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어 오십이 넘었는데도
사랑과 인정이 고플 때가 있다.
이 감정은 아마도 사라지지 않고,
대상만 바뀌며 계속되는 희망고문 같은 걸지도 모르겠다.
어릴 때부터 나는
엄마와 언니 앞에서 말을 아끼는 사람이었다.
불편해도 참고, 억울해도 삼키는 게 익숙했다.
그게 집 안에서 내가 배운 방식이었다.
아빠가 돌아가신 지도 어느덧 9년.
그 이후 엄마는 집을 정리하고 언니 집 근처로 이사하셨다.
언니는 병원이며 행정이며
엄마의 일상을 도맡아 챙기는 사람이 되었고,
엄마는 그런 언니에게 늘 고마워했다.
문제는 그 고마움이
나에게 올 때면 늘 조심스러운 형태가 된다는 거였다.
나에게 김치나 반찬을 해주실 때도
“언니한테는 말하지 마”라는 말이 따라붙었다.
처음엔 겸연쩍게 받아왔다.
나도 나름대로 용돈을 드리고,
집에 필요한 것들을 챙기며 균형을 맞추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 구조가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엄마가 무거운 걸 들다 허리가 아프면
병원에 모시는 건 언니의 몫이었고,
그 피로와 짜증은 다시 나에게로 왔다.
“왜 동생 먹이느라 무리하시게 만드냐”는 말로.
그때부터 언니 몰래 싸주시는 엄마의 모습도,
그 사이에서 점점 멀어지는 언니와의 관계도
모두 마음에 걸렸다.
몇 해 전에는 작은 오해가 쌓여 언니와 함께 하던 것들을 하나씩 끊게 됐다.
가족회비도, 엄마 보험도.
딸들 사이의 감정이 고스란히 엄마에게로 돌아가는 상황이 됐다.
그 과정에서 나는 죄책감과 분노 사이를 오갔다.
억울한데 말하지 못했고, 말하고 나면 또 내가 나쁜 딸이 된 것 같았다.
그렇게 몇 해를 지냈다. 그리고 이번 아빠 기일에, 익숙한 장면이 다시 반복됐다.
언니는 칭찬하고, 나는 굳이 꺼내지 않아도 될 이야기로 깎아내리는 말들.
그 순간,
내 안에서 뭔가가 올라왔다.
성장인지, 갱년기 에너지인지 모르겠지만 이번엔 참지 않았다.
“그만하세요.”
“그런 말, 듣기 싫어요.”
“앞으로는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언니에게도 말했다.
“앞으로 나를 무시하는 말은 하지 말라”고.
“이제는 안 참겠다”고.
말을 하고 나서 후회가 올 줄 알았다.
또 죄책감에 시달릴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집에 오는 길,
속이 이상할 만큼 시원했다. 앙금도, 미련도 없었다.
그들에게 화를 내서 시원한 게 아니라
내가 나를 지켰다는 사실이 나를 편안하게 만들었다.
그날 집으로 오면서 알게 되었다. 가족이라도
나를 함부로 대할 권리는 없다는 걸.
존중받지 못하는 자리에
침묵으로 남아 있을 필요는 없다는 걸.
누가 나를 존중해주지 않는다고 속상해할 게 아니라,
내가 나를 먼저 존중해야 한다는 걸 그날 몸으로 배웠다.
아마 아빠가 계셨다면 내 대신 호통을 쳐주셨을 장면이라
혼자 웃음도 났다.
나는 지금, 단단해지는 중이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참는 법을 늘리는 게 아니라
경계를 세울 줄 아는 사람이 되어가는 일이라는 걸
알가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