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

- 3

by 조은이

다섯 살 미영은 순득의 아침 욕설을 듣고서야 겨우 이불속에서 뒤척임을 시작한다. 순득의 말대로 벌떡 일어나 움직일 생각은 전혀 없어 보인다. 순득이 스테인리스 밥상을 마당 평상에 내려놓으면, 그제야 못 이기는 척 밖으로 나와 세수도 하지 않고 밥상 앞에 앉아 물끄러미 순득을 바라본다.


“아이고 내 팔자야, 요년아, 밥상머리에 앉았으면 네 손으로 밥 떠서 입에 처넣어야지. 언제까지 늙은 할미가 처넣어 줄 때까지 고로고 있을 거야.”


순득의 다그침에 미영의 두 눈에는 금세 눈물이 가득 차올라 넘치고 있었다.

미영은 순득의 품에 안겨 온 날로부터 순득의 품에서 떨어지려 하지 않았었다. 그런 미영을 품에 안고 보면서 처음으로 중이 된 딸에 대한 회한(悔恨)이 물밀듯이 몰아쳤다. 딸에 대한 죄책감의 덩어리가 부풀 어오를 수록 미영에게 더 정성을 쏟았다. 출산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동네 아낙들에게 찾아가 아기 점(占)을 쳐 주고 동양 젖을 얻어 먹이고, 자기 입에 음식을 넣어 씹어 뱉어 내, 미영의 입에 넣어주며 키웠었다. 다섯 살이 되도록 언어도 행동도 모든 것이 늦은 미영은 가끔 이불에 오줌을 싸기도 했고, 한번 울음이 터지면 반나절을 꼼짝하지 않고 울어댔다. 미영이 커갈수록 순득은 모든 상황을 버겁게 느끼고 있었다.


미영은 온종일 툇마루에 걸터앉아 멍하니 먼 산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오가는 동네 사람들은 그런 미영을 지능이 낮은 바보라고 했고, 어떤 이는 귀신에 씌었다며 굿이라도 해 보라고 했다. 하지만, 미영은 자신이 기억하고 느낀 것을 지우는 법을 찾고 있었을 뿐, 사람들 말에 자각(自覺)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그때 ‘왜?’라는 의문을 품지 못했어요. 어느 순간 심장이 뛰고 있었고, 뭔가 느껴졌어요. 떠밀려 나온 세상은 그냥 그런 것이구나 했어요. 바람 빠진 풍선 껍질이 되어 버려진 내 방을 대신해, 모든 것이 뻣뻣하고 딱딱한 것으로 둘러싸인 세상. 축축한 어둠에 물들어 내려앉는 시멘트벽은 나를 위협하듯 부서지고 떨어졌지만, 물을 잔뜩 먹은 흙에 잡혀 옴짝달싹 못 하는 찢어진 플라스틱 용기처럼 체념을 배워야 했어요. 비틀거리는 눅눅한 어둠 속에 죽음의 그늘이 포기를 강요하듯 담장을 둘러싸고 있는 잡초는 희망 없는 합창을 불러댔죠. 바람결에 흔들리던 양철 지붕마저 잔잔해졌어요. 철저한 부정 속에 푹 잠겨 있었어요.


내 시작은 왜 그래야 했을까요?

나는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가늘게 숨을 계속 쉴 수 있었죠. 갑작스레 분주한 변화가 왁자지껄했어요. 내 몸에는 어떤 기운이 들어와 돌며 조금씩 힘이 생기고 자라기 시작했어요. 그래요, 시작은 어찌 되었든, 이유를 모르면 어때요? 살아 있는 존재이니 살아갈 수밖에요. 하지만, 나를 세상 밖으로 밀어냈던 여자의 소리만큼은 나를 떠나려 하지 않았어요. “제발 죽어버려. 그냥 죽으라고.”

그 소리는 내 머리카락 가닥가닥 끝마다 매달려 울려댔고, 내 몸 구석구석 혈관을 타고 미끄러지듯 온몸을 휘저으며 노래하듯 난리 쳐 댔어요. 어느 날은 작게, 어떤 때는 아주 크고 요란하게 내게 야단치고 패악을 부렸어요. 처음에는 익숙한 음성이라 여기고 귀를 기울여 들어 보려 했지만, 소리는 점점 사악하게 울렸고, 사악함의 칼날은 내 몸에 흉하고 고통스러운 상처를 새기고 있었어요. 두 손으로 귀를 막고 머리를 거세게 흔들며 거부해 보지만, 소리는 멈추고 싶어 하지 않았어요.

한참 동안 소리에 시달리다 보면 머리통 속 골이 흔들리는 두통으로 토를 하고 정신을 잃어요. 그래서 나는 머리 흔드는 것을 멈추었고 더는 아무것도 흔들리지 않기를 바라며 정지된 자세로 먼 산만을 바라보고 있어요. 그렇게 먼 곳을 응시하다 보면 많은 것을 듣고 느낄 수 있었어요.


하늘도 사람처럼 표정과 감정이 있어요. 작고 큰 하얀 구름의 분주함은 말이 많은 날이에요. 구름 모양을 고정된 시선으로 보고 있으면 여러 가지 모양으로 움직이고 변하면서 수십 가지 언어를 만들어 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구름이 없는 흐린 날은 무엇인가 심각한 고민 중이라는 뜻이에요. 비를 뿌릴지! 바람을 일으켜야 할지…. 너무 깊이 고민하다 결정하기 정말 어려울 때는 울먹울먹 울먹이기만 할 뿐 비도 바람도 없는 눈물을 잔뜩 머금은 무거운 구름만이 오래 가요. 하늘도 이유 없이 화가 나고 슬픔이 솟구칠 때가 있나 봐요. 갑자기 거센 바람이 휘몰아칠 때도 있고, 맑은 하늘에서 굵은 눈물방울이 사정없이 쏟아지기도 해요.


내가 사는 동네는 물속에 얼굴을 넣고 눈 뜨면 보이는 무채색(無彩色) 세상 같아요. 뿌연 물속을 들여다보면 작은 고기들이 떼 지어 다니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처럼 탁한 공기가 자욱한 것 같지만, 귀 기울이면 다양한 소리가 고기떼처럼 보이는 곳이에요.

술주정뱅이와 노름꾼 남자의 폭력은 쉼이 없고, 갓난아기 울음은 동네 똥개들 왕쯤 되는 독구의 짖음을 듣고 잠시 멈추는 것 같아요. 깎아 머리 코흘리개, 삐뚤빼뚤 바가지 머리를 한 아이들은 집마다 돌아다니며 ‘놀자’ 메들리를 반복해요. 셋 이상 모이면 누군가는 얻어터지고 깨져 다시는 만나지 않을 것처럼 흩어졌다, 얼마 뒤 다시 ‘놀자’로 만나요. 상구는 우리 집 대문 앞에서 소심한 목소리로 내 이름을 몇 번 불러 놓고, 대답 없는 나를 기다리는 것인지 상구도 나처럼 동네 소리를 듣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담벼락에 쭈그리고 앉아 멍하니 있다 가곤 해요. 오후가 되면 동네 어른은 한 명도 없는 것처럼 큰 아이들 무리가 이 골목 저 길목에서 혼란하게 시끄러워요. 금빛 노을의 위엄이 내려앉으면, 어딘가에서 나타난 어른들 고함을 따라 아이들 요란함은 조금씩 서서히 묻혀요. 여자의 고단한 한숨은 늦은 밤이 되어야 잦아들지만, 주정뱅이와 노름꾼의 주먹은 여자의 쉼을 구기고 찢어 변소 갓에 처박고 말아요. 아이들 꿈속 동화를 무참한 지옥으로 물들이죠. 멍투성이 여자가 아기를 업고 맨발로 우리 집 마당에 뛰어든 적이 있었어요. 식칼을 들고 쫓아온 주정뱅이 남자는 대문 앞에서 멈칫하며 들어오지 못했어요.


“이런 십 불알 놈아, 네가 불알 값을 못 하는 것을 왜 네 마누라한테 화풀이야. 우리 신령님에게 네 좇을 잘라버리라 할 것이야.”

할머니 거친 말에 남자는 천천히 뒷걸음을 치더니, 소금 바가지를 들고 나오는 할머니를 보고는 헐레벌떡 도망가 버렸어요. 사람들이 할머니를 왜 무서워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할머니와 같이 사는 한 아무도 나를 죽일 수 없다는 사실은 분명해요.


우리 마을에는 나무와 꽃이 없어요. 그래서 나는 내 마음대로 동네 어귀에 커다란 아름드리나무도 심고, 길목마다 하늘거리는 코스모스와 해바라기도 줄지어 심었어요. 집집이 꽃 넝쿨을 만들어 온 동네가 꽃으로 덮인 상상을 하면, 나도 모르게 나 자신이 어떤 꽃이 되어 하늘을 떠다니는 것 같아요. 나는 혼자 이렇게 놀고 있다 보면, 내가 듣고 싶지 않은 그 소리가 어디로 숨어 버려요. 그래서 나는 매일 툇마루에 앉아 있어요.


미영은 특별한 아이였다.

젊은 비구니가 올 때마다 미영을 위해 하나둘씩 구해다 준 여러 권의 헌 동화책과 색 빠진 크레파스, 공책과 연필은 미영의 흔들리는 머릿속에 작은 빛을 드리워 주었다. 글자를 모르는 미영은 공책에 동화책 다음 이야기를 그림으로 엮어나가는, 자기만의 다른 이야기를 만들었고, 입 밖으로 내는 언어는 그리 많아 보이지 않았지만, 자신만 알 수 있는 문자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었다.

순득은 그런 미영이 정말 어디가 부족한 아이는 아닐까? 혹은 신병을 앓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근심되었지만, 어느 쪽이든 타고난 팔자를 거스를 수 없음을 알기에 미영이 학교에 다니면 좀 달라지려니 여기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숨이 붙어 있는 동안 굶기지는 말자는 생각으로 끼니만큼은 챙겨 먹이고 있었다. 순득의 그런 바람은 자신에게 닥칠 불행을 예상하지 못한, 바람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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