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필라테스 강사로, 회원에게 배운 것들 ②

뻣뻣한 몸보다 굳어 있는 마음

by Eun


그녀는 출산 후 몇 달 이 지나, 센터의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들어왔다.

그 순간 나는 알아차렸다.

몸은 늘어지듯 무겁고, 표정은 어둡고, 눈빛에는 깊은 피로가 깔려 있었다.


밝게 인사하는 내게 그녀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그녀는 아이를 낳고 나니, 너무 피로하고 지친다고 하였다.

그녀의 목소리는 낮았고, 자주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녀는 첫아이 출산이었으며, 오랜 소망 끝에 얻은 소중한 아기였다.

아이가 주는 행복은 컸지만, 아이가 자랄수록 그녀의 피곤함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몸은 아팠고, 감정 조절도 쉽지 않았다.

손목, 허리, 어깨...

그리고 무엇보다 힘들었던 건, 아이가 울면 자신도 함께 넋 놓고 울어버린다는 것이었다.


늘 피곤했던 그녀는 때로는 운동에 와서 이렇게 묻곤 했다.

"오늘 운동 안 하고, 잠깐 자고 가도 될까요?"

어쩌면 지금 그녀에게 필요한 건 운동보단 휴식일지도 모르겠다 생각했다.

그녀에게 필라테스를 하는 것 외에는 딱히 갈 곳이 없었다.

겨우 시간을 내 시어머님께 아이를 맡기고 오는 게 전부였기 때문이다.


그녀의 운동 목적은 통증 관리였다.

손목, 허리, 잦은 어깨통증을 고치고 싶다고 했다.

실제로 근력도 부족했고, 유연성도 떨어졌으며, 자세도 많이 틀어져 있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그녀에게 더 시급 한 건

체형의 변화보다 마음속 깊이 쌓여있는 피로와 무력감이었다.


처음 운동을 시작했을 때 그녀의 몸은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골반은 굳게 닫혀있었고, 허리와 어깨는 뻣뻣하게 경직되어 있었다.

하지만 진짜 닫혀있던 것은 그녀의 마음이었다.

심지어 아주 간단한 동작조차 못하겠다고 말했었다.


나는 조급해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미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지친 몸으로 운동을 하기 위해 문을 나섰다는 것,

그 자체가 그녀에겐 엄청난 용기와 노력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가장 작은 움직임부터 시작했다.

짧고 깊은 호흡, 골반의 움직임, 몸의 흐름,

그리고 무엇보다 필요한 이완과 칭찬.


처음엔 어색해하던 그녀는 점점 자신의 숨과 몸에 집중했다.

그 순간, 닫혀 있던 그녀의 표정에 작은 틈이 생기기 시작했다.


몇 주가 지나자 그녀의 표정은 한결 편안해졌다.

동작은 여전히 단순했지만, 몸짓은 훨씬 부드러워졌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녀의 허리와 어깨 통증은 거의 사라졌다.

불과 4개월 만이었다.


그녀의 삶은 그때부터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의 변화를 여러 곳에서 읽을 수 있었다.

표정, 호흡, 움직임, 말투, 눈빛 그리고 자세에서.


사람은 수많은 방식으로 표현한다.

말로, 몸으로, 표정으로, 한숨으로

"피곤하다, 아프다, 힘들다."

나는 그 말을 들어줬다.

쉬어갈 수 있도록 기다려주고,

힘듦을 공감하며 작은 움직임부터 시작할 수 있도록 해줬다.


몸이 부드러워진다는 건 결국 마음이 회복되고 있다는 신호이다.

작은 움직임이 쌓이면, 멈춰 있던 시간도 다시 흐르기 시작한다.


애써 끌고만 가던 삶이, 어느 순간 춤추듯 부드럽게 흘러갈 수만 있다면,

우리는 다시 즐겁게 하루를 살아갈 수 있다.


굳은 움직임은 딱딱한 마음을 만들고

작은 움직임은 부드러운 마음을 만든다.





사람은 수많은 방식으로 표현한다.

말로, 몸으로, 표정으로, 한숨으로




작가의 이전글17년 필라테스 강사로, 회원에게 배운 것들 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