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이 코앞인 남편은 젊을 때보다 야근이 더 많아졌다.
젊은 직원들과 일하며 일을 던져준 채 뒷짐 지고 있는 부장의 모습으로 남는 것이 싫어서일까.
아직은 건재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남편만의 이야기는 아닐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던 며칠 뒤, 가까이 살고 있는 스승님께 연락이 왔다.
이것저것 물어보시다가
“요즘도 건강하게 잘 지내시지요?”라는 질문 끝에
몸이 아파 병원에 입원 중이라는 소식을 전해주셨다.
병원도 집 근처에 있는 대학병원이라 바로 다음 날 문병을 가 찾아뵈었다.
면역력이 떨어져 이곳저곳 아프시더니
결국 바이러스를 이겨내지 못하고 뇌수막염에 걸리셨다고 한다.
교수님은 올해 정년을 앞두고 계신데,
정년 후 다음 일에 대한 걱정과 자녀들의 경제 문제 등 여러 가지 걱정이 몰려
심적 과로로 몸이 상하신 듯하다.
교수님보다는 조금 젊은 남편은 아직 큰 병이 걸린 적은 없지만,
나이에 맞지 않게 일에 끌려 다니는 걸 보면 면역력이 떨어질 가까운 미래가 예측된다.
다른 사람들의 관점으로 볼 때, 65세 정년을 앞둔 교수님과 60세 정년을 3년 앞둔 남편의 고민이 정말 심각한 고민으로 보일까?
두 분 다 그동안 각자의 자리에서 맡은 직함으로 열심히 살았고 박수도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곧 연금도 수령하게 되므로 경제적 문제는 ‘당장’ 크게 없어 보인다.
그뿐인가. 아직 학령기인 자녀도 없고 모두 각자 경제 활동을 하고 있는데
무엇을 위해 몸을 갈아 넣고 마음을 졸이는 것일까?
아마도 앞에서 말한 경제적 문제나 처자식 책임 문제를 떠나서
자신만의 일에 대한 정체성의 혼란을 맞이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그동안 달려온 시간은 모두가 함께 뛰는 조급한 문화 속의 시간이었고,
그 사이 우리는 온전한 쉼이나 좋아하는 시간적 공간을 누려보질 못했던 게 아닐까.
요즘 정년을 앞둔 가장들에게 찾아오는 두려움은
어쩌면 그 ‘비어 있는 시간’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른다는 데서 시작되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두려움은 가장들 뿐 아니라 직장생활을 하던 모든 사람들에게 찾아오는
일종의 이별 기간의 혼란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쟁취하려 노력하는 시간의 고통보다, 쟁취했던 것들을 놓고 자유로워지는
남는 시간을 더 힘겨워하는 것 같다.
우리는 일하는 시간 외에 의미 있는 시간을 누려본 적이 있었나?
공부나 일 하는 시간 외에 누리는 시간을 ‘쓸데없는 시간’으로 여겨온 개념이
앞으로 주어질 시간을 마치 벌처럼 받게 하는 압박감으로 돌아오는 건 아닐까.
직장에서의 직함을 내려놓은 가장을, 직장에서의 직함을 내려놓은 엄마를,
가정에서 자녀들의 독립으로 자유를 얻은 엄마들을 떠올려본다.
왜 이들은 주어진 자유에 쉽게 환호하지 못하는 걸까.
우리는 늘 어딘가로 출근하듯 달려왔다.
매일 출근하던 길에 있던 카페에서시간 걱정 없이 앉아 커피 한 잔을 천천히 음미하고 싶던
시절이 있었는데도 말이다.
출근 대신 반려견과 함께 매일 출근하듯 카페에 들러, 바리스타가 내려준 향기로운 커피를 마시며
책 한 권 읽는 여유.
그런 시간을 ‘누려도 되는 시간’이라고 스스로 허락하는 일이, 왜 이렇게 어려울까.
직함, 급여 없는 삶에 대한 두려움에서
직함, 급여가 없어도 자유롭고 즐거운 삶으로 넘어가기가
그토록 어려운 것일까.
나 역시도 50대에도 다시 직장으로 들어가 60까지 일해야 하는 거 아닌가?
잘하면 65세까지 정년이 연장될 수도 있다던데…
이런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일, 특히 직장에 나가는 행위는 목적이 분명해야 덜 흔들릴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다시 직장(조직)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맞지 않다는 걸 조금씩 인정하게 된다.
나에게는 직장에서의 시간, 공간, 인간관계에서의 모든 ‘참아야 할’ ‘버텨야 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직장은 내가 다시 돌아갈 곳이 아니라, 결국 나와야 할 곳임을 알아가는 중이다.
대신 직장이 아닌 직업을 하나둘 가지며, 하루를 나와 잘 지내는 것이
정년을 어차피 맞이하게 될 50대를 사는 지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직 직함의 굴레에서 한 발짝만 나오면 누릴 수 있는 자유를
오히려 두려워하는 모든 정년을 앞둔 직장인들에게, 나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내려놓는 건 밀려나는 게 아니라, 내가 선택하는 일’이라고.
우린 꼭 밀려날 때까지 그 멋지고 존엄한 선택을 미루곤 한다.
이제 우리, 용기 내는 50대가 되어보자.
60이나 50이나 언제든 자유를 선택할 수 있음을,
그리고 끝이 있어 아름다움을 아는 우리가 되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