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

- 5

by 조은이

겨울 바다의 고요함은 삶의 복선(伏線)을 감추고 있는 것 같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작은 마을 어귀에서 잠시 바라본 바다는 매섭고 따가운 찬 공기에도 유난히 잠잠하다.


정애는 탁발(托鉢) 수행을 위해 이곳저곳을 떠돌고 있었다. 마을 집집 앞에서 목탁을 두들기며 부처님 전에 공양을 부탁하고 있을 때, 작고 초라한 집에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고급 자가용 한 대가 보였다. 그리고 온몸에 소름이 돋는 익숙한 목소리… 늙은 덕재였다. 겨우 스물을 넘겨 보이는 여자를 찾아온 덕재는 예전에 정애에게 했던 것처럼 여자에게 좋은 집에서 넉넉하게 살게 해 주겠다며, 여자의 몸을 탐하고 있었다. 여자는 어머니 병을 고쳐 주겠다는 약속을 지켜달라 부탁하며, 덕재의 간교하고 교활한 혀의 말을 받아 내며 괴물의 오물을 견뎌내고 있었다. 오래된 어머니 병을 고치기 위해 유명세를 띄고 있던 덕재 한의원을 찾아온 어린 여자를 어머니 병을 고쳐 주겠다며 회유해 취하고 있었다. 덕재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어린 여자를 집 후미진 곳에 데리고 가 오래전 정애에게 했던 것과 같은 더러운 짓을 하는 덕재를 보며, 정애는 솟구치는 분노를 누르지 못해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정애는 도망치듯 그곳을 다급하게 벗어나 한적한 바다를 마주하고 있었다. 붉은 노을이 바다를 슬그머니 삼키고, 어느새 모든 것을 먹어버린 어둠만이 정애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정애는 다시 그 집을 찾았다. 덕재 차는 보이지 않았고, 희미한 불빛 만이 새어 나오는 집은 생명의 온기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정애는 목탁을 두들기며 어린 여인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탁발 수행 중인 결승이 온대, 하룻밤만 재워주시겠습니까?”

“스님, 빈방은 있으나 불 피울 연탄이 없어, 냉골입니다. 병중인 엄마가 주무시는 방에는 엄마 욕창 피고름 냄새가 지독합니다. 그래도 괜찮으시면….”

“예, 한대 냉기 먹은 이슬을 피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어린 여자의 어머니는 이미 이승의 생이 끝나 보였다. 그저 홀로 남겨질 딸아이와의 질긴 연(緣)을 끊지 못해 저승길을 떠나지 못하고, 다 한 육신에 매여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정애는 며칠 머물며 여자의 어머니 욕창에서 흘러 나는 피고름을 입으로 빨아내 뱉어내며 정성스레 닦아 주었고, 성불(成佛)을 빌어 주었다. 그리고 떠나는 날 어린 여자에게 어머니를 육신의 고통으로부터 쉬게 하라는 말과 이 마을을 떠나 자유롭게 살라는 말을 남겼다.


며칠째 바다 위에 내려앉는 하얀 눈은 흔적이 없다. 마을을 이탈할 때쯤 덕재 자가용이 어린 여인의 집 쪽으로 가는 것이 또 목격되었다. 그리고 뒤따르는 덕재 아내의 고급 자가용이 멀리서 달려오고 있었다. 정애는 흰 눈이 덮어 버린 아스팔트 위에 서서 목탁을 두들기며 눈을 감았고, 덕재 아내 차는 정애를 발견하고 급정거하며 눈길에 미끄러져 바다 아래로 추락하고 말았다.

덕재가 어린 여인 집에 도착했을 때, 어린 여인의 슬픈 곡소리가 흘러나왔고, 덕재는 재수 없는 날이라며 침을 뱉고 온 길로 돌아가고 있었다. 예사롭지 않은 눈발은 더 거세게 내렸고, 눈길 위에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들려 서행하던 덕재는 바다에 추락한 아내 자가용을 보고 놀라, 다급하게 갓길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 길 끝으로 사라지는 승려의 뒷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탁발(托鉢)을 통해 아집(我執)과 아만(我慢)을 없애고, 무욕(無欲/無慾)과 무소유(無所有)를 실천하고, 보시(布施)를 주는 이의 공덕(功德)을 쌓게 해 주는 것이라고 배웠다. 정애는 자신의 출생부터 순탄하지 않았던 인생 여정에서 얻은 분노와 절망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그 분노와 절망의 실체 깊은 곳에 도사리고 있는, 스스로 컨트롤하지 못하는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신병은 언제 나타나고 없어질지 알 수 없었다. 탁발 수행을 위해 절을 떠나올 때 주지 스님은 자신을 가장 천한 존재라 여기면, 분노도 슬픔도 자신의 자신됨에서 온 것임을 알게 될 것이라 말해 주었었다. 모든 문제는 자기 됨에서 생성되어 죄를 만들고 그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것이 인간이라 말하며, 탁발 수행의 멈출 때를 스스로 깨닫게 될 것이라 하였다. 정애는 해결되지 않는 자신의 문제 앞에 탁발을 언제 멈춰야 할지 알지 못하고 오랜 세월 정처 없이 떠돌고 있었다.


올여름 장맛비는 정애 마음을 대변하는 것처럼 확실함이 없다. 조용하게 내리는 비는 흑백 필름 속 세상이 되어 정애의 과거 영상들을 더욱더 또렷하게 만들었다. 여름 해는 길다고 여기고 걸었던 길이 오늘따라 어둠의 그늘은 일찍 내려앉았고, 머물 곳을 찾아 옮긴 발걸음이 멈춘 집 앞에 다다랐을 때, 이상한 기운이 느껴졌다. 평생 찾아 헤맸던 곳에 도착한 것 같은 왠지 모를 안도감이 스며드는 듯하면서도 아무런 준비를 못 했다는 아쉬움… 목탁을 두들겼고, 제법 퉁퉁한 노인과의 대면, 정애는 한 번에 느낄 수 있었다. 자기를 낳아 준 어머니라는 것을… 그리움과 원망이 뒤엉킨 애증의 혼란이 작은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는 듯하더니, 거대한 태풍을 만들어 내고 있었지만, 마음을 누르고 눌러 하룻밤 묵기를 청했다.


정애는 순득에게 딸이라 말하지 않았고, 떠돌다 찾아와 며칠씩 묵고 갔었다. 순득 어머니에 대한 마음은 딱 잘라 뭐라 정의 내릴 수 없었다. 사무치도록 그리웠던 마음 한구석에는 지독한 원망이... 녹록지 않았을 어머니 삶을 듣지 않아도 가슴이 아려오고 아프면서도, 그 고통을 물려준 어머니에 대한 분노… 어머니 집에 머물러 있으면 솟구쳐 올라오는 불덩이를 누르지 못해, 오래 머물지 못했다. 어머니 집을 나오면 막상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지 몰라, 길 잃은 어린아이가 되어 허둥지둥 발 닿는 대로 이곳저곳을 헤매고 다녔다. 어디를 누구를 향한 모나고 부서진 애증인지 알 수 없는 감정의 불덩이를 안고 있을 때, 덕재 모습이 눈앞에 보였다. 고등학생쯤으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덕재에게 쌍스럽게 대들고 있었다.


“씨발, 돈을 줘야 뱃속 애를 지우든지 할 거 아니야.”

“이런 더러운 것이 누구를 속이려고? 내가 의사야. 어디서 굴러먹다 밴 씨를 내 씨라고 속여.”

“아 씨발, 영감탱이 추잡스러운 짓은 다 해 놓고 지금 와서 오리발이야.”

“석 꺼지지 못해, 더러운 몸뚱이 다시는 디밀지 마.”


훌륭한 집안에서 안전한 돌봄과 가족들 기대를 받고 좋은 교육을 받아, 육신의 나약함을 돌보고 살리는 일을 하는 덕재에게는 무슨 귀신이 들러붙어 저리도 지저분하고 구차하게 살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정애는 덕재에게 붙은 귀신을 죽여버리고 싶다는 강한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고 사악한 감정 속 불덩이의 솟구침을 참지 못했다. 덕재 뒤를 따라가 한적한 길에서 덕재 차를 가로막아 세워 차에 올랐다. 덕재는 비구니가 되어 나타난 정애를 보고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정애의 달라진 모습에 덕재는 이성을 잃었고 정애에게 빨려 들고 있었다. 정애는 야릇한 미소와 저돌적인 몸짓으로 덕재를 유혹했다.


“어른 말씀 듣고 팔자 고치고 살 걸 그랬어요. 이렇게 중이 되어 빈곤에 찌들어 고단하게 살다 보니 남자 품이 제일이구나 싶었어요. 이렇게 어른을 다시 만난 것은 운명인 것 같아요. 나 좀 안아 주면 안 돼요?” 정애는 덕재 손을 끌어 자기 몸을 만지게 했고, 덕재 몸은 금세 욕정의 불덩이로 달아올랐다.

“중이라도 남자 맛을 아는 년은 못 참지? 중년하고 살을 섞는 것도 나쁘지 않구먼, 아이고 좋아, 아이고 좋아….”

덕재 몸이 들러붙는 순간 정애는 세상 모든 더러운 오물을 덮어쓴 것 같은, 자기 몸마저 오염되어 흉측하고 징그러운 벌레가 꼬여 드는 것 같았다. 덕재는 정애 불덩이에 타들어 가는 마른 장작이 되어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이렇게 남자를 좋아하는 년이 그동안 어떻게 참았어. 아이고 좋아, 이렇게 좋을 수가 아이고 좋아.”

덕재가 더는 견디지 못하고 숨을 헐떡이는 순간, 정애는 자신이 지니고 있던 염주 목걸이를 이용해 덕재 성기를 절단해 버렸다. 그리고 덕재 숨이 끊어질 때까지 지켜보았다. 덕재의 희미한 기억은 오래전 아내 교통사고 현장에서 멀어지는 승려 뒷모습이 정애였음을 그제야 알아차렸다. 덕재는 결국 과다 출혈로 사망하고 말았다.


정애는 덕재가 사라지면 자신을 괴롭히는 사악한 불덩이가 꺼질 줄 알았다. 하지만, 어둠 속에 묻혀 한 번씩 돌출되던 불덩이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어둠마저 태워버리고 온전한 자기 존재를 더 붉게 태우고 있었다. 정애는 지금껏 느끼지 못했던 두려움과 공포로 떨고 있었다.

신병으로 인해 기이한 언행을 했을 때, 제정신으로 돌아오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던 것과는 달리, 피가 즐비 한 차 속에 알몸으로 자기 몸에 늘어져 있는 덕재 시신을 밀쳐냈지만, 모든 것이 또렷했다. 백미러에 비치는 붉게 물든 자기 모습을 보면서, 드러나 버린 불덩이의 존재는 다름 아닌 자신이 부정했던 자신이었음을 보고 있었다.




순득이 입에 넣어주는 밥을 씹어 삼키면서도 미영은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

“그만 울어, 할미가 잘못했다. 밥이나 다 먹고 울어. 저기 네 동무가 보고 있네. 아이고 창피스러워라.”

미영의 눈물은 유난히도 구슬프고 애처로웠다. 대문 밖에서 미영 이름을 몇 번 불러 보고 담벼락에 기대어 앉아 있는 상구 눈에도 어느새 눈물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순득도 이상하게 미영의 울음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알 수 없는 설움이 북받쳐 찔끔찔끔 눈물이 배어 나왔다. 정애는 미영의 울음소리에 화음이라도 맞추듯 나지막한 연불을 읊고 있었다. 한참을 소리 내어 울던 미영은 목에서 피를 토하고 먹은 음식을 게워 내고서야 울음을 멈췄다.




누런 늙은 호박 몇 덩이가 똬리 틀고 앉더니, 꽃과 줄기가 말라죽어 버린 호박넝쿨은 볼품없는 변소를 더 흉물스럽게 했다. 오이 넝쿨은 작은 오이 몇 개가 달리는 듯하더니, 자취를 감춰 버린 지 오래다. 꼿꼿함으로 행렬을 지어 서 있던 토란 집단은, 찬 바람이 불기 전에 줄기를 잘라 껍데기를 홀딱 벗겨 볕에 말려 두어야, 겨우내 먹을 수 있다며, 모조리 잘려 벗겨져 평상에 늘어져 생기를 잃어가고 있다. 키가 자란 상추에는 꽃이 피고, 초록 고추는 어느새 붉은 옷을 갈아입었고, 무성했던 대파는 대부분 잘려 뿌리만이 남아 말라 가고 있었다.


동네 늙은이들이 점, 몇 원짜리 화투를 치다 싸움이 붙었다.

“할마시야, 내 돈 내놔.”

“미친 할마시. 무슨?”

“이 할마이 내가 속이는 것 다 봤는디.”

“내가 뭘 언제 속였다고 그래?”
“늙은 년이 거짓말을 입에 달고 살지? 내가 그 주둥아리를 찢어버릴 것이야.”

“이런 죽일 년을 봤나? 내 주둥아리 어찌하기 전에 네년 손모가지부터 절단 내 주지.”

“그만들 해. 이 판은 접고 다시 혀.”

“안돼, 안돼, 내 돈 내놔.”


불상 옆에 덮어 둔 콩나물시루에서 콩나물 몇 움큼을 뽑아내고 몇 그릇의 물을 주고 다시 덮어 두고 나오며 순득이 말했다.

“이제 다들 집으로 가셔들~ 나도 저녁해야 돼.”

순득은 언제나 세 사람분의 밥을 한다. 오늘은 스님이 좋아하는 콩나물밥을 지어 놓을 생각이다. 스님이 올지 안 올지 모르지만 한동안 뜸했으니, 오늘은 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밥 냄비에 담아 본다.


늦은 밤 조용한 인기척이 들려온다. 순득은 큰방에 차려 놓은 밥상이 있어 다행이라 생각하며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한참 뒤 마당 우물 덮개 열리는 소리에 벌떡 일어나 앉았다. 불길한 생각이 스쳤다. 어린 시절 신병이 너무 고통스러워 여러 번 죽으려고 했던 기억이나 마당으로 뛰어나갔을 때, 정애가 덮개가 열린 우물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어머니, 우물에 물이 가득한데, 왜 덮어 놓으셨어요?”

순득은 다리에 힘이 풀려 들썩 퍼질러 앉고 말았다.

“스님, 어머니라고 불릴 자격 없는 죄 많은 년입니다. 이런 년한테 어머니라니요.”

순득은 감격스러웠다. 자신에게 어머니라 불러주는 딸아이 음성이 평생 기다렸던 소원 성취를 하는 순간인 것 같으면서도, 죄스러운 마음은 딸에게 편한 하대를 쓸 수 없게 했다.

“어머니, 고통스러워 살 수가 없어요. 제 몸에 붙어 있는 불덩이 때문에 뜨겁고 아파 더는 살 수가 없어요. 이 우물에 풍덩 잠기면 불덩이 불씨가 꺼질 것 같아요. 불덩이가 제 몸을 태워버리기 전에 불덩이 불을 꺼지게 해야 하는데, 방법을 모르겠어요.”

“스님 안 됩니다. 그 불덩이 이 죄 많은 년이 안고 갈 테니, 스님은 안 됩니다.”

순득은 고무다리에 있는 물을 바가지로 떠 정애 몸에 붓고 부으며 울부짖었다.

“귀신아, 내 몸에 오느라. 불쌍한 스님 괴롭히지 말고 내 몸을 줄 터이니 내 몸에 오너라….”

정애가 우물 속으로 쓰러지려는 순간, 순득이 잡아당겨 밀쳤고 순득이 우물 속으로 쑥 하고 떨어져 버렸다.

아침 햇살이 유난히도 환하고 예쁜 날이었다.

미영은 순득의 욕설이 들리지 않는 아침을 처음 맞이해 본다. 마당 우물이 열려 있는 것도 처음 본다. 우물 옆에 흠뻑 젖은 모습으로 넋을 놓고 앉아 있는 정애에게 다가가 보려 했지만, 정애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일어나 우물 덮개를 덮었다.


정애는 미영 옷가지와 소지품을 커다란 가방에 넣어 챙겨 들고, 미영의 손을 잡고 대문을 나섰다.

이전 05화부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