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를 통해 얻어지는 것?

고전에서 얻은 통찰

by 은하수

헤밍웨이가 쓴 소설이 여러 권 있는데 그동안 한 권도 나에게 다가오지 않았던 이유는 작가가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부정적 마무리에 대한 인식이 마음에 자리 잡고 있어서 인 듯하다.


그러나 그런 기억도 세월의 힘이 퇴색하게 만들었는지 도서관에서 <노인과 바다>가 눈에 들어와 책을 펴자마자 이틀 만에 다 읽게 되었다.


<노인과 바다>는 헤밍웨이가 마지막으로 쓴 소설이자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는데 큰 영향을 미친 최대의 걸작이라는 걸 증명하듯 작품을 읽는 동안 마치 내가 망망대해에 떠있는 작은 배에서 끊임없이 찾아오는 상어 떼와 싸우고 있는 것처럼 실제 온몸에 힘이 들어가는 듯 실감 나는 소설이다.


노인은 나이 들어 물고기를 잡지 못하자 운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이면에는 정말 인생에서 가장 큰 물고기를 잡고 싶은 꿈을 매일매일 꾸고 있었다.


혼자 바다에 나가서 만난 어마어마한 크기의 물고기를 잡기 위해 노인이 가지고 있는 별의별 필살기를 다 펼치는 모습에서 내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고기 잡을 실력은 충분한데 잡히지 않는 고기는 사회에서 나를 알아주는 곳이 없어 서운하고 억울한 마음에 보란 듯이 큰 대어를 낚으려 두리번 대는 모습과 정말 닮아있었다.


그러나 목숨을 건 사투 끝에 잡은 물고기는 세상 속(바다)에서 더 큰 힘(상어 떼)에 의해 모두 빼앗기게 된다.

노인의 배처럼 너무 작은 그릇을 가지고는 큰 것이 주어져도 받지를 못한다.

설사받았다 하더라도 그걸 노리는 수많은 상어 떼 같은 경쟁자들이 호시탐탐 먹어치우려 덤벼들기 때문이다.


나에게 온 큰 물고기가 과연 내 것이 맞을까? 바다에 사는 물고기는 노인의 것일 수도 있고 또 아닐 수도 있다.

자신의 온몸을 갈아 넣어 잡은 물고기를 상어들에게 다 빼앗기고 빈 가시만 싣고 돌아온 노인의 모습은 소유라는 게 주인이 정해진 게 아니라는 걸 인정해야 하는 허탈한 내 모습이기도 하다.


물고기를 빼앗겼다고 해서 인생이 실패한 것은 아니다.

헤밍웨이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어떤 형태로든 다른 것들을 죽이고 있어"라는 표현으로 자연 안에서 모두가 같은 운명임을 표현한다.


다만, 이러한 진리를 알게 되는 시기가 인생의 후반기즈음 찾아온 다는 걸 작가의 다른 작품들을 통해 유추해 볼 수 있다.


작품에 대한 논평에서는 젊은 시절에 쓴 소설에는 헤밍웨이의 개인적인 사상이 드러나고 중기작으로 갈수록 점차 공동체의식으로 발전하고 마지막 작품인 <노인과 바다>에서는 마침내 우주의 모든 개체와 종을 함께 아우르는 최고의 단계까지 이르렀다고 평가한다.

즉, 작품을 통해 작가의 의식 흐름을 볼 수 있는 거다.


나라는 사람은 어떤 의식의 변화가 있었을까?

12년 전부터 매일아침 세 페이지의 글을 써놓은 20여 권의 노트를 열어보면 세월의 변화와 함께 점차 발전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매일 써놓은 글들을 세상에 내놓고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지는 못했지만 나라는 단 한 사람의 독자에게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을 안내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글쓰기는 멋진 기술인 것 같다.

우리가 글을 쓰는 이유는 결국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다.


헤밍웨이는 젊은 시절 스페인 내전에 참전하는 등 존재의 의미를 찾기 위해 자신을 위험한 곳으로 내 몰기도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잔혹한 전쟁터나 일상을 살고 있는 세상이나 우주론적으로 보면 하나라는 걸 나이가 들어가며 점차 깨닫는 것 같다.


그는 바다, 물고기, 새, 별, 달 등 생물에서 무생물까지 아우르는 우주적 세계관으로 확대된 의식의 변화를 마지막 소설 <노인과 바다>에 담아냈다.


며칠천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한강작가의 소감문에서 어린 시절 비를 맞으며 바라본 건너편에 서있는 사람들 역시 같은 비를 맞고 있는 하나로 보여 그때부터 모두가 하나인 사람을 표현하고자 글을 읽고 쓰게 되었다고 한다.


헤밍웨이, 한강, 차인표... 모든 작가들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내가 누구인지... 나를 알게 되면 사람을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는 마음은 글이라는 표현으로 상대에게 전해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하나임을 자주 잊게 되는 세상의 개념에 이리저리 끌려다니게 된다. 중간에 끼어들어온 세상의(지식, 이념, 사상 등) 속임수에 넘어가 모든 사람들을 밟고 넘어서야 할 장애물로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세상의 모든 것이 내 위주로 존재한다는 착각에 빠져 모든 것들을 지배하고 다스린다는 명목하에 마구 사용하고 오염시켜 지금의 지구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헤밍웨이는 고기를 잡으려 하는 동안에도 물고기를 형제처럼 의인화하며 애틋한 마음을 갖기도 한다. 그리고 고기를 꼭 자신이 잡아야 할 정복 대상이 아닌 하나로 표현한다.

"우리는 지금 마치 형제처럼 항해하고 있지 않은가."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고기가 나를 데려가고 있는 건가, 하니면 내가 고기를 데려가고 있는 건가", 하고 생각한다.


결국 작가가 말하듯 생물, 무생물, 모두가 하나라는 표현은 우리가 알아야 할 최종적 결과이며 진실이다.

세상에 태어나 살고 죽는 똑같은 운명 속에서 누가 누굴 판단하고 지배한다는 말인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사랑하고, 감사하는 것 외에는 선택할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그리고 우리가 내 것이라 여기는 모든 소유는 내 것이 아닌 세상 모든 것의 소유라는 걸 알게 해주는 고전 속 작가의 섬세한 언어를 통해 마음에 새기는 것이 고전에서 얻을 수 있는 귀한 통찰이다.


또 하나, 나에게도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는 조금은 숙련된 기술을 습득하게 된 것에 감사하며 이런 모든 감정들을 문장으로 표현하는 것이 글 쓰는 사람으로 써 마땅히 해야 할 일이며 감사할 일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무덤너머에 대해서는 아무런 확신을 줄 수 없는 우주의 일부다."

" 종말은 암흑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깨닫고 인간 자신에게서 용기 있게 빚어낸 실천적 윤리로 삶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만들어 내야 한다". < 어니스트 헤밍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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