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원당 한방 박물관 (건축가 황두진)
7대째 가업을 이어온 한의원
유럽에 ‘에노키안 협회’라는 조직이 있다. 구약성서에 365세까지 살았다고 기록되어 있는 ‘에녹’이란 이름에서부터 유래됐다. 즉 가업을 2백 년 이상 이어온 회사들의 모임이다. 이 중 가장 오래된 기업이 ‘에트리니 피렌체’라는 이탈리아의 금세공업자로 1939년 650여 년 동안 가업을 이어가고 있다. 이렇게 가업을 이어가는 대대손손 같은 직업을 택하고 장인 정신을 이어가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100년 이상 가업을 이어온 집안의 이야기는 매우 생소하다.
여기 서울 종로 3가 뒷골목에 365일 한방의 향기가 그윽한 공간이 하나 있다. 묵묵히 170여 년간 가업을 이어오고 있는 한의원이 춘원당이다. 1847년부터 7대를 이어가고 있는 한의사 집안. 1953년부터 60여 년 동안 허리우드 극장 뒤쪽 허름한 골목 언저리에서 한의업을 이어가고 있다.
춘원당 <1847년 편안도 박천> => <1938년 평양> => <1952년 부산 부평동> => <1954년 ~ 현 서울 돈의동/낙원동>
지역성
1847년 평안북도 박천에서 시작한 춘원당은 1953년 현 춘원당의 윤영석 원장의 할아버지 고 윤종흠 원장이 서울시 종로 3가 뒷골목에 한의원을 지으면서 지금의 ‘춘원당’이 이어지고 있다. 당시 종로구 낙원동 지역의 모든 집들은 한옥이었다. 윤종흠 원장은 한의원은 복잡한 곳에 있으면 안 된다는 지역에 대한 철학이 있었다. 조용한 곳에서 자신을 필요로 하는 환자들을 맞이하겠다는 생각 때문에 골목에 자리하게 됐다. 지금은 이 곳 골목에는 유흥업소부터 숙박시설까지 다양한 상업시설이 채워져 있다. 그러서 인지 옛 춘원당 주변의 조용한 풍경을 잃은 지 오래지만 이곳을 떠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윤영석 원장은 다른 지역을 옮길 생각은 전혀 없다고 얘기한다. 이 골목에서 춘원당이 사라지만 이 곳은 또 다른 유흥시설로 채워질 수 있다는 염려 때문이다. 그만큼 이 골목에 대한 애정이 가득하다.
윤영석 원장은 한의사가 되기 전부터 선대의 많은 자료와 유물들을 한 대 모이고자 했던 꿈을 갖고 있었다. 이를 현실화시키기 위해 춘원당 본관 건너편에 한방박물관을 계획했다. 그리고 그 안에 탕제실과 약재를 저장고 등도 함께 담아내고자 했다.
황두진 건축가는 처음 춘원당 한방박물관 설계의뢰를 받고 이 지역을 찾았을 때 의아했다. 이렇게 유명한 한방병원이 이렇게 좁은 골목 안쪽에 위치해 있는 것이 굉장히 독특했다. 나중에서야 그 이유를 알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한의원이 한 지역에 자리를 잡는 순간 그 지역에 대해서 큰 책임을 동반한다. 한 곳에서 병원을 발전시켜나가면 동네를 위해 작게나마 기여하는 것이다. 건축주와 건축가의 철학이 맞닿았던 가장 큰 지점이었다.
춘원당 한방박물관 설계를 맡은 황두진 건축가는 경복궁 일대의 동네 건축가로 유명하다. (지역에 대한 생각) 서촌과 북촌 일대 좁은 골목 사이사이에 건축 작업을 진행했던 황두진 건축가의 경험과 이해가 설계를 맡길 수 있는 가장 큰 이유였다고 한다.
오래된 공간 속에서 새 것을 자연스럽게 만들어 낼 수 있는 건축가였다.
황두진 건축가는 현대 건축이 과거의 어느 시점까지 거슬러 올라가 과거의 한 부분과 연결될 수 있는 그런 건물을 만들고 싶었다. 우리가 새 것이라고 여기는 주변의 많은 것들이 알고 보면 굉장히 오랜 된 것들의 흔적이다. 더 나아가 현재의 것이 미래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는 있다는 것을 실현시킬 수 있는 프로젝트였다.
그래서이니 그 어느 때보다 건축주와의 궁합은 중요했다. 전문적인 분야인 만큼 많은 대화를 나눴다. 건축가는 춘원당 설계과정을 ‘우리나라 한방 역사의 큰 줄거리를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표현한다. 한방박물관은 우리나라 역사의 한 부분을 진지하게 담아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안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탕전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한방이라 하면 작은 약탕기에 한 첩 한 첩 약을 다려 먹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 정성은 여전히 중요하다. 하지만 춘원당의 경우 하루에도 굉장히 많은 환자들이 들리면 규모가 큰 한의원이다. 한약을 비교적 신속하고 매우 위생적으로 지어 환자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오히려 중요했다. 우리의 한방 현실이 과거와는 많이 달라진 것을 인정하고 오히려 새로운 방식과 이야기를 만들어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설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황두진 건축가의 제안을 들은 윤영석 원장은 크게 놀랐다. 바로 탕전실 설계 때문. 원래 본관 지하 구석진 공간에 자리 잡고 있었던 탕전 기를 본관 3층(?)에 설치하고 길에서 오가는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하자는 제안이었다. 현대사회에서 특히 의학 쪽에서 가장 중요시되는 것은 ‘투명성’에 두었다. 무엇보다 의약품 등을 만드는 과정에서 투명성은 굉장히 중요하다. 이러한 투명성은 신뢰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한방에서도 이러한 개념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 건축가는 한방의 가장 핵심이 될 수 있는 공간인 ‘탕전실’을 길에서 보이게끔 설계하자는 것이었다. 이는 단순히 건물 설계를 넘어 춘원당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기본적인 생각을 바꿔야 하는 결정이었다. 윤 원장은 말한다. 탕제실을 공개한다는 것은 가정에서 침실을 공개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음식점으로 치면 주방을 훤히 공개하는 것인데 사실 처음에는 부담스러웠다는 것이 솔직한 마음이었다. ‘탕제실을 보여주려면 우리가 얼마나 잘해야 할까?’ 드러다 보니 위생과 품질에 더욱더 신경 쓰게 됐다고 한다. 생약의 전 제조과정을 공개하면서 현대 한방의 과학성과 신뢰성을 강조하는 장치적인 역할을 해냈다.
지금은 박물관을 들리는 환자들과 방문객들의 메인 관람코스가 됐다.
환자분들이 탕제실을 직접 보고 약이 어떤 재료들로 어떻게 다려지는지 직접 보며 한약에 대한 이해와 신뢰도,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는 춘원당의 심장과 같은 공간이 되었다.
처음에는 고민에 빠졌던 병원 직원들은 설계가 진행되면 오히려 적극적으로 바뀌었다. 한방박물관과 마주하고 있는 본관의 진료실에서는 탕제실이 바로 보인다. 지금은 탕제실을 볼 때마다 투명한 설계에 마음이 뿌듯하다고 했다.
천연재료
한약은 화학적 재료가 아닌 천연재료를 열의 강도와 다리는 시간 등을 통해 약이 다려지는 과정을 보고 결심한 것이 있다. 한방 자체도 천연재료로 약을 제조한다. 황두진 건축가는 투명성이 다른 차원으로 적용된 것은 설계 및 공사 과정에서 모든 재료는 페인트와 같이 화학적 성분을 섞지 않는 재료 그 자체를 쓰겠다고 다짐했다. 이는 한방의 정신과도 통한다는 나름의 설계 철학 때문이었다. 이 건축도 어떻게 보면 날 것 그대로, 즉 재료의 성질을 그대로 드러내는 설계가 필요했다. 따라서 주요 골조를 철근콘크리트로 사용하고 외벽은 유리와 현무암을 사용했다. 부분적으로 나무를 사용했다. 내부는 층별로 재료의 사용을 달리했다. 각 층은 서로 다른 재료의 물성들을 통해 공간의 특성을 살렸다. 예를 들어 2층 진료실과 대기실의 경우 바닥, 벽, 천장 재료를 모두 나무로 활용해 안정감과 따뜻한 공간을 연출했다. 3층 탕제실과 4층 약재 검사실의 경우 유리와 스테인리스를 활용해 청결함과 위생적인 공간을 조성했다. 5층 한방박물관은 노출 콘크리트와 철을 활용해 역사를 담아내는 묵직하고 군더더기 없는 배경을 만들어냈다.
한방의 역사를 담아낸 한방박물관
윤영석 원장이 한방박물관을 지은 이유는 7대째 이어온 한의학의 기록물들을 체계적으로 보존해 후대에 물려주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작게는 한 집안의 가보정도이지만 크게는 우리나라 한의학 문화를 지키고 다양한 전시 등을 통해 그 정신을 이어가고 싶었다. 무엇보다 춘원당이 단순희 한의원으로서의 역할을 넘어 앞으로 한의학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을 해나갈 수 있길 바라는 소망도 있다.
한방박물관은 5층에 자리하고 있지만 어떻게 보면 건물 전체가 한의학 박물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혈도(한의학에서 병을 치료하기 위해 침을 놓거나 뜸을 뜨는 자리를 그림으로 표시해 놓은 인체도)나 침통(의료용으로 쓰는 침을 담아두거나 몸에 지니고 다니도록 편하게 만든 통), 약탕기(약을 달이거나 데울 때 사용하던 기구) 등 춘원당 선대 한의들의 유물 150점이 전시되어 있는 5층 한방박물관이 전통적인 의미의 박물관이라면 농약 검사실이나 약품 저장고, 탕제실 등은 현재를 담아내는 살아있는 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안에서 현재형의 한방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다. 이 외 지하 1층에 가면 역사관이 있다. 한쪽 벽면에는 춘원당 역사기록물이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큰 홀로 조성되어 있어 100여 명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공연이나 행사 등도 진행하면서 다양한 기획 전시도 이뤄지고 있다.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춘원당은 아픈 분들이 들르는 곳이다. 편안해한다. 건축주 윤 원장과 건축가 황 소장은 함께 입을 모았다. 공간이 얼마나 편안하게 다가오느냐 그게 가장 중요했다. 어릴 적 약한 몸으로 병원이란 공간을 자주 찾았던 황두진 건축가는 과도한 디자인, 자극적인 디자인은 배제했다.
윤 원장이 바라보는 춘원당은 장수하늘소다!
“장수하늘소는 흔치 않은 곤충입니다. 독특하면서도 오래된 곤충입니다. 춘원당은 긴 세월 장수해왔고 앞으로도 장수할 겁니다. 무엇보다 건축물 자체에서 풍기는 단단함과 듬직함은 장수하늘소의 모습과 비슷합니다. 이는 한방에 대한 신뢰로 이어집니다.”
황두진 건축가가 바라보는 춘원당은 종합 선물세트다!
“ 한방 종합 선물세트 같은 공간입니다. 그 안엔 진료실, 탕제실, 약재 저장고에서 박물관, 역사관까지 기능적으로 매우 복합적인 공간입니다. 건축물 자체가 한방의 역사적 콘텐츠를 품고 있습니다. 한방이 예스럽다면 건축물 자체는 현대식 건물입니다. 이는 서로 다른 시간대의 정서와 문화가 공존하고 하나의 단일한 성격으로 규정할 수 없는 복합적인 덩어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