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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잃어버린 우리 아들놈 살아는 있겠지요.”
순득의 집 큰방 돌 불상 앞에 앉아 나지막한 목소리로 염불을 외는 비구니 정애에게 허리가 반은 굽은 노파가 젖은 눈으로 툇마루를 짚고 서서 말하고 있었다.
“예, 보살님 아드님은 보살님보다 더 잘 먹고 잘살고 있습니다. 보살님 이제 편히 눈감으셔도 됩니다.”
아장아장 걷는 아들을 시장통에서 잃어버린 노파 평생의 삶은 구구절절 듣지 않아도 알 일이었다. 그런 노파가 며칠 살지 못하리라는 것이 느껴진 정애는 남은 며칠이라도 편히 발 뻗고 잠을 청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한 말이었다.
정애는 절에서 태어났지만, 처음부터 비구니는 아니었다.
주지 스님의 부름을 받고 자기도 모르는 무슨 잘못이라도 한 듯, 잔뜩 긴장한 얼굴로 들어섰을 때 한 여인이 같이 앉아 있었다. 스님은 여인을 따라가면 학교도 다닐 수 있고, 머리카락도 길러 예쁜 여자아이로 살 수 있다며 따라가겠느냐고 물었었다. 고운 여인이 예쁘게 웃어주며 정애를 바라봐 주었고, 정애는 가겠다고 했다. 그 미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줄 그때는 알지 못했었다.
자식을 얻기 위해 여러 해 절을 찾아 기도하는 한 여인이 불쌍한 아이를 거두면 부처님 자비가 내려 자식을 가질 수 있다는 무속인의 말을 믿고, 국민학교 입학을 앞둔 정애를 거두었었다. 여인은 정애를 데려와 절간 옷 대신 백화점 옷을 싸 입혀 주었고, 값비싼 물건들로 치장한 방을 꾸며 주었지만, 어린 정애에게 마음만큼은 절제했었다. 정애는 여인으로 인해 ‘엄마’라 부를 수 있는 존재가 생긴 것 같아 행복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좋은 환경과 값비싼 물건들은 여인의 닫힌 마음의 왜곡된 표현인 것 같아 왠지 모를 허기짐은 어쩔 수 없었다. 정애는 산 생활이 그리웠다. 매일 정해진 수행이 고단하긴 했지만, 산으로 들로 뛰어다니며 자유로웠던 산 생활은 외로울 틈이 없었다. 가끔 주지 스님의 혹독한 훈육은 무서웠지만, 절에서 수행하는 승려들과 보살님들은 어린 정애에게 진심 어린 마음으로 돌봐 주었었다.
정애는 운전기사가 운전하는 자가용을 타고 학교 가는 일이 아니면, 혼자 집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화려한 도심 저택에 갇힌 생활을 견디게 했던 것은 세계 전집 시리즈와 한국 전래동화 전집을 읽는 것이었다. 책을 통해 여러 세상을 상상할 수 있었고, 여러 인생을 엿볼 수 있었다. 여인은 무속인 말대로 정애가 국민학교 3학년이 되던 해 아들을 출산했고, 이후 여인이 정애를 대하는 태도는 무관심에 가까웠다. 정애 방은 남자아이 물건들로 채워져 다시 단장되었고, 정애는 집안일하는 아주머니와 같은 방에서 머물게 되었다. 보던 동화책은 때가 탄다며 보지 못하게 했고, 학교도 혼자 걸어 다니게 했었다. 정애는 어린 마음에 자기의 어떤 잘못으로 인해 ‘엄마’라는 여인 마음이 더 차가워졌다고 여기며, 여인의 마음을 녹여 보려 공부도 열심히 했고, 집안일도 도우며 애썼지만, 소용없었다.
학교가 끝날 때쯤 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갑자기 내리는 비에 미쳐 우산을 준비해 오지 못한 정애는, 학교 건물 현관 입구 구석에 서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산을 준비해 자기 아이를 찾아온 엄마들을 보며, 정애는 처음으로 자신을 낳아 절에 두고 간 어머니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집에 있는 여인이 아들을 대하는 것처럼, 또 우산을 들고 다급한 걸음으로 자기 아이를 찾는 엄마들처럼 자신의 어머니는 왜 그런 엄마로 자기 옆에 있지 않았을까? 갑작스레 눈물이 빗물처럼 솟구쳤고, 눈물을 숨기려 빗속을 걸어 집으로 왔었다. 여인은 여전히 아들을 품에 안고, 처음 자신을 만났을 때의 곱고 예쁜 미소로 아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흠뻑 젖은 자신은 비에 젖은 것이 아니라 부정의 존재로 젖어 있었음을 깨달았다.
집안일하는 아주머니가 고향 집에 일이 있어 며칠 집을 비운 어느 날, 여인은 서류봉투 하나를 들고 다급하게 집을 나가며 정애에게 낮잠 들어 있는 아들을 부탁하고 갔다. 삼십여 분도 채 되지 않은 잠시의 외출에서 돌아온 여인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 아들을 들쳐 안고 밖으로 뛰어나가버렸다. 그리고 정애는 동네 파출소에 격리되었다. 여인의 아들 벌거벗은 온몸에 붉은 글씨를 적어, 악을 쓰고 우는 아기를 테이블 위에 뉘어 놓고 촛불을 켜 두었다. 여인의 화장품으로 짙은 화장을 한 정애 얼굴은 사납고 천박해 보였다. 어디서 찾아 입었는지 알 수 없는 한복을 갈기갈기 찢어 몸에 두르고 테이블 앞에서 껑충껑충 뛰며 무슨 주문을 외듯, 이상한 말을 읊조리고 있는 정애 모습은 정애가 아니었다. 파출소 친절한 순경 언니 물음에 정애는 입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으므로…. 정애는 병원으로 보내져 여러 가지 검사를 받았고, 동생에게 엄마를 뺏긴 질투와 시기로 인한 어린아이의 철없는 행위로만 취급되어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여인은 정애를 집안으로 들이지 않았고, 지방 도시 시골에서 한의원을 하는 먼 친척 벌 되는 집 식모로 보내버렸었다.
지방 도시에서 약방 집으로 불리는 삼대째 한의원을 하는 덕재와 영재는 선친의 뒤를 이어 한의사로 집안 가업을 이어가고 있었다. 정애는 약방 일과 집안일을 도우며 학교를 계속 다닐 수 있었지만, 아내와 자식을 둔 나이 많은 덕재의 지저분한 추행을 견디는 것은 정말 괴로운 일이었다. 덕재는 자기 말을 듣지 않으면 다른 곳으로 보내 버리겠다는 협박을 일삼으며 어린 정애 몸을 함부로 만져 댔고, 급기야 정애가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덕재는 정애를 성폭행하고 말았다. 그런 정애를 덕재 아내는 정애가 덕재를 꼬셨다, 몰아세우며 정애를 내쫓아 버렸다. 영재와 그의 아내 숙희는 그런 형, 덕재 내외의 그릇된 언행에 대해 못마땅하게 여겼고, 영재와 숙희 도움으로 정애는 서울에서 혼자 생활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야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간호 전문학교를 나와 병원에서 일도 할 수 있게 되었었다.
하지만, 덕재는 수시로 정애를 찾아와 관계를 요구하며 추잡한 짓을 멈추지 않았고, 덕재 아내는 그런 남편의 난잡함이 정애 탓인 양 정애가 일하는 병원에 찾아가 모욕하고 수치심을 안겼었다. 정애는 그런 덕재 내외를 피해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생계를 꾸렸지만, 결국 그들로 인해 어디에서도 일할 수 없게 되고 말았었다. 그날도 덕재는 정애를 찾아와 좋은 집을 얻어 주고, 넉넉한 생활을 보장해 주겠다며 정애 몸을 탐했고, 뒤따라온 덕재 아내는 남편과 같이 있는 정애를 보고 눈이 뒤집혀 정애를 마구 폭행했다. 정애는 자신을 그냥 내버려 달라 애원하고 분노했지만, 그들은 정애 간곡함을 무시했고, 정애는 또 경찰서 유치장에 갇혀 있었다. 연락을 받고 다급하게 온 영재와 숙희는 정애에게 왜 그랬냐 물었지만, 정애는 대답하지 못했다.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으므로….
덕재가 본 정애는 분명 귀신 들린 미치광이 같았었다. 무당 굿판을 뒤엎듯, 손에 잡히는 것은 모조리 집어던지고 휘두르며 자기에게 달려들어 닿는 대로 잡히는 대로 뜯고 두들겨댔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덕재 아내가 정애를 말려보려 했지만, 엄청난 힘을 담고 분출하는 정애에게 내동댕이쳐저 정신을 잃고 말았다. 다행히 덕재는 몇 군데 골절과 코뼈와 치아 손상이 있었지만, 목숨이 위태로울 만큼의 깊은 외상은 없었다. 지속해서 수치심을 준 추행과 덕재 아내에게 폭행을 당한 점, 영재와 숙희의 설득으로 덕재와의 합의로 정애는 풀려날 수 있었다. 정애는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그 시간 속에 다른 존재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이 태어난 절에 찾아가 주지 스님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리고 주지 스님으로부터 자기를 낳아 준 어머니 과거가 무당이었음을 듣게 되었고, 그제야 가끔 자신도 이해할 수 없었던 자기 모습에 대해 떠올리게 되었다. 이유 없이 몸이 아파 몇 날 며칠 앓아누워 악몽에 시달리고, 한밤중에 느닷없이 깨어 맨발로 산을 오르고, 모르는 사람에게 다가가 이상한 말을 두서없이 했었다. 언제 불쑥 다른 사람이 되어 무슨 짓을 할지 알 수 없는 두려움으로 바깥세상과 단절하고 집에 갇혀 지내던 정애는 얼굴 모르는 어머니를 원망하며 죽으려 했지만, 죽지 못했다. 무당이 되지 않기 위해 절로 들어가 승려 수행을 시작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