by 조은이

인숙은 인천 국제공항 출국장 문 앞에 서서 잠시 뒤를 돌아보았다.

유니폼을 입은 남자와 여자는 인숙이 내민 여권 속 사진과 인숙 얼굴을 번갈아 보고 항공권을 확인하며 가벼운 인사를 건넸다. 들어선 곳에는 같은 모양 여러 대의 기계가 정열 해 있었고, 기계는 갖가지 물건들을 삼켜 뱉어내기를 반복하며, 기계 문턱을 넘는 사람들을 주시하고 있었다. 인숙은 걸음을 멈추고 멍하니 바라보다, 사람들 밀림에 도착한 기계 앞에서 자기 몸에 붙어 끌려오는 캐리어와 노트북 가방을 허벅지 높이 롤러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 놓은 직사각형 문 속으로 몸을 밀어 넣었을 때, 문 앞을 지키던 제복 입은 남자는 인숙을 가로막았다. 그의 오른손에 들려 있는 납작한 막대기가 빠져나오는 인숙 몸 겉을 훑고 난 뒤에 서야, 그는 인숙에게 배려가 담긴 표정으로 비켜서며 그 세상으로 들어가는 것을 허락해 주었다.


인숙은 줄지어 정돈된 카트 앞에서 카트 하나를 정열에서 이탈시켜, 캐리어와 노트북 가방을 실어 올렸다. 손에 들린 여권 사이에 끼워진 항공권을 꺼내 찾아가야 하는 게이트를 확인하고, 여권 사이에 다시 넣어 노트북 가방 앞 지퍼를 열고 넣었다.

화려한 조명 아래 갖가지 유명 브랜드 글자와 광고가 허공에 떠다니고, 상품들이 진열된 다닥다닥 붙어 나열된 가게 속에서 사람들이 복작복작 들락날락하고 있는, 이곳은 다른 차원으로의 공간 이동 통로인 듯, 사람들 눈빛은 저마다 어딘가를 향해 둥둥 떠 앞서가고 있는 것 같았다.


“언니야, 긴장되나?” 인숙의 안내자 역할을 맡은 은경이 발랄하게 물었다.

“어, 조금”


적당한 돈이 모이면 해외여행 다니는 것을 인생의 투자라 여기는 은경은 고등학교 때부터 여행 경비를 저축했고, 대학 입학 후 방학 때마다 여행을 자주 다닌 탓에 인천 공항 풍경에 그리 낯설어하지 않았다.


두어 달 전 인숙은 2년 남짓 일했던 입시 미술학원을 그만두었다.

알코올에 찌들어 사무실 구석 잠을 자는 원장과 몇 안 되는 아이들 수업을 도맡아 하던 주임 교사 한 명, 경리 여직원 한 명, 부원장직을 맡고 있었던 인숙은 학원의 오만 가지 일을 두루두루 돌보고 있었다. 밤새 혼자 술을 마시고 쓰러져 있는 원장을 깨워 사우나로 쫓고 술자리 흔적을 치우는 일부터 경리 직원의 부재를 대신하고, 주임 교사 수업을 돕고, 학생들 관리부터 학부모들 불평을 받아 주고 달래 가며 나름 분주하게 자기 역할을 하루하루 채워가고 있었다.

2년 전 원생들 실기 시험 입시에 실패하면서 남아 있던 학생들은 대학 합격생 배출이 많은 학원으로 옮겨갔고, 학원 재정이 바닥을 치면서 강사들도 떠나버렸었다. 원장과 주임 교사, 인숙은 폐업 위기에 처한 학원을 살려보려 무척 애썼지만, 녹록지 않은 현실을 벗어나지 못했다. 원장과 주임 교사, 인숙은 학원 정상화를 포기하다시피 시간만 깔고 있을 뿐, 한자리에 앉을 때면 절망적인 시장 경기와 주변 작은 학원들이 기업화된 큰 학원에 먹히고 있다는 이야기로 담배 연기를 뿜어내고, 술잔을 비웠었다.


605호 월세 원룸 우체통 속에는 카드 연체 대금 독촉장이 쌓여갔고, 발 디딜 곳 없이 집안 곳곳에 뒹굴고 있는 쓰레기와 먼지는 인숙 내면을 비추고 있는 거울 같았었다. 인숙은 대학 1학년 때부터 입시 미술학원 새끼 강사로 시작해서 주임 교사가 되고, 졸업 후 대형학원 분원장으로 어린 나이에 꽤 많은 돈을 벌어 보기도 했었다. 하지만, 20대 후반 신도시에 자기 소유 학원을 개원하고 운영하다, 3년을 넘기지 못하고 빚만 지고 접어야 했었다. 그때 선배의 콜링을 거절하지 못하고 바닥부터 시작해 보겠다는 다짐으로 내리막길에서 버티며 30대를 시작했었다.


“언니야 긴장 풀어라. 내가 알아서 잘 데라고 갈 테니 걱정하지 마라.”

은경은 익숙한 몸짓과 표정으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쉴 새 없이 말하고 있었다. 은경의 말은 인숙 귀를 스쳐 지나가는 공기 속 소리였고, 인숙의 무표정한 긴장은 자기 마음속 다짐을 절대 바꾸지 않겠다는 무언의 자물쇠 같은 것이었다.


인숙과 은경은 70여만 원의 항공권 비용으로 일본을 경유해서 호주 시드니를 거처 호주 멜버른이라는 도시에 스물세 시간 만에 도착했다.

입국장을 빠져나와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은경이 인숙 팔을 건드리며 말했다.

“언니야, 저기 언니 이름 피켓 보인다.”

누런 상자 한 면을 잘라 두꺼운 검정 매직으로 ‘인숙 서’ 한글 이름 석 자를 그리듯 적어 놓은 피켓 앞으로 다가가 걸음을 멈췄다.

“내 이름이 인숙 서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환영해, 내 이름은 콘 웰린슨 이야.”

하얀 콧수염이 멋스러운 할아버지 콘은 환한 얼굴로 인숙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고, 자기 이름을 알려 주었다.

“그럼 언니야 나는 갈 테니, 내일 오전 11시에서 12시 사이 우리 약속 장소에서 만나자.”

“그래 은경아.”

은경은 콘에게 인숙 보호자 역할을 책임감 있게 수행하듯, 자신들 약속을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인숙이 그 약속 장소에 찾아올 수 있도록 집에서 가까운 대중교통 정류장과 이용 방법에 대해 알려 줄 것을 당부해 주었다. 멜버른이 처음이 아닌 은경은 시내 번화가 아파트에 산다는 일본인 친구네 집을 숙소로 정해 두었고, 공항버스를 타기 위해 유유히 멀어졌다.


인숙은 친절한 콘을 따라 공항 주차장으로 이동했고, 콘의 자동차 앞에 와 있었다.

녹슨 자국이 군데군데 있는 하얀색 낡은 소형 트럭은 콘의 하얀 머리카락과 얼굴 주름만큼이나 긴 세월을 지나온 흔적을 드러내고 있었다. 콘은 트럭 뒤에 인숙 짐 가방과 캐리어를 싣고, 두꺼운 비닐로 덮어 고정 끈으로 비닐이 날리지 않도록 야무지게 마무리했다. 조수석 문을 열어 주는 콘의 배려로 노트북 가방을 안고 조수석 시트에 앉아 발을 올렸을 때, 인숙은 잠시 당황했다. 차 바닥이 쓸릴 듯 닳아 뚫려 있는 제법 큰 몇 개의 틈 사이로 콘크리트 바닥이 보이고, 콘이 운전석으로 와서 앉아 시동이 켜지고 움직이는 순간 바닥 틈 사이로 아스팔트의 변화가 빨라지고 있었다. 인숙이 그 틈을 피해 두 발 둘 곳을 찾고 있을 때, 운전석 콘이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인숙, 걱정하지 마! 이 차 보기에는 고물 차 같아 보여도 30년 동안 사고 한번 난 적 없는 내 자식 같은 차 라오. 좀 낡긴 했지만... 편히 앉아 있으렴. 집에 도착하려면 30분 정도 걸리거든.”

콘은 옆에 앉아 있는 인숙을 힐끗힐끗 바라보며 천천히 말하고 있었지만, 사실 인숙은 콘의 말을 거의 알아듣지 못했다. 그저 자신의 불편한 행동을 애써 태연하게 보이려 노력하고 있을 뿐이었다.


아침 시간이라 고속도로는 좀 막히고 있었고, 맑은 하늘이 잠시 보이더니 어느새 부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콘은 인숙에게 개인적인 질문을 몇 가지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자기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시시콜콜한 가족들 일상 이야기부터 여러 가지 일을 한다며 잘 알아듣지 못하는 자기 일에 대해, 주변 이웃들 평판까지... 인숙은 인천 공항에서 그랬듯이 자신이 마음에 담고 있는 계획을 되뇌고 있었을 뿐, 콘의 많은 얘기는 그저 세상의 소리로 느끼고 있었다.


콘의 말 대로 낡은 트럭은 어떤 문제도 일으키지 않고 집까지 안전하게 도착해, 자기 바퀴 자국이 선명한 그 자리고 들어가 침착하게 멈춰 앉았다.

커다란 아름드리나무 아래 오래된 나무 우체통이 갸우뚱 박혀 있고, 마당 가장자리에는 이름 모를 작은 나무 몇 그루와 붉은 동백꽃이 지저분하게 떨어진 동백나무가 보였다. 주변 집마다 듬성듬성 울타리를 대신하는 나무와 갖가지 가냘픈 꽃나무들이 나름 질서를 유지하고 있는, 평화로운 동네 풍경이었다.


콘과 함께 짐을 내려 끌고 현관문으로 향하는 몇 개의 계단에 올라 나무 데크를 지나서자, 현관문이 열리고 사람들 말소리가 새어 나왔다.

“환영해, 인숙. 나는 로라야.”

“안녕, 인숙 나는 브라이언이야.”

“안녕, 나는 신디.”

“안녕, 나는...”

“안녕,...”

십여 명의 어른들과 대여섯 정도의 아이들이 일제히 인숙을 바라보고 한 사람씩 다가와 볼에 가벼운 입맞춤을 하거나, 포옹하고, 각자 바삐 나가버렸다.


콘과 로라는 다섯 명의 딸과 아들 하나를 두고 있었고, 삼십 대 후반 노총각 아들 브라이언과 이십 대 초반 막내딸 신디는 결혼하지 않아 함께 살고 있었다. 딸 넷은 결혼해서 따로 살고 있었지만, 손님맞이를 위해 각자 남편과 아이들을 데리고 잠깐 와서 아침 식사를 하고 간 것이었다.

로라는 앞서 사라진 그들의 흔적이 남아 있는 식탁을 대충 정리하고 인숙을 데려가 앉혀 먹을 것을 내주었다. 콘은 거품이 가득 올려진 커피 한잔을 인숙 앞에 내려놓았고, 그 사이 아들 브라이언은 인숙 짐을 인숙이 사용할 방으로 옮겨 주었다. 신디는 인숙 옆자리에 앉아 있었고, 앞에 놓인 음식을 거의 다 먹은 듯 했다.

노릇노릇 잘 구워진 빵과 두부처럼 생긴 하얀 치즈 조각, 구운 베이컨과 반숙 계란 프라이… 사실 인숙은 긴 비행시간 동안 잠시의 수면도 취하지 못했었다. 자신에게 남아 있는 시간이 시작되었고, 남은 시간의 초침 소리가 쿵쾅 째깍… 점점 커지고 있었다. 식탁 위 음식을 입속으로 넣을만한 기력이 없어 잠시 망설였지만, 계란 프라이를 커피 두 모금으로 삼켜버렸다. 콘과 로라는 인숙에게 어떤 음식도 더는 권하지 않았다. 그리고 인숙은 신디 안내를 받아 자기가 사용할 방으로 이동했다.


본채(本-)는 콘과 로라, 브라이언이 거주하고 있었고, 본채 뒤쪽으로 정원을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는 별채(別-)에 신디와 인숙이 지내게 되어 있었다. 겉은 오래된 낡은 집이었지만, 안으로 들어섰을 때 청소와 정리가 잘 되어 있어 깨끗하고 쾌적해 보였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 오른쪽으로 가스 벽난로가 있는 작고 아늑한 거실이, 정면으로 거실에 비해 넓은 주방이, 왼쪽 복도에 세 개의 방문과 욕실 문이 서로 마주 보고 있는, 좁은 복도 끝 구석에는 키 큰 가스난로가 건조한 온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난로 옆에 있는 문을 열자, 물기 없는 욕조와 세면대가 깔끔하게 보이고, 부엌 중앙을 지나 안쪽에 있는 문을 열고 나가면 다용도실에 세탁실과 화장실이 각각 분리되어 있었다. 신디는 칠십여 년이 넘은 집이라 구조가 아주 옛날식이라고 불평했고, 자기가 사용하고 있는 방이 가장 큰 방이고, 인숙이 쓸 방이 두 번째 큰 방이라며 방문을 열어 주었다. 인숙이 가지고 온 짐 가방과 캐리어 외에 두 개의 커다란 비닐 가방이 더 있었다. 한나가 한국으로 돌아가면서 자기가 사용하던 물건 중 인숙이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을 두고 간 것이었다.


콘의 집에 오게 된 것은 한나의 소개였다.
한나는 명문대 디자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을 다니던 중, 국가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멜버른에 있는 미술관에 연수를 오게 되었다. 일여 년간 머물며 알게 된 한국인 친구를 통해 콘의 집을 알게 되어 자주 오가며 지냈다고 했다. 본인이 거주하고 있는 아트센터 숙소 아파트보다 친구가 홈스테이로 사는 콘 집이 훨씬 좋다며 인숙과 이 메일이나 전화 통화를 할 때마다 부러워했었다. 친구는 한나 보다 몇 달 먼저 한국으로 돌아갔지만, 한나는 가끔 콘과 로라 집을 찾아 친분을 이어갔고, 인숙이 멜버른에 가게 되었을 때, 한나는 적극적으로 콘과 로라 집에서 지낼 것을 권했었다.


신디는 수업이 있어 학교에 가야 한다며 집 열쇠를 건네주고 나갔고, 함께 따라온 로라는 친절하게 천천히 말했다.

“인숙, 씻고 한숨 푹 자도록 해. 그리고 일어나면 집으로 건너오렴.”

인숙은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며 로라를 현관문까지 배웅하고 방으로 들어왔다.

싱글 침대와 오래된 원목 옷장, 서랍이 없는 작은 책상과 낡은 의자, 서랍이 세 개인 화장대 위에 벽에 기대어 있는 반신 거울이 침대에 걸터앉아 있는 인숙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인숙은 잠시 멍한 안갯속으로 빨려드는 현기증을 느꼈다.

카펫 바닥에 덩그러니 있는 짐 가방들을 보고 멍한 안개 거품을 헤집고 나와 빠른 움직임으로 짐 정리를 대충 하고 샤워를 했다. 주방으로 가서 수돗물 한 컵을 쉬지 않고 들이킨 다음, 방으로 돌아와 전기장판을 켜 둔 침대 이불 안으로 몸을 기대듯 뉘었고, 안개 거품 잔재를 없애 버리듯 힘주어 눈을 감았다. 한낮의 부슬비 소리는 고요함의 정적을 더 깊고 적막하게 했고, 그 안으로 인숙은 빠져들고 있었다.


누군가 침대 귀퉁이에 살포시 앉았고, 한 손은 인숙 얼굴을 다른 한 손은 인숙 머리를 쓰다듬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인숙 눈앞에 엄마 얼굴이 있었다.

“불쌍해가 어짜노...”

딸 얼굴을 만지고 쓰다듬더니 어느새 두 눈에 눈물이 그득 고여 넘쳐버렸다. 인숙은 엄마 얼굴을 그저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숙아, 아직은 안 된데이~ 지금은 아니데이.”

인숙은 자기를 애잔하게 바라보며 멀어지는 엄마를 ‘엄마’라고 입 한번 떼 보지 못하고 보내고 있었다.

“뜨르릉~”

요란한 소리에 인숙은 깜짝 놀라 눈을 떠 벌떡 일어나 앉았다. 화장대 거울에 비친 얼굴 두 눈은 촉촉이 젖어 있었다.

“뜨르릉~”

또 한 번의 요란한 소리에 급히 눈물을 닦아 내고,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정리하며 현관문을 열었다.

“안녕 인숙, 오~ 미안해 인숙 자다 일어난 거지?”

“안녕 로라, 네 깜박 잠이 들었어요. 괜찮아요.”

“깊이 잠들었을 텐데, 내가 깨웠지? 미안해. 점심때가 훌쩍 지났는데, 집으로 건너오지 않아서 먹을 거 좀 가져다주려고 왔어. 낮잠을 오래 자면 밤에 잠을 못 잘 것 같기도 해서.”

“로라, 고마워요.”


인숙은 로라가 두고 간 구운 닭고기와 삶은 야채, 콩이 씹히는 수프를 맛있게 먹고 나서야 몸에 기운이 도는 느낌이었다. 잠시 꿈속에서 자신을 바라보던 엄마를 떠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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